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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2.06.14 페이스북 '좋아요'의 세계
  2. 2012.03.06 페이스북과 디지털 감시사회

페이스북이 음성통화나 문자 기능을 대체할 정도로 대중화됐습니다. 웹은 물론 모바일을 통해 실시간으로 친구들의 소식을 접할 수 있고, 내가 올린 콘텐츠에 대한 반응도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니 중독될 수밖에요.

 

페이스북의 중독력에 한 몫을 한 게 아마 ‘라이크(like)’ 버튼이 아닐까 싶습니다. 친구가 올린 콘텐츠에 클릭 한번 만으로 간단히 호응을 해줄 수 있고, 굳이 긴 댓글을 달지 않아도 서로 소통하고 있음을 인지할 수 있으니 얼마나 편리한지요. 저는 페이스북에 접속해 있지 않았는 데도 때로는 웬만한 뉴스나 여타 콘텐츠를 보면서 자동으로 ‘라이크(like)’를 찾고 있더라구요.

 

 

그럼 이 ‘라이크(like)’ 버튼은 언제 어떻게 탄생했을까? 2010년 4월 페이스북 개발자 컨퍼런스인 F8 행사에서 처음 소개됐다고 합니다. 벌써 2년이나 됐네요. 다른 서비스 페이지, 블로그, 특정 아이템마다 연동할 수 있고, 사용자가 누르면 바로 페이스북에 공유되는 기능이지요. 다른 어떤 마케팅 도구보다도 콘텐츠 노출과 확산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마케팅전문가들은  ‘라이크(like)’ 버튼의 경제적 가치(사용자당 1달러 이상.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하루 평균 사용자가 4억8천만명이라고 하니 ㄷㄷㄷ네요.)를 계산해 평가하기도 한답니다. 하지만 요즘 페이스북에 대한 부정적인 전망도 나오고, 장기적인 가치에 대해서는 아직 정확히 알 수 없다고 하지요.

 

 

 

 

타임라인, 오픈그래프 등 페이스북이 잇달아 내놓고 있는 새로운 기능들도 ‘라이크(like)’ 만큼 대중적인 호응을 얻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라이크(like)’는 일종의 놀이이자 문화가 되기도 했습니다. ‘라이크(like)’ 카드도 있죠. 온라인 뿐만 아니라 오프라인 공간에서도 ‘라이크(like)’ 버튼을 쓰고 싶은 저같은 사람들이 많았나보죠. 투명한 재질의 명함 크기 카드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카드 놀이(?)를 하네요.

 

 

(출처 : http://www.facebook.com/postview )

 

 

우리나라에서는 ‘라이크(like)’ ‘좋아요’로 쓰이는데요. 외국에서 각국어로 다양하게 쓰이고 있는  ‘라이크(like)’ 버튼을 찾아보니 이렇게 많네요. (사실 다른 나라는 어떤 버튼을 쓸까 궁금해서 찾아보다가 이 포스팅까지 하게 됐다는...)

 

어디 보자... 라틴어로 mihi placet, 독일어로 gilla, 일본어로 いいね, 인도네시아어로는 seneng 등이네요. 페이스북 하다보면 '좋아한다'는 의미의 다양한 언어도 배울 수 있겠군요.ㅋ

 

 

 

 

 

마음에 안 드는 내용에 ‘좋아요’를 누르기 싫은 사람들은 "‘싫어요’는 왜 없느냐"는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는데요. 페이스북 측에서는 아직 '싫어요', '좋아하지 않아요' 등의 부정적 의미를 담은 버튼을 내놓을 의사가 없는 것으로 알려집니다. 공유, 마케팅적인 측면에서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어느 발랄한 네티즌이 자발적으로 ‘싫어요’ 버튼을 만들어내기도 했죠. 일종의 패러디네요.

 

 

더욱 과감하고 과격한 버튼도 있고요.ㅋ

 

 

 

여하튼 마우스로 손가락 클릭 한번 까딱하는 것으로 소통이 이뤄질만큼, 편리해진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예전엔 어른께 문자를 보내는 것이 예의가 아니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달라진 것처럼, 미디어가 발달할수록 소통의 방식과 문화도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언제 또 ‘좋아요’보다 더 편리하고 재미난 소통 방법이 등장할지 기대되네요. 그럼 이만 총총.

 

 

Posted by 이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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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미디어가 없던 시절엔 대체 어떻게 살았던가. 지금 일하고 있는 인터랙티브팀 업무가 주로 소셜미디어를 연구하고 활용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나는 요즘 워낙 소셜미디어에 푹 빠졌다. 명색이 신문기자인데, 신문보다 스마트폰의 페이스북앱으로 신문기사를 접하는 일이 더 잦아졌다.

최근엔 트위터보다 페이스북에 열심이다. 트위터 타임라인은 시간이 지나가면 흐르는 강물처럼 다 흘러가버린다. 검색도 쉽지 않다. 트위터 이용자들은 주목되는 핫 이슈가 있을 때, 이슈를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뭉쳤다가 이슈가 지나가버리면 손가락 사이로 모래 빠져나가듯 금세 빠져나가 버린다.

