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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이혼할 때 풀빵이라도 팔자고 마음 먹어… 긍정의 힘으로 극복”

 

코미디언은 세상을 웃기는 사람이지, 우스운 사람은 아니다. 그런데 세상은 종종 촌철살인의 풍자를 쏟아내는 코미디언을 우스운 사람으로 만들어버리곤 한다. 그래 봤자 정작 우스운 것은 그를 그렇게 만든 세상일 텐데 말이다.

 

김미화는 죽는 날까지 ‘웃다가 자빠지고 싶을’ 정도로 뼛속까지 코미디언인 사람이었다. 죽을 때까지 즐거움을 남기고 가는 사람이 되고 싶어 미리 정해둔 묘비명도 ‘웃기고 자빠졌네’다.

하지만 지난 5년 동안 세상은 그를 웃기는 사람이 아니라 우스운 사람으로 만들려 했다. 진행하던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에서 낙마시키고, 방송사 ‘블랙리스트’에도 그의 이름을 올렸다.


 

 

2012 경향신문 연중기획 ‘알파레이디 북토크’의 마지막 강연을 맡은 방송인 김미화씨가 지난 12일 서울 중구 정동 문화공간 ‘산 다미아노’에서 ‘인생개척자’라는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_ 김문석 기자 kmseok@kyunghyang.com


그는 결코 우스운 사람은 되지 않았다. 끊임없이 싸우고, 공부하고, 세상과 소통했다. 자신의 삶에 충실하며 오히려 우스운 것은 세상임을 보여줬다. 그리고 지난 5년의 삶을 묶어 <웃기고 자빠졌네>라는 책을 출간했다.

 

여전히 뼛속까지 코미디언인 김미화, 그가 지난 12일 2012년 경향신문 연중기획 알파레이디 북토크의 마지막 강연을 맡았다. 갖은 인생의 역경을 딛고 살아온 그의 강연 제목은 ‘인생개척자’였다. 김미화의 인생 얘기는 담담하고도 유쾌했다. 그의 ‘입담’에 쉴새없이 터진 웃음으로 서울 중구 정동 문화공간 ‘산 다미아노’는 화기애애한 연말파티장이 됐다.

 

“제 19년간의 첫 결혼이 그리 행복하진 못했어요. 코미디언으로 성공했는데, ‘이혼하면 사회적 편견 때문에 매장당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으로 제 감정을 감추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누워 있다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어요. ‘내 인생이 내일 당장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데 왜 인생을 허비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자 가진 것을 다 버릴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설사 다 잃는다고 해도 명동에서 일자눈썹 붙이고 ‘순악질표 풀빵’이라도 팔면 된다고 마음먹었어요. 나를 다 놓으면 저 밑바닥에서부터 무슨 일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갖게 되는 겁니다.”

 

2005년 이혼 후 그의 인생은 급속도로 달라졌다. 시사 라디오 프로그램 MBC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진행자로서 승승장구했고, 2007년 현재의 남편 윤승호 성균관대 교수(스포츠과학부)와의 재혼에도 성공했다. 죽을 만큼 힘든 이혼의 상처를 이겨낸 뒤에 온 달콤한 보상과도 같았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이명박 정부 들어 KBS 블랙리스트 사건에 휘말리는 등 정치적 탄압에 시달리기도 했다. 방송사 사이에 벌어진 고소 사건 때문에 넉 달 동안 경찰서를 네 번이나 들락날락했다.

 

“그때 제가 무슨 생각을 했게요? 사실 속으론 즐기고 있었어요. 카메라 기자들이 플래시를 ‘파바박’하고 터뜨릴 때 ‘요렇게 찍어볼까?’ ‘옷은 어떻게 입을까’라는 생각을 했죠. 인간에게 죽음 다음으로 큰 스트레스가 이혼입니다. 이런 엄청난 스트레스를 이겨낸 여인들은 정말 무서운 사람이거든요. 사람을 잘못 본 거죠.”

 

김미화는 최고 인기 개그 프로그램인 KBS <개그콘서트>를 만든 주인공이기도 하다. 당시만 해도 “새로운 도전”이었다. “내 인생을 실험한다”고 말하는 그는 “마구 도전하고 절벽을 향해 달려가는 것, 그런 기상을 너무 좋아한다”고 했다.

 

자타가 공인하는 그의 경쟁력은 ‘성실함’이다. 라디오 방송 시간이 오후 6시인데 2시에 미리 출근한 적도 있다.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로서 그를 성공시킨 것도 바로 그런 성실함이다. 몇 시간 동안 종류별로 신문을 비교해보고, 실시간 뉴스를 인터넷으로 체크하면서 내공을 쌓아왔다.

 

끊임없이 공부하며 인생의 새로운 길을 여는 데도 거침이 없다. 실업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바로 코미디언의 길로 들어섰지만, 사회복지학·언론정보학 등을 거쳐 현재는 성균관대 동양철학 박사학위 과정을 밟고 있다. “예술철학을 공부하는데, 코미디와 풍자문화의 저항정신과 발전 과정에 대해 논문을 써보고 싶다”는 그의 꿈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야말로 자신의 인생을 끊임없이 실험하고 도전하는 ‘인생개척자’답다.

 

무엇보다도 김미화를 강하게 만드는 것은 ‘긍정의 힘’이다. “저는 부모도, 자식도, 남편도 첫 번째가 아니에요. 제가 첫 번째예요. 아침에 일어나면 ‘난 오늘도 행복할 거야’ 하고 선언을 해요. 저를 방송국에서 쫓아낸 편성국장을 만나도 등짝을 때려가며 ‘선생님,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어요. 진짜 반가웠거든요. 제가 미움을 놓았기 때문입니다. 누구 때문에 내가 불행해질 이유가 없는 겁니다.”

 

김미화의 ‘인생개척’은 계속된다. ‘웃음의 철학’을 공부하는 것도 “정치코미디를 발전시켜보고 싶다”는 꿈이 동력이다. 그는 시사 프로그램을 10년 가까이 맡으면서 “이젠 좀 다리에 힘이 생겼다”고 자부했다. “이대로 물러설 수 없죠. 강호동, 유재석 모두 제 경쟁자예요.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코미디언이 나와서 사회를 날카롭게 비판할 수 있고 그런 비판을 존중해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 그게 남은 제 길입니다.”

 

이고은 기자 freetree@kyunghyang.com

 

Posted by 이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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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우리가 정부와 사회를 바꿀 수 있는 시민임을 기억해야”

 

“친애하는 시민 여러분.” 대통령이나 정치인들이 이렇게 연설을 시작한다면 어떨까. ‘국민’이 아닌 ‘시민’이라니, 무언가 어색하고 낯설다. 국민이란 “국가 체제에 의해 지배를 받는 국가의 구성원”이라는 뜻이다. 온순하고 안전하다. 시민은 다르다. 그 속에서 체제저항적이고 불온한 세력이라는 상징을 읽어내는 이들도 있다. 누군가는 ‘좌파’나 ‘빨갱이’ 운운하며 달려들지도 모를 일이다. 적어도 2012년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그렇다.

 

왜 우리는 ‘시민’과 멀어진 것일까. 행정구역상 도시에 사는 ‘서울시민’ ‘부산시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의미가 되어버린 것일까. 우석훈 성공회대 교수(경제학)는 “대한민국을 만든 주체가 우리 자신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프랑스 시민들은 혁명을 통해 스스로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쟁취했지만, 우리는 독립 후 미군정에 의해 시민의 권리를 ‘공짜’로 부여받았기에 그 개념이 제대로 정착될 기회가 없었다.

 

대선이 채 한 달도 남지 않았다. 경향신문 연중기획 알파레이디 북토크 11번째 강의는 최근 <시민의 정부 시민의 경제>를 펴낸 우석훈 교수가 맡았다. 18대 대선은 이명박 정부 들어 무너진 시민과 민주주의의 개념을 다잡을 계기라고들 한다. 그래서 ‘깨어있는 시민되기’라는 강연의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지난 21일 서울 중구 정동 문화공간 ‘산 다미아노’에서 열린 강연의 열기는 매우 뜨거웠다.

 

 

 

지난 21일 서울 중구 정동 문화공간 ‘산 다미아노’에서 열린 11번째 알파레이디 북토크에서 우석훈 성공회대 교수가 ‘깨어있는 시민되기’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우 교수는 “우리가 헌법을 만들고 정부를 바꾸고 사회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시민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_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 시민이 새로운 체제
만들자고 하면 새로운 시대 열려

 

▲ 우리가 만들고 싶은 꿈 위한
대통령 뽑아야 ‘시민의 정부’ 탄생

 

“국민은 헌법이 규정하는 것이고, 시민은 자연법의 개념이에요. 하늘이 준 권리를 갖고 있다고 봐야 하죠. 국민은 법을 위반하면 문제가 되지만, 시민은 문제가 되지 않아요. 국민은 대통령의 말을 들어야 하는데, 시민은 대통령에게 명령할 수 있습니다. 헌법도 시민이 만든 거고, 그 헌법을 없애거나 움직일 수 있는 권한도 시민에게 있는 겁니다. 시민이 새로운 체제를 만들자고 하면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것이죠.”

 

우 교수는 이번 선거를 통해 새롭게 탄생할 정부가 ‘시민의 정부’가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책에도 “당신을 ‘시민의 파티’에 초대합니다”라고 썼다. 그는 “(우리가) 행정구역상의 시민이 아니라 헌법을 만들고 정부를 바꾸고 사회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보편적 존재로서의 시민이라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우 교수는 우리가 겪은 ‘시민체험’으로 두 가지 사례를 꼽았다. 첫 번째는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이다. “광주시민들이 자신들을 ‘시민군’이라고 표현했잖아요. 누가 대신 이름을 붙여주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를 시민이라고 불러야만 총을 들 권리가 생긴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안 것이죠.”

 

두 번째는 지난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를 위해 거리를 뒤덮은 촛불의 물결이다. 당시 집회에 참석한 이들은 누구나 자신을 ‘촛불 시민’이라고 말했다. “누구든 단상에 올라가서 자신을 시민이라고 소개했습니다. 도시에서 왔건, 지방에서 왔건 모두 시민이라고 했거든요. 촛불집회 때야말로 시민이 집단적으로 등장한 사건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불법집회가 열리면 경찰이 국민을 잡아갈 순 있지만, 시민은 경찰이 함부로 잡아갈 수 없는 겁니다. 그때 우리의 마음속에 ‘나는 시민이다’라는 흐름이 생긴 것 같아요.”

