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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이 음성통화나 문자 기능을 대체할 정도로 대중화됐습니다. 웹은 물론 모바일을 통해 실시간으로 친구들의 소식을 접할 수 있고, 내가 올린 콘텐츠에 대한 반응도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니 중독될 수밖에요.

 

페이스북의 중독력에 한 몫을 한 게 아마 ‘라이크(like)’ 버튼이 아닐까 싶습니다. 친구가 올린 콘텐츠에 클릭 한번 만으로 간단히 호응을 해줄 수 있고, 굳이 긴 댓글을 달지 않아도 서로 소통하고 있음을 인지할 수 있으니 얼마나 편리한지요. 저는 페이스북에 접속해 있지 않았는 데도 때로는 웬만한 뉴스나 여타 콘텐츠를 보면서 자동으로 ‘라이크(like)’를 찾고 있더라구요.

 

 

그럼 이 ‘라이크(like)’ 버튼은 언제 어떻게 탄생했을까? 2010년 4월 페이스북 개발자 컨퍼런스인 F8 행사에서 처음 소개됐다고 합니다. 벌써 2년이나 됐네요. 다른 서비스 페이지, 블로그, 특정 아이템마다 연동할 수 있고, 사용자가 누르면 바로 페이스북에 공유되는 기능이지요. 다른 어떤 마케팅 도구보다도 콘텐츠 노출과 확산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마케팅전문가들은  ‘라이크(like)’ 버튼의 경제적 가치(사용자당 1달러 이상.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하루 평균 사용자가 4억8천만명이라고 하니 ㄷㄷㄷ네요.)를 계산해 평가하기도 한답니다. 하지만 요즘 페이스북에 대한 부정적인 전망도 나오고, 장기적인 가치에 대해서는 아직 정확히 알 수 없다고 하지요.

 

 

 

 

타임라인, 오픈그래프 등 페이스북이 잇달아 내놓고 있는 새로운 기능들도 ‘라이크(like)’ 만큼 대중적인 호응을 얻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라이크(like)’는 일종의 놀이이자 문화가 되기도 했습니다. ‘라이크(like)’ 카드도 있죠. 온라인 뿐만 아니라 오프라인 공간에서도 ‘라이크(like)’ 버튼을 쓰고 싶은 저같은 사람들이 많았나보죠. 투명한 재질의 명함 크기 카드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카드 놀이(?)를 하네요.

 

 

(출처 : http://www.facebook.com/postview )

 

 

우리나라에서는 ‘라이크(like)’ ‘좋아요’로 쓰이는데요. 외국에서 각국어로 다양하게 쓰이고 있는  ‘라이크(like)’ 버튼을 찾아보니 이렇게 많네요. (사실 다른 나라는 어떤 버튼을 쓸까 궁금해서 찾아보다가 이 포스팅까지 하게 됐다는...)

 

어디 보자... 라틴어로 mihi placet, 독일어로 gilla, 일본어로 いいね, 인도네시아어로는 seneng 등이네요. 페이스북 하다보면 '좋아한다'는 의미의 다양한 언어도 배울 수 있겠군요.ㅋ

 

 

 

 

 

마음에 안 드는 내용에 ‘좋아요’를 누르기 싫은 사람들은 "‘싫어요’는 왜 없느냐"는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는데요. 페이스북 측에서는 아직 '싫어요', '좋아하지 않아요' 등의 부정적 의미를 담은 버튼을 내놓을 의사가 없는 것으로 알려집니다. 공유, 마케팅적인 측면에서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어느 발랄한 네티즌이 자발적으로 ‘싫어요’ 버튼을 만들어내기도 했죠. 일종의 패러디네요.

 

 

더욱 과감하고 과격한 버튼도 있고요.ㅋ

 

 

 

여하튼 마우스로 손가락 클릭 한번 까딱하는 것으로 소통이 이뤄질만큼, 편리해진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예전엔 어른께 문자를 보내는 것이 예의가 아니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달라진 것처럼, 미디어가 발달할수록 소통의 방식과 문화도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언제 또 ‘좋아요’보다 더 편리하고 재미난 소통 방법이 등장할지 기대되네요. 그럼 이만 총총.

