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이혼할 때 풀빵이라도 팔자고 마음 먹어… 긍정의 힘으로 극복”
코미디언은 세상을 웃기는 사람이지, 우스운 사람은 아니다. 그런데 세상은 종종 촌철살인의 풍자를 쏟아내는 코미디언을 우스운 사람으로 만들어버리곤 한다. 그래 봤자 정작 우스운 것은 그를 그렇게 만든 세상일 텐데 말이다.
김미화는 죽는 날까지 ‘웃다가 자빠지고 싶을’ 정도로 뼛속까지 코미디언인 사람이었다. 죽을 때까지 즐거움을 남기고 가는 사람이 되고 싶어 미리 정해둔 묘비명도 ‘웃기고 자빠졌네’다.
하지만 지난 5년 동안 세상은 그를 웃기는 사람이 아니라 우스운 사람으로 만들려 했다. 진행하던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에서 낙마시키고, 방송사 ‘블랙리스트’에도 그의 이름을 올렸다.
2012 경향신문 연중기획 ‘알파레이디 북토크’의 마지막 강연을 맡은 방송인 김미화씨가 지난 12일 서울 중구 정동 문화공간 ‘산 다미아노’에서 ‘인생개척자’라는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_ 김문석 기자 kmseok@kyunghyang.com
그는 결코 우스운 사람은 되지 않았다. 끊임없이 싸우고, 공부하고, 세상과 소통했다. 자신의 삶에 충실하며 오히려 우스운 것은 세상임을 보여줬다. 그리고 지난 5년의 삶을 묶어 <웃기고 자빠졌네>라는 책을 출간했다.
여전히 뼛속까지 코미디언인 김미화, 그가 지난 12일 2012년 경향신문 연중기획 알파레이디 북토크의 마지막 강연을 맡았다. 갖은 인생의 역경을 딛고 살아온 그의 강연 제목은 ‘인생개척자’였다. 김미화의 인생 얘기는 담담하고도 유쾌했다. 그의 ‘입담’에 쉴새없이 터진 웃음으로 서울 중구 정동 문화공간 ‘산 다미아노’는 화기애애한 연말파티장이 됐다.
“제 19년간의 첫 결혼이 그리 행복하진 못했어요. 코미디언으로 성공했는데, ‘이혼하면 사회적 편견 때문에 매장당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으로 제 감정을 감추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누워 있다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어요. ‘내 인생이 내일 당장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데 왜 인생을 허비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자 가진 것을 다 버릴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설사 다 잃는다고 해도 명동에서 일자눈썹 붙이고 ‘순악질표 풀빵’이라도 팔면 된다고 마음먹었어요. 나를 다 놓으면 저 밑바닥에서부터 무슨 일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갖게 되는 겁니다.”
2005년 이혼 후 그의 인생은 급속도로 달라졌다. 시사 라디오 프로그램 MBC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진행자로서 승승장구했고, 2007년 현재의 남편 윤승호 성균관대 교수(스포츠과학부)와의 재혼에도 성공했다. 죽을 만큼 힘든 이혼의 상처를 이겨낸 뒤에 온 달콤한 보상과도 같았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이명박 정부 들어 KBS 블랙리스트 사건에 휘말리는 등 정치적 탄압에 시달리기도 했다. 방송사 사이에 벌어진 고소 사건 때문에 넉 달 동안 경찰서를 네 번이나 들락날락했다.
“그때 제가 무슨 생각을 했게요? 사실 속으론 즐기고 있었어요. 카메라 기자들이 플래시를 ‘파바박’하고 터뜨릴 때 ‘요렇게 찍어볼까?’ ‘옷은 어떻게 입을까’라는 생각을 했죠. 인간에게 죽음 다음으로 큰 스트레스가 이혼입니다. 이런 엄청난 스트레스를 이겨낸 여인들은 정말 무서운 사람이거든요. 사람을 잘못 본 거죠.”
김미화는 최고 인기 개그 프로그램인 KBS <개그콘서트>를 만든 주인공이기도 하다. 당시만 해도 “새로운 도전”이었다. “내 인생을 실험한다”고 말하는 그는 “마구 도전하고 절벽을 향해 달려가는 것, 그런 기상을 너무 좋아한다”고 했다.
자타가 공인하는 그의 경쟁력은 ‘성실함’이다. 라디오 방송 시간이 오후 6시인데 2시에 미리 출근한 적도 있다.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로서 그를 성공시킨 것도 바로 그런 성실함이다. 몇 시간 동안 종류별로 신문을 비교해보고, 실시간 뉴스를 인터넷으로 체크하면서 내공을 쌓아왔다.
끊임없이 공부하며 인생의 새로운 길을 여는 데도 거침이 없다. 실업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바로 코미디언의 길로 들어섰지만, 사회복지학·언론정보학 등을 거쳐 현재는 성균관대 동양철학 박사학위 과정을 밟고 있다. “예술철학을 공부하는데, 코미디와 풍자문화의 저항정신과 발전 과정에 대해 논문을 써보고 싶다”는 그의 꿈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야말로 자신의 인생을 끊임없이 실험하고 도전하는 ‘인생개척자’답다.
무엇보다도 김미화를 강하게 만드는 것은 ‘긍정의 힘’이다. “저는 부모도, 자식도, 남편도 첫 번째가 아니에요. 제가 첫 번째예요. 아침에 일어나면 ‘난 오늘도 행복할 거야’ 하고 선언을 해요. 저를 방송국에서 쫓아낸 편성국장을 만나도 등짝을 때려가며 ‘선생님,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어요. 진짜 반가웠거든요. 제가 미움을 놓았기 때문입니다. 누구 때문에 내가 불행해질 이유가 없는 겁니다.”
김미화의 ‘인생개척’은 계속된다. ‘웃음의 철학’을 공부하는 것도 “정치코미디를 발전시켜보고 싶다”는 꿈이 동력이다. 그는 시사 프로그램을 10년 가까이 맡으면서 “이젠 좀 다리에 힘이 생겼다”고 자부했다. “이대로 물러설 수 없죠. 강호동, 유재석 모두 제 경쟁자예요.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코미디언이 나와서 사회를 날카롭게 비판할 수 있고 그런 비판을 존중해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 그게 남은 제 길입니다.”
이고은 기자 freetr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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