 

우 교수는 시민의 시대에서 여성의 역할이 무척 중요하다고 보았다. 한국 여성들은 서구처럼 투쟁을 통해 참정권을 얻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치의식이 높지 않은 편이라고 평가된다. 하지만 우리나라 여성에겐 특유의 본능적 시민성이 숨겨져 있다. 그것을 확인할 수 있었던 사건이 바로 촛불집회였다.

 

우 교수는 촛불집회 당시를 “한국 사회의 남성 엘리트들이 해체되는 순간”이었다고 표현했다. ‘소울드레서’ ‘화장발’ ‘쌍코’ 등 소위 여성 3국 카페의 젊은 여성들과 ‘82쿡’의 주부 회원들이 촛불을 드는 행위야말로 직관과 통찰에서 나온 시민의 몸짓이었다고 해석한 것이다.

 

“남성 엘리트 경제학자들이 어렵게 꼬아놓은 언어의 장벽과 돈의 장벽이 있습니다. 하지만 여성들은 이를 직관적으로 무너뜨립니다. 생존과 삶에 관한 문제는 어떻게 복잡하게 만들어 놓아도 알 수 있는 것 같아요. 당시에 남성들이 만들어 놓은 허망한 지배프레임을 깨부순 1차적인 주체가 바로 여성들이었죠. 저는 그들이 스스로에게 ‘시민’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생각해요.”

 

우 교수는 팟캐스트 <나는 꼽사리다> 등을 통해 이명박 정부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했고,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에 대한 반대의 뜻을 명확히 밝히기도 했다. 이번 대선에서 시민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후보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보고, 현재 새누리당의 가치는 그렇지 못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는 “안철수 후보든, 문재인 후보든 야권 후보들은 시민의 가치를 공유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스스로를 ‘공포 경제학자’로 부르는 그가 불안정한 경제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내년에는 정말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시민들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지 않으면 무척 힘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차원에서 이번 대선의 화두인 ‘경제민주화’ 공약 가운데 우 교수가 ‘100점짜리’라고 극찬한 공약은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의 ‘의료비 100만원 상한제’다. 개인의 의료비 부담을 최대 100만원으로 상한선을 정해두고, 그 이상을 넘어설 경우 국가가 지원하는 제도다.

 

“이번 대선에서 그 공약 하나만 지켜져도 정권을 바꿀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 100만원이다, 1000만원이다 하는 금액보다도 개인이 부담해야 할 의료비의 상한선을 정한다는 것 자체가 그 사회의 복지 수준을 말해줍니다. 그동안 우리가 매월 몇 십 만원씩 민간 보험사에 맡겨왔던 것만큼 개인의 소득이 늘어나는 겁니다. 개인에게는 완벽한 공약이고 보험사들은 힘들어지겠죠. 보험으로 떼돈을 벌던 재벌들의 이득이 줄어들 겁니다. 저는 경제학자로서 돈에 직접 끼치는 영향력을 보고 판단하는데, 이건 모두에게 공평하고 도움이 되는 공약입니다. 특히 의료비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중요한 문제죠.”

 

고용 정책에 대한 대안도 제시했다. 그는 “한국에서는 ‘1원 1표’인 주식회사라는 경제 조직 형태가 보편적인데 유럽은 ‘1인 1표’의 협동조합 등 다른 방식의 경제 조직이 활성화되어 있다”면서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기업에 정부의 지원을 늘림으로써 그 안에서 고용을 창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문화예술 분야에 종사하는 이들의 ‘인건비’를 지원함으로써 이를 시민교육의 차원에서 활용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우 교수의 책에서 관통하는 메시지는 바로 ‘증오’의 힘이다. 변화를 일으키는 운동의 동력이 바로 “이것만은 도저히 참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증오심이다. 그러나 그는 증오의 반대말이 ‘용서’가 아니라 ‘꿈’이라고 결론지었다.

 

“우리가 무언가를 바꾸고자 하는 것은 누군가를 미워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죠. 증오만 하다 보면 지칩니다. 훗날 2012년을 돌아봤을 때 우리에게 ‘그 한 해 무슨 꿈을 꾸었나’라는 질문에 ‘의료민영화를 저지했다’ ‘금융의 새로운 미래를 열었다’ ‘생협에 가입했다’ ‘텃밭에서 처음으로 상추를 길렀다’처럼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는 집단적 기억이 필요해요. 우리가 만들고 싶은 무언가를 위해 대통령을 뽑아야 하는 거죠. 그것이 결국 시민의 정부를 만드는 길입니다.”

 

이고은 기자 freetree@kyunghyang.com

 

Posted by 이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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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책장에 처박아 둔 책, 다시 꺼내 보는 것이 정말 맛있는 독서”


“칠레 아옌데 박물관에서였어요. 약간 열린 문 사이로 빛이 들어와서 작은 무지개를 만들더군요. 그 장면을 제가 넋을 잃고 바라봤습니다. 그런 게 책입니다. 그 빛처럼, 어느 순간 내 속으로 들어와 넋을 놓게 만드는 것 말입니다.”


감각적인 독서가 정혜윤 CBS 라디오 PD의 책 <삶을 바꾸는 책 읽기>의 표지 사진은 이렇게 해서 만들어졌다. 정 PD가 생각하는 책이 바로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나를 넋 놓게 만들 만큼 삶에 빛이 되도록 스며드는 책, 나를 좀 더 그 빛을 향해 옮겨가게 만드는 책, 내 삶을 바꾸어놓을 정도로 나를 뒤흔들어 놓는 책.


그런 책을 읽은 적이 언제던가. 아니, 일생에 한 번이라도 그런 책을 만나본 적이 있는가. 무엇이 좋은 책인지, 무엇이 나에게 맞는 책인지조차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오는 시대. 내 삶을 바꿀 정도로 값진 책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아 보인다.

 




 

▲ 삶 속에서 작은 해답을 얻고

그 지혜를 쌓아갈 수 있도록… 책은 도와주는 존재 


▲ 진정한 독서행위는 ‘내 삶의 무엇을 바꿀까’

책 읽다 자신을 돌아보는 것


그러나 정 PD는 책을 통해 삶을 조금씩 변화시켜 나가는 방법을, 나름의 해답을 갖고 있는 듯했다. ‘독서의 계절’ 가을, 10월의 알파레이디 북토크는 지난 24일 정 PD의 책 이름과 같은 주제인 ‘삶을 바꾸는 책 읽기’로 이뤄졌다. 강연 주제와 잘 어울리는 북카페, 서울 중구 정동 문화공간 산 다미아노에서다.


“예전에 ‘종로서적’이 있던 시절, 거기서 책 구경을 하고 계단에서 책을 보는 게 낙이었어요. 책을 읽다 보면 외롭지 않았고, 제가 할 일이 많은 것처럼 느껴졌고, 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뭔가 풍성한 사람처럼 느껴졌거든요. 종로서적에 앉아서 읽었던 책 중에 가장 좋아했던 책이 <그리스인 조르바>였어요. 그 책을 읽고 ‘책이란 게 재미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머리가 맑아지는 경험이었죠.”


정 PD는 소설 속 주인공 60대 자유인 조르바를 통해 인간과 삶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보는 계기를 가지게 됐다. 정 PD를 사로잡았던 글귀는 조르바의 짧은 말이었다. “네가 밥을 먹고 무엇을 하는지 말해달라. 그러면 네가 누구인지 말해주겠다.” 조르바라는 사람을 설명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는 그저 빵과 물과 포도주, 그리고 약간의 노동을 섞은 존재였다. 자신을 둘러싼 소박하고 단순한 일상을 유쾌하게 빚어낸 존재가 바로 조르바였다.


정 PD는 “콩나물, 김치찌개 등 내가 먹은 음식들을 더한 결과 내가 되는 것 같다”며 “물질이 정신이 되는 일종의 화학작용이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책에서 “인간이 그토록 다양한 삶을 살면서도 내밀하게는 그토록 비슷한 본질을 가지고 있는 것이 놀랍고, 속으론 그토록 비슷하면서도 삶은 그토록 다르다는 것도 놀랍다”고 썼다.

 


 

 

정 PD는 살아오면서 몇 번, 우리 주변의 살아있는 ‘조르바’를 만났다고 한다. 한 번은 경기도에 소재한 한 도서관에 강연을 하러 갔을 때였다. 그때 만난 이동도서관 버스 운전기사 아저씨는 도서관에서 가장 책을 많이 읽은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는 “당신이 책을 읽고 무엇을 하는지 생각해보라. 그러면 다음에 읽을 책을 추천해주겠다”고 말했다.


정 PD는 자기계발서를 독파하고 ‘1년에 100권 읽기’ 같은 경쟁적 책 읽기는 독서가 아니라고 힘주어 말했다. 진정한 독서행위는 “책을 읽고 ‘이제 어떻게 살지?’ ‘내 삶의 무엇을 바꿀까’를 생각하는 순간 이뤄지는 것”이라고 한다. 책을 읽고 잠시 멈춘 채 자신을 되돌아보는 일, 나의 경험을 접목시켜 생각해보는 일, 그로 인해 나의 삶이 조금씩 달라지는 일…. 그런 총체적인 행위가 ‘독서’이고, 그 독서의 결과가 결국 나 자신을 말해주는 삶이 된다. 운전기사 아저씨를 통해 자연스레 조르바를 떠올렸던 이유다.


두 번째로 만난 조르바는 라디오 다큐멘터리를 취재하면서 만난 한 어부였다. 자신을 스스럼없이 ‘자유인’으로 표현한 그는 “인간은 고생을 하며 산다. 그런데 누구를 위해, 무엇 때문에, 어떻게 고생했는지를 말해보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인생의 답은 진부하기 짝이 없는, 자신의 생활 속에 있다. 나는 누구를 위해 필요한 사람이고 나의 열정은 어디에 쏟아야 할 것인가. 그에 대한 답을 찾아감으로써 우리는 나 자신을 찾고, 인생을 만들어간다.


조르바를 통해 정 PD가 그랬듯, 책은 삶 속에서 작은 해답을 얻고 그 지혜를 쌓아갈 수 있도록 돕는 존재다.


“읽은 책을 어떻게 다 기억하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어요. 책을 왜 기억하고 싶어 할까요. 바로 내가 지금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믿지 않고 살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요. 알베르 카뮈가 ‘인간의 삶 속에 빛이 되도록 스며들게끔 하고 싶다’고 했듯이, 우리는 좀 더 빛이 있는 쪽으로 옮겨나갑니다. 꾸준히 책을 읽다 보면 어느 날 알게 되는 변화지요.”


이날 강연 말미에는 ‘독서의 기술’에 대한 질문이 많았다. 한 참석자는 “도서관에서 빌린 책은 반납해야 하니 열심히 읽는데, 직접 구입한 책은 잘 안 읽게 된다”면서 “이런 습관을 고치는 방법”에 대해 물었다.