 

 

Posted by 이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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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미디어가 없던 시절엔 대체 어떻게 살았던가. 지금 일하고 있는 인터랙티브팀 업무가 주로 소셜미디어를 연구하고 활용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나는 요즘 워낙 소셜미디어에 푹 빠졌다. 명색이 신문기자인데, 신문보다 스마트폰의 페이스북앱으로 신문기사를 접하는 일이 더 잦아졌다.

최근엔 트위터보다 페이스북에 열심이다. 트위터 타임라인은 시간이 지나가면 흐르는 강물처럼 다 흘러가버린다. 검색도 쉽지 않다. 트위터 이용자들은 주목되는 핫 이슈가 있을 때, 이슈를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뭉쳤다가 이슈가 지나가버리면 손가락 사이로 모래 빠져나가듯 금세 빠져나가 버린다.

트위터는 느슨하게 연결된 대중의 연대를 견인한다. '약한 연대(weak tie)'의 전형이다. 이슈가 몰리면 살아움직이는 여론을 바로바로 목격할 수 있어 흥미롭지만, 평소 특별한 이슈가 없을 땐 재미가 별로 없다.


페이스북은 개인화되어 있다. 나의 사진과 나의 소소한 일상, 나의 생각들을 디지털화해 저장할 수 있고 이를 토대로 나의 친구들과 공유, 교류할 수 있다. 실시간으로 나의 친구들이 띄우는 글들을 통해 안부를 묻고, 생각을 공유하고, 감정을 나눌 수 있다. 편리하다. 몸을 움직이지 않아도 내가 이미 그곳에, 그들과 함께 있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1년간 얼굴을 못보는 친구와도 매일같이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온라인 공간이 2% 부족하다 느끼는 이들에게야 페이스북은 그저 하나의 웹서비스일 뿐이지만, 나처럼 생활화된 사람에겐 페이스북이 또 하나의 세계다.

불편한 점도 있다. 한번은 갈 수 없는 약속을 "몸이 안 좋다"는 핑계로 거절한 뒤, 페이스북에 지인들이 약속 장소에서 찍어 올린 사진을 보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마치 나의 꼼수를 들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무도 내가 정말 아픈지 아닌지 확인할 수도 없는데, 뭔지 모르게 발가벗겨진 기분이 들었달까. 온라인 공간이 이미 내 오프라인 삶 속 공간중 하나가 되었기 때문일까.

요즘은 페이스북 창을 열때마다 뜨는 '타임라인' 서비스 때문에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타임라인 서비스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사람의 일생을 일목요연하게 페이스북 안에 정리해두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페이스북은 타임라인을 홍보하는 동영상을 통해 한 사람이 태어나고, 자라서 학교에 진학하고, 연애하고 결혼해 아이를 낳으며 늙어가는 과정을 손 쉽게 담을 수 있음을 강조한다.


그런데 나는 이 서비스를 사용할까 말까 잠시 망설이다 결국 창을 닫았다. 사람의 일생을 디지털 데이터로 완벽하게 정리해 둔다는 것이 징그러워졌기 때문이다. 마치 영화나 소설 속에서 아찔한 심정으로 보아왔던 '디지털 감시사회' 속으로 저항할 수 없이 빨려들어가는 기분도 들었다.

고든 벨과 짐 겜멜은 <디지털 혁명의 미래>에서 미래 사회가 '완전한 기억'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이들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전자기억'을 통해 인간이 삶의 모든 것을 완벽하게 기억하고 저장할 수 있는 시대가 머지 않았다고 보았다. 모든 것이 자동으로 완벽하게 저장되고 기억되어, 언제고 DB 속에서 꺼내 볼 수 있는 편리한 '라이프로깅'의 시대를 그들은 환상적인 미래라고 기대한다. 그리고 그 기억들은 디지털을 통해 불멸할 것이라는 예측도 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완전한 기억의 시대가 온다면, 사람들은 기억과 망각의 자유를 잃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기억이나 망각의 자유는 바로 인간의 특권이다. 불완전한 기억과 서로 다른 이야기가 만나면서 사람들의 대화는 시작된다. 김주환 연세대 교수는 "커뮤니케이션은 미스커뮤니케이션 때문에 가능해진다"고 했다. 모두가 똑같은 기억과 자료를 갖고 있다면 사람들은 대화할 이유가 없어진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모두가 스토리텔러다. 사람의 기억은 모두 '이야기'를 기반으로 구성된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완벽하지 않다.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것, 망각하고 싶은 것을 적당히 편집해 만들어낸 나만의 이야기가 바로 기억이다. 그런데 완벽한 기억이 가능해진다면, 사람들은 그 이야기들을 서로 나눌 필요없이 저장된 기억을 꺼내보기만 하면 된다. 징그럽다.

