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 직전까지 담당했던 ‘알파레이디 포럼’은 ‘알파걸(Alpha-girl)들은 왜 사회에 나와 성공한 여성이 되지 못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프로젝트였다. ‘알파걸’로 불리는 수많은 여학생들이 학교에서 반장·부반장을 도맡아 하고 사회 각 영역으로 뛰어난 여성들의 진출이 활발하지만, 정작 사회에 나가보면 CEO나 관리자 등 여성 리더를 찾기는 쉽지 않다. 능력 있는 여성들이 점점 더 많이 배출되는데 반해, 정작 사회에서 그 재능을 발휘하고 인정받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다.
포럼의 관점은 여성의 사회 활동을 가로막는 복잡한 사회구조적 문제도 중요하지만 그 전에 여성 스스로의 자세와 태도를 점검해보자는 것이었다. 여성의 고위직 승진을 막는 장벽인 ‘유리천장(Glass ceiling)’은 무형의 것이므로 여성 스스로 자신을 유리천장 아래에 가두는 무형의 문제가 있는지, 있다면 무엇인지를 알아보고자 했다.
포럼은 성공적이었다. 처음엔 멘토들의 강연으로 이뤄진 ‘알파레이디 리더십포럼’으로 시작해 ‘알파레이디 북토크’, ‘알파레이디 문화톡톡’ 등 시리즈로 3년간 계속되었고, 천여 명에 달하는 여성 참석자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멘토들은 “여성성을 업무에 긍정적으로 발휘하라”, “남성적 조직문화를 거부하지 말고 녹아들라” 등의 실용적인 조언을 했다. 특히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초년생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나 역시 여성이라는 이유로 몰랐거나 소홀히 했던 점이 무엇인지 점검해볼 수 있었다.
2011년 6월에 열린 국내 최초 전투병과 여성 장군인 송명순 준장의 강연.
그런데 아쉽고 안타까운 부분이 하나 있었다. 강연대에 올라선 수많은 여성 멘토들의 성공 뒤에는 출산, 육아 등으로 발생되는 문제들을 누군가에게 위탁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이 있었다. 만약 안정된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줄 (시)부모님이나 남편, 혹은 재력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그들이 있었을까? 이런 질문에 그들은 스스로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들의 성공 뒤에는 어머니 혹은 아내의 역할을 잊고 일에 집중할 수 있게 한 주변의 희생과 도움이 있었다.
물론 주로 40~50대에 해당하는 멘토들이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의 환경과 지금은 다르다. 당시엔 사회생활을 하는 여성이 지금보다 적었고, 출산 및 육아에 대한 제도적 뒷받침도 턱없이 부족했다. 하지만 지금이라고 상황이 크게 나아진 것 같지는 않다. 여성의 진출이 활발한 만큼 출산과 육아 등 가정사적인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여성들도 부쩍 늘었다. 사회제도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엔 태부족이고 대부분 개인적으로 해법을 찾는다. 그러다보니 친정에 아이를 맡기고 생활하는 경우가 많아 삶의 중심이 모계 중심으로 옮겨가는 ‘신 모계사회’라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이도 저도 여의치 않은 평범한 여성이라면 성공의 꿈을 접어야 할까?
30대 중반에 접어든 지금, 아이를 키우는 친구들 사이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친정 혹은 시댁과 가까이 사는 것이 가장 부럽다.”, “육아휴직을 3년씩 할 수 있는 공립학교 교사가 최고다.” ‘알파걸’이었던 친구들이 결혼 후 자신의 꿈이나 미래와는 무관하게 현실과 마주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씁쓸하면서도 공감이 간다. 특히 맞벌이 ‘육아독립군’의 최대 고민은 자신의 미래나 자기계발보다, ‘어떻게 하면 좋은 베이비시터를 구할 수 있느냐’에 맞춰져 있다.
사진출처 : 경향신문 DB
이래서야 알파걸들이 알파레이디로 성장할 수 있을까. 30대, 한창 일터에서 자신의 전문성을 키우고 역량을 뽐내야 할 때지만, 워킹맘들에게는 죄책감과 불안함이 늘 뒤따라 다닌다. 올해 ‘워킹맘 고통지수’를 보면 워킹맘의 90%가 일과 가정, 육아를 병행하는 것이 고통스럽다고 평가했다. 정부에서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대안으로 내놓고 있지만, 일자리의 질이나 전문성의 문제를 놓고 보면 경력단절 여성들에게는 제2의 도전이 불가능에 가깝다고 한다. 어쩌면 여성의 성공을 가로막는 가장 큰 유리천장은 여성을 일과 가정 사이에서 갈팡질팡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우리 사회의 갑갑한 현실일는지 모른다.
지금의 알파걸들이 자라 40~50대가 되었을 때에는 이야기가 달라질까? 그때에도 “친정이나 시댁의 도움 없이는 성공 못한다.”, “아이들을 방목했는데 알아서 잘 커줘서 고마울 따름”이라는 이야기를 들어야만 한다면 우리 사회의 미래는 어둡기만 할 것이다. 다만, 슬픈 것은 20년 전 알파걸이었던 지금의 30대들은 어렵사리 성공한 훗날, 이런 이야기를 그대로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알파걸이 알파레이디가 되는 길은 너무도 험난하다.
*이 글은 2014년 7월 여성가족부 산하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블로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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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크하우스 2014.07.22 23: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 갑니다. 상쾌한 하루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