정 PD는 움베르토 에코의 말을 인용하며 답변했다. “에코는 ‘책을 사서 책장에 꽂아만 둬도 그 책이 머리에 옮겨간다’고 했습니다. 그 책을 샀다는 건 그 문제에 대해 관심이 있다는 말이죠. 그러면 언젠가는 그 책과 마주치게 됩니다.”


그는 관심만 가진 채 읽지 않고 두었던 책, 혹은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 행위를 통해 자신도 모르는 성장의 흔적을 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책장에 처박아둔 책을 다시 꺼내 보는 것은 정말 맛있는 독서입니다. 만약 작년에 본 책을 다시 볼 때 예전엔 보이지 않았던 부분이 눈에 들어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작년과 지금 사이에 나에게 뭔가 변화가 일어난 것이지요. 인생의 지혜는 책에서 다시 만나게 됩니다. 모든 책을 다시 읽을 필요는 없지만, 다시 꺼내 본 책에서 눈에 들어오는 것은 나에게 싹튼 지혜의 흔적입니다.” 정 PD는 책을 오래 기억하는 법으로 “맘에 들었던 구절을 필사해보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독서는 개인적인 행위이지만, 정 PD는 책을 통해 세상과 마주한다. 다양한 책을 통해 얻은 지혜와 깨달음들이 나 자신과 화학작용을 일으킴으로써 나는 날마다 새로운 ‘나’가 된다. 책에서 배운 가장 빛나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서, 바깥 세상에서도 볼 수도 있다. 책 역시 인간이 쓴 것이기 때문이다.


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에 나오는 마르코 폴로의 이야기는 정 PD 자신에게 삶의 좌표를 제시해주기도 했다. 전 세계를 여행하면서도 유토피아를 발견하지 못했던 폴로는 “우리는 날마다 지옥에서 살고 있고, 함께 지옥을 만들어 가고 있다. 지옥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지옥을 받아들이고 지옥의 일부분이 되는 것, 두 번째는 지옥 속에 살지 않는 사람과 지옥이 아닌 것을 찾아내려 하고 구별해내 지속시키며 공간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정 PD는 이 책이 너무 좋았다고 한다. 그는 사람들과 부대끼며 취재하고 라디오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상 속에서 “누군가에게 숨을 쉴 수 있게 하고 공간을 만들어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세상 속에서 지옥이 아닌 것을 찾아내고 구별하며, 사람들에게 지옥이 아닌 공간을 만들어주기 위해 살아가는 것. 그것은 책이 그에게 말해준 것일까, 그가 책을 통해 확인한 삶의 방향일까.

 

이고은 기자 freetree@kyunghyang.com

 

Posted by 이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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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인생은 수만 가지 맛인데, 우린 ‘가짜 맛’에 길들어 있어요”

 

우리가 알고 있는 맛은 ‘진짜’일까. 오늘 먹은 음식 중 과연 ‘진짜 맛’은 있었을까.

 

현대인은 생 오렌지보다 오렌지향을 넣은 주스를 더 많이 먹고, 닭으로 육수를 우려낸 닭 칼국수보다 닭육수 맛이 나는 조미료를 넣은 닭칼국수를 더 많이 먹는다. 오렌지향 주스는 오렌지 주스보다 더 달달하고, 조미료를 넣은 닭 칼국수는 더 입에 착착 붙는다. 보다 간편하고 보다 자극적인 맛. 우리는 이미 가짜 맛들에 너무 길들여졌다.

 

우울한 것은 가짜 맛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먹을 것이 별로 없다는 현실이다. 직접 요리해 차려 먹을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거니와 진짜 재료를 가지고 본연의 맛을 낸 요리를 사먹기에는 주머니가 너무 가볍다. 음식은 이제 허기를 달래거나 칼로리를 채우는 도구로 전락한 걸까.

 

맛에는 삶이 담겨져 있기 마련이다. 우리의 인생 구석구석에는 삶의 순간순간을 함께했던 음식들이 자리한다. 내가 먹던 음식에는 나와 함께했던 소중한 이, 어렸거나 젊었던 때의 나, 감동적이었거나 가슴 쓰린 추억들이 함께 서려있다. 맛은 삶의 일부이고, 인생은 수만 가지의 맛으로 기억되는 추억의 집합이다.

 

 

 

▲ 자본이 맛을 통제하는 사회
조미료·가공식품에 젖어

 

▲ 질 낮은 음식 비싸게 먹는 건
비싼 임차료란 사회 구조 탓

 

잡지사 기자 출신의 요리사 박찬일 셰프는 책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에서 이런 이야기를 꺼낸다. 그는 국수와 닭백숙, 바닷가재와 할랄푸드에 이르기까지 저마다의 음식이 꺼내놓는 인생의 추억을 곱씹는다. 책은 이 이야기들을 통해 ‘맛의 추억’을 쌓지 못하는 오늘날을 씁쓸하게 만든다.

 

박 셰프가 책의 주제를 경향신문 연중기획 알파레이디 북토크 9월 강연에 그대로 옮겨왔다. 지난 18일 서울 중구 정동 문화공간 산 다미아노에서 열린 이번 강연은 ‘인생은 맛이다’를 주제로 열렸다. 그는 식당을 경영했던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맛의 자본주의’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했다.

 

“음식값이 싸다고 싼 게 아니고, 비싸다고 비싼 게 아닙니다. 강남 청담동에서 비싸게 받을 필요가 없는 음식을 비싸게 받아서 문제이기도 하지만, 제대로 된 재료를 쓰면 음식값이 비싸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가격을 맞추느라 문제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노동력을 착취하게 되고, 주방의 위생이 나빠질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가장 중요한 문제는 맛을 내는 재료의 질이 나빠진다는 것이다. 박 셰프는 화학 조미료인 ‘글루타민산나트륨’에 대해 언급하며 “우리는 이 조미료에 둘러싸여서 식사를 한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글루타민산나트륨을 쓰면 소금을 적게 쓰니 몸에 좋은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분도 계신데, 이것도 나트륨입니다. 식당에서 보통 이 조미료가 많이 든 음식을 먹으면 물을 많이 먹게 되는데요. 그만큼 짜게 먹게 되기 때문입니다.”

 

박 셰프는 좋은 식품 재료를 사용하면서 식당을 영업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설명하기 위해 ‘닭 칼국수’를 예로 들었다.

 

“닭 한 마리를 우려서 육수를 내면 한 4인분 정도의 국물이 나옵니다. 닭을 삶고 로즈메리, 파슬리, 마늘 등을 넣고 2시간 동안 팔팔 끓인 뒤 기름을 걷어내 냉장보관해서 쓰죠. 이건 3일 만에 상합니다. 가격으로 따지면 한 그릇당 원가가 2000원 정도는 되죠. 그런데 닭고기 지방을 1% 넣고 만든 ‘치킨 스톡’을 넣고 육수를 내면 얼마가 드는지 아세요? 300원이면 됩니다. 더 슬픈 일은 닭을 전혀 안 넣고 맛을 낸 치킨 스톡의 맛을 손님들이 더 선호한다는 거예요. 닭 육수를 열심히 뽑아봐야 손님들은 맛 없어 합니다.”

 

박 셰프는 더욱 구조적이고 거시적인 이야기를 꺼냈다. ‘진짜 맛’을 방해하는 더 근본적인 요인에 대해서다.

 

그는 이런 문제가 ‘자본’이 맛을 통제하려 하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지적한다. 구체적으로는 ‘유통기한’이 문제다.

 

“식품기업들은 유통기한이 짧은 생식품 대신, 유통기한이 길어서 오랫동안 판매할 수 있는 가공식품을 만들어 팝니다. 그런 음식들은 건강하다고 볼 수 없죠. 그러나 기업들은 심지어 그 음식이 맛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려 무던히 애씁니다.”

 

미디어 역시 이런 현실의 공모자가 아니라 할 수 없다. 우리는 미디어를 통해 가공된 것이 더 맛있다는 인식을 갖게 된다.

 

비싼 값을 지불하고 먹는 음식에 불만을 갖는 소비자들을 위해 식당은 가격을 맞춰주는 대신 원료값을 절감하는 선택을 한다. 이는 사회구조적인 문제에서도 기인한다. ‘사오정(45세가 정년)’으로 대변되는 조기 퇴직자들이 제2의 인생을 시작하면서 선택할 만한 일이 식당 자영업뿐인 현실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들에게 제대로 된 요리를 위해 손해를 감수한다는 것은 사치일는지 모른다.

 

그 와중에 자존심을 지키고자 하는 요리사는 시장에서 떠밀려날 수밖에 없다. 박 셰프가 운영하던 레스토랑 ‘라 꼼마’도 지난 7월을 마지막으로 영업을 중단했다. “식당을 운영한다는 것이 참 고단한 일이고, 한번 제대로 해보려고 했더니 이런 결과가 빚어진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계산기를 두드려보면 맨날 적자입니다. 조미료를 안 써서 적자인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결정적 원인은 토지 비용이 올랐기 때문입니다. 장사하면 가장 무서운 것이 임차료와 인건비입니다. 인건비는 내 몸이 진토가 되도록 일하면 됩니다. 그러나 임차료는 너무나 비쌉니다. 임차비는 우리들에게는 돌아오지 않는 비용이지요. 순댓국 값이 5000원에서 6000원으로 올랐다면, 아마 그 비용 중 대부분이 임대업자들에게 돌아갔기 때문일 것입니다.”

 

강연을 들으러 온 참석자들도 이런 현실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이날 청중으로 참석한 가수 박은옥씨는 “요리 재료의 질을 낮추는 것을 허용할 수 없어 새벽부터 시장에 가서 재료를 사고 일해서 번 돈을 임차료와 세금으로 다 내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대기업이 외식 사업에 뛰어드는 일 역시 이런 현상을 부추긴다. “(대기업에서) 음식을 유희 삼아 식당을 열면 손해가 난다 해도 별 문제가 없겠지요. 오너의 취미를 충족시킬 뿐만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는 등 부수적 효과들을 노린 것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결과 더욱 부동산 비용을 높이게 됩니다.”

 

이런 현실에 절망만 해야 할까. 박 셰프는 “생활협동조합이나 한살림 등 비영리단체에 가입해서 좋은 식자재를 골라보라”고 제안했다. 이것은 단순히 어디서 먹을거리를 사느냐의 문제는 아니다. 바로 ‘정치경제’적 차원에서 먹을거리 문제를 바라보자는 취지다.