하긴, 나는 이미 이런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20대 초반에 시작했던 싸이월드 계정은 여전히 내 삶의 일부분들을 기억하고 저장하고 있다. 이렇게 내 삶의 조각들은 오래전부터 디지털 공간 곳곳에서 '이고은의 공식기억'을 자처하며 부유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제 정보 주체의 '잊혀질 권리'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물론 이런 단상을 블로그와 페이스북에 옮겨놓는 것도 사실은 모순이다. 편리한 디지털 기록을 통해 나의 현재를 손쉽게 기억하고 싶은 욕망이 내 망각의 권리를 짓눌렀다는 증거다. 앞으로도 이런 일은 점점 더 많이 용인될 것이다. 온라인 공간이 삶 깊숙이 침투되면서 우리 모두 이런 일에 무감각해질 테니까.

 

Posted by 이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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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 민심’은 여야, 진보·보수를 가리지 않습니다. 그동안 트위터, 페이스북 등 SNS 이용자들이 진보적이라는 인식이 있었던 게 사실이지요.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이 트위터와 별로 친하지 않았던 것도 사실상 지지층보다 ‘반한나라당’ 세력이 더 많이 포진하고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고요.

하지만 트위터 사용자들의 마음속에는 ‘정파’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던 일이 최근에 있었죠. 일주일이 넘도록 후폭풍이 계속되고 있는 ‘한명숙 계정 언팔 운동(이하 언팔 운동)’입니다. 이는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의 트위터 계정(@HanMyeongSook)을 팔로잉하던 트위터 이용자들이 팔로잉을 해제하자는 운동을 벌인 것인데요. 민주통합당 출범과 대표 선출 이후 한 대표와 민주통합당의 행보에 문제의식을 느낀 트위터 이용자들이 집단적으로 비판·항의의 뜻을 표현한 운동입니다.


사건은 지난달 31일, ‘요지경’이라는 닉네임의 트위터 사용자(@yoji0802)가 올린 멘션에서 시작됐습니다. ‘요지경’은 트위터에 “한나라 야합으로 석패율제를 결정한 도로 민주당 한명숙 대표를 규탄합니다. 방금 한 대표를 언팔했고, 오늘 이후 어차피 대표 당선 후 멘션도 없는 한 대표 계정 언팔 운동 하겠습니다”라고 썼습니다. 글 말미에는 ‘#한명숙계정언팔운동’이라는 해시태그(관심어 꼬리표)를 달았죠. 그는 야권 연대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민주통합당이 한나라당과 함께 석패율제를 도입키로 한 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대책이 미비한 점, 김진표 원내대표 등 구민주당 세력의 문제점 등을 연이어 비판했습니다.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타임라인에는 이 멘션을 RT(리트윗)하거나 똑같은 꼬리표를 붙인 멘션 등이 잇따랐고, 한 대표와 민주통합당에 대한 쓴소리가 줄을 이었습니다. @go***21은 “우리들의 지지가 우리들의 승리가 아닌 저들(민주통합당)만의 승리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며 언팔 운동에 동참한다고 밝혔고요. @ar***zoa는 “소탐대실하는 얼빠지고 오만한 민주당에 옐로카드를. 정신 못 차리면 레드카드도 나올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한명숙 언팔 운동은 민주당을 향한 시민들의 애정 어린 외침”(@jo***ee1)이라는 글도 있었죠. 한때 18만명에 육박했던 한 대표의 팔로어 수는 언팔 운동 직후 16만6000명대로 떨어졌습니다.

