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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Women issue

“살女주세요. 살아男았다.” 그러고 보니 나 역시 그랬다. 야근을 하고 집에 가는 택시 안, 남편 없는 저녁에 배달시킨 음식을 건네받는 현관 앞, 만원 지하철 안에서 부딪히는 인파 속……. 혹시라도 얼굴도 모르는 비정상적인 남성으로부터 폭력, 추행, 희롱의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고 살았다. 매 순간 매 공간, 긴장된 상태를 유지해야 했지만 그것이 이상하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일상화된 공포였다. 그렇게 살았다. 삼십 여 년 동안. 나를 비롯한 수많은 여성들은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다. 그러다 운이 나쁘면 실제로 폭력, 추행, 나아가 살인에까지 이르는 물리적 피해의 당사자가 되기도 한다. 여성들은 ‘재수 없게’ 불운을 맞이할까봐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과한 치장을 스스로 검열한다. 가부장적인 우리 사회 속에서 여성 개.. 더보기
주부에게 정치를 허하라 지난 4월 13일 치러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는 여러 이슈와 역사적 기록을 남겼다. 공고했던 여당의 과반의석이 무너지고 16년 만에 여소야대 정국이 되었다. 고약한 지역주의에 붕괴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고, 우리 정치를 지배하던 양당 구도에도 균열이 일어났다. 국민이 투표를 통해 독선과 불통의 박근혜 정부를 심판했다는 해석이 쏟아졌다. 나는 이 거대 이슈들 틈에서, 크게 주목받진 못했지만 한 여성이 던진 메시지에 주목했다. 바로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에 출마한 남영희 후보의 메시지다. 그는 출사표에 “천만 주부를 직능으로 인정하고 대표할 비례대표 한 명쯤은 필요하다”, “주부를 소외계층으로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정치권에 경종을 울리고 싶다”고 밝혔다. 비록 그는 비례대표 33번을 받아 낙선했지만, 우.. 더보기
결혼하면 퇴사하세요? 20대 때엔 나도 그 소주를 꽤나 마셨던 듯하다. 지역마다 그 지역 토종 소주가 가장 인기라는데, 내가 나고 자란 대구에서는 사람들이 꼭 그 소주만 고집했다. 최근 그 소주를 만드는 주류기업 금복주가 입방아에 올랐다. 결혼을 앞둔 여성 직원에게 퇴사를 종용했다는 것이다. 결혼을 이유로 그 직원의 업무 성과가 낮아졌다거나 회사에서 문제를 일으킨 것도 아니었다. 그저 “회사에 여직원이 결혼하고 근무한 선례가 없다”는 이유였다. 당사자가 항의하자 사측의 한 인사는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화장실에 유축기 들고 가서 짜고 앉아있다”는 성차별적이고 모욕적인 말까지 내뱉었다고 한다. 또 해당 직원을 업무에서 배제하는 식으로 조직적으로 압박해 결국 퇴사에 이르게 만들었다. 여기까지만 들어도 갑갑해진다. 이제껏 사무직.. 더보기
북유럽을 꿈꾸는 한국 사회에 필요한 것 한국에서는 ‘북유럽풍’이 수년 째 유행이다. 북유럽풍 인테리어, 북유럽풍 옷, 북유럽풍 소품들……. 처음엔 지구 반대편에 자리한 북유럽 스타일이 한국에서 왜 이리도 사랑을 받는지 의아하기도 했다. 그러나 찬찬히 생각해보니 그 이유를 알 것도 같다. 북유럽풍을 지향하는 상품들은 주로 생활이나 육아 관련 분야에 많다. 하긴 북유럽풍 하이힐, 북유럽풍 노트북, 북유럽풍 서류가방 따위는 들어보지 못했다. 이를 소비하는 계층은 주로 여성, 그것도 아이를 가진 주부들인 경우가 많다. 결국 ‘북유럽’을 소비하는 주인공은 ‘엄마’들인 셈이다. 북유럽은 복지 제도가 훌륭한 곳으로 유명하다. 국가가 사회적 약자에 대해 잘 배려하고, 국민 모두 균형 있게 잘 살 수 있도록 노력한다는 이야기다. 여성이 살기에도 좋다. 양성평.. 더보기
<어른 되면>과 <돼지책> 사이에서 “내가 커서 어른 되면 어떻게 될까? / 아빠처럼 넥타이 매고 있을까? / 엄마처럼 행주치마 입고 있을까? / 랄랄라 다 같이 흉내 내보자. / 나는 엄마, 나도 엄마. 아빠 다녀오세요. 호호. / 나는 아빠, 나도 아빠. 여보, 여보 다녀왔소.”(동요 ) 아이와 함께 동요를 듣다 화들짝 놀랐다. 어릴 때 무심코 듣고 따라 불렀던 기억이 있는 노래이긴 한데, 가사가 이런 줄은 이제야 알았다. 노래 속에서 아빠는 넥타이를 매고 일을 하러 나가고, 엄마는 행주치마를 입고 아빠를 반긴다. 전형적인 전근대적 성역할로 엄마와 아빠의 모습을 구분하고 있는데, 이게 2015년 오늘날에도 거리낌 없이 유통되고 있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직접적인 경험만큼 아이들에게 영향력 있는 것은 없지만, 우리가 늘 가까이 접하는 미.. 더보기