 

“밥값의 문제는 사실 정치·경제적 문제입니다. 뉴욕은 살인적 물가로 유명하지만 그만큼 터무니없이 값싼 식당도 없고 임차비용 외에 한국처럼 ‘권리금’이라는 걸 따로 받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대기업과 땅부자들의 부를 축적하는 것을 돕기 위해 저질의 음식을 비싼 값을 주고 먹습니다. 그러고 보면 올해 대선, 잘 치러야 합니다. 식당 자영업자들이 먹고 살기 위해서, 우리의 5000원짜리 밥값을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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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상대의 말에 귀 기울여 공감을 하면, 그는 정녕 당신을 원할 겁니다”


‘세계 1%만을 위한 명품 수제시계.’ 2006년 강남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빈센트(vincent) 시계 사기극’은 이 광고 문구 한 줄에서 시작됐다. 사람들은 명품이라는 말에 의심없이 지갑을 열었다. 영국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애용한다든지, 청담동 부유층과 연예인들에게 인기가 높다든지 하는 입소문도 한몫을 했다. 이 때문에 원가 30만원짜리 중국산 시계는 500만원짜리 스위스산 명품시계로 둔갑할 수 있었다.


이 사기극은 ‘브랜딩(branding)’의 중요성을 잘 말해준다. 브랜딩이란 브랜드에 대한 인식을 심어가는 과정이다. 시계 수입업자는 브랜드를 명품으로 인식시키는 데 가장 주력했다. 사람들에게 일단 명품으로 인식된 브랜드는 추후에도 품질과는 무관하게 명품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물론 거짓에 기댄 사기극이었기에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었지만, 브랜딩이 성공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보여준 일화였다.


사람 사이에서도 브랜딩이 중요해지고 있다. 날로 심화되는 경쟁 속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나를 제대로 알리지 못하면 인정받을 수 없다. 품질 좋은 제품이 넘쳐나듯, 소위 ‘스펙’ 좋은 고급 인력도 넘쳐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지난 22일 경향신문 연중기획 알파레이디 북토크 여덟번째 강연이 ‘나를 브랜딩하라’를 주제로 열렸다. 서울 중구 정동 문화공간 산 다미아노에서 열린 이번 강연은 본격적인 취업 시즌을 앞두고 20~30대 젊은층을 위해 기획됐지만, 40~50대 장년층도 많이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강연을 맡은 홍성태 한양대 교수(경영학)는 “우리는 모두 이름 석자라는 브랜드를 갖고 있다”며 “브랜드를 어떻게 관리하고 상대에게 인식시키느냐가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최근 <모든 비즈니스는 브랜딩이다>라는 책을 출간했다.



지난 22일 서울 중구 정동 문화공간 ‘산 다미아노’에서 열린 8월 알파레이디 북토크 강연에서 홍성태 한양대 교수가 ‘나를 브랜딩하라’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_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 상대의 마음과 가슴을 움직이려면

나 역시 마음과 가슴으로 공감해야…

그게 바로 공감의 브랜딩


사람의 브랜딩이라고 해서 상품 브랜딩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자신이 갖고 있는 장점을 이용해 상대방에게 매력적인 존재로 보여야 한다. 물론 가짜 명품시계 사기극처럼, 거짓과 과장으로 나를 포장하면 결국 사기꾼이나 허풍쟁이가 되기 십상이다.


중요한 건 사람 사이에 감정이 흐른다는 점이다. 홍 교수는 “‘네가 필요해’라고 말하게 만드는 것은 20세기식이고, ‘너를 원해’라고 말하게 하는 것이 21세기식 방법”이라고 했다. 나를 원해서 찾아오게끔 상대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는 방법은 무엇일까. 홍 교수는 ‘공감(empathy)’이란 해법을 제시했다.





“제 둘째아들이 생일 선물로 물총을 줬습니다.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물총이기 때문이지요.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좋아하면 남들도 좋아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물총을 선물로 주는 것처럼 남들도 나와 똑같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착각입니다. 상대와 전혀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지요.”


공감이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상대방의 세계를 지각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의사소통’이다. 우리는 상대가 나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해주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을 움직인다. 공감은 흔히 여성적 문제 해결 방식 중 하나로 여겨지기도 한다. 다만 공감은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주는 것일 뿐, 실제로 그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공감은 ‘동정(sympathy)’과 다르다. 동정은 쉽게 말해 머리로 남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상대의 마음과 가슴을 움직이려면 나 역시 마음과 가슴으로 공감해야 한다. 홍 교수는 “공감이란 팩트(사실)에 공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생각에 공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도 이 두 개념의 차이에 대해 언급해 화제가 된 바 있다.


누군가와 공감하려면, 우선 상대방의 생각을 정확히 인지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것이 소통과 이해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홍 교수는 제임스 서버의 동화 <아주아주 많은 달>(many moons)의 우화를 통해 이 두 가지 능력의 중요성을 설명한다.



“달을 따달라는 철부지 공주 때문에 신하들이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입니다. 그런데 한 광대는 공주에게 달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물어봅니다. 알고 보니 공주는 달을 ‘엄지손톱만 한 황금’이라고 인식하고 있었죠. 그래서 광대는 엄지손톱만 한 황금덩어리를 구해 공주에게 줍니다. 상대가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음은 공감한 내용에 대해 상대방과 의사 소통을 하는 능력이다. “흔히 화성에서 온 남자는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금성에서 온 여자는 이해와 공감을 바란다고 하지요. 아내가 시어머니와 시누이에 대해 불평할 때 잘잘못을 따지면 어떻게 될까요. 문제가 매우 복잡해진다는 것, 잘 아시죠? 아내가 시어머니 욕을 할 때엔 ‘당신이 참았어? 어른이구려’라고 아내의 입장에서 이야기하고, 시누이에 대해서는 ‘걔가 시집을 가더니 왜 그러지’라고 맞장구를 쳐보세요. 아내가 ‘열 받았었는데 당신한테 이야기하니까 풀리네’라고 합니다.”


공감의 힘은 놀랍다. 사람들은 공감을 통해 서로 친밀감과 호감을 갖게 된다. 그러면 상대방은 특별한 사람이 된 듯 느낀다. 이른바 ‘명의’로 소문난 의사들의 진료법을 곰곰이 들여다보면 사실 비법은 의술에 있는 것이 아니다. 홍 교수는 “요즘 한의사가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이유는 질병이 아니라 환자를 잘 고치기 때문”이라며 “환자와 공감을 잘해주니 환자의 태도가 달라져서 고쳐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감 능력은 평범한 외모의 여인을 ‘미인’으로 만들어주기도 한다. 홍 교수는 60대 추녀 ‘꽃뱀’ 이야기를 전한 교정직 서기관의 인터뷰 내용을 소개했다. 


“한번은 나이 많고 못생긴 꽃뱀이 잡혀 들어왔기에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좀 지내보니 알겠더라는 겁니다. 사람의 마음을 너무 잘 읽더라는 거예요. 양귀비도 사실은 뚱뚱하고 못생겼다고 하죠. 절대 미녀가 아니에요. 그런데 임금이 왜 양귀비를 그렇게 좋아했을까요. 궁에 궁녀들이 널렸는데 무슨 재미가 있겠어요. 양귀비는 임금의 마음을 쏙쏙 읽어주고 이해를 해줬던 겁니다. 공감의 힘은 이런 겁니다.”





홍 교수는 공감의 방법으로 △주의 기울이기 △일차 공감 △고도 공감 등을 소개했다. ‘주의 기울이기’는 말로 공감해주지 않더라도 내가 너와 주파수를 맞추려고 애쓴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고, ‘일차 공감’은 상대방의 입장에서 이야기의 내용과 감정을 따라가는 것이다. ‘고도 공감’은 상대방보다 앞서 그 입장을 이해하는 것이다.


사람은 상대방의 공감을 통해 스스로를 특별하다고 느낀다. 홍 교수는 강연 말미에 흰색 튤립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가운데 빨간 튤립 한 송이가 피어 있는 사진을 제시했다. “사람들은 상대방이 자신을 빨간 튤립처럼 여기고 있다고 느끼고 싶어 합니다. 상대방이 특별한 환자처럼 느끼게 하면 나는 환자가 한번 진료를 받으려고 3년씩 기다리는 명의가 됩니다. 상대방의 말에 귀기울이면 나는 천하의 미인이 되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공감의 브랜딩입니다.”


이고은 기자 freetr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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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남과 좋은 관계 맺고 ‘나’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삶을 살라”


“힘들면 한숨 쉬었다 가요. 사람들에게 치여 상처받고 눈물 날 때, 그토록 원했던 일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사랑하던 이가 떠나갈 때, 우리 그냥 쉬었다 가요.”(<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중에서)


해사한 얼굴로 혜민 스님(38)은 말한다. 잠시 멈추어 보라고. 사람들은 그의 맑은 기운에 이끌려 잠시 발걸음을 멈춘다. 단단히 잠근 마음도 무장해제한다. 가만히 멈춰 서면,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다. 바쁘게만 돌아간다고 여겼던 세상, 가만히 보면 바빴던 것은 내 마음이었구나.


‘힐링(Healing)’을 빼놓고 2012년을 말할 수 없다. ‘점령하라(Occupy)’는 구호로 분노를 토했던 2011년을 건너왔지만, 신자유주의는 여전히 견고하다. 시스템은 몇 번의 저항만으로 깨어질 수 없고, 지루하게 반복되는 투쟁은 피로와 열패감을 남긴다. 여전히 계속되는 경쟁 스트레스와 낙오에 대한 불안감. 현대인의 정신적 아픔은 더욱 깊어진다. 사람들은 치유받길 원하고, “괜찮다”는 위로를 받고 싶어졌다. 나만 지친 것이 아니라, 모두가 힘들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안도하고 싶다. 혜민 스님의 책을 16주째 베스트셀러 1위에 올려놓은 것은 사람들의 이런 바람이다.


지난 25일 혜민 스님이 강연자로 나선 경향신문 연중기획 알파레이디 북토크 강연은 이틀 만에 신청이 마감됐다. 그런데도 “서서라도 듣겠다”며 찾아온 독자들을 비롯해 100여명의 참석자들로 강연이 열린 서울 중구 정동 문화공간 산 다미아노는 북새통을 이뤘다. 이날의 주제는 ‘내 마음이 쉬면 세상도 쉰다’였다.



