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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의 업뎃입니다. 최순실, 정유라, 길라임, 비아그라... 박근혜 대통령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말도 안 되는 관련어들이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습니다. 깊은 분노와 허탈감을 느꼈습니다. 제가 지금 블로그를 열어 무엇이라도 쓰게끔 만든 힘이지요. '길라임'으로 이 감정의 정점을 찍을무렵, 드라마 <시크릿가든>에 대해 끄적댔던 죽어있는 제 블로그를 떠올렸습니다.

 

최순실의 존재를 통해 오래전부터 품고 있던 의문들이 일거에 풀렸습니다. 이런 생각도 들었죠. '아, 내 꽃같은 청춘 20대에 무슨 뻘짓을 했던가?' 블로그에 예전에 포스팅했던 적이 있지만, 저는 제가 20대였던 2007~2009년 박근혜 당시 전 한나라당 대표를 담당하는 마크맨이었습니다. 물론 실제로는 박근혜 담당이라기보다 '친박(親朴)' 담당이라고 보는 것이 맞았습니다. 당시에도 박 대통령은 물리적으로 접근이 불가능한 취재원이었기에 늘 그의 발언과 의중을 알려면 박 대통령 주변인을 취재하는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주변인이란 원조 친박으로 불렸지만 지금은 비박계 대표인물이 된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과 유승민 의원도 있었고, 새누리당 대표인 이정현 의원도 있었습니다. 당시 박근혜 담당 기자들은 이들의 의견을 청취하며 박 대통령의 생각을 읽으려 노력했습니다. 이혜훈 의원, 구상찬 전 의원도 매일같이 통화하던 이들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최순실의 존재와 전횡에 대해 알고 있었을 이들을 생각하면 오히려 더한 분노가 끓습니다만.)

 

2007년 대선후보 경선 당시 박근혜 캠프 담당 기자들 사이에는 "박 캠프 사람들은 '박근혜 뽕'을 심하게 맞은 것 같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박 대통령에 대한 신비주의와 신격화의 정도가 무척 심했기 때문이죠. 이들 중 특히 이정현 대표(당시 대변인)의 '뽕'은 가장 심각한 수준이었다고 기억합니다. 차움병원 스캔들을 지켜보다가, 경선에 패한 후 후일을 도모하던 시점에 이 대표와 나누었던 대화(=수다)가 떠올라 흠칫하더군요.

 

 

"우리 대표님이 참 완벽한 피사체지? 사진기자들이 이리 찍어도 저리 찍어도 너무 잘 나온다고 그러데. 그런데 2012년 대선 때는 대표님이 환갑이야. 그때 할머니처럼 보일까봐 걱정이야. 그러면 누가 찍어주겠냐고... 주름 막 패이고 그러면 어떡해~."

 

당시만 해도 박 대통령의 이미지는 청렴, 무욕(無慾), 원칙... 뭐 이런 단어로 설명될 정도로 피부 미용이나 '여성의 사생활'과는 참 무관해보였더랬죠. 그래서 이 대표가 그때 그런 말을 할 때 '아, 참모들은 참 별것도 다 고민해야 하는구나...' 하고 웃어넘겼는데, 지금 와서 보니 박 대통령 본인도 사실은 아주 오래전부터 얼굴 주름 고민을 해왔던 게 아닌가 추측해봅니다. 지지율과 피부 미용 사이에 적잖은 상관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이미 예전부터 간파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요.

 

결국 제 허탈감의 근원엔 첫번째로 최순실이 있습니다. 당시에도 '강남팀' 등의 이름으로 비선의 존재에 대해 조금 알려지긴 했지만 너무 베일에 싸여있어서 함부로 말을 꺼내기 힘든 분위기였습니다. 그런데 그토록 알고자 했던 박 대통령의 의중이 사실은 모두 최 선생님의 것이었다니요... 20대 시절에 애인보다도 더 많이 통화하던 정치인들의 이야기가 사실은 모두 추측과 상상의 소산이었음을 안 제 심정이 어땠을 것 같습니까? 허허...탈탈...

 

 

박근혜의 신비주의, 언제 깨질까?

다시보니 너무 소심하고 점잖게 쓴 지난 2011년의 포스팅;;;

 

 

두번째로는 한국사회에 대해 가졌던, 그러나 무너진 기대감 때문에 허탈했습니다. 여기서 이제 제 근황에 대해 이야기하려는데요. 저는 지난 6월에 회사에 사표를 내서 더이상 신문기자가 아닙니다. 두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한 선택입니다. 기자를 꿈꾸던 시절부터 기자로 일해온 시간까지 합치면 거의 20년간 제 인생을 설명해온 키워드인 '기자'라는 이름을 이제는 내려놓게 됐습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이 사회의 모순과 문제점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합니다. 북유럽 사회를 꿈꾸는 많은 한국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다름아니라 아이 키우기 좋은 사회, 아니 다시 말해 '일과 육아를 함께 할 수 있는 사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아이가 없다면 '일과 개인적 생활의 균형이 있는 사회'일 수도 있습니다.) 한국 사회는 여성이 일도 육아도 잘 해내려면 오로지 개인적인 '노오력'을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여성 혼자서 이를 해내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사회와 국가가 적극적인 지원이 뒤따라야 합니다.

 

적극적인 지원이란 게 어린이집을 확충하고 보육비를 더주고,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현재 우리 정부는 "아이는 국가가 키울테니 엄마 아빠는 직장에서 뼈빠지게 일하세요"라는 노선을 취하고 있는데, 궁극적으로 언젠가는 엄마 아빠가 직접 아이들을 돌볼 수 있고 일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구조로 바뀌어가야 할 것입니다. 그런 변화는 국가, 정부가 만들어낼 수 있고요.

 

저는 우리 사회가 언젠가는 그런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기대와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런 생각들을 담아 애들 뒤치다꺼리로 바쁜 와중에도 쪽잠자며 <요즘 엄마들>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제 기대와 믿음이 얼마나 컸으면 책까지 썼겠습니까.

 

 

그런데 작금의 시대 상황은 제 이런 기대가 너무도 허황하고 순진한 것이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우리 정부가, 저처럼 평범한 국민이 보다 인간적이고 행복한 삶을 꿈꾸며 그 기대감을 표현하며 변화를 촉구한다고 한들, 귓등으로라도 들었을까 싶습니다. 노동소득이 자본소득을 결코 넘어설 수 없는 구조, 자본이 없는 맞벌이 부부는 아이를 남에게 맡겨두고 끊임없이 노동해야 하는 구조. 우리 정부는 이 구조를 더욱 공고화하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지 않습니까. 기업의 삥을 뜯는 댓가로 세제 혜택을 주고 경영권 승계 문제에 관대한 태도로 일관했습니다. 기업만 배불리고 노동시장을 유연화한다는 핑계로 노동자만 쥐어짜는 구조를 확고히 해가고 있습니다. 이런 정부에, 이 정부의 대통령에게, 제 기대와 믿음은 얼마나 무의미한 것이었을까요.

 

알고보니 최순실은 이렇게 제 삶에 깊숙이 파고 들어 있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수많은 이들의 삶에 크고 작은 영향을 끼치며 살아숨쉬어 왔겠죠. 생각하면 속이 너무 답답해 2살, 4살짜리 아이들을 데리고 광화문에도 다녀왔습니다. 박 대통령이 언제까지 버틸지 모르겠습니다만, 짧게나마 제가 관찰해온 그는 다른 많은 사람들의 예측처럼 절대 스스로 물러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제 남은 건 이유도 모른 채 최순실 때문에 울었던 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끈기'뿐입니다. 뿌리 깊은 친일, 수구보수 세력이 설계하고 운영해온 한국 사회의 민낯을 이참에 더욱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알게 되었으니, 어쩌면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듭니다. 어디에서부터 무엇을 바로잡아야할지 보다 많은 사람이 공감했으니, 더 많은 가능성이 생긴 게 아닐까 희망도 가져봅니다. 물론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릴 수도 있겠지요. 당장 다음 대선, 혹은 몇 년 안에 대단한 변화를 바라는 것 역시 순진한 기대일는지 모릅니다. 그래도... 돈이 최고이고 경쟁과 배제가 만연한 세상살이 와중에, 광화문의 촛불을 보면서 우리가 참 오랜만에 '인간다운' 순간을 맞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피켓을 보니 "국민이 이긴다"고 쓰여있더군요. 구중궁궐에 숨은 그분은 그 문구를 보고 코웃음 칠지도 모르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서서히, 언젠가는 국민이 이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들 재우고 끄적댔습니다. 이제 백수가 된 애 엄마인 저는... 앞으로 종종 블로그에 흔적을 남기려 합니다. 사는 이야기들, 편안하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좋은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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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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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입니다.^^ 저는 지난해 6월에 첫 아이를 낳아 지금 육아휴직 중이에요. 아이를 낳았던 당시, 출산의 순간을 블로그에 비공개로 기록해두었는데 오랜만에 다시 보니 새롭네요. 처음이라 너무나 힘겨웠던 첫 아이의 탄생을 다시금 되짚어볼까 합니다.

 

 

2013년 6월 26일 : 예정일

 

오전 10시. 예정일이라 잔뜩 긴장한 채 병원에 진료를 받으로 갔어요. 아직 별 기미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미약하나마 진통수치가 잡히더라고요. "규칙적으로 진통이 오면 다시 병원으로 오라"는 소리를 듣고 집으로 돌아갔어요. 예정일에 맞춰 진통이 시작되다니, 약속 하나는 잘 지키는 녀석이라고 생각했죠.

 

오후 2시. 들쑥날쑥하긴 하지만 조금씩 진통이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때부터 진통주기를 체크했더니 10~20분 간격. 아직 주기가 길긴 했습니다. 차근차근 진통 주기가 일정해지기를 기다렸습니다.

 

오후 5시. 점차 통증이 일정하게 오는 것 같아서, 우선 '밥'을 먹으러 갔습니다. 애 낳으려면 힘이 좋아야 한다는 생각에...;;; 평소 자주 가던 보쌈집에서 뭔가 비장한 마음가짐으로 열심히 밥을 먹었습니다.

