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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를 취재하던 것도 벌써 2년 전의 일이다. 그런데 16일자 우리 신문에서 쓴 박 전 대표 관련 기사를 보니, 2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큰 변화는 없는 것 같다. 박 전 대표의 뚝심이랄까, 고집이랄까… 원칙을 중시하는 성격도 여전한가보다.


점차 2012년 대선을 준비하는 열기는 서서히 데워지고 있는 것 같고, 생각난 김에 내 기억 속의 박 전 대표를 조금 꺼내서 끄적여본다. 오래 전 이야기이고, 부담없이 전할만한 가벼운 이야기들만 옮긴다.


나는 2007년 8월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막바지에 정당팀 막내로 발령받아 갔었는데, 그때는 이명박 당시 후보의 ‘BBK 사건’ 및 ‘도곡동땅 의혹’, 박근혜 후보의 ‘최태민 파문’ 등 온갖 흑색선전이 난무하던 때였다. 정치의 ‘ㅈ’자도 모르던 순진무구한 나는 전쟁터 한 가운데에 떨어져 모든 게 신기하고 새롭기만 했다.

2007년 8월. 경선에 임박해서는 이런 식의 구도로 찍은 사진들이 언론에 많이 등장했다. 경향신문DB

 


당시 한나라당 반장이었던 선배는 무척 세심하고 배려심 깊은 분이었는데, 그 전쟁통 와중에 막내 기자를 데리고 다니며 한나라당 인사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시켜줬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고마운 일이다. 여하튼 그땐 때가 때인지라 하루에 100장 이상의 명함을 주고받았던 것 같다. 덕분에 내 정신은 거의 출장나간 수준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

그 와중에 박 전 대표를 처음 만난 순간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국회 의원회관에서 행사가 있었는데, 행사에 참석한 박 전 대표가 중간에 빠져나갈 때 따라나가 그가 탄 엘리베이터에 올라타 겨우 눈도장을 찍었다. 처음엔 박 전 대표의 수행비서인 안봉근 열사(출입기자들만의 별명이다)가 강력히 저지했으나, 반장 선배 특유의 친화력으로 겨우 엘리베이터에 올라탈 수 있었다. 물론 지하 1층에서 지상 1층으로 올라가는 짧은 시간 동안에 겨우 인사만 하는 데 그치긴 했지만….

당시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란 생각에 어안이벙벙했는데, 한창 경선 막바지였던 당시 분위기상 박 전 대표와 함께 같은 엘리베이터를 탄 것만도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음을 뒤늦게 알게 됐다. 최근에도 한 일간지 기자가 의원회관에서 박 전 대표와 엘리베이터를 탈 ‘뻔’ 했으나 친박계 구상찬 의원의 ‘저지’로 실패했다는 기사가 난 적이 있다.

그 이후로 2년 반이란 시간 동안 박 전 대표와 친박계를 취재했지만, 그때처럼 박 전 대표를 직접 마주하기란 하늘에 별 따기나 마찬가지였다. 경선 패배 후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한 뒤 지금까지도 박 전 대표는 ‘미래 권력’으로서 이 대통령에 버금가는 높은 관심과 주목을 받고 있다.
늘 베일에 싸여져 일상적인 취재 활동은 거의 불가능해, 박 전 대표를 담당하는 기자들은 늘 그의 스케줄을 체크하고 동선을 확인하고 미니홈피 정도나 들락날락하며 소일해야 했다. 박 전 대표를 직접 취재할 수 없으니, 현안이 생기면 측근 친박계 의원들의 입을 통해 박 전 대표의 ‘숨은 뜻’을 추측하느라 진땀을 빼곤 했다.(이건 지금도 마찬가지인 모양)

박 전 대표 취재는 늘 국회 로텐더홀에서 짜여진 각본대로...;;;


이렇게 접근성이 떨어지는 취재원을 따라다니다 보면, 막상 현장에 나타날 때마다 에피소드들이 생긴다. 친박계 초선 의원들 가운데에서는 자신의 입지를 다지고 홍보하기 위해 박 전 대표만 ‘뜨면’ 주변을 배회하는 경우가 잦았다. 박 전 대표로부터 좌우 45도 각도에 서면 방송카메라와 사진에 잘 잡히기 때문에 측근으로서의 ‘증거물’이 되기 때문이다. 18대 의원들이 등원한 후엔 이런 수법으로 언론에 얼굴을 들이미는 ‘3종 세트(대변인 격인 이정현 의원은 제외. 실명은 안 밝히겠음)’ 초선의원들도 있었다.