25일 서울 중구 정동 문화공간 산 다미아노에서 열린 7번째 알파레이디 북토크에서 혜민 스님이 ‘내 마음이 쉬면 세상도 쉰다’는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_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 남과 비교해서 불행해지니

자존감 키우는 데 투자하면

정신 건강 훨씬 이로울 것


▲ 현대인 마음의 병 ‘외로움’

되레 오롯이 설 때 극복돼

안되면 먼저 손 내밀어라


“나이 드신 분들께서 저보고 ‘젊으신데 열심히 수행하셔서 법정 큰 스님처럼 되세요’라고 합니다. 그러면 저는 ‘법정 스님이 아니라 혜민 스님이 되고 싶어요’라고 말해요. 저는 법정 스님이 될 수 없어요. 저는 문명의 이기가 좋아요. 나무 때서 밥하고 싶지 않아요. 전기밥솥의 버튼만 누르면 밥이 되는데…(웃음). 트위터도 하고 페이스북도 합니다. 법정 스님처럼 고고한 학처럼 근엄하지는 않지만 성격 밝은 ‘동네스님’이지요. 그런데 고민이 있으면 혜민 스님에게 이야기하지 않으시겠어요? 단점도 있지만 장점도 있는 거예요. 그걸 밀어붙이면 돼요. ‘누구처럼 살아야지’ 하면 잘 돼야 2인자예요. 누구나 가진 (나만의) 빛깔과 향을 발해보세요. 나만의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면 힘이 나옵니다.”





혜민 스님은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신간으로 나왔을 때 서점에 갔지만 정작 자신을 알아본 사람은 없었던 일화를 소개하면서, 남의 눈치를 보거나 타인과 비교하면서 살기보다 나 자신에게 더 많이 집중하는 삶을 살라고 조언했다. 스님은 “내가 상상하는 만큼 다른 사람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다”면서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눈치 보지 말고 하면 된다”고 말했다. 혜민 스님에게 한 독자가 물었다고 한다. “스님, 어떻게 멈춰요. 멈추면 뒤처지는데….” 혜민 스님은 “늘 나보다 나은 사람하고만 비교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남들과의 비교에 목매기보다 나의 자존감을 키우는 것에 투자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 훨씬 이롭다는 조언이다. 이날 강연 내내 일관되게 흐르는 키워드는 바로 ‘나 자신’과 ‘관계’였다. 모든 답은 나 자신에게 있고, 행복과 불행의 근원에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있다. 혜민 스님은 오랫동안 행복을 유지하는 방법에 대해 다룬 뉴욕타임스 기사를 소개했다. 돈을 쓰는 것보다 더 오랫동안 행복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인생의 경험을 사는 것이고, 그보다 더 오래 행복감을 느끼는 방법은 사람과의 관계를 좋게 만드는 것이다. “혼자가 아니라 내 마음을 알아 주는 사람이 있구나, 조금 잘못하고 실수해도 ‘친구들이 응원해주는구나’하는 느낌이 행복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스님은 다른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음으로써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줬다. 언뜻 들으면 누구나 생각해낼 수 있는 방법이란 생각이 들지만, 막상 자신의 삶 속에서 실천하기란 무척 어려운 ‘인생의 지혜’들이다.





“첫째 공짜를 바라지 마세요. 우리는 끊임없이 주고 받으며 살아갑니다. 꼭 돈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으로 표현하는 것,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도 베푸는 것입니다. 둘째 내가 원하는 것을 명확하게 말을 하세요. 서운한 것이 있으면 ‘너가 그런 이야기를 하니까 나도 모르게 서운한 느낌이 드네?’라고 부드럽게 말해보세요. 셋째 남의 말을 잘 들어주세요. 누군가 내 편이 되어 이야기를 잘 들어줄 때 우리는 지대하게 고마워하잖아요. 상대가 한 번 더 이야기를 하게 해주는 것이 자비 행위입니다. 넷째 시기·질투를 하지 마세요. 나보다 좀 더 잘된 사람을 진심으로 축하해주면 그 사람처럼 될 수 있는 씨앗을 즉시 뿌리는 겁니다.” 


현대인이 가진 가장 큰 마음의 병은 바로 ‘외로움’이다. 그러나 오히려 나 자신이 스스로 오롯이 설 수 있을 때 외로움은 극복된다. 혜민 스님은 스스로를 “외로운 섬이라 생각하지 말고 우주와 연결된 신성한 존재로 여기라”고 말한다. 탄탄한 자존감을 갖고 있다면 인간 관계 역시 탄탄해질 수 있다. 외롭다고 아우성치는 사람들에게 혜민 스님은 이 한마디를 던진다. “친구가 없어서 외로운 게 아니라 내가 친한 친구에게 전화를 안해서 외로운 거예요.” 온라인이 발달하면서 가벼운 관계들이 넘쳐나고, 사람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자신의 좋은 면만 보여주려고 한다. 그러나 진정 깊은 인간 관계는 나의 연약한 내면을 타인과 나눌 수 있을 때 비로소 이뤄진다. 거꾸로, 타인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마찬가지다. 상대를 위해서건 관계를 위해서건, 타인을 있는 그대로의 그 사람으로 인정하고 바라보는 일이 중요하다. 어린 자녀에게도 마찬가지다. “아이에게 나의 욕심이 자꾸 투영된다”는 한 학부모에게 혜민 스님은 “내 운명의 운전대를 내 스스로 잡고 있을 때가 행복하다”며 “아이들을 애 취급하지 말고 어른처럼 존중하라”고 말했다.





혜민 스님을 마주하면 그가 대중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를 읽을 수 있다. 여느 근엄한 노승들과는 달리, 세상사와 긴밀하고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는 듯하다. ‘뜬구름 잡는 이야기’보다 구체적인 삶을 이야기한다. 참석자들이 내던진 ‘답 없는 질문’에는 엉뚱하지만 명쾌한 해답을 내놓는다. 자신의 미래를 걱정하는 직장 10년차 여성에게는 “연애가 필요하다”고,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있지만 불안정한 생활 때문에 고민인 학생에게는 “알바(아르바이트)를 하라”고 일갈한다. ‘에게~’, ‘아싸리(‘차라리’를 뜻하는 경상도 사투리), ‘디게’ 등 속가를 떠난 스님의 말에서 배어나오는 속어들도 친밀감을 더한다. “제가 이쯤되면 노래를 한 곡 부르는데….” ‘예의상’ 몇 번 튕겼지만 빼지 않는다. 이내 혜민 스님의 입에서는 존 덴버의 팝송 ‘아마도 사랑(Perhaps love)’이 미성과 함께 흘러나왔다. 


혜민 스님의 강연이 끝나갈 때쯤, 카페의 모든 불이 꺼졌다. ‘치유명상’의 시간. “자, 이제 명품가방은 내려놓으시고 손을 내 심장 위에 얹어보세요.” 짙은 어둠 속에서 100여명이 자신의 심장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몸에게, 마음에게, 나에게,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줬던 사람에게 감사와 치유의 말을 읊조렸다. 강연장에서 처음 본 얼굴이지만 한 사람도 빠짐없이 서로의 손을 맞잡고 행복을 기원했다. 불이 켜진 뒤까지 눈물을 훔치는 이들도 있었다. 혜민 스님은 강연의 끝도 명상으로 맺었다. “내가 나를 사랑하기 시작하면 세상도 나를 사랑하기 시작합니다”라고 말하면 사람들도 따라 말했다. 강연 후 돌아가는 사람들의 표정이 한결 맑았다.


이고은 기자 freetr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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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성숙한 사랑 원한다면, 지나치게 분석 말고 긍정적 착각을 해라”


사랑, 어렵다. 사랑에 아파하고 상처를 받아도 우리는 불나방처럼 또다시 사랑에 뛰어든다. 인류가 시작된 이래 사랑이 언제 화두이지 않았던 때가 있었던가. 이미 오래전부터 숱한 문학작품과 노래로 꾸준히 다뤄졌음에도 사랑은 영원불멸한 소재임에 틀림없다. 인류 공통의 숙제인 셈이다.


더구나 한국의 20~30대 젊은이들에게 사랑은 때론 사치로 여겨질 정도로 어려운 일이 되었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할 수밖에 없어 탄생한 용어 ‘삼포세대’는 이런 세태를 잘 보여준다. 감정에 충실하고 사랑에 목매는 절절한 연애를 하기에도 사회구조적 장애물이 많다. 돈, 직업, 미모 등 각종 ‘조건’이 사랑을 앞서는 냉정한 사회다.


이렇게 어려운 사랑, 정답이 있을까? 혹은 사랑을 잘하기 위한 해법이 있을까?



지난달 26일 서울 정동 문화공간 ‘산 다미아노’에서 열린 6번째 알파레이디 북토크에서 곽금주 서울대 교수(심리학)가 사랑의 심리학에 대해 강연하고 있다. _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부부나 오랜 연인은 억지로라도 심장 박동수 높이는 활동 함께하면 열정 이어갈 수 있어


경향신문 연중기획 알파레이디 북토크의 6월 강연 주제는 바로 사랑이었다. 지난달 26일 서울 정동 문화공간 ‘산 다미아노’에서 열린 이번 강연은 곽금주 서울대 교수(심리학)가 맡았다. 곽 교수는 최근 사랑을 둘러싼 인간의 심리를 잔잔하게 풀어낸 책 <도대체, 사랑>을 펴냈다. 이날 강연 주제도 책 제목과 같은 ‘도대체 사랑-사랑의 심리학’이었다.


사랑은 타인과의 교류에서 비롯하는 것이지만, 성숙한 사랑은 궁극적으로 인간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만 가능하다. 치기 어린 첫사랑이 대부분 엉망진창 상처투성이로 끝나는 것은 상대 탓만이 아니다. 바로 사랑보다 ‘사람’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나 자신에게도 이유가 있었음을 우리는 뒤늦게 깨닫곤 한다. 곽 교수는 사랑을 심리학적 관점으로 들여다봤다. 


곽 교수는 강연 첫머리에 각종 심리 게임을 소개하며 인간의 숨겨진 심리를 설명했다. 그냥 보면 꽃 그림이지만 사실은 곳곳에 사람의 얼굴이 숨겨져 있고, 남녀의 모습인 것처럼 보이는 그림 사이사이에는 돌고래가 여러 마리 그려져 있다. 이러한 착시 현상은 사실을 인지하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다.

“처음에는 꽃만 보이지만 사실을 알고 보면 사람 얼굴도 함께 보입니다. 망막에 상이 맺혀도 뇌가 모든 상을 처리하지는 않아요. 나에게 의미있고 자극적인 것만 처리합니다. 내가 인지하는 것은 사실 그동안 내가 경험한 것, 내게 의미 있는 것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지요.”


