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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4.06.27 딸들의 꿈은 이어질 수 있을까?
  2. 2014.05.22 엄마하기 불안한 나라

국시기라는 경상도 음식이 있다. 요리라고 하긴 뭣하고, 밥에 김치와 콩나물 등을 넣고 푹 끓인 일종의 죽이다. 별 맛 없이 맵고 짜기만 한 이 음식은 돌아가신 나의 아버지를 떠올리게 한다. 일 때문에 엄마가 안 계실 때, 출출해 하는 우리 삼남매를 위해 아버지께서 만들어 주신 특급 요리였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이따금 청소나 설거지 등 집안일도 하셨는데, 나는 가사에 참여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얼마 전 설거지하는 아빠가 성공하는 딸 만든다는 기사가 눈길을 끌었다. 미국 심리과학 학회지에 실린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의 한 연구 논문에 대한 기사로, 아버지가 가사 분담을 얼마나 잘 하느냐에 따라 딸들의 장래희망이 다양해진다는 내용이다. 가사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딸에게 전통적인 성역할에서 벗어나 다양한 꿈과 장래희망을 갖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출처 : 경향신문 DB

 

내가 아버지의 집안일 하는 모습을 좋았던 기억으로 갖고 있는 것도 아마 이와 비슷한 이유일 것이다. 어린 마음에 우리 집은 남녀가 평등한 가정이라는 생각에 만족했던 것 같다. 결혼 후 남편과 가사를 분담하는 것은 의심의 여지없이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다. 덕분인지 유년시절의 나는 여성의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으로부터 자유로운 편이었다.

 

성역할뿐만 아니라, 아버지는 존재 자체로 자녀의 사회적 학습과 성취에 영향을 미친다. 태어나기 이전부터 신체·정서적으로 자녀와 긴밀하게 얽힌 어머니와 달리, 아버지는 아이가 처음으로 접하는 사회적 존재다. 양육 방식에서도 어머니는 본능적으로 아이를 보호하는 것이 우선이므로 외부 자극에 방어적이지만, 아버지는 새로운 자극과 도전을 긍정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아이가 진취적인 태도를 갖도록 이끌어준다. 아버지가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할수록 아이는 보다 풍부한 경험을 갖고 균형 잡힌 사고를 하게 된다.

 

때문인지 요즘 아버지의 육아에 대한 관심이 부쩍 커졌다. MBC <아빠! 어디가?>, KBS 2TV <슈퍼맨이 돌아왔다> 등의 예능 프로그램은 과거 권위적인 가장이었던 아버지의 모습 대신, 함께 여행을 하고 요리를 하며 아이들과 호흡을 맞추는 친구 같은 아버지를 그리고 있다. 요즘 각광받는 이런 아버지상을 스칸디 대디(Scandi daddy)’라 부른다. 복지제도가 잘 발달되어 있어 아이들의 양육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북유럽의 아버지들을 모델로 한 용어다.

 

하지만 북유럽이 아닌 한국에 살고 있는 우리 아버지들에게는 이런 분위기가 오히려 피곤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육아휴직에 세계 최초로 남성할당제를 실시한 노르웨이의 경우 남성의 육아휴직률이 80%에 이른다. 스웨덴도 전체 육아휴직자 가운데 남성이 44%를 차지해 여성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우리와 비교나 될까.

 

출처 : 스토케 마이캐리어

한국의 아버지는 북유럽의 아버지처럼 육아에 시간을 마음껏 쓸 수 없다. 2001년 남성 육아휴직 제도가 도입됐지만, 지난해 육아휴직 사용인원 67000명 가운데 남성의 비율은 3%대에 불과하다. 한국의 아버지들은 잦은 야근과 회식으로 육아는커녕 평일에 아이의 얼굴 한번 제대로 보고 잠들기도 어렵다. 그런데도 스칸디 대디운운하며 일과 육아 모두 완벽하게 해내는 이상적인 아버지상을 설정하는 것은 한국의 아버지들에게 육아를 또 다른 노동이자 스트레스로 만들어버리는 일이 될 것이다.

 

현실이 이렇다보니 육아의 의무는 여성들이 고스란히 짊어질 수밖에 없다. 결혼과 출산 후, 대부분의 여성들은 슈퍼우먼 콤플렉스에 빠진 직장맘이나 일과 자아실현을 포기하는 전업맘중 하나를 선택하는 기로에 서게 된다. ‘설거지하는 아빠가 만든 성공한 딸들은 그 이후 어떻게 될까? 그들의 꿈은 계속 이어질 수 있을까?

 

다시 아버지의 국시기로 돌아가 본다. 작으나마 가사에 참여해 오신 아버지를 통해 자연스레 양성평등을 익혔다고 느끼는 나는, 자라면서 여자이기 때문에 불이익을 받거나 무언가를 포기한 적이 없다. 꿈꾸던 기자가 되어 현장을 뛰었고, 야근을 밥 먹듯 했으며, 고되고 오랜 해외출장도 당연하게 다녀왔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지금의 나는 여성으로서 처음으로 사회의 벽을 느낀다. 그동안 배우고 경험한 성역할과 새로운 현실의 성역할이 충돌하면서 혼란스럽고 불안하다. 다행히 가사에 적극적인 남편 덕분에 나의 가사노동 부담과 자녀의 양성평등 교육에 대한 우려는 줄어들었지만, 향후 이어질 육아 문제는 개인과 가정의 노력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모두가 좋은 부모가 되기를 고민하고, 즐거운 육아를 꿈꾼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남녀 모두에게 육아가 힘겹기만 한 사회다. ‘육아전쟁’, ‘육아독립군등 전의가 가득한 용어들이 우리가 처한 현실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이 글은 2014년 6월 여성가족부 산하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블로그에 실린 글입니다.