박 전 대표를 가장 자주 봤던 곳은 국회의사당 로텐더 홀이다. 본 회의가 있는 날이면 박 전 대표는 늘 5~10분  전쯤에 등장했다. 기자들은 마치 마중나온 사람들처럼 죽 도열해 박 전 대표를 맞이하는 식이 됐다. 뿐만 아니라 박 전 대표가 오면 어떤 질문을 할 것인가, 대답을 할 만한 질문과 외면할 만한 질문은 무엇인가, 질문 순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등등 ‘사전 모의 연습’도 필수 절차였다. 생각해보면, 이런 신비주의적인 면모와 언론의 생리가 맞물려 박 전 대표의 아우라를 더욱 키워줬다는 생각도 든다.

2009년 2월 임시국회 당시 기억나는 재미난 일화가 있다. 당시 한창 미디어법과 관련한 논쟁이 시끄러운 시기였는데, 기자들은 박 전 대표의 입장이 궁금했다. 평소 때와 마찬가지로 기자들이 준비를 하고 기다렸는데, 박 전 대표는 거의 개회 직전에 도착했다. 한 기자가 미디어법 직권상정과 관련한 질문을 했고 박 전 대표는 기존 입장만 확인한 채 회의장으로 달려갔다.

기자들도 워딩 하나 놓칠세라 박 전 대표를 따라 우루루 달려갈 수밖에 없었는데, 그 와중에 회의장에서 <애국가>가 울려퍼진 것이다. 그러자 박 전 대표는 문 앞에서 딱 멈춰서더니 그 자리에서 바로 묵념을 하기 시작했다. 기자들은 갑작스러운 숙연한 분위기 속에서 추가 질문도 못하고 멀뚱멀뚱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뒤따라 오던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대표가 덩달아 묵념을 하는 재미난 장면도 볼 수 있었다. 박 전 대표의 ‘국가 사랑’과 ‘원칙주의’적인 성격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도 됐지만, 귀찮은 기자들을 떼어내기 위한 수법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살짝 해본다.

 

국회 본회의장에 들어서는 박 전 대표. 여성이다보니 착용하는 구두나 가방에도 관심이 높았는데, 볼때마다 국산브랜드를 착용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사진 속 구두도 '구X인가?' 싶었는데 알고보니 엘X강X였던 기억이...

 


박 전 대표는 사석에서는 딱딱하지 않은 모습을 보이려 했던 것 같다. 사적인 모임에선 늘 ‘오늘의 유머’를 하나씩 던지곤 한다. 어찌 보면 썰렁유머, 허무개그일 수도 있는 이야기들인데 참석자들은 배꼽이 빠질세라 박장대소해 난 그게 더 웃겼던 기억이 난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거의 ‘잠행’하던 박 전 대표와 한나라당 출입 여기자단 몇몇이 오찬을 함께 하게 된 적이 있는데, 의외의 단어를 구사하는 것을 보고 조금 놀랐다. ‘잠수는 아니에요’(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을 지적하자), ‘뽀록날 줄 몰랐어요’(구멍난 스타킹을 신고 있다가 구두를 벗어야 하는 상황이라 언론에 사진이 찍혔던 일화를 소개하며)…. ‘공주님’의 입에서 나온 말치곤 의외였다.

대선을 1년 여 앞두고 박 전 대표는 물론 친박계의 움직임이 보다 적극적인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 늘 “박 전 대표는 이번에도 침묵했다”라는 리드 문장으로 기사를 쓰던 과거와는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박 전 대표의 신비주의 껍질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그의 ‘콘텐츠’에 대해 궁금해한다. 현재 여권 최고의 대선주자로 손꼽히는 박 전 대표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준비를 해왔고 다가올 무대에서는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지, 한때 그를 취재했던 기자로서 점점 궁금해진다.

Posted by 이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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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호박에 줄긋는다고 수박 되나?? 2011.08.17 12: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수첩공주보다 침묵공주가 더 맞을듯.
    립서비스가 조금 늘었지만, 여전히 그의 진심은 권력 잡기 위한 이미지 쇼를 보여주는 것이다.
    최고의 권력을 잡으면 숨긴 것이 드러난다. 이명박씨 처럼.