모유수유하는 엄마들을 위한 단상 둘째 아이를 낳은 후 꿈에 그리던 ‘완모(완전 모유수유의 줄임말로 아이에게 모유만 먹이는 것)맘’이 되었다. 태어나자마자 젖병에 길들여진 첫째 아이 때문에 오랫동안 ‘유축맘(유축기로 짜낸 모유를 젖병에 담아 먹이는 엄마)’으로 고생을 해서인지, 아이에게 직접 젖을 물릴 수 있다는 사실(엄마들은 이를 ‘직수’라고 부른다)이 무척 감격스러웠다. 그런데 고민거리가 하나 생겼다. 얼마 전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엄마들 가운데 2015년생 아이를 둔 엄마들끼리 카페에서 모임을 갖게 되었는데, 한 엄마가 그 자리에서 모유수유를 하는 것을 보았다. 카페에는 우리들뿐이었고 다른 자리에서는 보이지 않게끔 뒤돌아 앉긴 했지만, 공공장소에서 수유하는 엄마를 본 것은 처음이라 꽤 놀랐다. 공공장소에서의 모유수유, 괜찮은 걸.. 더보기
엄마들에게 파이팅을 '거실에 TV 없애기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둘째 아이가 태어난 후 첫째 아이에게 소홀해지다보니, 심심해진 첫째가 TV를 심하게 찾기 때문이다. 특히 를 유난히 좋아하는 녀석은 아침에 눈 뜨자마자 "타요!"를 외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러다 유아기에 폭풍 성장한다는 아이의 뇌세포가 더 이상 증식하지 못할 것이란 걱정에 TV를 치우고 대신 책장을 꺼내놓기로 했다. 방안에 TV를 감금(?)한 후 나타나는 변화는 놀랍다. 우선 아이가 TV를 거의 찾지 않는다. DVD만 남겨둔 거실에서는 TV 소리 대신 피아노 연주 소리가 배경 음악이 됐고, 아이는 책, 장난감 등으로 스스로 놀 거리를 찾기 시작했다. 눈앞에 보이지 않는 것만으로도 이런 변화를 보이니 엄마로서는 매우 만족스럽다. 그런데 하나 더 만족스러운 것이.. 더보기
처음 마주한 딸 앞에서 지난 4월 21일, 둘째 아이를 낳았다. 천사같이 예쁜 딸아이다. 둘째 아이는 순탄하다더니, 정말로 출산 과정부터 한 달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 모든 것이 순조롭게 느껴진다. 작고 앙증맞은 입술로 엄마 젖을 찾아 힘차게 빠는 모습을 보면 이런 행복이 또 있을까 싶다. 세상 모든 것에 감사하게 되는 요즘이다. 그런데 딸아이를 보며 바보 같은 미소를 머금는 남편은 가끔씩 한숨을 쉬곤 한다. 벌써부터 '딸 바보' 아빠의 면모를 발휘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이 험한 세상에서 딸아이를 어떻게 키울까" 하는 걱정 때문이란다. 우스갯소리처럼 들으며 씩 웃곤 했는데, 불현듯 이게 그냥 웃어넘길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운 좋게도, 지금까지의 나는 여자로서의 한계나 벽을 거의 느끼지 않고 살아왔다. 어머니 세대의.. 더보기
다시 생각하는 페미니즘 “페미니즘에 관해 이야기할수록 여성의 권리를 위한 투쟁이 ‘남성 혐오(man-hating)’와 동의어가 되고 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2014년 9월 UN 총회에서 배우 엠마 왓슨이 ‘He for she’라는 주제로 연설한 내용 중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이었다. 도대체 왜, 여성의 권리를 신장시키기 위해 싸우는 것이 남성을 배척하고 혐오하는 일과 연결되고 있는 것일까? 한 달 뒤 한국에서는 남성의 ‘여성 혐오’ 현상을 보여주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금은 남자가 차별받는 시대다. 나는 페미니스트가 싫다. 그래서 IS가 좋다.” 자신의 트위터에 이런 말을 남기고 터키로 떠난 10대 소년의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진 것이다. 팝 칼럼니스트 김태훈은 “IS보다 무뇌아적 페미니스트가 더 문제”라는 칼럼으로 도마.. 더보기
두 번째 육아휴직을 앞두고 회사에 복직한지 6개월째다. 그런데 곧 다시 휴직을 하게 됐다. 둘째 아이 출산 때문이다. 4월이면 나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된다. 지난해 9월 복직을 앞두고 나를 당혹케 한 것은 둘째 아이의 임신 사실이었다. 1년 3개월간의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끝에 돌아가는 직장에 "저 또 임신했어요"라고 말하기는 여간 면구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복직과 재휴직에 들어가는 사이 6개월이라는 짧은 시간만 근무해야 하기 때문에 '경력 단절'에 대한 부담감도 컸다. 더군다나 우리 회사의 경우 여기자가 둘째 아이까지 육아휴직 1년을 꽉 채워 쓴 경우가 없었기 때문에, 첫 번째 사례의 주인공이 되는 것도 걱정스러운 일이었다. 임신 사실을 알자마자 친한 회사 여선배에게 고민을 털어놨다. 선배는 나의 경력단절 문제를 가장 우려하셨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