 

오후 7시. 진통 주기가 5분 간격인 것 같아(분명히 그렇게 느껴졌는데...!) 병원에 전화를 해본 후 입원했습니다. 내진을 해보니 10% 정도가 진행되었다고 하더라고요. 여튼 입원 수속을 하고 링겔 꽂고 태동 진통검사 등등을 시작. 휴, 이때는 정말 몰랐습니다. 아기를 만나기가 그렇게 어려운 일인줄을요.

 

 

2013년 6월 27일 : 40+1일

 

오전 2시. 진통이 점점 커지면서 진통지수 100을 찍곤 했으나, 15%밖에 진행이 안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진행이 더딘 편이라고요. 처음 입원할 때는 이날 새벽이면 아기를 낳을 것이라 예상했으나, 진행 정도가 느리니까 힘이 쪽 빠지더라고요. 잠을 못자 피곤하기도 하고요. 

 

오전 3시. 피곤해 진통이 없을 땐 간간이 눈을 붙이기까지 했습니다. 이거 뭐, 진통 오는 건가 안 오는 건가... 그 뒤로 희한하게도 진통 주기가 오히려 점점 더 길어지기까지 하더라고요.

 

오전 7시. 배고파 밥 먹었습니다. -_-;;; 밤새고 완전 피곤했어요.

 

오전 10시. 담당 선생님이 내진해보곤 20%밖에 진행이 안 되었다면서, 이런 속도로는 오늘 낮 중에는 힘들 것 같다고 "집에 갔다 다시 오실래요?"라고 묻습니다. 하늘이 노래지더라고요. 아프긴 아프고, 언제 다시 진통이 올지, 진행이 갑자기 될지도 모르고... 그래서 일단 입원은 유지하기로 했습니다.

 

오전 12시. 또 배고파 밥 먹었어요.

 

오후 1시. 폭풍 운동으로 진통주기를 줄여보려고 했어요. 짐볼도 하고 그네도 타고... 그런데 어찌된  일일까요. 진통주기나 크기에 변화가 없고 오히려 더 늘어지더라고요. 점점 더 말짱해지는 나... 어쩔꼬.

 

오후 4시. 간호사도 퇴원을 심사숙고하라 합니다. 그러나 담당 선생님의 권유로 일단 대기했습니다.

 

오후 6시. 저녁까지 먹었습니다. 아, 오늘 밤에는 낳을 수 있을까? 그러나 내일 아침은 먹지 말라고 하네요. 밥 먹지 말라는 말이 반가운 이유는 뭘까요.ㅠㅠ

 

오후 7시. 등에 무통관을 삽입했습니다. 진행이 50~60% 되면 무통주사를 놓기 위함인데요. 이것만으로도 진척이 있다는 말이므로, 그 통증조차도 기쁨으로 다가왔습니다. 이후 쭉 진통실에서 계속 운동하고 움직였어요. 그런데 이게 웬 일. 점점 더 아프긴 한데, 진행 상태는 그대로라고 합니다. 정말 절망이었죠. 그 상태 그대로, 저는 이틀째 밤을 새게 됩니다.

 

 

2013년 6월 28일 : 40+2일

 

새벽 내내 운동을 하고 진통없을 땐 졸며 대기를 했어요. 옆에서 지켜보는 남편도 너무 힘들어해서 병실에 가서 자고 오라 했습니다. 혼자 진통을 견디고, 내진해도 변화가 없고... 그럴 때마다 심리적으로 무척 힘들었습니다. 옆의 산모는 나보다 늦게 왔는데도 빨리 아이를 낳고 평화를 찾더라고요. "아파 아파~~!!"라고 소리치는 그 산모가 어찌나 부럽던지. 눈물이 줄줄 났습니다. 나도 빨리 아파야 낳을 거 아니야...

 

오전 7시. 결국 촉진제(옥시토신)를 투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아이를 낳고 싶어서 버텼는데... 이러다 사흘밤 새겠다 싶더라고요. 주사 바늘을 꽂으면서는 엄청난 두려움이 엄습해왔습니다. 어떤 사람은 아프기만 하고 진행이 안 되는 경우도 있대요.

 

오전 9시. 약발이 받는 것이었을까요. 진통주기도 밭아지고, 세기도 훅훅 커지고... 갑자기 폭풍 진통이 시작됐습니다. 엄청 아프더라고요. 이제 보니 이틀동안 아픈 건 아픈 것도 아니었어요.ㅠㅠ 너무 아프길래 부푼 마음으로 내진을 해봤으나, 겨우 30% 진행... 이때부터 저는 이성을 잃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아픈데도 안 된다고? 그럼 앞으로 얼마나 아파야 한단 말인가!!! 대절망이었어요. 남편한테 "도저히 못할 것 같다"고 죽는 소리를 해댔습니다.

 

그런데 우리 남편, 독한지고. "이틀간 고생해놓고 수술하겠다고? 나중에 후회할 걸!" 합니다. 맞습니다. 나도 안다고요. 하지만, 너무 아픈걸요. 훅훅훅.

 

오전 10시. 잠깐 기절한 것 같습니다. 아파서요. 남편 왈, 제가 "울고불고 난리치더니 갑자기 잠이 들더라"고요. 5분간 눈 감고 쌕쌕 자더니, 갑자기 깨어나서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길 반복하더랍니다.

 

네. 생존을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어요. 라마즈 호흡법. 그동안 제가 했던 호흡법은 그냥 흉내였던 것 같아요. 막상 극한 상황에 닥치니까 저절로 되더군요. 온 몸의 이산화탄소를 죄다 뽑아낸다는 느낌으로 내쉬고, 모든 산소를 빨아들인다는 기분으로 들이쉬라... 이 상태로 1시간 30분을 버텼습니다. 진통수치 100을 찍어도 소리 한번 안 지르고 호흡만으로 버틴 것이지요. 남편은 이때의 나를 보고 완전 다른 사람같았다고 합니다. 엄마는 위대하다고나 할까.

 

오전 11시 30분. 하지만 1시간 30분 이상 버티는 것은 무리였나봐요. "꺄악!" 비명을 지르며 배를 움켜쥐었습니다. 그런데 웬일입니까. 양수가 벌컥벌컥 쏟아진 뒤 내진해보니 70%나 진행되었다는 거예요. 아, 드디어 말로만 듣던 '무통 천국'을 경험해봅니다. 등 뒤로 무통주사약이 쏴아~ 투입되는 것이 시원하게 느껴지더니... 멀쩡한 인간으로 돌아와 남편과 이야기도 하고, 웃으며 엄마 얼굴도 보고...

 

오후 1시. 다시 진통이 옵니다. 아... 그런데... 진통이 뭔지 아는 상태에서 다시 진통이 오니까 정말 미치겠더라고요. 더군다나 아기가 나올 준비를 하느라 다리로 갈비뼈를 차서, 호흡법도 더이상 통하지 않았습니다. 혼자 난리난리, 눈뜨고는 못볼 짐승의 모습으로 포효하다 무통주사를 한번 더 맞았습니다. 엉엉.

 

오후 3시. 무통의 효과도 끝나고, 이제 온전히 제 진통을 겪었습니다. 아기는 거의 다 내려왔다고 해요. 그런데, 나 죽겠다 싶은데 "눕지 말고 걸으라"는 거예요! 운동해서 빨리 진행시키자고요. 저는 뭐 거의 졸도 일보 직전...(그래도 졸도는 안 하더라고요)

 

오후 3시 30분. 간호사가 갑자기 "이제 가시죠"라고 합니다. 네? 어디로요? "애 낳으러 가셔야죠!" 네. 네. 가야죠! 가요!!! 흑흑. 분만실에 들어가 의자에 앉고, 힘주란 소리에 몇번 힘 줬더니 뭔가 스르륵 씀풍, 합니다. 정작 아기 낳느라 힘주는 건 몇분 걸리지도 않았어요.

 

오후 3시 54분. 이렇게 콩콩이가 탄생했습니다. 3.62kg의 건강한 모습으로... 전 아기가 나오는 모습을 못봤으니, 뭔가 "뿅"하고 아기가 제 눈 앞에 나타나는 기분이었습니다. 평소 우는 걸 본 적이 없는 남편도 옆에서 훌쩍훌쩍 합니다. 그러나 이게 끝난 게 아니죠. 회음부 후처치, 탯줄 자르기, 태반 제거... 전 이후에도 계속 아프긴 하더라고요. ㅠㅠ

 

그래도 콩콩이를 안고 가족사진도 찍고 처음으로 젖을 물리는 그 기분은 참으로 신비로웠습니다. 꼬물꼬물 따끈한 아기가 내 배 위에서 오물오물 젖을 찾아 빱니다. 양수에 불은 얼굴이 팅팅 불어 누굴 닮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뭔가 너무 귀엽습니다. 작은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아, 내 아가. 반갑다. 고생했어. 너도 힘들었지? 보고싶었단다. 엄마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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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고 나니, 그때 생각이 나서 급흥분했네요.ㅋ 제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럽고 가장 황홀한 경험이었습니다. 8개월이 지난 지금, 저는 또달리 고통스럽고 황홀한... 육아를 경험하고 있답니다.^^

 

 

Posted by 이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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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제 전 꽤 배가 많이 나와서 지하철에서 자리 양보도 받곤 한답니다. 이달말이면 36주가 되는데, 출산 휴가를 받아 8년간 근무해왔던 신문사를 잠시 떠나 있게 돼요. 학교를 졸업하고 휴식 없이 입사를 해서 일생에서 그렇게 긴 휴가를 가져본 적이 없는지라, 곧 아기를 낳으러 가야 한다는 생각보다도 주어진 휴가를 어떻게 써볼까 설레고 있는, 아직 뭘 몰라 용감한 상태라고 할 수 있지요.

 

다행히 임신 초, 중기의 이런저런 괴로운 증상들은 많이 사라졌답니다. 비로소 안정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이겠지요.

 

대신 몸이 점점 더 무거워지는 바람에 행동에 엄청난 제약들이 생기고 있죠. 출퇴근에 걸리는 시간도 길어졌습니다. 옷 입는 속도(바지 입기, 양말 신기가 왜 이렇게 힘든가요 ㅎㅎ)도 느려지고, 걷는 속도가 느려지다보니 지하철 환승시간도 오래 걸려요. 팀원들과 함께 점심식사 후 정동길이라도 한번 산책할라치면, 저 혼자 뒤에서 헥헥거리며 따라가게 된답니다. 예전에 임신한 후배 여기자가 항상 느리게 걷던 것이 뒤늦게야 떠오르더군요. 100%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 괜시리 미안해집니다.