한 대표는 민주통합당 대표로 선출될 때 모바일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하는 등 온라인에서 지지를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불과 한 달도 되지 않아 온라인에서 뭇매를 맞았으니, 역설적이지요. 한 대표는 언팔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나누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아 “소통하지 않으면 이명박 대통령과 똑같은 법”이라는 비판을 들었습니다. 한 대표는 6일에야 “트친님들 목소리, 하나도 빠짐없이 듣고 있습니다. 약속 지키기 위해 모든 걸 다 짜내고 있습니다. 더딜 수도 있지만, 지켜봐 주세요”라고 글을 남겼습니다.

이처럼 SNS는 기성 정치판의 잣대로 볼 수 없는, 가장 솔직한 민심이 쏟아져나오는 공간입니다. 정파도 성역도 없습니다. 어제의 지지자도 오늘의 비판자가 될 수 있고, 또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겠지요. 최근 뜨거운 논쟁이 벌어진 ‘나꼼수 비키니 시위’도 마찬가지입니다.


팟캐스트 라디오 방송 <나는 꼼수다>에 무한한 애정을 보내왔던 누리꾼들은 이번 비키니 시위에 대한 <나꼼수> 측의 반응에도 냉정한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우선 정치적 사안에는 진보적이면서도 여성에 대해서는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태도를 보인 ‘나꼼수 마초이즘’을 질타하는 입장이 있죠. 소설가 공지영씨 등도 불쾌감을 토로하고 여성단체의 사과 요구도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이런 비판적인 입장이 주류 언론사들로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자, 이번엔 ‘엄숙주의’를 비판하는 누리꾼들의 재반박이 이어집니다.

비키니 시위를 한 여성은 “나꼼수가 사과하는 건 나의 뜨거운 가슴으로부터의 진실된 외침을 모욕하는 것”이라며 사과해서는 안 된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그러자 여성 누리꾼 카페들의 대표 격인 이른바 ‘삼국카페(소울드레서, 쌍화차코코아, 화장발)’는 “표현의 자유가 아닌 여성을 보는 시각의 문제”라며 “나꼼수에 가졌던 무한한 애정과 믿음, 동지의식을 내려놓는다”고 선언했습니다.

무조건적인 ‘<나꼼수> 사랑’을 보내주는 공간 같던 SNS는 이렇게 살아 움직이며 어떤 권력이든 비판하고 재평가합니다. 이런 일들을 보면 SNS가 모든 이들이 공평하게 발언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하게 ‘표현의 자유’가 살아있는 공간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진보와 보수, 좌와 우의 구시대적인 이분법으로 갈린 우리 사회의 경직된 여론이 다양한 얼굴들로 나타나는 곳이 되리라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이고은 기자 freetree@kyunghyang.com

Posted by 이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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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세계는 참 다사다난했습니다. 각종 이슈들이 트위터, 페이스북 등 SNS상에서 유통되고 증폭되는가 하면, SNS 스스로 이슈를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기존 미디어가 해내지 못한 역할을 해내며, 소셜 시대의 새로운 미디어로서의 가능성을 톡톡히 인정받았습니다.

올해 1월, 홍익대 청소·경비노동자들의 투쟁을 세상에 알린 것은 기성언론이 아니었죠. ‘투명인간’ 취급을 받았던 그들의 아름다운 연대를 세상에 알린 것은 SNS였습니다. 많은 시민들이 홍대 농성장을 직접 찾아가 음식과 이불 등을 전달했고, 노동자들이 추운 겨울을 날 수 있게 용기를 북돋웠습니다. 기성언론들은 화제가 되자 뒤늦게 기사를 따라 썼죠. 시민들의 마음이 모아졌기 때문일까요. 마침내 농성 49일 만에 노사협상이 타결됐습니다.

홍익대 투쟁을 필두로, 시민들은 올 한 해 참 많이도 ‘행동’에 나섰습니다. 봄을 앞둔 늦겨울, 많은 대학생들이 ‘반값 등록금’을 외치며 거리로 나왔습니다. 지난여름 시민들은 ‘희망버스’를 타고 부산으로 내려가 김진숙씨의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 투쟁을 응원했습니다. 늦가을이 되자 국회에서 날치기 처리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을 반대하기 위해 국민들이 거리로, 국회 앞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의 한 가운데에 SNS가 있었습니다. SNS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거미줄처럼 이어 주었습니다. 함께 고민할 문제, 함께 분노할 만한 문제가 있으면 순식간에 트위터로 RT(리트윗)되면서 들불처럼 퍼졌습니다.