사람마다 경험과 생각이 다르니 인지하는 것도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사회적 경험이나 역할이 다른 남녀가 다른 시각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생래적인 요인도 있다. 곽 교수는 남녀의 가장 큰 차이 중 하나로 ‘공감 능력’을 예로 들었다. 곽 교수의 연구 가운데 엄마가 아이와 놀다가 다친 척하고 아파하는 표정을 지을 때 생후 24개월인 남자아이와 여자아이의 반응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관찰한 사례가 있다. 이때 대부분의 여자아이들은 엄마를 따라 울지만, 남자아이들은 신경 쓰지 않거나 모른 척하며 놀던 장난감에 열중한다. 이렇듯 여성에 비해 남성의 공감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현상은 사회화 이전부터 발견된다.


재미있는 것은 공감 능력이 가장 높을 때가 바로 “열정적 사랑에 빠졌을 때”라는 사실이다. 곽 교수는 “사랑에 빠진 사람의 뇌를 사진으로 찍어보면 타인에 대해 공감할 때 활성화되는 부위가 똑같이 활성화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남녀의 차이를 십분 인정해도, 다르다는 것은 늘 갈등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곽 교수는 연애할 때 소위 ‘밀당(밀고 당기기)’이 생기는 이유를 “진화심리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말한다.


“원시사회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살아남는 것이고, 둘째가 아이를 낳아 종족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남자는 아이를 낳지 않으니 부인이 낳은 아이가 자신의 아이인지 끊임없이 의심하게 되죠. 그러다 보니 ‘많이 낳다 보면 내 아이가 맞겠지’라는 생각을 갖게 되고, 다른 여성과 사랑에 빠지기도 쉽습니다. 하지만 여자는 자기 아이를 100% 확신할 수 있죠. 그러니 아이를 키우는 일이 가장 중요하고, 혹시 남자가 다른 여성에게 재화를 나눠주지 않았나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애초부터 ‘밀당’과 의심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겁니다.”


남녀의 이런 차이는 이성의 유혹에 대응하는 방식에도 차이를 낳는다. 여자는 남자의 ‘거짓 헌신’에 속을 가능성을 최소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남자가 아무리 여자에게 헌신적으로 대해도 여자는 그의 진심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한다. 하지만 남자는 그 반대다. 곽 교수가 소개한 한 연구에서는 남성이 얼마나 여성의 유혹에 약한지를 잘 보여준다. 아름다운 여성이 특별한 말 없이 남성을 여러 번 쳐다보기만 했는데도, 남성 중 100%가 5분 만에 ‘저 여성이 나를 유혹하고 있다’고 답했다.




곽 교수는 요즘 대세인 ‘나쁜 남자’가 인기있는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생쥐 실험에서도 그 이유가 설명됩니다. 암컷과 함께 있던 수컷 쥐와 수컷끼리만 있던 수컷 쥐 가운데 암컷에게 더 인기있는 경우는 전자예요. 본능적으로 다른 암컷으로부터 검증받은 수컷을 더 선호한다는 겁니다. 또 다른 실험에서는 똑같은 남자의 얼굴에 한쪽엔 남자를 보고 웃는 여자가 함께 있고, 한쪽엔 무표정한 표정의 여자가 함께 있어요. 어느 경우가 더 매력적이라고 평가될까요? 바로 옆의 여자가 웃으며 바라보고 있는 남자입니다.”


이렇듯 사랑에 관한 인간의 심리를 추측할 수 있는 연구와 실험은 아주 많다. 하지만 이렇게 공부로, 글로 배우는 사랑이 온전할 리가 없다. 알면 알수록 알쏭달쏭한 것이 사랑이다.


곽 교수는 “낭만적 사랑을 넘어 성숙한 사랑”을 추구하라고 조언한다. 그는 책을 통해 “처음부터 맹렬하게 대시하는 남자는 요즘 찾아보기 힘들다. 나는 이런 세태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본래 연애의 시작은 크고 온전한 사랑일 수 없으니 말이다. 크고 온전한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는 함께 노력하며 오랜 시간을 지내는 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한다. “거리에서 마주친, 자신들의 가슴을 불시에 두드리는 여인에게 다가가 차 한 잔 할 수 있냐고 청하는 남자들의 부재”를 비판한 <야성의 사랑학>의 저자 목수정과는 정반대의 입장이다.


곽 교수는 성숙한 사랑을 위한 몇 가지 노하우를 제시했다. 우선 “지나치게 분석하지 말라”는 것이다. “남자친구가 있는 여성을 두 집단으로 나눠 한쪽은 남성을 사랑하는 이유에 대해 A4 종이 네 장으로, 한쪽은 두세 줄로 써보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깊이 생각해보지 않고 두세 줄로 쓴 집단이 더 만족도가 높았어요. 지나치게 분석하고 따지는 것이 행복한 사랑을 가져오는 것은 아닙니다.”


다음은 부부나 오랜 연인을 위한 조언이다. “억지로라도 심장 박동수를 높이는 활동을 함께하라”는 것이다. 열정이 있을 때 심장박동수가 높아지지만, 심장박동수를 인위적으로 높이는 경우에도 열정을 이어갈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 곽 교수는 “긍정적 착각을 가지라”고 말했다. “사랑하는 사람은 나의 환상대로 변화합니다. 그 사람을 멋지다고 생각하면 정말 멋져지는 거예요. 사랑을 위해서라면 약간의 착각을 가지는 것이 좋습니다. 흔히 말하는 ‘콩깍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사랑을 오래도록 이어갈 수 있는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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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여러 우물 왜 팠냐고요? 그냥 심심하니까, 재미있으니까”

가수 조영남씨(67)는 애초부터 이 강연에 어울리지 않았다. 세상의 잣대, 남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게 사는 데 정답이 있을 리가 없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는 강연 주제는 그와 잘 어울렸다. 지난 22일 경향신문 2층 갤러리 ‘효재처럼’에서 열린 알파레이디 북토크 5월 강연은 한 편의 전위예술과 같은 조영남의 ‘쇼’를 보는 듯했다. 그는 강연 직전 “의자를 모두 당겨 제 쪽으로 방향을 틀라”고 제안했다. 청중과의 거리는 한층 가까워졌다. 토크쇼 진행은 그와 오랜 친구이기도 한 유인경 경향신문 선임기자가 맡았다.

▲ 삶은 불안·안정이 반반
인생의 답 가져야 한다는 강박과 눈치 버려야…
낚싯대 그냥 던지다 보면 무엇인가 걸리는 법이죠


 


유인경 선임기자(이하 유) = 책을 굉장히 많이 쓰셨어요. <예수의 샅바를 잡다>라는 신학 책도 쓰고 <현대인도 못 알아먹는 현대미술>이란 미술 책, 또 얼마 전엔 <이상은 이상 이상이었다>라는 시인 이상에 대한 책까지…. 장르를 불문하고 여러 분야를 섭렵했습니다. 우리가 흔히 ‘한 우물을 파라’고 하는데 본업인 가수활동까지 여러 우물을 팠어요. 실제로 ‘청년이여, 여러 우물을 파라’고도 했는데, 정말 여러 우물을 파야 하는 건가요.

조영남(이하 조) = 어려서부터 여러 우물을 파면 밥을 굶는다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저는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슬슬 오기 같은 것도 생겼고요. 당시에 아무도 그런 이야기를 안 해서 더 그런 이야기를 한 것 같아요. 그런데 파다 보니 다 물이 나오더라고요.

유 = 그렇게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동기가 있나요.

조 = 글쎄, 낚시꾼이 낚싯바늘을 던지면서 ‘이번엔 잉어를 잡아야겠다’ ‘이번엔 피라미를 잡아야겠다’ 그런 마음을 먹고 던지나요? 그냥 던진다고 봐요. 애초부터 무언가 답을 갖고 있지는 않았어요. 계획하는 것이 아니고 던지다 보면 걸리는 것이죠.

유 = 낚싯대조차도 잘 못 던지는 사람이 많거든요. 난 못할 거야, 재능이 없을 거야 이런 마음 때문이죠. 낚싯대를 던질 수 있는 힘은 어디서 나오나요.

조 = 그건 아무도 모르는 건데…. 왜 그림을 그렸는지, 왜 노래를 잘했는지 그걸 제가 어떻게 알아요.

조씨와 유 선임기자의 대화는 마치 쌈질하듯 이어졌다. 유 선임기자는 조씨의 ‘인생 비법’을 구했지만, 그는 ‘처세’에 대한 이야기는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조씨가 ‘다종다작’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 “심심하니까”였다. 어떤 물고기를 잡을지 정해놓고 낚싯대를 던지지 않듯, 인생도 답을 가져야 한다는 강박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방송에 비친 조씨는 말이 많은 사람이었지만, 실제로는 먼저 나서서 이러쿵저러쿵 늘어놓는 편은 아니다. 그는 이것이 67세의 나이에도 젊은 감각을 유지하는 이유라고 말한다.

조 = 저는 저보다 나이 많은 사람과 대화하는 게 즐겁지 않다는 것을 일찍 알았습니다. 왜냐. 묻지도 않은 말을 자꾸 하고, 또 반복하고, 한 말 또 하고…. 그게 나이 든 사람들의 증상이죠. 저는 일찍이 혀를 깨물고서라도 누가 묻지 않으면 먼저 이야기하지 않았어요. 젊은 사람과 이야기하려면 생각의 수준을 젊은 수준으로 맞춰야 대화가 가능하죠.

유 = 눈높이를 맞추는 건 정말 힘들죠. 어떻게 맞춥니까.



[알파레이디 북토크]조영남 "젊게 살아라" 영상 바로가기

조 = 세상에 그것처럼 어려운 것이 어딨나요. 제가 20대 여자친구와도 만날 수 있는 것도 다 노력의 결과입니다.(웃음)

사실 강연 절반은 조씨의 ‘여친’ 이야기였다. “60대 남자가 20대 여자와 만나 데이트해도 법에 어긋나지 않고 욕 먹을 이유가 없다”는 게 그의 일관된 주장이었다. 남의 잣대, 타인의 시선과는 무관해보이는 인생이다.

유 = 가장 큰 특징이자 오해받는 것 중 하나가 남의 눈치를 안 보고 산다는 거예요. 자유롭게 사는 비결이 궁금합니다.

조 = 우리는 서로 눈치를 주고받으며 살아요. 그게 우리 인간의 모습이에요. 하지만 제가 눈치 안 보고 살 수 있는 건, 공부도 하고 책도 읽고 영화 보면서 눈치보며 사는 것은 손해라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죠. 하지만 눈치를 안 보고 살려면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죠.

조씨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2002년 세종문화회관에서 <레미제라블>을 공연할 때 그의 지인인 각계 유명인사 250여명이 참석해 화제가 됐던 적이 있다. 이날 강연에도 정운찬 전 총리, 정동영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부부, 서혜석 전 열린우리당 의원 등 특별게스트 20여명이 참석했다.