 

그럼 이번엔 임신 중기~후기에 벌어지는 몸의 변화들에 대해 한번 살펴볼까 합니다. 

 

 

<임신 중기>

 

가려움증 극복하기!

 

다행히 지난 22주쯤 발병(!)했던 '소양증'은 2주 후에 사라졌습니다. 임산부들이 모이는 인터넷 카페를 뒤져보니 배 부위를 중심으로 붉은 반점처럼 솟아오르는 증세가, 시간이 지나면 팔, 다리, 가슴, 목 위까지 올라오는 '무시무시한' 상태로까지 악화되는 경우도 있더라고요. 담당 의사 선생님도 나타날 수 있는 증세고, 체질에 따른 것일 수 있으므로 특별한 방법은 없다고 하고요.

 

저는 그 당시 너무 공포스러워졌어요. 자꾸 긁다보면 온 몸에 퍼진다고도 하더라고요. 그래서 가려움을 꾹 참고 되도록이면 손을 대지 않은 채, 식이요법을 이리저리 찾아봤죠. 그래서 제가 금지한 음식은 딱 3가지 종류였습니다.

 

바로 자극적이고 매운 음식, 육류, 밀가루 음식이었죠. 그런데 이 3가지를 빼놓고 음식을 먹으려니 당최 먹을 수 있는 것 자체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갖은 검색질을 통해 '채식' 레스토랑을 찾아가보기도 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며칠 육류는 입에도 안댔더니 고기가 땡겨서 '콩고기' 스테이크를 먹어보기도 했고요. 스님들이 드시는 '채식라면'이란 것도 있더라고요. 감자 전분가루로 만든 면이라던데 밀가루 함량이 낮아서 그것도 한번 사먹어봤죠.

 

내 사랑 짬뽕, 안녕~! ㅠㅠ

다행히 상태가 차차 나아져서, 밀가루와 육류 순서로 음식을 먹기는 했는데요. 저는 지금도 맵거나 자극적인 음식, 특히 고춧가루나 고추장 양념이 강하게 들어간 음식은 되도록 먹지 않는답니다. 이건 임신 초기때와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몸이 스스로 거부하다는 것은 자극적인 음식이 산모에게도 태아에게도 분명히 좋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배뭉침

 

초기부터 이런 현상은 좀 있어 왔는데요. 배의 어느 부분이 나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단단한 돌처럼 갑자기 굳는 현상을 말합니다. 위치나 크기, 이런 건 그때그때 다르고요. 갑자기 어느 순간 배 한 부분이 불룩~하게 산처럼 솟아올랐다가 또 어느 순간 갑자기 몰랑몰랑하게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곤 하더라고요.

 

처음엔 대체 이게 뭔가 싶더군요. 영화 <에어리언>에서 사람 몸속에서 외계인이 불쑥 튀어나오는 장면 같기도 하고, 여튼 내 몸이 내 뜻과 상관없이 변한다는 게 참 희한한 기분이었습니다.

 

배뭉침 현상은 자궁수축 현상 때문에 발생하는 거라고 하는데요. 이런 현상은 사실 출산 직전까지도 지속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합니다. 출산을 위해 일종의 '리허설'을 하는 가진통 증상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산달 전에 너무 주기적으로 자주 이런 현상이 나타나면 조산의 위험이 있으므로, 심한 경우에는 휴식을 취하면서 몸 상태를 지켜보는 것이 좋다고 하네요.

 

 

 코피

 

전 임신 초기부터 코피가 자주 나곤 했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더 자주 그렇더라고요. 임신 중에는 자연스럽게 혈액량이 늘어난다고 합니다. 콧속 점막도 자주 붓고요. 콧속 미세혈관이 쉽게 터질 수 있다고 하는데요. 이런 현상은 출산 이후에는 서서히 사라집니다.

 

 

 Anyway, 임신 중기는 가장 편안한 시기! 

 

 

이런 저런 현상이 있다 해도 임신 중기는 임신 기간 중 가장 편안한 시기라고 하죠. 입덧도 사라지고, 몸이 그리 무겁지도 않고.

 

그래서 이 시기에 많은 임산부들이 태교여행을 다녀오기도 하죠. 엄마가 행복한 마음으로 행복한 여행을 하는 것이 아가에게도 좋은 태교가 되기 때문인데요.(인정~) 사실상 임신 후기에는 몸 상태 때문에, 출산 이후에는 육아 때문에 멀리 여행을 다니기 쉽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죠. 국내든 국외든, 임신중 태교여행을 떠나는 것은 정말 추천합니다.

 

 

저는 스케줄상 28주를 맞는 시기에 남편과 함께 발리로 태교 여행을 다녀왔는데요. 사실, 그다지 만족스럽지는 못했답니다. 그래서...

 

<솔직한 태교여행 팁!>

 

1) 22~25주 사이에 떠나자 : 20주 후반기로 접어들기만 해도 살짝 몸이 무거워지더라고요. 때문에 가장 몸 상태가 좋은 안정기에 딱 맞춰 여행을 떠나는 것이 좋을 듯해요. 돌아다니기 힘들었어요.ㅠㅠ

2) 너무 더운 나라는 피하자 : 저희는 한번도 못 가본 발리에 가보려고 처음부터 마음을 먹었는데요. 너무 덥다보니 좋은지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바다에 나갔다가 홀랑 다 태워서 초딩 때 이후로 피부 '껍질'이 벗겨지는 지경에 이르렀다니까요! 흑흑. 임산부가 다니기에 적당한 기후의 나라로 떠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3) 비행시간이 짧은 곳으로 : 태교여행 안내 책에도 비행시간 4~5시간 이내의 여행지로 떠나는 것이 좋다고 안내되어 있어요.(발리는 7~8시간 ㅠㅠ) 임산부에게 장시간 비행은 꽤 힘든 일이거든요. 혹시 그동안 쌓아둔 마일리지가 있다면 이번 기회에 업그레이드를 해서 누울 수 있는 프레스티지 좌석을 이용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죠!

 

 

 

<임신 후기>

 

임신 후기는 본격적으로 몸이 무거워지는 시기입니다. 점차 앉았다 일어서는 것조차 힘겹고, 걷고 움직이는 것도 둔해집니다. 몸무게도 급격하게 늘어나는 시기이기 때문에, 음식 조절도 필요한 시기이죠.

 

후기에 임산부를 괴롭히는 증상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숨참 현상

 

한번은 27주쯤에 학생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나간 적이 있는데요. 이때 저는 저 스스로에게 깜짝 놀랐습니다. 2시간여 동안 진행되는 수업 시간 동안, 이야기를 하다가 숨이 헉헉 거릴 정도로 차오르는 저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이에요. 얼마나 민망하던지...

 

숨이 찬 현상은 자궁이 커지면서 횡경막을 압박해 높이가 3~4cm 가량 올라가기 때문에, 폐의 팽창이 제한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고 합니다. 또 프로게스테론이 분비되면서 임신 중 평소보다 더 자주, 더 깊게 숨을 쉬게 하기 때문이라고도 하네요. 혹시, 아기에게 산소가 부족하게 전달되는 건 아닐까 걱정될 수도 있는데요. 그렇지는 않다고 합니다.

 

갈비뼈 통증

 

자궁이 커지고 횡경막이 들어올려짐으로써 발생하는 현상은 또 있는데요. 바로 갈비뼈 통증입니다. 당연히 횡경막이 압박되니까 물리적으로 갈비뼈도 밀려 올라가겠죠? 이게 솔직히 좀 고통스럽습니다. 숨 쉴 때마다 약간의 뼈가 밀려올라가는 기분, 힘들겠죠? ㅎㅎ

 

때문에 평소에 자신이 숨쉬기 좋은 자세를 찾아 생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저는 근무 중에 책상에 앉아있을 때 의자를 끝까지 제끼고 앉아 '사장님 자세'로 앉아있기도 했는데요. 그게 다 이런 증상 때문이었습니다. 앞으로 임산부들이 '거만'한 자세로 앉아있다고 해서 구박하지 마세요.ㅋ

 

시야 흐려짐

 

후기로 접어들면서 약간 시력이 떨어지는 것 같아요. 눈이 침침하고 흐릿~한 것이 할머니도 아니고... ^^;;; 컴퓨터 작업을 많이 하기 때문에 그런 것인가 싶기도 했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이것 역시 임신 중 현상이었던 것이에요!

 

시야가 흐려지는 증상은 몸에 수분이 축적되면서 각막 두께가 두꺼워지기 때문에 생기는 증상이라고 하네요. 그런데 안구 내부의 압력은 반대로 낮아져서, 이런 변화들로 인해 시야가 흐려지는 현상이 발생한다고 합니다. 이런 증상 역시 출산 후에는 자연스럽게 사라진다고 하니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손발저림

 

이건 저도 최근에 겪고 있는 증상입니다. 특히 손이 저려요. 손 마디마디가 약간 부은 것 같기도 한데, 굽혔다 펴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무거운 것을 들기도 어렵고요.

 

지난 주말엔 집에서 남편과 함께 사이좋게 떡볶이를 해먹었는데, 다 먹고 난 접시를 들고 씽크대에 옮겨두려다 고 무게를 못 견뎌서 그만 떡볶이 국물을 쏟아버리고 말았습니다! 그것도 TV 리모컨 위에다가!!! 이후 30분간 리모컨 버튼 사이사이에 낀 떡볶이 국물을 제거하느라 애를 먹었습니다. 흑흑.

 

발도 붓고 저리기 시작합니다. 평소 신던 신발 사이즈가 작게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평소 편안하던 가죽 단화는 이제 곧 터지기 일보직전! 신을 신발이 없습니다. 운동화를 신는 게 가장 좋겠죠. 하지만 운동화에 발을 넣으려고 발등을 구부렸다가 다리에 쥐가 나서 더 죽는 줄 알았습니다. 종종 자다가 다리에 쥐가 나는 일도 다반사지요. ㅠㅠ 으아, 힘들어요.