소셜테이너의 역할도 컸습니다. 배우 김여진·방송인 김제동·가수 박혜경씨 등 SNS를 통해 사회적 이슈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정치적 신념을 표출하는 연예인들은 온라인 세계에서는 물론이고 우리 사회의 ‘빅 마우스’가 되었습니다. 김여진씨는 한진중공업 사태와 홍익대 청소 노동자 해고 사태 등 올 한 해 최고 이슈의 한가운데에 섰고, 김제동씨도 반값 등록금 등 현실 문제에 대한 발언을 많이 해 주목을 받았습니다. 가수 이효리씨는 유기견 보호운동과 투표 독려 활동을 통해 기성 미디어뿐만 아니라 SNS에서도 주목받는 엔터테이너로 평가받았습니다.

특히 올 한 해 있었던 투표에서 SNS의 활약은 대단했습니다. 선거의 주인공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죠. 지난 4·27 재·보궐선거, 6·2 지방선거는 명실상부한 ‘소셜 선거’였습니다. 네티즌들은 투표를 마친 뒤 ‘투표 인증샷’을 SNS에 올렸고, 이는 자발적인 투표 독려 운동으로 확산됐습니다.

8월24일의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에서는 SNS 여론이 정확하게 투표 결과로 나타나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무상급식 주민투표’와 ‘오세훈’ 등의 키워드와 관련한 SNS 메시지를 분석해보니 부정적 표현이 70~80%에 이른다는 결과가 나왔죠. SNS가 단순히 선거 분위기에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 실질적인 선거 결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증명한 겁니다. 트위터 여론이 그만큼 민심을 잘 반영하고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반면 기존 미디어, 특히 보수 종이매체들의 여론조사는 표심과는 동떨어진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이를 그대로 보여줬습니다.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는 SNS를 통해 부정적인 여론이 퍼지면서 이미지에 타격을 입었고, SNS로 막강한 파워를 과시한 박원순 범야권 단일후보는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나 후보 측은 트위터에 이른바 ‘자뻑트윗’을 올려 망신당하기도 했습니다. 서울시장 선거를 전후해 친한나라당 멘션을 날리는 ‘달걀귀신(초보 트위터사용자)’들이 우르르 나타나 ‘알바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지요. SNS가 민심을 반영해주는 창이라기보다는 ‘여론 조작의 도구’인 걸로 잘못 해석했던 듯합니다.

정부는 SNS를 통제하려는 잇단 시도로 누리꾼들의 공분을 샀습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이달 초 트위터, 페이스북 등 SNS를 심의하기 위한 기구인 ‘뉴미디어 정보심의팀’을 신설했습니다. 이에 “정부가 여론 통제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이어졌습니다. 법조계에서까지 정부의 SNS 통제 움직임에 고개를 내저었습니다. 한 판사는 “나치와 비슷한, 반인권적 행태”라며 강하게 비판했지요.

SNS를 둘러싼 음모론에, 괴담에, 보수언론과 당국의 ‘흠집내기’가 기승을 부리면서 웃지 못할 소동도 많았습니다. MBC <100분토론> ‘신촌냉면 사건’이 대표적입니다. 이 프로그램에 전화를 건 시청자가 “트위터 악성 멘션 때문에 냉면집이 망했다”고 주장했는데 알고 보니 냉면집을 운영한 적조차 없는 사람으로 판명됐죠. 말장난에서 비롯된 ‘숨쉰 채 발견’ 놀이에 기성 언론이 비난을 퍼부은 것도 빼놓을 수 없네요. 이런 비난에 대해 트위터 사용자들은 “SNS를 탄압하려는 시도일 뿐”이라며 맞섰습니다.

올해 스마트폰 사용자가 2000만명을 넘어섰습니다. 한국의 사용자 증가 속도가 전 세계에서도 가장 빠른 수준이라고 하죠. 2012년에는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가 두 차례나 있습니다. 올해보다도 SNS의 활약이 더 커지고, 더욱 다사다난한 해가 되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Posted by 이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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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 톱스타 이효리 자택서 숨쉰 채 발견(1보).’

