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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역할'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5.10.14 <어른 되면>과 <돼지책> 사이에서
  2. 2014.08.19 남자아이는 왜 자동차에 꽂힐까?

내가 커서 어른 되면 어떻게 될까? / 아빠처럼 넥타이 매고 있을까? / 엄마처럼 행주치마 입고 있을까? / 랄랄라 다 같이 흉내 내보자. / 나는 엄마, 나도 엄마. 아빠 다녀오세요. 호호. / 나는 아빠, 나도 아빠. 여보, 여보 다녀왔소.”(동요 <어른 되면>)

 

아이와 함께 동요를 듣다 화들짝 놀랐다. 어릴 때 무심코 듣고 따라 불렀던 기억이 있는 노래이긴 한데, 가사가 이런 줄은 이제야 알았다. 노래 속에서 아빠는 넥타이를 매고 일을 하러 나가고, 엄마는 행주치마를 입고 아빠를 반긴다. 전형적인 전근대적 성역할로 엄마와 아빠의 모습을 구분하고 있는데, 이게 2015년 오늘날에도 거리낌 없이 유통되고 있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직접적인 경험만큼 아이들에게 영향력 있는 것은 없지만, 우리가 늘 가까이 접하는 미디어의 중요성을 무시할 수 없다. 아이들은 책, 텔레비전, 음악 등 다양한 간접 경험을 통해 세상을 배우고 사회를 이해한다. 그런데 그 속에 담긴 이야기가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심어주고 심지어 성차별적인 내용이라면? 그런 내용을 지속적으로 접한 아이들이 자라 어른이 되는 세상은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이미 어른인 우리가 접하는 미디어에서 고정된 성역할이 그려지고 있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 9월 미디어오늘은 1997년부터 2015년까지 총 36편의 KBS 주말드라마 속 남녀 직업을 조사해 발표했는데, 남성 등장인물의 직업은 기업체의 사장(CEO)이 가장 많았던 반면 여성 등장인물의 직업 중 가장 많은 것은 가정주부였다. 직업을 가진 여성의 비율이 높아지긴 했지만 전문직 비중은 남성보다 현저히 작았다. 지난 6월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과 서울YMCA가 공동으로 진행한 방송사 시사 토론 프로그램 모니터링 분석에서는 프로그램에 등장한 남녀의 비율이 21 정도로 불균형했다. 방송에서의 역할도 남성은 전문성, 여성은 이미지를 강조하는 경향을 띄어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심어주고 있었다고 한다.

 

 

MBC <진짜사나이> 여군특집편. 출처 : MBC 홈페이지 화면캡처

 

 

최근 TV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아예 여성 고정 출연자를 찾아볼 수 없다. MBC <무한도전>, KBS <12>, SBS <런닝맨> 등 대표적인 지상파 주말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전원이 남성 출연자로 구성되어 있거나 여성 출연자는 극소수에 그친다. 여성들이 대거 출연하는 경우는 MBC <진짜 사나이>의 여군 특집에서나 있는 일인데, 예능에서 여자 연예인이 기근인 시대에 진짜 사나이가 되어야만 프로그램에 얼굴이라도 내비칠 수 있다는 게 아이러니다. 하긴, 예능에서 여성이 살아남기란 참 힘들다. 예전부터 예능에 나오는 여성을 평가하는 잣대 중 가장 큰 것은 바로 외모였다. 예쁘지 않은 여성은 웃기기라도 해야 하고, 예쁜 여성이라면 너무 멍청하거나 너무 똑똑해선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기 십상이다.

 

미디어가 여성을 가두는 틀은 가부장제 문화다. 남성의 시선으로 볼 때 불편하거나, 남성의 지위를 위협하는 것처럼 보이는 면은 되도록 보여주면 안 된다는 게 불문율이다. 미디어에 등장할 정도로 성공한 여성에 대한 시선들은 날이 서있고 불공정한 경우가 많다. 기자로서 유명하고 능력 있는 여성 인터뷰이들을 많이 만났지만, 그들에게는 공통적으로 시기와 질투로 인한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강한 이미지의 여성은 너무 나댄다는 평가가 뒤따랐고, 사회적으로나 가정생활에서나 성공한 여성에게는 남편과 사이가 안 좋다는 소문이 맴돌았다. 한 명의 여성이자 딸 가진 엄마로서 안타깝고 답답한 노릇이다.

 

 

앤서니 브라운의 <돼지책> 표지. 출처 : www.aladin.co.kr

 

얼마 전 동화작가 앤서니 브라운의 <돼지책>을 아이들과 함께 읽었다. 집에서 모든 가사를 도맡아하는 엄마가 사라지자 아빠와 두 아들은 돼지가 되어버리는데, 이들이 엄마가 돌아온 후 개과천선(?)해 요리도 하고 집안 청소도 함께 하면서 온 가족이 행복해진다는 이야기다. 마지막 장에서 엄마는 자동차 수리를 하며 웃는다. 페미니즘의 요소가 들어간 동화라는 점에서 무척 흥미진진하게 보았다.

 

아이들에게 <어른 되면> 같은 동요는 안 들려주고 <돼지책> 같은 책을 골라서 읽혀야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자라면서 자연스레 경험하고 목격하게 될 수많은 성차별과 고정된 성역할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해주어야 할까 걱정이 되었다. 부디 대중매체에서만이라도 <돼지책>처럼 양성평등적인 메시지가 많이 등장하길 바란다.