 

 

이밖에도 임신 증상은 갖가지가 더 있습니다. 사람마다, 체질마다 모두 제각기 다르고 발생하는 시기도 들쑥날쑥이겠지만... 어쨌든 한 사람이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여 세상에 내놓기까지, 많은 고통과 수고로움이 드는 것만은 사실인 것 같죠?

 

지난 35주간을 되돌아보면, 그래도 별로 큰 탈 없이 무난하고 건강하게 임신 시기를 잘 보냈던 것 같아 아가에게 참 고맙고 기특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남은 한 달여 기간도 잘 버텨주어서 뱃속에서 충분히 건강히 자란 상태로 세상에 나와주기만을 바라봅니다.

 

처음엔 정말 '콩'만큼 작은데 심장도 '콩콩'거리며 잘 뛰는 것이 신기해 콩콩이라 이름붙인 아가. 이제 2kg를 훨씬 넘는 상태로 자라 엄마 뱃속에서 쌔끈쌔끈 잠자거나, 때로는 축구를 하는지 권투를 하는지 꿀렁꿀렁 분주하게 움직여댑니다. 콩콩이를 만날 날이 이제 곧입니다. 앞으로 벌어질 새로운 세상, 즐겁고 행복한 소식들을 블로그를 통해서 전해드리도록 할게요.^^

 

 

 

Posted by 이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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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저도 임신 22주에 접어들었습니다.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흘렀나 싶네요. 그동안 제 몸에는 정말 많은 변화가 찾아왔었는데요. 저는 예전에는 전혀 몰랐었답니다. 여성의 몸이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이렇게 많은 변화를 겪게 되는지를요.

 

경향신문 DB

 

 

한 고비를 넘겼다 싶으면 또 다시 다른 변화가 생기고, 새로운 종류의 고통에 적응해야 하고…. 정말 "산 넘어 산"이라는 말이 딱 맞다 싶네요. 그래서 생각난 김에, 임신 중 여성이 겪는 시기별 몸의 변화에 대해 한번쯤 정리해두면 좋을 것 같아 오랜만에 블로그를 열었습니다. 두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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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초기>

 

 

입덧

 

어릴 때에는 '나중에 임신하면 살찔 걱정 안하고 맛있는 것을 마음껏 먹을 수 있겠다'는 단순한 생각만 했었더랬죠. 그런데 웬걸요. 임신 중에는 더욱 체중 관리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사실을 여러분들도 알고 계셨나요? 요즘은 영양 상태가 좋아 자칫하면 출산 후까지도 비만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하네요.

 

하지만 이런 걱정도 무색하게, 임신 초기 처음으로 저를 찾아온 몸의 변화는 바로 '입덧'이었습니다. 약 6~7주쯤 입덧 증상이 찾아왔던 것 같아요. 전 특별히 가리는 것 없이 주는 대로 잘 먹는 식성을 자랑했었는데요. 경상도에서 나고 자라 맵고 짠 음식에 길들여져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고춧가루가 든 음식은 입에도 못 대겠더니, 평소 느끼지도 못했던 조미료 맛을 알아채지 않나 입맛이 엄청 예민해지더군요. 한때는 고기 종류는 냄새도 싫고, 튀기거나 기름기가 많은 음식은 쳐다보기도 싫었어요. 다행히 아예 음식을 못 먹는 것은 아니어서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이를 닦다가 구토를 하기도 했었죠. 정말 괴로웠어요. ㅠㅠ

 

70%에 달하는 대다수의 산모가 입덧을 경험한다고 합니다. 아침 공복 시에 더욱 심해서 영어로도 'morning sick'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저처럼 먹을 수 있는 입덧도 있지만, 아예 음식을 입에 대지도 못하는 산모나 먹는 대로 토해버리는 산모들도 있어 심각한 경우는 입덧으로 5kg 이상 체중이 줄어드는 경우도 있다고 해요. 때문에 병원에 입원해서 수액을 맞아 영양을 보충해야 할 정도인 사람도 있다고요.

 

저는 초반엔 뭘 잘 못 먹어서 1~2kg 가량 몸무게가 줄기도 했죠. '마의 14주'라는 말이 있기에 14주차만 기다렸는데요. 전 입덧을 약 16주 때까지는 했던 것 같습니다.

 

빈뇨

 

저는 임신 직후부터 화장실을 자주 들락날락거리게 됐습니다. 소변을 본 뒤에도 왠지 다시 화장실을 가고 싶어져서 지하철 타기 전에 한번 갔다가, 환승하면서 한번 더 가고, 내리면서 또 갔던 적도 있어요. 웬 추태.ㅋㅋ

 

이런 빈뇨 증상은 초기부터 후기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진다고 하는데요. 자궁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방광을 압박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라고 합니다. 주중은 물론, 밤중에도 이 빈뇨 증상 때문에 잠을 설치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저 역시 화장실 들락거리느라 자다가 1회 이상 늘 깨곤 한답니다. 전 원래 머리만 땅에 닿으면 세상 모르고 자는 사람이었거든요. 참 희한하죠.

 

경향신문 DB

 

 

<임신 중기>

 

변비

 

전 입덧이 끝날 때쯤인 15~16주차쯤에 변비가 찾아왔습니다. '드디어 입덧의 고통에서 해방되는구나' 하고 기뻐했던 것도 잠시. 갑자기 매일매일 쾌변으로 상큼한 하루를 시작하던 제 인생에, 변비가 찾아왔던 것이죠. 신호는 오는데, 화장실만 가면 감감무소식. 정말 답답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ㅠㅠ 아기가 걱정돼 무작정 배에 힘을 줄 수도 없고, 참 갑갑했죠. 며칠동안 속이 답답해서 입덧이 재발되는 것 같기도 했고요.

 

임신 중 변비는 왜 생기는 걸까요? 초기에는 자궁 크기가 그리 크지 않아 장을 압박하지 않았지만, 중기로 접어들면서 자궁이 장을 누르게 되고 장의 활동을 소극적으로 만들면서 변비가 찾아온다고 합니다. 임신 중 분비되는 프로게스테론 호르몬이 위장관의 움직임을 느리게 하고, 그 과정에 수분이 과도하게 흡수되어 대변이 딱딱해지기 때문이라고도 하는군요. 또 중기에 접어들면서 '철분제'를 섭취하면 변비 증세가 심화되기도 합니다.

 

때문에 섬유소가 많이 든 과일과 채소를 많이 섭취하고 가벼운 운동을 해줘야 한다고 하는데요. 일반인들도 이런 것만으로는 변비 퇴치가 힘들죠? 임산부는 변비가 심한 경우 건강에 위험할 수도 있어서, 바로바로 해결을 해줘야 합니다. 의사의 처방을 받아 임산부가 섭취할 수 있는 변비약을 먹을 수도 있고요. 아무래도 약이 좀 찜찜하다 싶으면, 마른 자두인 '프룬(prune)'으로 만든 주스를 섭취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저는 프룬 주스로 고민을 해결했습니다.(강추!) ㅋ

 

 

감기

 

임산부 대부분이 한번 이상은 감기를 앓는다고 해요. 워낙 면역력이 떨어지고 체력이 약해져 있기 때문인데요. 저도 1월 초에 한번 심한 감기를 앓았습니다. 여러번 말씀드리지만, 저는 대체로 건강체질이거든요. 근래에 한 5년간은 감기와 인사나눈 적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을 합니다. (자랑질~)

 

한창 한파가 지속되다가 갑자기 온도가 살짝 올라가더라고요. 그때 갑자기 아침부터 유난히 몸이 춥다고 느껴지더니, 그날 밤부터 갑작스레 몸에 열이 나고 으슬으슬하면서 콧물 기침 감기가 시작됐습니다. 몸살 감기에 걸린 것이죠. 남편이 사온 체온계로 열을 재어보니 하루 내내 37.9도까지 열이 올라가면서 오르락내리락 하더군요. 38도만 넘으면 바로 병원으로 달려가려 했지만, 다행히 이틀만에 열은 내렸습니다.

 

감기에 걸리면 약도 못 먹고, 정말 괴롭습니다. 더군다나 문제는 임산부는 고열(38도 이상)이 오랫동안 지속되면 태아에게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열감기가 찾아오면 큰 문제거든요. 때문에 평소 예방이 중요하죠. 다행히 유행하는 독감은 아니어서 2주만에 몸이 정상으로 돌아오긴 했습니다만, 정말 괴로운 기억입니다. 회복된 뒤에는 곧바로 독감 예방주사를 맞았습니다. 임산부는 독감 예방주사 꼭 맞아야 해요~.

 

 

요통

 

임신 중기는 임신 기간 중 가장 몸이 평온한 시기라고 하더라고요. 입덧도 사그러들고, 몸이 임신 상태에 어느 정도 적응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웬걸~! 이런 저런 증상이 좀 괜찮아진다 싶더니 19주차에 접어들면서 갑자기 오른쪽 허리가 너무너무 아픈 거예요. 그것도 잠을 자던 중에요.

 

경향신문 DB

 

어떤 느낌이랄까. 치통이 올 때 신경을 건드리면 시큰거리면서 꼼짝도 못하는, 그런 통증 있죠? 그런 통증이 갑자기 허리에서 느껴지는 겁니다. 왼쪽은 괜찮은데, 유독 오른쪽 허리만 아픈 것이 왼쪽으로 누워도 오른쪽으로 누워도 계속 콕콕콕 쑤시는 거예요.

 

허리가 아파본 적은 없는 터라 너무 당황스러웠습니다. 다행히 일상 생활 중에는 크게 통증이 없었지만, 잘 때 통증이 심해져서 여러번 밤에 잠을 깨곤 했었죠. 요통을 완화시켜준다는 '고양이 자세'를 새벽 2~3시에 해야 하는 고통, 상상이 가시나요?

 

임신 중 요통은 골반을 지지하는 관절과 인대가 느슨해지면서 발생한다고 합니다. 자궁이 커지면 다른 장기의 위치가 바뀌기도 하는데, 이로 인해 몸의 중심점이 이동하면서 이런 변화에 적응하느라 통증이 유발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지난 주부터 임산부 요가를 시작했습니다. 잘 때 여러 쿠션을 활용해 가장 통증이 적은 자세도 찾았고요. 신기하게도 요즘은 이 통증이 다소 완화가 됐습니다.