지난주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휩쓴 멘션입니다. 깜짝 놀라셨죠? 언뜻 보면 톱스타 이효리의 사망소식 같으니까요. 찬찬히 다시 읽어보면 맥이 빠집니다. ‘숨진 채’가 아니라 ‘숨쉰 채’입니다. 사람 목숨 가지고 장난을 치다니 너무하다 싶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실소가 터져나옵니다.


며칠간 트위터 사용자들 사이에선 이것이 하나의 ‘놀이’가 되다시피 했습니다. 대부분의 누리꾼들은 이 멘션을 ‘조금 심한 농담’ 정도로 여기고, 주어를 바꿔가며 유통시켰습니다. 15일에는 이건희 삼성 회장, 16일엔 코미디언 강호동 버전의 ‘숨쉰 채 발견’ 멘션이 회자됐죠.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는 이들의 ‘사망설’이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RT(리트윗) 한번으로 삽시간에 퍼지는 트위터의 놀라운 전파력 때문이었지요.

파장이 커지자 곧 ‘자정작용’이 시작됐습니다. “한 사람의 생명을 가지고 이렇게 장난치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느낀다는 게 문제”(@m*******u), “욕 드시고 싶지 않으면 이런 장난은 금지하도록”(@R********Y) 등 자성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사건이 커진 것은, 오히려 보수 언론들이 뛰어들면서였습니다. 조선일보는 16일자 기사 ‘강호동이 죽었다고? 도 넘은 SNS’에서 “막강한 정보 전달력을 가진 트위터 등 SNS를 통한 유명인 거짓 자살 루머가 급속히 번지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다른 많은 신문·방송도 ‘도 넘은 장난’ ‘악질 희학’이라며 강력하게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언론의 비판은 점차 ‘SNS 자체의 위험성’ 쪽으로 확장됩니다. SNS가 검증되지 않은 ‘괴담’을 유포하는 근원지라는 주장입니다.

이번 일이 아니더라도, 요즘 보수 언론들은 SNS 경계심으로 가득한 것 같습니다. 조선일보는 지난 7일자 사설에서 “신문·방송 등의 전통 매체와 달리 메시지가 취사선택, 정화되는 과정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잘못 쓰이면 언어 테러의 흉기나 다름없다”고 했고, 동아일보는 12일자 사설을 통해 “인터넷과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한 협박이 인민재판 수준에 이르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자유로운 온라인 공간이 종국에는 ‘악플’을 양산하는 ‘쓰레기통’이 되어버렸다는 극단적인 비관론입니다.

가뜩이나 정부·여당에서 SNS를 규제하려는 분위기가 감지되는 와중입니다. 검찰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관련 ‘괴담’을 유포한 이들에 대해 수사하겠다고 했죠.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SNS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심의하는 기구를 신설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음모론’까지 등장했네요. “트위터와 SNS를 탄압하려는 고도의 전략 아닌가?”(@wi********n), “SNS의 부작용이나 폐해 쪽으로 몰고 가서 통제하려는 속셈으로 보이는 건 나만의 생각인가?”(@sk*******6)라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어쩌면 ‘숨쉰 채 발견’은 기존 권력과 주류 언론에 대한 조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요. 언론계에서 상투적으로 써온 기사체로 작성된 멘션은 그 자체가 풍자고 해학일 수 있습니다. 서울여대 주창윤 교수는 경향신문 17일자에 실린 칼럼 ‘괴담과 유언비어’에서 “유언비어(혹은 괴담)는 소통의 회로가 자유롭지 못하거나, 균형을 잃은 소통이 지배할 때 발생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사회에서, 주류에서 벗어난 의견을 때려잡는 방식이 반복될 때 사회는 점점 더 위험한 방향으로 달려가게 됩니다. 경향신문 김철웅 논설실장은 칼럼 ‘괴담을 좇는 사회’에서 “중간지대는 무시한 채 그렇게 몰아버리면 소통은 거기서 끝”이라고 경고합니다.

웃자고 한 일에 죽자고 달려드는 일, 이 정부 들어 너무 자주 봅니다. 다큐멘터리가 되어버린 <개그콘서트>를 보는 것도 괴로운 일입니다.

Posted by 이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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