  2. 김소영 2011.08.27 08: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밌게 잘 읽고 있습니다. 생각도 깊으시구요 전 평소에도 정치인이 불쌍하다고 가끔씩 생각합니다 물론 지돈이 아니라 남의 돈을 쓰니 당연한거지만 재벌과연예인의 꼴사나운 작태에 비해 상대적으로 좀 심한것이. Sxx관련자삭들은 바람을피워대 이혼하거나 10살어린 것과 결혼을 하고 특별한 경영실적이 없어도 가는곳마다 극빈대우를 받고 팔로어를 몰고다니며 기자들도 비판의글은 쓰는걸 못보며 오히려 홍보

  3. 김소영 2011.08.27 09: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자본의 힘이 최고인가요? 참 씁쓸합니다. 기자들조차 재벌의 비리와 웃기지도않은 자녀들 초고속 승진과 부의 세습에대해 비판하기보다 연예인외모칭찬하듯 "그래 니들은 엄친아니까"같은 시선으로 잘못은 덮는 분위기고 부러움과 동경을 더해서 과장되게 홍보까지 하는 게 비단 저만 느끼는 걸까요? 정치부기자라 경제쪽은 아니라고 하기에 쓰신 엄친딸의 쿠팡 윤이사를 몇번이나 글로 담으신걸보고 비교됨을느낍니다. 나라른 말아먹고 세금을 낭비하는게 재벌들이 아닙니까 어려을때 공적자금 끌어다쓰고 국민들이 물건사줘서 성장시킨 기업들 이제 명품판매에 치중하고있지만 기자들은 여성오너들의 매출액신장이네 하면서 홍보하고있더군요 아 역시 모든 진실은 돈으로 ?

  4. 동굴의 우상 2011.09.23 01: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박근혜 전대표를 보면 플라톤의 동굴의 우상이 생각난다. 그녀가 만드는 이미지는 허상이 아닐까? 그녀가 자신의 생각과 철학을 구체적으로 밝힌 적이 있는가? 그녀는 그것을 신비주의 운운하는 측근 및 언론과 공생하는 것이 아닐까? 검증되지 않은 정치인을 선택하는 것은 주사위를 던저 국가의 운명을 거는 것과 같다. 나는 신비스런 가끔식은 엄청 의심스런 최선보다는 검증된 차선을 택하겠다.

    • 이고은 2011.09.23 15: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서민 교수님께서 재미난 칼럼을 쓰셔서 소개합니다.
      [서민의 과학과 사회] 박근혜… ‘침묵’… 포털 검색해보니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9202003595&code=990000

외모로 승부하는 배우 박철민입니다. 반갑습니다. 네, 간단하게 시상소감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이런 시상의 영광을 주신 대한민국영화대상 관계자 여러분, 심사위원 여러분 진심으로 감사드리고요. 이땅의 모든 감독님들, 배우, 스텝 여러분들 감사드립니다. 지금 저랑 함께 영화를 찍고 있는 <위험한 상견례>의 감독님, 스텝 여러분들, 이렇게 시상할 수 있게끔 허락을 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어~, 저는 한 것 없습니다. 스텝 모든 분들이 차려놓은 밥상에 저는 숟가락만 가지고 나왔습니다.

아무튼 이 상에 만족하지 않고 더욱 더 열심히 해서 앞으로 감독상, 작품상을 시상하는 배우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끝으로 집에 계신 연로하신 우리 아버님 어머님, 많이 헷갈리실 겁니다. 트로피 주고 받는 거. 뭐 시상이나 수상이나 비슷합니다. 그리고 우리 큰딸, 길환이 작은딸 소희, 헷갈리지 말아라. 마지막으로 애들 엄마들. 아, 허허. 제가 너무 흥분해가지고…. 애들 엄마, 이자리 있기까지는 당신의 깊고 넓은 사랑이 있었어. 고마워요.”

'시상소감' 말하는 배우 박철민. MBC 화면 캡처 장면.


한국 영화제 역사에 길이 남을 ‘시상 소감’이었죠? 지난달 제8회 대한민국영화대상에서 남우조연상 ‘시상자’로 나섰던 영화배우 박철민씨를 만났습니다. 휴가를 핑계로 올리는 뒤늦은 글입니다.

만나자 마자, 시상 소감 ‘그 후’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박 배우는 “짭짤했다”며 능청맞은 표정을 지어 보입니다. “제 인생에서 아주 짭짤했던 기억”이랍니다. ‘명품 조연’이라는 칭호를 갖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배우는 ‘주연’으로 역시 주목받을 때 기분이 좋은가 봅니다.

시상 소감, 그 후가 더 재밌습니다. 화제에 오르자 주변에서 ‘수상’을 한 것으로 착각하고 자꾸 “축하한다”고 격려하더라는 겁니다. 아니라고 아니라고 해도 격려 인사가 물 밀듯 들어와서 이젠 아예 포기하고, 그냥 “고맙다. 감사하다. 더 열심히 할게”라고 한답니다.