 

 

가려움증

 

제가 지금 딱 요 증상인데요. 22주쯤 되니까 배가 생각보다 많이 커졌어요. 성장기때보다도 훨씬 빠른 속도로 몸이 팽창하다보니까 배에 튼살이 생길까 우려가 되어, 튼살크림과 튼살 오일을 열심히 바르고 있는데요. 어느날부터 배 주변이 빨갛게 부어오르면서 가렵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래서 전 크림과 오일이 제 체질에 안 맞는 제품인가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라 이것 역시 임신 증상 중 하나였던 겁니다. 배가 불러오면서 피부가 늘어나는 과정에서 가려움증이 유발될 수 있는데, 산모의 20% 정도가 겪는 흔한 증상이라고 하네요. 심각한 경우에는 전신으로 가려움증이 퍼지는 임신소양성 두드러기성 구진과 반점(PUPPP)으로 심화돼,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가 되는 경우도 있다지만 출산 후에는 대부분 증상이 사라진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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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제껏 겪은 증상만 해도 참 여러가지죠? 이 외에도 건망증, 피부 질환, 하지 정맥류, 빈혈, 잇몸 질환, 치질 등등…. 각종 증상들이 더 많다고 합니다. 정말 임신은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아요. 한 사람의 몸에서 또 다른 생명을 탄생시키는 일이니 얼마나 힘겨운 일이겠습니까.

 

아직도 제 몸 속에서 새로운 생명이 자라고 있다는 것이 가끔 믿기지 않을 때도 있지만, 그래도 뿌듯하고 기쁜 기분도 많이 느낀답니다. 18주 들어 처음으로 태동을 느꼈거든요. 뭔가 뱃 속에서 이질감이 느껴지면서 꼬물락~ 움직이는 기분이 들었던 게 태동이었던 것 같아요.

 

이제는 배 위에 손을 대면 밖에서 미세한 태동이 느껴지기도 해요. 지난 주말 아침, 남편과 함께 잠에서 깨 나란히 누워 제 에 손을 대고 함께 태동을 느끼던 기분은 정말 행복감 그 자체였습니다. 평소엔 부끄러워하며 태담을 잘 하지 않던 남편도 그날은 아가에게 말도 잘 걸고 신기해하며 감격하더라고요.

 

모쪼록, 남은 18주동안 아기가 건강하게 잘 자라길 바랍니다. 다음에는 중, 후반기의 몸의 변화에 대해서도 한번 정리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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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축하합니다~ ^^ 2013.02.26 11: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늦었지만, 임신을 축하드려요~ ^0^
    출산때도 쑴풍~ 잘 낳으시고..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2. 목정민 2013.03.12 12: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배~임신하니까 몸의 존재감을 확실히 느끼겠더라고요. 하루하루가 다르니원...힘드시겠지만 파이팅이에요 ^_^ 아기가 나오고나면 무지 이뻐요 ^_^

올해 초, 인터랙티브팀 구정은 팀장 선배가 레이디경향 부록에 달린 '토정비결'을 봐주셨습니다. 우리팀 모두 올 한해 운수가 좋더라고요. 모두들 토정비결만 같았으면 좋겠다고 호들갑을 떨었던 기억이 납니다.

 

제 2012년 토정비결은 '화합유결실지의(和合有結實之意)'라는 한마디로 귀결되더군요. 뭐, 꽃피는 삼월이 지나고 탐스러운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고, 구름이 흩어지는가 하면 밝은 달이 고개를 내밀어 세상이 밝다나요.ㅋ 어쨌든 올 한해는 정말 잘 풀리려나보나 싶은 생각에 연초에 기분이 은근히 좋았던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 눈에 띈 대목이 있었으니, 9월의 운수였습니다.

 

 

 

 

'기쁜 일이 몸에 임하리라.'

 

다들 이 대목에서 "고은이 너 임신하나보다~"라며 이야기했었더랬어요. 그러잖아도 올해 가을 이후 새로운 가족이 생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터라, 토정비결이 신기하게도 내 맘을 알아주나 싶은 생각이 든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이 토정비결이 현실로 이루어졌답니다. 정말 음력 9월 중에 저에게, 저의 몸에 기쁜 일이 임하였기 때문이에요.^^ (앞으로 점보러 다녀야 할까봐요ㅋ)

 

제게 소중한 아가가 찾아왔습니다. 몇주전 병원에서 힘차게 울리는 심장소리를 들었는데 고 작은 심장이 초음파 모니터에서는 반짝반짝거리고 있었습니다. 콩 만한 것이 심장도 콩콩콩 잘 뛰고 해서, 우리 부부는 이 아이를 '콩콩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지금은 11주차에 접어드는데, 키는 약 4cm 정도로 자랐다고 해요.



작고 검은 점이 콩콩이의 아기집입니다. 4주차, 임신을 처음 확인했을 때.



콩콩이가 생긴 후로 제 몸에는 많은 변화가 생기고 있습니다. 우선 몸이 쉽사리 나른하고 피로해지면서, 무차별적으로 잠이 쏟아집니다. 원래 밤새 노는 것도 못할 정도로 밤이면 자고 아침이면 눈뜨는 게 습관이 돼서, 낮잠이라곤 모르고 살던 체질이었는데 저로선 엄청난 변화인 셈이죠.


그리고 너무도 전형적이게도... '입덧'때문에 아무거나 가리지 않고 잘 먹던 제 식성이 완전히 변했습니다. 원래 맵고 자극적인 것, 튀긴 것, 느끼한 것... 가리지 않고 먹성 좋던 저였는데, 이젠 고춧가루 든 것은 쳐다도 못 보겠고 튀기거나 기름진 것은 냄새도 싫더라고요. 그리고 평소엔 별로 찾지 않던 신선한 야채와 나물 반찬, 두부 정도만 먹게 되었습니다. 육류 섭취도 필요하기에 가끔 먹기도 하는데, 질 좋은 게 아니면 귀신같이 알아채게 돼서 비싼 걸로만 골라먹을 수밖에 없겠더라고요;;; 그러다보니 아직 몸무게는 제자리이거나 가끔 1~2kg씩 떨어지기도 하네요.


이 시기를 지내면서 갖은 생각들이 듭니다. 머리로만 생각하던 것들을 본능적으로, 제 몸의 변화로 느끼게 돼요. 


인스턴트의 덫!


아무 것이나 먹지 못하는데, 못 먹겠다 싶은 음식들을 찬찬히 살펴보면 결국엔 '몸에 나쁜' 음식들이더라고요. 맵고 짜거나 자극적인 음식들, 인공조미료나 방부제가 듬뿍 들어간 음식들, 인스턴트 제품... 희한하게 어떻게 알고 이런 것을 보면 저도 모르게 구역질이 올라와요. 예전엔 정말 둔한 입맛이었는데... 아무래도 콩콩이의 '생존본능'이 아닐까요?


또 길거리를 지나면 늘 '내가 먹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라고 고민하며 각종 음식점 간판을 유심히 보게 되는데요. 요즘은 거리에 즐비한 간판들만 봐도 속이 뒤틀립니다. 한번 둘러보세요. 보이는 거라곤 각종 고기집과 횟집, 치킨집, 술집, 패스트푸드점들... 더군다나 그 음식들에 쓰이는 재료란 것들도 공장식 사육을 통해 길러진 건강하지 못한 육류가 대부분이죠. 저도 모르게 그런 음식 가공의 과정들이 떠오르면서 간판조차 쳐다보기 싫어지는 이 기분, 혹시 아실지 모르겠습니다.(저희 동네 한 고기집 이름은 '육식동물', 아...)


어느 순간, 저는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직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거의 자연 그대로의 상태인 콩콩이가 어른들이 자본주의의 질서에 따라 인위적으로 만들어놓은 먹거리들을 본능적으로 거부하는구나. 잔인하고 이기적인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도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몸소 문제제기하고 있구나. 그러나 이런 질서를 거부하면서 이 세상을 살아가기란 정말 힘든 일이란 것도요. 정말 먹을 게, 먹고 싶은 게 별로 없거든요.


진짜 '친환경'이란 무엇일까?


얼마전 바른 먹거리 운동을 하는 '맛콘서트'(맛콘서트 블로그) 관계자분들을 만난 적이 있었는데 요즘 더욱 그 취지에 공감이 갑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물에 저장된 채 한정없이 유통기한만 긴 두부, 진짜 바닐라를 본 적도 없건만 너무나 익숙한 바닐라'향' 오일, '바나나'하면 진짜 바나나보다 먼저 떠올리게 되는 바나나맛 우유... 먹거리에 신경을 조금이라도 쓰는 이들은 '유기농'을 외치지만, 이 역시 상품으로서의 차별화를 위한 레이블 뿐이라는 사실도 우리는 잘 인지하지 못한 채 살아가죠. 먹거리 문제는 당장 우리 몸, 우리 건강과 직결되는 문제일 뿐만 아니라 정치경제적인 문제임에도 다른 거대 담론들에 뭍혀 무시되곤 합니다.


오랜만에 저의 일상에 대해 이야기하다 왜 이야기가 이렇게 튀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여튼 요즘은 이 조그만 아가가 어떻게 이렇게 엄마에게 새롭게 세상을 보는 법을 가르쳐주는건지 신비롭기만 합니다. 콩콩이가 아니었다면 저는 지금도 당장 제 입에 단 음식들로 제 몸을 괴롭히고 있었을지도 모르죠. (물론 입덧이 가라앉으면 원상태로 복귀될 위험성이 매우 크지만요. 워낙 좋은 먹거리를 구하기가 어려워진 세상이니. ㅠㅠ)


몸이 힘들어진다는 핑계로 남편한테 짜증도 부리고, 괜한 우울함이 밀려오기도 했었는데 오랜만에 블로그 글을 쓰다보니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고 콩콩이를 위해 좋은 생각, 좋은 음식으로 열심히 태교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앞으로 종종 소식을 전해드릴게요. 정말, 제게 기쁜 일이 몸에 임했습니다.^^



Posted by 이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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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주말을 이용해 도깨비 여행으로 캄보디아를 다녀왔더랬습니다. 대학 때 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를 육로로 이동하는 배낭여행을 떠났었는데요. 이때 캄보디아를 가지 못해 언젠가 한번쯤은 꼭 가보고 싶었거든요. 캄보디아를 가고싶었던 이유는 단 하나. 앙코르와트(Angkor Wat)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여행의 목적지는 씨엠립(Siem Reap). 씨암(siam)은 태국이라는 의미인데요. 씨엠립은 태국에 의해 점령당했던 곳이라는 뜻으로, 태국과 캄보디아는 우리나라와 일본처럼 앙숙의 관계라고 합니다.