트위터는 느슨하게 연결된 대중의 연대를 견인한다. '약한 연대(weak tie)'의 전형이다. 이슈가 몰리면 살아움직이는 여론을 바로바로 목격할 수 있어 흥미롭지만, 평소 특별한 이슈가 없을 땐 재미가 별로 없다.


페이스북은 개인화되어 있다. 나의 사진과 나의 소소한 일상, 나의 생각들을 디지털화해 저장할 수 있고 이를 토대로 나의 친구들과 공유, 교류할 수 있다. 실시간으로 나의 친구들이 띄우는 글들을 통해 안부를 묻고, 생각을 공유하고, 감정을 나눌 수 있다. 편리하다. 몸을 움직이지 않아도 내가 이미 그곳에, 그들과 함께 있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1년간 얼굴을 못보는 친구와도 매일같이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온라인 공간이 2% 부족하다 느끼는 이들에게야 페이스북은 그저 하나의 웹서비스일 뿐이지만, 나처럼 생활화된 사람에겐 페이스북이 또 하나의 세계다.

불편한 점도 있다. 한번은 갈 수 없는 약속을 "몸이 안 좋다"는 핑계로 거절한 뒤, 페이스북에 지인들이 약속 장소에서 찍어 올린 사진을 보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마치 나의 꼼수를 들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무도 내가 정말 아픈지 아닌지 확인할 수도 없는데, 뭔지 모르게 발가벗겨진 기분이 들었달까. 온라인 공간이 이미 내 오프라인 삶 속 공간중 하나가 되었기 때문일까.

요즘은 페이스북 창을 열때마다 뜨는 '타임라인' 서비스 때문에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타임라인 서비스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사람의 일생을 일목요연하게 페이스북 안에 정리해두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페이스북은 타임라인을 홍보하는 동영상을 통해 한 사람이 태어나고, 자라서 학교에 진학하고, 연애하고 결혼해 아이를 낳으며 늙어가는 과정을 손 쉽게 담을 수 있음을 강조한다.


그런데 나는 이 서비스를 사용할까 말까 잠시 망설이다 결국 창을 닫았다. 사람의 일생을 디지털 데이터로 완벽하게 정리해 둔다는 것이 징그러워졌기 때문이다. 마치 영화나 소설 속에서 아찔한 심정으로 보아왔던 '디지털 감시사회' 속으로 저항할 수 없이 빨려들어가는 기분도 들었다.

고든 벨과 짐 겜멜은 <디지털 혁명의 미래>에서 미래 사회가 '완전한 기억'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이들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전자기억'을 통해 인간이 삶의 모든 것을 완벽하게 기억하고 저장할 수 있는 시대가 머지 않았다고 보았다. 모든 것이 자동으로 완벽하게 저장되고 기억되어, 언제고 DB 속에서 꺼내 볼 수 있는 편리한 '라이프로깅'의 시대를 그들은 환상적인 미래라고 기대한다. 그리고 그 기억들은 디지털을 통해 불멸할 것이라는 예측도 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완전한 기억의 시대가 온다면, 사람들은 기억과 망각의 자유를 잃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기억이나 망각의 자유는 바로 인간의 특권이다. 불완전한 기억과 서로 다른 이야기가 만나면서 사람들의 대화는 시작된다. 김주환 연세대 교수는 "커뮤니케이션은 미스커뮤니케이션 때문에 가능해진다"고 했다. 모두가 똑같은 기억과 자료를 갖고 있다면 사람들은 대화할 이유가 없어진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모두가 스토리텔러다. 사람의 기억은 모두 '이야기'를 기반으로 구성된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완벽하지 않다.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것, 망각하고 싶은 것을 적당히 편집해 만들어낸 나만의 이야기가 바로 기억이다. 그런데 완벽한 기억이 가능해진다면, 사람들은 그 이야기들을 서로 나눌 필요없이 저장된 기억을 꺼내보기만 하면 된다. 징그럽다.

하긴, 나는 이미 이런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20대 초반에 시작했던 싸이월드 계정은 여전히 내 삶의 일부분들을 기억하고 저장하고 있다. 이렇게 내 삶의 조각들은 오래전부터 디지털 공간 곳곳에서 '이고은의 공식기억'을 자처하며 부유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제 정보 주체의 '잊혀질 권리'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물론 이런 단상을 블로그와 페이스북에 옮겨놓는 것도 사실은 모순이다. 편리한 디지털 기록을 통해 나의 현재를 손쉽게 기억하고 싶은 욕망이 내 망각의 권리를 짓눌렀다는 증거다. 앞으로도 이런 일은 점점 더 많이 용인될 것이다. 온라인 공간이 삶 깊숙이 침투되면서 우리 모두 이런 일에 무감각해질 테니까.

 

Posted by 이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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