시상 소감은 사실 현재 박 배우가 찍고 있는 영화 <위험한 상견례> 홍보 차원에서 계획한 것이라고 합니다. 기왕 하는 거 영화를 좀 홍보해보겠다고 시작한 건데, 이렇게 ‘빵’ 터질 줄 몰랐다나요. 하지만 그의 재치넘치는 시상 소감을 하게 된 진짜 이유는 이렇답니다.

“영화제란 영화인들만의 축제가 아니라 대중과 함께하는 축제잖아요. 그런데 항상 너무 무겁고 경직되거나 점잖 빼는 분위기였어요. 신나고 재미있게 해야겠다 싶었죠. 막 까불고 재미있는 ‘조크’도 날리고요. 재미없으면 어쩌나 걱정도 했는데 첫마디에 ‘외모로 승부한다’고 하자마자 반응이 좋아서… 하하. 의외로 ‘대박’이 났죠.”

배우 박철민. by 이상훈 기자


박 배우는 이렇게 자신을 불살라 주변을 ‘밝히는’ 역할을 자처합니다. 그래서 명품 조연이라는 말이 나오는가봐요.

“제 연기요? 늘 불만이죠. 불안불안하고요. 늘 부족하고, 어설프고, 모자라고…. 인터뷰할 때마다 ‘희대의 카리스마 넘치는 배우가 되겠다’고 했는데 사실 쫓아가기도 어렵고, 내면연기나 감정연기가 부족한 것 같기도 하고…. 오바하거나 과장되게 웃고 하는 게 관객을 지겹게 하는 건 아닌가 생각도 들어요.

하지만 이런 배우도 필요하지 않겠어요? 어설프고, 모자르고, 오바하고 하면서…. 대중들은 그런 저를 가깝게, 만만하게, 옆집 아저씨처럼 느끼는 거 아닐까요. 편안한 웃음을 줄 수 있으니까요. 전국노래자랑에 나오는 우스꽝스러운 아마추어 가수들, 어설프지만 밉지 않잖아요. 왠지 애틋해보이기도 하고…. 아무래도 제가 그런 것 같아요.”

겸손도 하시지요?

최근 흥행에 성공했던 <시라노 연애조작단> 뒷이야기가 재미있습니다.

원래 주인공인 최다니엘씨 역할이 박 배우가 모델이었다나봐요. 엄태웅씨 역할은 원래 장동건씨였대요. 잘생기고 잘나가는 남자와 그렇지 못한 40대 남자의 대비된 모습을 그리려 했었는데, 그만 장동건씨 섭외가 안 됐나봐요. 그래서 젊은 층으로 연령대를 맞춰 캐스팅을 바꾸느라 주인공을 못 맡았답니다.

그래서 나머지 역할 중에 뭐할래, 해서 하게 된 게 시라노 팀의 맏형 철빈 역이었다고 해요. 송새벽씨가 맡은 짝사랑남 현곤이, 권해효씨가 맡은 권 사장 등도 맡을 뻔 했었답니다. 그랬다면 영화의 재미가 색달랐었겠죠? 그런데 그중 그가 맡은 철빈은 남은 역 중에 가장 하기 싫은 역할이었다네요.

이 역을 제안한 것은 김현석 감독이랍니다. 좀 심심하긴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나오고, 배우·스탭들이랑 술도 먹고 여기저기 촬영하느라 돌아다니고…. 시라노 팀에서도 그랬듯, 현장에서도 팀의 맏형 역할을 항상 해온 그였기 때문입니다.

영화 '시라노 연애조작단'


사실, 박 배우를 만나보고 싶었던 것은 영화 외의 이유입니다. 배우에게 이런 이유는 좀 미안한 일이긴 합니다만 말이죠.

얼마전 ‘전태일 40주기’ 홍보대사로 활동하는가 하면, 아름다운재단에서 ‘공익시상’ 시상식의 사회자를 맡아 재능기부도 하셨더라고요. ‘사회참여’적 배우랄까요. 게다가 참여연대, 아름다운재단, 월드비전 등 후원하고 있는 단체만도 여럿입니다. 쉽지 않은 일인데 말이죠.

게다가 가식적이지 않아 좋습니다. 배우 일이 수입이 적을 때도 많을 때도 있잖아요. 그는 “수입이 적어지면 가차없이 이거부터 줄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근데 이젠 얼굴이 많이 팔려 그것도 쉽지 않다고요.

김제동씨나 윤도현씨, 김미화씨 등 이렇게 사회 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드러내던 연예인 분들이 잇달아 설움을 겪어야 했던터라, 이런 부분을 묻기도 부각시키기도 조심스러웠습니다. 이렇게  무의식속에 자기검열을 만들어내는 2010년 한국 사회도 웃기지만요.

하지만 박 배우, 역시 농을 치며 웃습니다.