 

*이 글은 2015년 10월 여성가족부 산하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의 '양성평등 미디어'에 실린 글입니다.

Posted by 이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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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개월 된 우리 아이는 요즘 자동차에 푹 빠졌다. 지나가는 자동차만 보면 ! !”라고 소리치며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아빠의 운전석에 앉아 핸들을 돌릴 때 세상에서 가장 기쁜 양 웃음을 짓는다. 요즘은 거의 자동차 장난감만 갖고 노는데, 같은 자동차라도 진짜 자동차 모양에 가까운 것을 더 좋아한다. 예상대로, 우리 아이는 남자아이다.

 

듣기로는 남자 아이들은 자동차 아니면 공룡에 꽂힌다던데, 우리 아이의 경우는 자동차인가보다. 우리 아이가 남자아이임을 증명하는 예는 이 뿐만 아니다. 한번은 문화센터에서 공놀이 수업을 하는데, 여러 색깔의 공들 중에서 파란색 공만 골라잡은 적도 있다. 심지어 자기 앞으로 다른 색 공이 굴러오자, 옆의 친구가 갖고 있는 파란색 공을 갖겠다고 달려가기도 했다.

 

자동차를 좋아하게 된 것은 일찍이 자동차 그림책을 열심히 봤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많이 보여줬기 때문인지, 스스로 좋아해서 많이 보고 싶어 했기 때문인지는 확실히 모르겠다. 파란색 공을 좋아하는 것은 옷이나 이불, 각종 물품들이 대부분 파란색 계열의 것이기 때문에 익숙해서가 아닐까 추측한다. 어쨌건 신기했다. 14개월밖에 안 된 아기가 어떻게 벌써 전형적인 성역할 개념과 취향을 갖게 됐을까.

 

사진 출처 : 쇼핑몰 11번가

 

생물학적 성에서 비롯된 선천성의 결과이기도 하겠지만, 인간이 본격적으로 자신의 성과 관련한 지위와 역할을 학습하는 것은 사회화 과정을 통해서다. 이것을 성역할 사회화(sex socialization)’라고 한다. 시몬느 드 보봐르는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했는데, 이 명제는 남성에게도 통용된다. 사회적 성이란 생물학적 성과 더불어 어떤 성적 환경 속에서 자라느냐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다.

 

일차적인 성역할 사회화는 가족을 통해 이뤄진다. 부모가 자녀와 관계를 맺는 방식이나 자녀에게 만들어준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성역할을 학습하는 것이다. 많은 부모들이 남자 아이가 장난꾸러기 같은 행동을 하면 씩씩하다고 칭찬하는 반면, 같은 행동을 해도 여자 아이가 말괄량이처럼 행동하면 걱정거리로 여긴다. 때문에 남자 아이는 여자 아이보다 독립적이고 도전적으로 자라는 경우가 많다.

 

장난감이나 책, 미디어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일반적으로 남자 아이들에게는 자동차나 무기, 운동기구와 같은 장난감을 쥐어주고 여자 아이에게는 인형과 소꿉놀이 등의 장난감을 갖고 놀게 한다. 이를 통해 남자 아이는 경쟁심, 도전 정신, 공격성 등을 학습하는 반면, 여자 아이는 외모, 보살핌, 관계 등에 대해 배우게 된다고 한다. 어린 시절의 작은 자극들이 모여 아이의 성향과 기질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페미니스트 정신분석학자인 낸시 초도로우(N.Chodorow)는 전통적인 남녀 간의 성역할 차이를 줄이기 위해서는 아버지도 어머니와 함께 자녀양육에 관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동으로 양육에 참여하는 부모를 보고 자란 아이가 성역할에 대한 균형감각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남자 아이는 아버지를 자신과 동일시하며 성장하는데, 가사와 육아에 참여하지 않고 관계 맺기에 둔감한 아버지를 보고 자란 경우 타인과의 감정 교류나 관계 맺기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얼마 전 오랜만에 만난 대학 동창의 집에 놀러갔더니, 예쁜 원피스를 입은 딸아이가 자동차를 조종하면서 놀고 있었다. 바지로 옷을 갈아입은 뒤엔 아빠와 함께 아파트 농구장에 가서 운동을 하며 놀기도 했다. 친구는 아이가 성 고정관념에 갇히지 않도록 일부러 자동차나 운동 기구 등의 장난감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나는 파란색 공을 잡은 아이에게 우리 아들 상남자네.”라며 머리를 쓰다듬으며 농담을 했지만, 아이가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갖고 자라게 될까봐 살짝 걱정도 됐다.

 

앞으론 아이의 장난감을 고르거나 아이의 행동에 대해 칭찬할 때엔 이 점에 더욱 민감해져야겠다. 동물 인형이나 주방놀이 장난감도 위시리스트에 올려둘 참이다. , 그리고 이번 기회를 빌미로 남편에게는 더욱 많은 가사와 육아 참여를 독려해 봐야겠다. ...

 

 

*이 글은 2014년 8월 여성가족부 산하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블로그에 실린 글입니다.

 

Posted by 이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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