 

 

Posted by 이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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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처음으로 아이에게 신발을 신겨 아파트 놀이터에 데리고 나갔다. 첫걸음을 떼고 조금씩 아장아장 걷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낯선 신발을 신고 놀이터를 둘러보는 아이의 눈빛이 조심스러우면서도 호기심에 가득 찼다. 덜컥 앉아 들풀을 만져보기도 하고, 마침 제 앞을 쪼르르 지나는 벌레 한 마리도 유심히 바라보았다. 햇살이 맑은 늦봄, 어딘지 모르게 뭉클했다. 놓치기 싫은, 행복하고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그러나 아이를 재우고 컴퓨터 앞에 앉은 지금은 매우 불안하고 괴로운 순간이다. 오는 9월 회사 복직을 앞두고 아이를 맡길 곳이 신통치 않아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가 태어난 후 어린이집 입소를 위해 대기 신청을 해두었지만, 아직도 대기 순서 100번 대인 곳도 있다. 임신 사실을 알자마자 신청해야 할 정도라더니, 그러지 못한 것에 후회막심이다. 퇴근 시간이 일정치 않은 직업 특성상, 아이돌보미 서비스도 알아보고 있는데 이 역시 녹록치 않다. 이러다 우리 아이를 맡아줄 사람이 없을까봐 종종거리는 것이 요즘 나의 일상이다.

 

 

 

 

그러나 불안은 이제부터 시작일 뿐이다. 어렵사리 누군가에게 아이를 맡겼다고 치더라도 끝이 아니다. 어린이집 위생 불량 문제, 아동학대 문제, 보육 교사나 육아도우미의 자질 문제, ·하원 교통안전 문제 등. 뉴스에서 흔히 보아오던 각종 보육관련 사건 사고에 대한 우려가 당장 눈앞의 현실이 될 생각을 하니 아찔하기만 하다. 맞벌이 부부의 아이가 자폐 증세를 보여 엄마가 당장 일을 그만 뒀다는 지인의 이야기도 뇌리를 스친다.

 

그뿐일까. 일과 육아 사이의 줄다리기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본격적인 전쟁에 돌입한다. 요즘 아이들은 뭘 그리 많이 배우는지, 팔방미인이 아닌 아이들이 없는 것 같다. 학원 버스에서 내려 또 다른 학원으로 들어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이 어찌나 짠한지 모르겠다. 소위 학원 뺑뺑이는 일하는 엄마들의 불가피한 선택이자, 아이들이 친구를 사귀기 위한 유일한 방편이라고도 하니 더욱 슬퍼진다.

 

어쨌든 사교육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엄마들은 전쟁터에 나서는 마음으로 정보전에 돌입해야 한다. 엄마가 뒤처지면 아이마저 뒤처진다는 불안한 생각으로 엄마들은 자신의 학창시절보다 갑절은 더 열심히 공부한다고 한다. 우리 사회의 이 엄청난 교육열은 강남불패라는 부동산 시장의 공식까지 만들어내지 않았던가.

 

아이를 거의 다 키웠다 싶더라도 불안은 계속된다. 이번 달에는 세월호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차디찬 바닷물 속에 아이를 묻은 엄마의 심정을 어찌 감히 공감한다 말할 수 있을까 조심스럽다. 아직도 아이를 찾지 못한 부모의 마음은 사건 발생 후 내내 불안과 공포로 가득 찼을 것이다.

 

이번 사건은 우리 사회가 아이들에게 결코 안전한 사회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줬다. 관련 업계는 물론이고 이를 감시해야 할 정부와 기관 모두 이번 사건에 책임이 있지만,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구조적 문제가 줄줄이 터져 나와 더욱 실망을 안겨줬다. 사회안전망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결코 안전함을 느끼지 못하는 사회. 배를 타면 배를 탔기에, 지하철을 타면 지하철을 탔기에 불안해해야 하는 이 사회. 엄마들은 도대체 언제까지 불안함을 끌어안고 아이를 키워야 할까.

 

 

요즘 들어 아이는 부쩍 말을 잘 알아듣고, 눈이 마주칠 때마다 생글생글 웃는다. 그 순간마다 인생에 또 이렇게 행복할 때가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어 감격스럽다. 내 몸에서 한 생명을 키워내 세상에 내어놓는 일이란 일생에 가장 신비롭고 경이로운 경험이건만, 그 아이를 세상 속에서 키워가는 과정은 왜 점점 더 힘겹고 슬픈 일이 되어야 할까. 이렇게 엄마하기 불안한 나라에서, 나는 그 불안함의 첫 경험을 고작어린이집 입소 문제로 겪고 있다그런데도 난 왜 이렇게 험난해만 보일까.

 

 

*이 글은 2014년 5월 여성가족부 산하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블로그에 실린 글입니다.

Posted by 이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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