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의 존재를 통해 오래전부터 품고 있던 의문들이 일거에 풀렸습니다. 이런 생각도 들었죠. '아, 내 꽃같은 청춘 20대에 무슨 뻘짓을 했던가?' 블로그에 예전에 포스팅했던 적이 있지만, 저는 제가 20대였던 2007~2009년 박근혜 당시 전 한나라당 대표를 담당하는 마크맨이었습니다. 물론 실제로는 박근혜 담당이라기보다 '친박(親朴)' 담당이라고 보는 것이 맞았습니다. 당시에도 박 대통령은 물리적으로 접근이 불가능한 취재원이었기에 늘 그의 발언과 의중을 알려면 박 대통령 주변인을 취재하는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주변인이란 원조 친박으로 불렸지만 지금은 비박계 대표인물이 된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과 유승민 의원도 있었고, 새누리당 대표인 이정현 의원도 있었습니다. 당시 박근혜 담당 기자들은 이들의 의견을 청취하며 박 대통령의 생각을 읽으려 노력했습니다. 이혜훈 의원, 구상찬 전 의원도 매일같이 통화하던 이들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최순실의 존재와 전횡에 대해 알고 있었을 이들을 생각하면 오히려 더한 분노가 끓습니다만.)
2007년 대선후보 경선 당시 박근혜 캠프 담당 기자들 사이에는 "박 캠프 사람들은 '박근혜 뽕'을 심하게 맞은 것 같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박 대통령에 대한 신비주의와 신격화의 정도가 무척 심했기 때문이죠. 이들 중 특히 이정현 대표(당시 대변인)의 '뽕'은 가장 심각한 수준이었다고 기억합니다. 차움병원 스캔들을 지켜보다가, 경선에 패한 후 후일을 도모하던 시점에 이 대표와 나누었던 대화(=수다)가 떠올라 흠칫하더군요.
"우리 대표님이 참 완벽한 피사체지? 사진기자들이 이리 찍어도 저리 찍어도 너무 잘 나온다고 그러데. 그런데 2012년 대선 때는 대표님이 환갑이야. 그때 할머니처럼 보일까봐 걱정이야. 그러면 누가 찍어주겠냐고... 주름 막 패이고 그러면 어떡해~."
당시만 해도 박 대통령의 이미지는 청렴, 무욕(無慾), 원칙... 뭐 이런 단어로 설명될 정도로 피부 미용이나 '여성의 사생활'과는 참 무관해보였더랬죠. 그래서 이 대표가 그때 그런 말을 할 때 '아, 참모들은 참 별것도 다 고민해야 하는구나...' 하고 웃어넘겼는데, 지금 와서 보니 박 대통령 본인도 사실은 아주 오래전부터 얼굴 주름 고민을 해왔던 게 아닌가 추측해봅니다. 지지율과 피부 미용 사이에 적잖은 상관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이미 예전부터 간파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요.
결국 제 허탈감의 근원엔 첫번째로 최순실이 있습니다. 당시에도 '강남팀' 등의 이름으로 비선의 존재에 대해 조금 알려지긴 했지만 너무 베일에 싸여있어서 함부로 말을 꺼내기 힘든 분위기였습니다. 그런데 그토록 알고자 했던 박 대통령의 의중이 사실은 모두 최 선생님의 것이었다니요... 20대 시절에 애인보다도 더 많이 통화하던 정치인들의 이야기가 사실은 모두 추측과 상상의 소산이었음을 안 제 심정이 어땠을 것 같습니까? 허허...탈탈...
두번째로는 한국사회에 대해 가졌던, 그러나 무너진 기대감 때문에 허탈했습니다. 여기서 이제 제 근황에 대해 이야기하려는데요. 저는 지난 6월에 회사에 사표를 내서 더이상 신문기자가 아닙니다. 두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한 선택입니다. 기자를 꿈꾸던 시절부터 기자로 일해온 시간까지 합치면 거의 20년간 제 인생을 설명해온 키워드인 '기자'라는 이름을 이제는 내려놓게 됐습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이 사회의 모순과 문제점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합니다. 북유럽 사회를 꿈꾸는 많은 한국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다름아니라 아이 키우기 좋은 사회, 아니 다시 말해 '일과 육아를 함께 할 수 있는 사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아이가 없다면 '일과 개인적 생활의 균형이 있는 사회'일 수도 있습니다.) 한국 사회는 여성이 일도 육아도 잘 해내려면 오로지 개인적인 '노오력'을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여성 혼자서 이를 해내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사회와 국가가 적극적인 지원이 뒤따라야 합니다.