 

※참고 : 씨엠립 국제공항은 우리나라의 여느 버스터미널처럼 작고 한적합니다.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 직원의 안내에 따라 입국 심사대로 총총총 걸어가면 됩니다. 참고로 비행기에서 입국 신고서류를 작성하는데, 이때 3X4cm 사진이 필요합니다. 공항에서 바로 입국비자를 받는데, 거기 제출하는 용도예요. 전 깜빡 잊고 사진을 못 챙겨가서 직원에게 "사진 없어도 괜찮냐"고 물었더니, 돌아오는 답이 참 허무합니다. "1불만 더 내면 된다"네요. 캄보디아에서는 공항 직원들조차 끊임없이 '팁'을 요구합니다. 입국 심사 도장을 찍어주는 직원도 "팁"을 요구하면서 돈을 안 주면 도장 안 찍어줄 기세더라고요. 1불짜리가 없다고 버티니까 "꼬레"를 외치며 한국돈을 요구합니다.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었지만, 여행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아 천원짜리 한장을 주고 입국장을 빠져나왔습니다. 총 22불의 입국비용을 지불했습니다. 참고로 귀국할 때 내던 25불의 공항 이용료는 이제 사라졌다고 합니다.

 

 

 

여튼, 앙코르와트 여행은 이튿날 새벽 6시 반부터 시작됐습니다. 보통 앙코르와트 투어는 아침 일찍부터 시작해 오전 중으로 마치는 일정이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날이 너무 습하고 더워 정오 이후에 투어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해요. 혹은 해가 뜨지 않은 새벽부터 찾아가 일출을 보는 것도 인기 코스라고 합니다.

 

 

by my i-phone.

 

앙코르와트가 시작되는 다리입니다! 꽤 폭이 넓은 해자가 건물을 둘러싸고 있는데요. 과거에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호수에 악어를 풀어놓기도 했다고 합니다. 제가 들어가는 입구는 사원의 서쪽. 이미 해가 떠오른 뒤입니다. 역광이라 사원의 모습이 잘 안 보이죠.

 

 

by my i-phone.

 

다리를 건너와 반대편으로 바라봤습니다. 잔잔한 호수가 평화롭습니다. 색감이 이국적이죠?

 

 

by my i-phone.

 

앙코르와트는 '사암'으로 지어진 사원입니다. 때문에 세월의 풍파에 많이 깎이고 부서지기도 했습니다. 곳곳에 형체가 무뎌진 돌조각들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때문에 더욱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사원 내부로 들어가서 본 모습입니다. 앙코르와트는 자연계, 인간계, 천상계 등 3단계로 나뉘어져 있다고 하는데요. 아직 여기는 자연계입니다. 연못에 사원의 모습이 비쳐 가장 사진이 예쁘게 나오는 장소라는데, 안타깝게도 사원이 공사중인 관계로... ㅠㅠ 그닥 멋진 모습은 못 건졌습니다.

 

사진은 함께 투어하신 김혜숙님 제공. 감사해요! ^^ (별도 바이라인이 없는 사진은 이분께서 보내주신 사진입니다. 서로 '챙겼겠지'라 생각하고 둘다 카메라를 안 챙겨온 우리 부부.ㅠㅠ)

 

 


 

 

인간계에 해당하는 사원 내부에는 태국의 침략 당시의 전쟁 모습들이 벽화와 부조의 형태로 기록돼 있습니다. 현재 캄보디아 대다수의 국민들이 소승불교 신자지만, 원래 앙코르와트는 12세기 초 힌두교를 숭상할 때 건립됐습니다. 그러나 열렬한 불교 신자인 자야바르만 7세가 집권한 뒤 힌두교가 쇠락했던 기록이 사원 곳곳에 남아있습니다.

    

 

 

 

아래 사진은 천상계로 통하는 계단의 모습입니다. 무척 가파릅니다. 신들이 드나드는 계단이라 인간이 쉽게 오를 수 없도록 설계했다고 합니다. 너무 가팔라서, 과거에 이 계단을 오르던 관광객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고 해요. 그래서 지금은 한쪽 계단은 출입을 통제하고 다른 한쪽 계단에만 안전장치를 두어 오르내릴 수 있게 하고 있다고 합니다.

 

by my i-phone.

 

 

 

 

다음으로 찾은 사원은 안젤리나 졸리의 영화 <툼레이더>의 촬영지였던 타프롬 사원입니다. 돌 위에서 유독 잘 자라는 나무 뿌리의 모습이 웅장하면서 신비로운 광경을 연출합니다. 오랫동안 밀림 속에 뭍혀있던 유적지의 포스가 뿜어져나옵니다.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이 나무들이 사원을 점점 파괴하고 있어 철거하려던 계획도 있었지만 여행자들이 이 신비로운 나무를 보기 위해 이곳을 찾기 때문에 무리가 가더라도 그냥 유지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네요.

 

 

 

 

다음은 자야바르만 7세의 얼굴로 온통 뒤덮여있는 바이욘 사원입니다. 자야바르만 7세는 자신을 부처와 동일시했다고 하는데, 그런 절대군주의 '오만함'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모든 건물 꼭대기의 4면에 자야바르만 7세의 얼굴이 새겨져있네요. by my i-phone.

 

배우 소지섭이 출연한 카메라 광고의 촬영지로도 유명한 곳이지요. 그러나 여기쯤 둘러보니 땀이 온 몸에 범벅...;;; 너무 힘들어지기 시작해서 멀리서만 멋진 전경을 담고 발길을 돌렸습니다.

 

 

 

사원 구경은 오전 일정으로 이제 그만...
덧붙여, 씨엠립을 여행하시는 분들을 위해 추천하고픈 곳이 한 곳 있습니다.

 

바로, 북한에서 직접 운영하는 북한식당. '평양랭명관'입니다. 두둥~!!!

평양식 냉면과 한식 정식 사진을 10불에 맛볼 수 있습니다. (제 입맛엔 그닥...^^;)

 

 

이곳에서는 평양의 아리따운 여성분들의 멋진 공연을 볼 수 있습니다. 식사 서빙을 하던 이들은 어느새 돌변(!)하여 멋진 무대를 꾸밉니다. <찔레꽃>, <반갑습니다> 등 우리 귀에 익숙한 노래들도 들을 수 있고, 멋진 밴드 공연과 유럽식 탭댄스도 선사합니다.

 

북한 정부에서 운영하고 있는 이 식당은 '북한 김태희'로 유명했던 미모의 여성으로도 잘 알려진 곳인데요. 제가 갔을 때 그 여성은 북한으로 돌아갔다고 하던데, 한국에서는 월남했다는 소문도 있었네요. 짖궂은 남편이 예전에(남편은 이번이 두번째 씨엠립행) "한국으로 가고 싶지 않냐"고 물었다가 레이저빔을 쏘는 듯한 눈빛으로 "저기 군인들 있슴다~"라고 한 싸늘한 한마디에 깨갱~했었다고 하네요.

 

아무튼... 짧았던 캄보디아 여행기는 여기에서 갈무리합니다. 아, 또 떠나고 싶은 이 마음!!!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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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둘째주에 여름 휴가를 다녀왔습니다. 이번 여름 휴가지 중 한 곳은 뉴욕이었습니다.


뉴욕은 최신 유행 트렌드가 넘쳐나는 곳이죠. 패션은 물론 음식 문화까지도 트렌드로 넘쳐나지요. 특히 그중에서도 광고와 마케팅 트렌드의 진수를 읽을 수 있는 곳이 바로 뉴욕 맨해튼의 타임스퀘어가 아닐까 싶습니다.


42번가 타임스퀘어는 화려하고 재기발랄한 전광판으로 유명하죠. 글로벌 기업의 브랜드 광고는 물론, 각종 뮤지컬과 공연 광고 등으로 24시간 화려한 모습을 뽐냅니다.



뉴욕 맨해튼 42번가 타임스퀘어



전광판이란 게 원래 홍보하고자 하는 것을 노출시키는 것이 1차적인 목표입니다만,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어느 화려한 디자인의 전광판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소비자들이 직접 광고 속에 등장할 수 있도록 '참여' 요소를 가미한 전광판이 강렬하게 기억에 남습니다.


위 사진은 미국의 대표적인 패스트패션 브랜드인 Forever21의 전광판입니다.



빨간 별표 친 동그라미 안에서 손 흔들고 있는 사람이 저, 옆의 사람이 남편입니다.^^



이 전광판을 통해서 타임스퀘어를 지나는 사람들이 전광판 속의 자신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실 모니터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는 것일 뿐이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거리인 타임스퀘어 한복판의 전광판에 자기 모습이 비치는 것 자체가 흥미로운 경험일테죠.


사람들은 저마다 전광판을 향해 손을 흔듭니다. 전광판은 이중 누군가를 선택해 작은 프레임 안에 담아줍니다. 별 것 아닌 이벤트이지만, 마치 굉장한 경험을 하는 것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주지요. 여행객들은 이런 작은 경험들을 얼마나 좋은 추억으로 기억할까요.


그 외에도 흥미로운 전광판들도 아주 많았습니다. 담아온 사진 몇개를 소개합니다.


각종 뮤지컬 간판과 방송사의 입체적인 전광판이 눈에 띕니다.


지난주 개봉한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거대하고 화려한 간판도 눈에 띕니다. 실제 크기는 어마어마합니다



또 하나 기억 나는 것은 미국 캐주얼 브랜드들의 재미있는 마케팅 법입니다.


