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톱스타 이효리 자택서 숨쉰 채 발견(1보).’
지난주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휩쓴 멘션입니다. 깜짝 놀라셨죠? 언뜻 보면 톱스타 이효리의 사망소식 같으니까요. 찬찬히 다시 읽어보면 맥이 빠집니다. ‘숨진 채’가 아니라 ‘숨쉰 채’입니다. 사람 목숨 가지고 장난을 치다니 너무하다 싶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실소가 터져나옵니다.
파장이 커지자 곧 ‘자정작용’이 시작됐습니다. “한 사람의 생명을 가지고 이렇게 장난치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느낀다는 게 문제”(@m*******u), “욕 드시고 싶지 않으면 이런 장난은 금지하도록”(@R********Y) 등 자성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사건이 커진 것은, 오히려 보수 언론들이 뛰어들면서였습니다. 조선일보는 16일자 기사 ‘강호동이 죽었다고? 도 넘은 SNS’에서 “막강한 정보 전달력을 가진 트위터 등 SNS를 통한 유명인 거짓 자살 루머가 급속히 번지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다른 많은 신문·방송도 ‘도 넘은 장난’ ‘악질 희학’이라며 강력하게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언론의 비판은 점차 ‘SNS 자체의 위험성’ 쪽으로 확장됩니다. SNS가 검증되지 않은 ‘괴담’을 유포하는 근원지라는 주장입니다.
가뜩이나 정부·여당에서 SNS를 규제하려는 분위기가 감지되는 와중입니다. 검찰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관련 ‘괴담’을 유포한 이들에 대해 수사하겠다고 했죠.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SNS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심의하는 기구를 신설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음모론’까지 등장했네요. “트위터와 SNS를 탄압하려는 고도의 전략 아닌가?”(@wi********n), “SNS의 부작용이나 폐해 쪽으로 몰고 가서 통제하려는 속셈으로 보이는 건 나만의 생각인가?”(@sk*******6)라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사회에서, 주류에서 벗어난 의견을 때려잡는 방식이 반복될 때 사회는 점점 더 위험한 방향으로 달려가게 됩니다. 경향신문 김철웅 논설실장은 칼럼 ‘괴담을 좇는 사회’에서 “중간지대는 무시한 채 그렇게 몰아버리면 소통은 거기서 끝”이라고 경고합니다.
웃자고 한 일에 죽자고 달려드는 일, 이 정부 들어 너무 자주 봅니다. 다큐멘터리가 되어버린 <개그콘서트>를 보는 것도 괴로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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