유 = 인맥이 정말 대단하십니다. 어떻게 그렇게 각계 각층의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는지요.

조 = 어느 날 언론에서 조영남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맥을 두텁게 쌓은 사람이라고 하더라고요. 그 이야기를 듣고 ‘이 나라에 인물이 참 없구나’라고 생각했죠. 신기하게 친한 사람들이 모두 잘되고, 높은 자리까지 올라가고 그러더라고요. 그러니 어느 날에는 불안해지기까지 하더라고요. 사실 주변에 별 볼일 없는 애들도 많습니다.

유 = 친한 사람들이 잘된다는 게 중요해요. 행운의 법칙 제1조가 ‘운이 좋은 사람과 사귀라’는 거예요. ‘재수교’를 만들 정도로 재수가 좋아야 한다고 말씀하기도 했는데, 성실한 것보다 재수가 좋아야 하는 걸까요.

조 = 무릇 인간 만사, 오묘함은 아무도 몰라요. 단지 제가 눈치를 채는 것은 내 옆의 사람, 내 뒤의 사람, 나 자신 모두가 서로 생각하고 배운 것들을 섞고 교묘하게 통합해가면서 움직이는 거거든요. 한 가지 분명한 건 있어요. 선량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죠. 선량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재수가 많이 붙는 것 같아요. 아무리 노력해도 재수 좋은 놈한테는 못 당하더라고요.

조씨가 노래하고 그림을 그리는 원동력은 ‘재미’다. 심심하니까 재미있는 것을 찾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도통 재미를 못 찾는다. 불안과 혼돈의 길을 오랜 시간 걷는다. 한 참석자가 이런 질문을 했다.



[알파레이디 북토크]조영남 "방황을 즐겨라" 영상 바로가기

“방황하는 24살 젊은이입니다.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어 자퇴를 선택했어요. 그런데 주변에서는 현실적인 시선으로 ‘앞으로 살아갈 때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늘 재미를 추구하며 사셨는데, 순간순간의 불안함은 없으셨나요?”

조 = 방황이라는 단어를 서슴없이 이야기하는 것이 못마땅합니다. 왜 자기 삶을 방황이라고 표현하죠? 대개 젊은이들이 표현하는 삶의 방황이란 말에는 부정적인 뜻이 담겨있잖아요. 그런데 그걸 느끼는 것 자체가 너무 웃기고 건방지다고 생각합니다. 24살이면 당연히 여러 생각이 들고, 불안하고, 초조합니다. 신은 우리에게 행복과 불행을 반반씩 줬고 불안과 안정을 반반씩 줬습니다. 그건 당신이 짊어지고 가야 하는 삶 그 자체이자 당신이 가진 재료예요. 당신은 지금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닙니다. 누가 뭐라 그래도 그냥 그런가보다, 뭐가 재밌나, 재밌는 것 찾아서 끝까지 하는 거죠. 남자친구 만나 쏘다니고 밤새 수다떨고 재미있게 사세요. 왜 청춘만 아프다고 생각해요. 중년도 아프고 노인네도 비오면 쑤십니다.

 

이고은 기자 freetr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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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요점을 시각화하라, 청중을 이해하라, 끊임없이 연습하라”

 

“회사에서 영어로 발표(프레젠테이션)하는 과제가 주어졌는데, 너무 두려워서 회사를 그만두고 싶었어요.”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는 모르겠는데, 잘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는 말문이 안 터집니다.”

 

현대인들에게 ‘말하기’는 큰 숙제다. 초등학교 국어 수업에서나 ‘말하기’ ‘읽기’ ‘쓰기’ 정도의 과목 구분이 있었던가. 고학년이 될수록 국어 수업은 주어진 텍스트를 읽고 쓰는 데만 집중된다. 자신의 생각을 조리있게 말하고 상대를 설득하기 위한 훈련의 기회는 흔치 않다.

 

그래서인지 발표불안 증세나 무대공포증(stage phobia)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다. 수많은 청중 앞에서 연설이나 발표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회의시간에 의견을 내는 것조차 두려워하는 이들이 많다. 곳곳에 들어서고 있는 스피치 전문학원, 발표불안 전문클리닉들이 이를 증명해준다.

 

▲ 쉼·고저·속도·강약
적절히 활용하면 말 속에 드라마 생겨

 

완벽한 프레젠테이션으로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이끈 주역인 나승연 전 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원회 대변인의 경우는 어떨까. 나 전 대변인은 “나 역시 어릴 때 남들 앞에 서는 것을 두려워하고, 고등학교 때 발표수업에서 낙제점을 받을 정도로 자신감이 없었다”며 “이렇게 여러분 앞에 강연자로 나서게 된 것은 순전히 노력과 꾸준한 연습의 결과”라고 말했다.

 

지난 17일 네번째 알파레이디 북토크의 강연자로 나선 그는 이날 그동안 갈고 닦은 자신의 프레젠테이션 노하우를 소개했다. 최근 <나승연의 프레젠테이션>을 출간한 그의 강연 주제는 ‘마음을 사로잡는 프레젠테이션’이었다.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핵심적인 요점을 잡아 한 문장으로 헤드라인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것을 만드는 데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해요. 준비 시간의 30% 이상을 여기에 쏟아야 합니다. 일단 그 요점이 명확히 정해지면 이후엔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풀어나가는 일만 남습니다.”

 

나 전 대변인은 강연의 요점을 3가지로 정리했다. 바로 ‘3P’다. 픽처(picture·그림), 퍼포즈(purpose·목적), 프랙티스(practice·연습)를 말한다. 나 전 대변인이 소개하는 3가지 요점을 소개한다.

 

나승연 전 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원회 대변인이 17일 알파레이디 북토크장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_ 김정근 기자 jeongk@kyunghyang.com

 

■ 그림 그리듯 말하라(Picture)

 

“그림은 내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에 대한 하나의 주제입니다. 그런데 주제가 왜 그림일까요. 바로 우리가 시각적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말을 들을 때는 한 귀로 흘려 들을 수도 있고 많이 잊어버리지요. 하지만 보는 것은 상대적으로 더 머릿속에 남고, 마음 속에도 남습니다. 간단명료하게, 그림으로 남길 수 있을 만큼 시각적으로 말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프레젠테이션입니다.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전 때의 이야기로 가보겠습니다. 평창의 주제는 ‘새로운 지평(New horizon)’이었습니다. 우리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3가지로 나누어 설명했어요.

 

첫째는 아시아에서 동계스포츠와 동계올림픽의 새로운 지평을 열겠다는 것, 둘째는 한국이 아시아 6500만명의 젊은이에게 동계스포츠를 전파하겠다는 것, 셋째가 한국이 지난 10년간의 도전 속에서 약속을 지켜왔다는 점을 토대로 평창이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다는 점이었어요. 이런 메시지를 더반뿐만 아니라 이전 1년 반 동안 9번의 프레젠테이션, 언론과의 인터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들과의 사적 인터뷰 및 모임에서도 꾸준히 보여줬습니다. 일관된 모습을 쭉 보여줬죠. 그러다 보니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IOC 위원들이 저희의 메시지를 그대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마음 속에 평창은 분명한 하나의 이미지로 남아있었던 거죠. 3곳의 후보지 중 가장 마음을 움직였던, 머릿속에 깊은 인상을 남겼던 평창을 선정했을 겁니다.

 

메시지뿐만 아니라 실제 시각적인 것도 중요합니다. 예전엔 한국인을 ‘검은 무리’라고 이야기했대요. 동양인이라서가 아니라 남자건 여자건 머리, 의상 모두 검정색 정장으로 똑같이 입고 다닌다는 거죠. 독일의 카트리나 비트는 프레젠테이션 때마다 원피스를 입어서 그 자체가 화제가 되기도 했어요. 물론 시각적인 면은 여성에게 약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숨길 필요는 없습니다. 여성들이 자신의 개성과 여성성을 활용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 목적을 위해 다가가라(Purpose)

 

“왜 프레젠테이션을 할까요. 청중을 설득하기 위한 것이죠. 그러려면 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여러분에 대해 이야기해야 합니다. 청중을 제대로 알고, 청중을 최대한 배려하는 것이 성공적인 프레젠테이션의 방법입니다.

 

그렇다면 청중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예상 외로 쉽습니다. 더반 프레젠테이션 때 저는 영어와 불어로 이야기했습니다. 왜일까요. IOC 위원들 가운데 영어를 원어민처럼 하는 분들은 극히 소수예요. 불어는 IOC의 공식 언어입니다. 그러면 불어로 이야기하는 것이 기본적 예의이지 않겠어요. 저는 오래된, 먼지 쌓인 불어 실력을 쌓느라고 4개월 전부터 특별과외를 받았습니다. 영어 원고보다 불어 원고가 더 기억에 남을 정도로요.

 

일상 속 대화도 일종의 프레젠테이션이라 할 수 있습니다. 비즈니스 미팅, 소개팅, 취업 인터뷰 등 모든 것이 작은 프레젠테이션이죠. 그때 상대방을 배려하기 위해서는 작은 이야기(small talk)부터 잘 풀어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날씨, 공통 관심사, 뉴스 등 작은 이야기들을 통해 분위기를 부드럽게 바꿀 수 있죠. 그러면서 상대의 기분이 어떤지, 심리상태가 어떤지 등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에 따라 나의 프레젠테이션 접근 방식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훨씬 더 프레젠테이션의 목적을 달성하기 쉽지 않겠어요.”

 

■ 연습은 실력을 만든다(Practice)

 

“저도 프레젠테이션을 앞두면 늘 떨려요. 기다리면서 늘 가슴이 두근두근하는 거죠. 하지만 그런 떨림은 좋은 것입니다. 잘하고 싶다는 뜻이죠. 청중과 소통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거든요. 하지만 떨림이 너무 커져서 말문이 막히면 안되겠죠. 그래서 연습이 꼭 필요한 것입니다. 입으로만 달달 외는 것이 아니라 입 밖으로 실제로 소리를 내보면서 끊임없이 연습을 하면 그 프레젠테이션은 나의 것이 됩니다. 어떤 돌발상황이 온다고 해도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생깁니다.

 

연습은 그냥 해서는 안됩니다. 실전 연습을 하세요. 프레젠테이션 장소에 가서 상상을 해보세요. 그날 입을 옷도 미리 입어보고 체크하세요. 리허설은 정말 중요합니다. 실제 상황을 상상해볼 수 있고, 그때 발생할 수 있는 감정적 변화까지 예상해 감정도 컨트롤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제가 영어로 프레젠테이션을 했기 때문에 4가지 주의할 점을 알려드릴게요. 이번엔 4P예요. 바로 포즈(pause·쉼), 피치(pitch·고저), 페이스(pace·속도), 파워(power·강약)입니다. 이를 적절히 활용하면 말 속에서 드라마가 생깁니다. 강조할 부분은 더욱 강조되고 청중은 더욱 집중하게 되죠.”