미국 캐주얼 브랜드 중에는 미국 젊은이들에게 가장 핫한 패션 브랜드 아베크롬비(abecrombie), 홀리스터(holister), 아메리칸 이글(american eagle) 등이 있습니다. 이 브랜드들은 국내에도 수입돼 아주 인기가 있는데요.


제 눈을 사로잡았던 것은 이 브랜드 매장에서 일하는 판매원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거의 모델 뺨치는 외모 수준을 자랑하는데요. 남성 직원들은 거의 웃통을 벗고 있습니다. 여성 직원들은 수영복을 입고 있고요. 야하다기보다는 '건강하고 유전적으로 우월한' 젊은 남녀들입니다. 브랜드가 지향하는 이미지이기도 하겠지요.


사진을 못 찍어왔네요. 다른 블로그 http://shopmikuk.egloos.com/ 에서 퍼왔습니다.



재미있게도, 사람들은 이 매장직원들에게 열광합니다. 매장 직원들과 사진을 찍으려고 기다렸다가 함께 기념촬영을 하기도 합니다. 거의 연예인 못지 않은 인기를 누리더군요. 매장 안으로 들어가서 봐도 직원들 모두 외모가 빼어납니다.


매너는 또 얼마나 좋은지, 살인 미소를 날려가며 서비스를 합니다. 끊임없이 "Everything's O.K?"라고 묻고, 매장에서 나오는 신나는 음악에 맞춰 즉석에서 댄스를 추기도 합니다. 보는 재미도 있고 클럽에 온 듯한 느낌도 들어요.


돌아와서 보니 이들 의류매장 직원들에 대한 월 스트릿 저널의 기사도 있네요. 참고해보세요.




첨단 유행의 도시 뉴욕을 거닐다보니, 정말 촌사람이 된 기분이 드네요.ㅋ 어쨌건 오프라인에서의 마케팅 기법도 점차 일방적 '홍보'에서 쌍방향적인 참여와 경험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조만간 서울 강남이나 명동에서도 이런 비슷한 마케팅 전략이 등장하지 않을까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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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2학년. 한창 감수성 예민하고 세상 고민이란 고민은 다 짊어진 것 같았던 때, 전 단짝 친구들 3명과 함께 교환일기라는 것을 썼습니다. 학교 앞 문구점에서 가장 예쁜 일기장을 고심해서 골라, 4명이서 순서를 정해 돌아가며 일기를 썼죠. 그 속에는 서로의 일상에서부터 각종 고민거리들을 담았습니다.


일기장은 갖은 고민들을 털어놓는 성토장이자, 때로는 서로를 부둥켜 안고 기대어 울 수 있는 가상의 공간이었습니다. '내가 쓴 글에 대해 친구들은 어떤 답글을 써주었을까', '요 녀석들의 요즘 고민은 무엇일까' 기대도 하고, 내게 일기장이 돌아올  순서를 기다리는 설레는 기분은 참 좋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갓 스무살, 
대학 입학을 앞둔 우리는 그 교환일기장을 인터넷으로 옮겨다 놨습니다. 2000년, 밀레니엄 시대가 도래하면서 포털 사이트 '다음(daum)'이 한창 유행했거든요. 일기장이 언제쯤 돌아올까 기다리지 않아도 되고, 멀리 떨어져 있어도 언제든 글을 읽고 답글을 쓸 수 있어 좋았습니다.


지난 주말, 새벽녘에 잠을 설치다 아이폰을 만지작이던 중 어플리케이션 속에 담긴 이 카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평소에도 앱을 자주 이용하긴 했지만, 이 카페에 접속해볼 생각은 못했더랬어요. 당장 내게 필요한 정보가 담긴 곳에만 들어가곤 했지요.  순간 저는, 다락방 먼지 속에 가려져 있던 편지 꾸러미를 찾은 듯한 기분으로, 과거로의 여행을 떠났습니다.



가장 오래된 글은 2000년 1월에 시작되었습니다.


그때 그 공간에는 곧 다가올 대학생활에 대한 설렘이 가득했습니다. 몇달이 지나 1학년이 된 우리의 글에서는 각종 사회 문제에 눈을 뜬 스무살 청춘의 고뇌와 번민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투박하기 짝이 없는, 어설프고 손발이 오그라드는 철학을 끄적인 글도 있었고, 등록금 투쟁 집회에 참석하거나 매향리, 양민학살지로 순례를 떠났던 일도 적혀 있었습니다.


지금 다시 읽어보면 부끄러워지는 대목도 있네요. 하지만 왠지 '청춘'의 기운이 느껴져서 옮겨봅니다.


"술 먹고 버스 안에서 자다가 가까스로 정류장 안 지나치고 내렸는데, 걷다가 졸아서 인도에서 90도로 퍽~하고 고꾸라졌다. 근데... 한번 엎어지고 나니까 정신이 버쩍 들더라. 살면서, 한번쯤은 확 하니 고꾸라지고 볼일이다."(2001년)


또 몇달이 지나자, 카페는 각종 연애상담 코너로 변질되기 시작합니다. 사랑과 이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축하와 위로가 반복되었죠. 어찌나 절절하고 애틋한지, 다들 웬만한 영화는 한번씩 찍었군요. 도무지 간지러워서 두번은 못 읽겠습니다.ㅋ


친구들과의 카페 첫 대문사진. 닭살스럽지만 포근했답니다.ㅋ



졸업을 앞두고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가득했고, 점차 글의 갯수는 줄어들었네요. 제가 친구 중 처음으로 취직을 하자, 한 친구는 요렇게 축하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다시 보니 귀엽습니다. ㅋㅋㅋ


"축하축하 초축하. 드디어 고은이가 백수탈출의 첫 스타트를 끊었구나. 이를 계기로 우리 모두 줄줄이 비엔나처럼 백수신분을 탈출할 수 있길 바라며... 첫 월급 받으면 내복 사고 남은 돈으로 한턱 쏴라 쏴쏴쏴~~~" (2005)


이따금 올라온 글은 사회 생활의 고달픔이나 결혼에 대한 고민도 적혀 있었습니다. 2008년에는 한 친구의 결혼식에서 부를 축가를 연습하기 위해 '원격' 회의를 했던 흔적이 있었고, 마지막 글은 2010년에 함께 떠났던 부산 여행과 관련한 기록이었습니다.




가만히 보니, 미디어 기술의 변화도 느껴집니다. 처음엔 게시판에 댓글 기능이 없어서 글 밑에 'Re:'라는 답글만 달 수 있었네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답글들에서 서로에 대한 애정이 물씬 묻어납니다. 댓글 기능이 생긴 뒤로는 간편하게 댓글로 한마디씩 첨언하곤 했습니다.


희한한 기분이 들었던 건, 10년 전 썼던 글에 지금도 댓글을 달 수 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서른 두살 지금의 제가, 스무살의 저 자신에게 말을 걸 수 있는 셈이랄까요. 여러분도 예전에 가입했다가 한동안 들어가보지 않은 카페나 온라인 공간에 다시 한번 들어가보세요. 그 시절의 나와 바로 마주하는 기분이 듭니다.


열여덟의 풋풋하던 소녀들은 이제 절반 이상이 '유부녀'가 되었습니다. 그중 두명은 '엄마'라는 이름도 얻었고요. 그리고 이제 우리는 더이상 카페에는 글을 올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경향신문 DB. 모두에게 여고시절 사진은 평생 극비에 부쳐져야 하므로 자료사진으로 대체합니다. 후후.

 

대신 우리는 이제 그 '교환일기장'을 매일같이 접속하는 페이스북으로 옮겨다놓았습니다. 그곳에서 친구의 일상과, 아이가 커가는 모습과, 고민과 단상들을 나눕니다. 시간이 흐르고 모양이 바뀌었지만, 어떤 공간 안에서 담고 싶고 나누고 싶은 사람의 마음은 그대로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날 새벽 아침 동이 트기 전에 카페에 글 한편을 썼습니다. 저처럼, 친구 중 누군가가 우연히 카페를 찾아왔을 때 반가운 기분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싶어서요.


그런데 그 옛날의 교환일기장도 다시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지금보다 훨씬 더 심각하게 인생을 궁금해하고, 글솜씨는 너무 엉망진창이어서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를 글을 끄적였을, 그때의 그 일기를요. 10대의 저와 마주해보는 일도 꽤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다음에 친구들을 만나면 누군가의 창고에 쌓여있을 그 일기장을 꼭 함께 읽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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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냥이 2012.05.01 17: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 일기장 친정온 길에 마침 찾아두었다..흘흘흘.....담에 갖고갈게ㅋㅋ

  2. 딸기 2012.05.02 18: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야... 교환일기, 고은이도 썼구나. ^^
    저거 원래 마르탱 뒤 갸르의 소설 '회색노트'에 나온 거야. 당시 로망처럼 보였던 전혜린이 책에다가 회색노트 이야기를 쓰면서 엄청 유행... 그래서 우리 때는 (마르탱 뒤 갸르는 몰라도) 다들 회색노트라고 불렀어.
    그러고 보니 대학 때 교환일기 썼던 내 친구는 지금 영국에 가 있네... 고은 덕에 여러가지 추억을 떠올리게 됐다. 땡큐.

    * 그런데 지금 재미삼아(미안) 이고은 스토킹을 해보니까, 대학 때 과학생회장을 했네? 역시 대단...

    • 이고은 2012.05.02 19: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역시 선배는 걸어다니는 딕셔너뤼~~~!!! 선배 덕에 또 하나 알게 됐군요.ㅋㅋ

      *저의 모범장군적 기질이 발휘되는 순간이었죠.ㅋ 남자후배들이 저더러 '고은이형'이라고 불렀어요.ㅠㅠ

사실 영화 <건축학개론>은 나의 흥미를 별로 끌지 않던 영화였다. 결혼 2년차에 접어드는 서른 두살 여기자의 머릿속에는 첫사랑의 추억이 파고들 여유가 없다. 일과 일상, 현재의 사랑(과 그를 둘러싼 모든 관계)을 위해 마음을 쓰는 것만도 벅차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재 싱글인, 잘 나가는 커리어우먼인 한 친구가 이 영화를 보자고 했다. 최근 ‘결혼정보회사’의 폐해를 낱낱이 고발하며 격분을 토하곤 하던 그가 격하게 외로움을 호소하고 있었기에, 나는 다른 영화를 잠시 추천하는 수준의 소심한 군말만 보태고 영화를 보러 따라 나섰다.