적극적인 지원이란 게 어린이집을 확충하고 보육비를 더주고,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현재 우리 정부는 "아이는 국가가 키울테니 엄마 아빠는 직장에서 뼈빠지게 일하세요"라는 노선을 취하고 있는데, 궁극적으로 언젠가는 엄마 아빠가 직접 아이들을 돌볼 수 있고 일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구조로 바뀌어가야 할 것입니다. 그런 변화는 국가, 정부가 만들어낼 수 있고요.
저는 우리 사회가 언젠가는 그런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기대와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런 생각들을 담아 애들 뒤치다꺼리로 바쁜 와중에도 쪽잠자며 <요즘 엄마들>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제 기대와 믿음이 얼마나 컸으면 책까지 썼겠습니까.
그런데 작금의 시대 상황은 제 이런 기대가 너무도 허황하고 순진한 것이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우리 정부가, 저처럼 평범한 국민이 보다 인간적이고 행복한 삶을 꿈꾸며 그 기대감을 표현하며 변화를 촉구한다고 한들, 귓등으로라도 들었을까 싶습니다. 노동소득이 자본소득을 결코 넘어설 수 없는 구조, 자본이 없는 맞벌이 부부는 아이를 남에게 맡겨두고 끊임없이 노동해야 하는 구조. 우리 정부는 이 구조를 더욱 공고화하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지 않습니까. 기업의 삥을 뜯는 댓가로 세제 혜택을 주고 경영권 승계 문제에 관대한 태도로 일관했습니다. 기업만 배불리고 노동시장을 유연화한다는 핑계로 노동자만 쥐어짜는 구조를 확고히 해가고 있습니다. 이런 정부에, 이 정부의 대통령에게, 제 기대와 믿음은 얼마나 무의미한 것이었을까요.
알고보니 최순실은 이렇게 제 삶에 깊숙이 파고 들어 있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수많은 이들의 삶에 크고 작은 영향을 끼치며 살아숨쉬어 왔겠죠. 생각하면 속이 너무 답답해 2살, 4살짜리 아이들을 데리고 광화문에도 다녀왔습니다. 박 대통령이 언제까지 버틸지 모르겠습니다만, 짧게나마 제가 관찰해온 그는 다른 많은 사람들의 예측처럼 절대 스스로 물러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제 남은 건 이유도 모른 채 최순실 때문에 울었던 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끈기'뿐입니다. 뿌리 깊은 친일, 수구보수 세력이 설계하고 운영해온 한국 사회의 민낯을 이참에 더욱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알게 되었으니, 어쩌면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듭니다. 어디에서부터 무엇을 바로잡아야할지 보다 많은 사람이 공감했으니, 더 많은 가능성이 생긴 게 아닐까 희망도 가져봅니다. 물론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릴 수도 있겠지요. 당장 다음 대선, 혹은 몇 년 안에 대단한 변화를 바라는 것 역시 순진한 기대일는지 모릅니다. 그래도... 돈이 최고이고 경쟁과 배제가 만연한 세상살이 와중에, 광화문의 촛불을 보면서 우리가 참 오랜만에 '인간다운' 순간을 맞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피켓을 보니 "국민이 이긴다"고 쓰여있더군요. 구중궁궐에 숨은 그분은 그 문구를 보고 코웃음 칠지도 모르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서서히, 언젠가는 국민이 이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들 재우고 끄적댔습니다. 이제 백수가 된 애 엄마인 저는... 앞으로 종종 블로그에 흔적을 남기려 합니다. 사는 이야기들, 편안하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좋은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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