 

나 전 대변인은 이날 강연 역시 자신이 제시한 3가지 원칙에 맞게 이어갔다. 그림을 그리듯 요점을 정확하게 제시함은 물론 한 가지 주제가 마무리되면 한번 더 그 주제를 강조하면서 프레젠테이션의 효과를 배가시켰다.

 

또 ‘알파레이디 북토크’ 강연의 청중 대부분이 여성이라는 점을 감안해 강연 도중 여성과 관련한 에피소드로 이야기를 풀어갔다. 나 전 대변인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국제무대에서 여성의 역할과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소통의 시대, 창의력의 시대에 우리나라 여성들에게 강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세계 무대로 나가 당당히 도전하라”면서 강연 말미에 한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한복을 입은 한국 여학생이 자크 로케 IOC 위원장에게 당당하게 다가가 자신의 명함을 내밀었던 일화가 생각나네요. 무뚝뚝하던 자크 로게 위원장이 명함을 보고는 크게 웃더라고요. 명함에 뭐라고 적혀 있었는지 아세요? 바로 ‘미래의 IOC 위원장(Future IOC President)’이었답니다.”

이고은 기자 freetr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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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과묵이 남자의 표상 ?… 남자들이야말로 ‘이야기’가 필요한 존재”


한국 남자들만큼 불쌍한 존재가 없다. 열심히 공부하고 취직해 결혼하면 ‘가장’이라는 틀 안에 갇혀 먹고사는 일이 인생의 목표가 돼버린다. 나이가 들어도 변화에 잘 적응하는 아내와 달리 중년의 남자는 한없이 외롭기만 하다. 딸은 엄마하고만 친구가 되고 아들과는 갈수록 데면데면하다. 가족을 위해 정신없이 세월을 보내고 나니 남는 것이 없다. 남자의 곁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다. 설사 누가 있어도 할 이야기가 없다. ‘내 이야기’가 없다.

우리 사회에서 ‘남자’의 이야기를 듣기란 쉽지 않다. 시대가 바뀌어 남녀 간 경계가 허물어지고 때론 여성성을 갖춘 남성이 각광받기도 하지만, 여전히 다수의 남성들에겐 ‘가부장적’ 면모가 강요된다. 수다를 떠는 남자, 고민을 털어놓는 남자는 열등한 존재로 취급되기도 한다. 지금도 우리 사회는 암묵적으로 ‘과묵함’을 남성성의 표상으로 여기는 듯하다.

김정운 명지대 교수(인문교양학부)는 이런 ‘남자’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남자다. 그는 자신을 “전형적인 한국 남자”로 소개하고 있다. 김 교수는 남자들이야말로 ‘이야기’가 필요한 존재라고 말한다. 최근 남자들의 문화심리를 다룬 신간 <남자의 물건>을 펴낸 그가 지난 20일 3월의 알파레이디 북토크에 강연자로 나섰다. 강연 주제는 ‘남자를 배우다’였다. 그는 강연에서 “한국 사회의 근본적 문제는 바로 남자들”이라고 말했다. 



김정운 명지대 교수가 지난 20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 갤러리 ‘효재처럼’에서 열린 알파레이디 북토크에서 ‘남자를 배우다’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_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 수다는 존재 확인의 가장 훌륭한 방법…
남자가 잘 늙으려면 이야깃거리가 풍부해야


■ 행복하면 죄의식 느낀다?


“남자들은 우리 사회의 산업화와 민주화를 위해 참 많이 애를 썼어요. 짧은 시간에 상당한 수준을 이뤄냈죠. 대단한 겁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경제적 풍요로움과 정치적 민주화라는 건 인간의 ‘수단적 가치’인데, 남자들은 이 수단적 가치에만 목을 맨 거예요. 그럼 ‘궁극적 가치’는 뭘까요. 바로 행복하고 재미있게 사는 겁니다. 그러나 남자들은 행복하면 죄의식을 느낄 정도로 궁극적 가치를 잃어버렸어요. 그러면서 남자들은 한국 사회의 문제가 되어버렸어요.”

김 교수는 ‘여러가지 문제 연구소’라는 독특한 이름의 연구소장이기도 하다. “행복하고 재미있는 것이 없다보니 문제들만 잘 보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모든 것을 문제로만 봅니다. 그래서 연구소 이름을 여러가지 문제 연구소로 지었어요.”

불행의 저변에는 불안함이 깔려 있다. 김 교수는 한국 남자들이 “불안 그 자체”라고 말했다. 그는 “불안함은 자신의 존재가 확인되지 않기 때문에 오는 것”이라며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대답이 명함 말고 없는 한국 남자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가 본 한국 남자들은 “행복하면 그냥 행복하면 되는데 불안한 상황이 올까봐, 불안에 대비하느라” 그 행복을 누리지 못한다. 이 때문에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방법으로 바로 ‘적’을 만드는 길을 택한다.

“자신의 존재가 잘 확인되지 않을 때, 사람들은 적을 만드는 전략을 취합니다. 적에 대항하는 자신을 통해 내 존재를 확인하는 거죠. 한국 남자들의 근본적인 태도도 적을 분명히 하는 겁니다. 그래야 마음이 편안해지니까요. 한국 사회, 한국 남자들의 근본적 실체는 불안입니다. 한국 사회가 좌파·우파로 나뉘어 싸우는 것도 근본적으로 인간의 불안 문제라고 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한국 사회의 미래는 없습니다.”

김 교수는 남성들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방식을 바꿔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적’을 확인해 나를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내 이야기를 하면서 나를 확인하는 평화로운 방식이다. 이른바 ‘내러티브 심리학(narrative psychology)’이다. “내가 하는 이야기가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모든 문화적 행위는 이야기하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그런 면에서 수다라는 것은 존재를 확인하는 가장 훌륭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러고 보면 가장 불쌍한 인간이 과묵한 인간 같아요. 존재 확인이 안되죠. 그러다보니 우울증도 잘 걸려요. 말 많은 사람은 우울증에 잘 안 걸리거든요.”




■ 내 이야기를 만들라


그는 남자들이 이야깃거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출발은 개인적인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잘 늙는 것은 자기 이야기가 풍부한 것”이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김 교수의 경우는 ‘만년필’이 그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물건’이다. “아버지를 존경하면서도 아버지의 그늘이 싫었기에, 아버지께서 쓰시던 것처럼 만년필을 모으면서 내면을 들여다보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내 이야기를 하려면 먼저 나를 표현할 ‘물건’을 찾아보라고 제안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면 나를 말해주는 것을 구체적인 물건으로 표상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그의 새 책 <남자의 물건>에 담긴 내용도 이런 뜻이다. 그는 책에서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의 ‘책상’,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바둑판’ 등 그 사람에게 의미 있는 구체적인 물건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냈다. 이 전 장관의 책상은 학자의 외로움, 문 이사장의 바둑판은 묵직한 성품을 말해준다. 이렇게 구체적인 물건은 바로 그 사람을 말해주는 상징이 된다.

그는 남자들이 골프에 열광하는 이유도 여기서 찾았다. “살면서 (골프로 인해) 처음으로 구체적으로 할 이야기가 생기기 때문”이라는 거다. 하지만 슬픈 건 진화가 없다는 사실이다. “남자들은 ‘드라이버(먼 거리로 공을 보내려 할 때 쓰는 골프채)를 바꿨더니 10야드가 더 나갔다’고 떠들죠. 그럼 열 번 바꾸면 100야드 더 나가나요. 뭐가 더 안 나와요. 없어요. 이야기는 여기서 끊깁니다.”

‘이야기’를 위해서는 자신을 들여다볼 시간과 여유가 필요하다. 노력도 필요하다. 여자들의 이야기가 끊기지 않는 이유는 끊임없이 이야깃거리를 찾고 소통하려 하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최근 일본에서 지내면서 자신의 새로운 면을 발견했다고 한다.

“이어령 전 장관이 ‘자꾸 인생의 피크(절정)를 만들려는 것 아니야’라고 하더군요. 피크에 올라가면 내려오는 것밖에 없다고 하면서요. 아차 싶더라고요. 그때까지 저는 조금만 더, 조금만 더라고만 생각했거든요. 그 후 일본에 1년 동안 있으면서 글도 쓰고 내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혼자 있으니까 곤혹스러울 정도로 시간이 너무 많은 거예요. 자전거도 타고, 혼자 맛집도 갔습니다. 외로웠지만 행복한 경험이었습니다. 날씨가 좋아지니 기분이 좋고, 꽃망울이 핀 것을 보니 너무 즐겁더라고요. 이런 게 어른이 되는 건가 싶더군요. 그 후 오랜만에 한 친구를 만나니 저더러 ‘말투가 많이 느려졌다’고 했습니다. 저에게 엄청난 변화가 생긴 겁니다. 이런 것이 모두 내 이야기가 되는 겁니다.”

이날 강연에는 90여명의 알파 레이디들이 참석했다. 많은 참석자들이 남자친구, 남편, 아버지 등 주변의 ‘남자’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한 여성은 “환갑을 앞둔 아버지께서 남는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고민한다. 좋아하는 것을 찾을 수 있도록 돕고 싶다”며 방법을 물었다. 김 교수가 웃었다. “남자의 고민을 고민하는 사람조차도 남성 자신이 아니라 주변 여성이라니…한국 남자들은 정말 집안의 골치예요.”

그렇다면 구제불능인가. “옆에서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찾아야 합니다. 결국 자기가 찾게 돼 있습니다. 너무 힘들면 살길을 찾게 되거든요. 인간은 본능적으로 재미를 추구하게 돼 있습니다. 재미를 추구하지 못하는 건 일종의 정신질환이죠. 우울한 것만 찾아내려 하는 걸 우리가 우울증이라고 하잖아요. 주변에서 과도하게 염려하지 마세요. 오히려 내 자신을 찾아갈 수 없게 만들지도 모르잖아요.”

김 교수는 “인생이 길다”고 강조했다. “제발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즐거워할 수 있는 일들을 자꾸 만들어보는 겁니다. 한국 사회에서 결혼식 빼고 부부가 옷을 차려입고 갈 데가 어디 있습니까. 음악회도 좋고 폼나게 옷 입고 어딘가에 갈 수 있는 이벤트를 자꾸 만드세요. 부부가 공유할 수 있는 문화적인 활동, 공통의 화제를 만드세요. 나이가 들수록 이야깃거리가 쌓일 겁니다.”

이고은 기자 freetr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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