 

지금도 이어폰을 나눠 끼고 음악을 함께 듣는 것은 로맨틱하다고 생각한다.(출처 : 네이버영화)

 

서른이 넘어 듣는 남의 첫사랑 이야기는 참 지루하다. 사람들이 갖고 있는 첫사랑의 기억이란 대체로 대동소이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장기에 겪는 첫사랑이란 서툴고, 투박하고, 촌스럽다. 보기에 따라 ‘찌질’해보일 수도 있는 기억들인데, 10년쯤 지난 뒤에 보면 그 기억은 참 순수하고, 아름답고, 그리 애절할 수 없는 추억으로 포장돼 있다.

영화 속 주인공의 첫사랑 이야기도 그런 공식을 따른다. 스무살의 사랑은 뽀얗고 눈부시다. 승민(이제훈)은 건드리면 깨질 것처럼 투명하다. 얕은 여우짓을 떨어보는 서연(배수지)도 결국은 맑은 사랑에 이끌린다. 고교를 갓 졸업한-물론 그때는 이제 다 큰 어른이 됐다고 자부하게 되지만-스무살들에게 사랑은 완전무결한 것이어야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어린 사랑이라고 착한 것만은 아니다. 조금이라도 기대에 어긋나면 부정하고, 상처받고, 돌아선다. 첫사랑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이런 이유가 아닐까 싶다. (개인적 생각으로는 완벽한 사랑을 강요하는 멜로영화와 드라마, 순정만화를 너무 많이 보는 것은 정신건강에 좋지 않은 것 같다.)

서른 다섯이 되어 재회한 승민(엄태웅)과 서연(한가인)을 보고선 짜증이 났다. 서연에게 상처받은 승민은 15년만에 만난 서연을 기억 못하는 척하고, 이혼의 상처를 달래고픈 서연은 승민을 찾아와 그를 흔든다. 둘다 여전히 미숙하다. 나이만 먹었지, 여전히 그 어설픈 스무살의 방어기제 속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 스무살은 추억이기에 아름답지만, 서른다섯은 현실이기에 씁쓸하다.

 

뒤늦게 사랑이었음을 확인하고 키스하는 장면에서 관객석에서는 알 수 없는 야유가 터져나왔다. (출처 : 네이버영화)

 


첫사랑의 추억은 ‘나’를 위한 것이다. 어리고 순수하고 예뻤던 때의 나, 열정적으로 누군가를 갈구하던 나, 상대로부터 애틋한 사랑을 받던 나…. 추억은 첫사랑 상대를 위하거나 고결한 사랑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 자아를 구성하는 소재에 그친다. 냉정히 말해 지난 사랑은 결국 나란 인간의 성장을 위한 포트폴리오로 남는다.

첫사랑은 뭘 잘 몰라서 투명한 것이다. 그것을 순수함, 절절한 사랑으로 치장하고 포장하는 것은 치졸하다. 첫사랑의 신화는 ‘나도 그런 때가 있었다’고 나를 위안하기 위한 것일 수 있다. 지나간 사랑을 미화하는 순간, 많은 것이 어그러지는 경우를 봤다. 그냥 그때는 투박하고 촌스럽게 사람을 좋아하고, 끓어오르다가, 어느 때 식고, 그러다 사랑이 끝났던 것이다.

영화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남겼다.

“영화 <건축학개론>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가장 현실적이고 중요한 메시지라면 지나간, 애틋했던, 이루어지지 못했던 사랑을 다시 찾지 말자는 것이다. 아름다웠던 어떤 순간을 끄집어내어 현실 위에 갖다놓으면, 추억은 순식간에 아무 것도 아닌 일이 되어버린다. 아름다운 추억은 그 때, 그 순간, 바로 그 상황이었기에 유효한 것이다.”

사람은 각자의 기억을 산다. 추억을 현재에 억지로 갖다놓았을 때 발생하는 기억의 불협화음은 재난에 가깝다. 추억은 그저, 흘러간 강물을 바라보듯 멀리서 바라봤을 때 아름다운 것이다. 지난 추억을 좇다가, 내 앞에서 흐르고 있는 반짝이는 물결을 그냥 흘려보내는 것이야말로 안타까운 일이다. 사랑도, 추억도, 모두 지금의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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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ㅁㅁ 2012.03.30 11: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자들은 이해못하는 남자를 위한 멜로영화

    여자들은 걍 이제훈 조정석 보고 만족하시길

    • 이고은 2012.03.30 14: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남자를 위한 멜로여서 여자들은 이해못하니 남자배우나 보고 만족하라는 이야기는 참 무례하군요.

    • 박군 2012.04.09 11:43  댓글주소  수정/삭제

      정말 어떻게 이렇게 주관적일수 있는지
      놀라울정도군요.
      부끄러운줄아세요.

      -남자-

  2. 딸기 2012.04.11 00: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ㅋㅋㅋ
    저 위에 ㅁㅁ이란 분의 댓글을 보니...
    너무나도 전형적인 '미숙한 남성'의 태도...
    자기중심적이고 여성비하적인(여성을 비하하려는 의도조차 없지만 기본적으로 소통과 배려가 없다보니 자신과 정체성이 다른 존재를 비하하게 되는 케이스. 한마디로 무식이 사람을 망치는 케이스) 남성의 태도라는 생각이 들어.

지난 2월 말, 늦은 겨울 휴가를 '지상 낙원'이라고 불리우는 하와이로 다녀왔습니다. 하와이 섬들 중에서도 오아후 섬에서 일주일간 묵었어요.

야자수와 해변, 훌라춤으로 뒤덮였을 것만 같던 하와이는 우리나라의 늦여름이나 초가을처럼 다소 쌀쌀한 날씨였습니다. 기대만큼 '지상 낙원'은 아니더군요. 해외여행이 일반화되면서 동남아나 남태평양 등 다양한 섬들이 휴양지로 급부상한 탓인지, 하와이만의 특별함은 그다지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이번 여행은 시어머님과 친정어머니 두분을 함께 모시고 간 여행이었습니다. 친정아버지가 안 계시니, 시아버님께서 "내가 가면 불편할테니 두 어머님을 모시고 다녀오는 게 더 낫겠다"고 배려해주신 덕분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그래서 더욱 뜻깊었던 여행이었습니다.


호놀룰루 해변입니다. 도로가와 바다가 바로 붙어있습니다.



시내를 이동할 때는 이런 트롤리를 타고 이동합니다. 오픈된 차라서 바람도 솔솔 들어오고, 여행객 기분이 납니다. (이중 JCB 신용카드가 있으면 무료로 탑승할 수 있는 트롤리가 있으니, 준비해 가면 좋습니다.)


트롤리를 타고, 해변가 끝에 자리한 호놀룰루 동물원에도 놀러갔습니다. 룰루랄라~!


동물원 앞에 이런 거대한 나무가 있었습니다. 나무 줄기가 자라 바닥으로 파고들어서 이런 모양이 만들어지던데, 여행객들이 나무에 사랑의 맹세나 각종 메시지를 남겨놓기도 했습니다. (나무 속으로 걸어가고 있는 사람은 접니다.ㅋ) 


동물원에 들어가니 바로 가까이에서 여러 동물들을 관람할 수 있습니다. 철조망이 쳐진 곳은 날아가버릴 가능성이 있는 새들의 우리 정도입니다. 아이들이 너무 좋아할 것 같습니다.




오아후에 가면 한번쯤 들르는 곳이 바로 '폴리네시안 문화센터(Polynesian Cultural Center)'입니다. 하와이를 비롯한 6개 섬의 폴리네시안인들이 살아온 문화를 한눈에 보여주는 한국의 민속촌같은 곳입니다. (옆에 꼬불꼬불한 머리가 저.ㅋ)

하와이(HAWAII), 타히티(TAHITI), 사모아(SAMOA), 피지(FIJI), 통가(TONGA), 아오테아로아(AOTEAROA) 등의 여러 섬의 비슷하면서도 각기 다른 분위기를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점심 시간이 지난 뒤에는 한 중간의 호수에서 각 섬의 전통춤과 음악을 들려줍니다. 그게 그거 같기도 하다가, 각 섬이 상징하는 각기 다른 컬러와 미묘한 차이를 발견하는 재미도 있습니다.

하와이에는 1941년 제2차 세계전쟁의 서막으로 일본이 공습한 진주만(Pearl Harbor)도 있죠. 잠수함, 군함, 전투기 등등 전쟁의 기록들도 엿볼 수 있습니다. (역시 촌스럽게 간판 앞에 앉은 사람이 저.ㅋ)


미국산 파인애플 많이 먹죠. 마트에서 주로 볼 수 있는 '돌 파인애플(Dole pineapple)' 플랜테이션에도 놀러갔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주렁주렁 매달린 파인애플을 보고 싶으시다면 별로 기대 않는 것이 좋으십니다.

정작 농장은 이런 모습이거든요. ㅠㅠ


대신 농장 곳곳에 설익은 파인애플들을 구경할 수 있으니, 굳이 비싼 열차를 타고 농장 투어를 안 하셔도 됩니다.

마지막으로, 하와이 오아후 동남부 해변가입니다. 마카푸우(Makapuu) 포인트에서 본 해안가입니다.

차를 타고 또 조금 더 달려가니 용암석들 사이로 파도가 분수처럼 뿜어져나오는 신기한 광경도 볼 수 있었습니다. 참 신비롭고 아름다웠지요.


하와이도 우리나라 제주도처럼 용암이 굳어져 만든 화산섬입니다. 구럼비 바위도 '지상 낙원' 하와이 못지 않게 아름다울텐데,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고은 기자의 여행기는 앞으로도 계속됩니다~!^^

참,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본 영화 <디센던트>입니다. '지상 낙원'으로 여겨지는 하와이를 배경으로, 아이러니하게도 지극히 '현실적'인 인생 이야기를 다뤘습니다. 그 속에 의외의 유머가 담긴 영화입니다. 괜츈합니다.

사진 출처 : 네이버영화

   

Posted by 이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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