“혹시라도 피해를 본다면요? 뭐 그건 별로 중요한 것 같지 않고요. 피해가 크지도 않을 거고요. 그런 건 뭐 생각도 않았고요. 하하.

그냥 제가 힘이 되는 일이면 조용히, 거침없이 할 생각입니다. 제가 뭐 만원짜리 한장 안 내면서 사진찍고 ‘파이팅’ 외치면 도움이 된다는데, 이것만큼 기쁜 일이 또 없잖아요. 취지만 엉큼하지 않으면, 저는 뭐 시간이나 스케줄에 따라 얼마든지 할 생각입니다.”

이미지 메이킹 차원에서 사회·정치적 활동을 하는 연예인에 대한 따가운 시선도 있잖아요. 박 배우는 “저 차타고 가다가 ‘교통 문화’ 때문에 삿대질도 하는 사람입니다”라고 말합니다.

“마치 사회활동에 적극적이고, 소외된 약자들에게 굉장히 아름다운 행동을 하는 배우라고 알려지면 저 난처해집니다. 성질이 급해서 과격한 모습도 많아요. 술먹고 실수도 하고요.

홍보대사면 그 사업을 홍보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저를 별로 조명하지 마세요. 전 그런 제가 별로 안 알려졌으면 좋겠어요. 정치적으로 해석되거나 실제 정치에 참여할 생각도 전혀 없어요. 저는 그저 박철민의 색깔로 연기하는 배우로 거론되고 싶지, 그 이상의 해석이나 관심은 원하지 않아요.”

그래요. 박 배우님, 저도 그런 당신의 맛깔나는 연기만 보고 싶습니다. 당신처럼 하고 싶은 일을 할 뿐인 데도 ‘색깔’을 덧씌우는 우리 사회가 당신을 특별하게 만드는 게, 미안해질 따름입니다.



“그저 박철민의 색깔로 연기하는 배우로 거론되고 싶어”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012062106475&code=100203





-휴가 다녀온 사이, 온라인 부서로 인사 발령이 났습니다.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 부응하기 위해 우리 회사도 온라인을 강화합니다. 취재부서가 아니라서 당분간 ‘인터뷰이’ 코너의 업데이트는 좀 힘들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간간이 떠오르는 사람이 있으면 종종 업데이트하기로 하지요.-
 

Posted by 이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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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의도요? 이야기 안할래요. 나중에 (작품) 끝나면 할게요.”

잉. 가뜩이나 생각보다 덩치도 크고, ‘아저씨 가죽잠바’를 입고 오신데다, 1박2일간 잠도 못자고 작업을 하고 왔다고 해서 쫄아있었는데 인터뷰 초반부터 까칠하게 나오십니다. 

현재 다음(daum)에서 연재중인 <당신의 모든 순간(이하 당모순)>에 빠져 있던터라, 우선 작품에 대해 물어보고 싶은 게 한가득이었는데 말이죠. 여주인공은 죽게 되나요? 사람들은 왜 좀비가 됐나요? 꼬마 애기는 엄마를 찾을까요?…

만화가 강풀. by 우철훈 기자

만화가 강풀씨를 만났습니다. <순정만화>, <바보>, <타이밍>, <어게인> 등 매 작품마다 강렬한 스토리로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 작가입니다. 저 역시 그의 광팬이고요. 

18일을 시작으로 정동문예아카데미에서 마련한 팔로우 특강 ‘@좌절’에서 강풀씨는 첫번째 강연자로 나섰습니다. 원래 작품 그리는 중에는 인터뷰나 외부 활동을 안 하신다네요. 그의 ‘만화 스승’이신 박재동 화백이 제안을 하셔서 강연을 하게됐고, 덕분에 저는 거기 묻어 운좋게 인터뷰까지 할 수 있었습니다.

<당모순>은 좀비가 등장하는 ‘순정만화’입니다. 좀 이상한가요?
강풀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화에 보면 사람이 있고, 좀비가 있잖아요. 좀비가 나오면 우리는 어느 순간 우리와 다른 존재로 나누죠. 사회에서 계급을 나누듯이요.
좀비들은 우리 사회에서 아래에 있는, 서민층보다 못한 계급의 사람이랄까 뭐 그런 존재로 그려지는 셈이기도 해요. 좀비영화 보면 좀비를 무조건 죽여야 하는 존재로 그리잖아요. 저것들은 사람이 아니다라고 생각하죠. 그런데
좀비들도 한때 사람이었을텐데, 하는 그런 마음으로 동양적이랄까… 가족적인 시각으로 접근해보고 싶었어요.

‘미심썰(미스터리심리썰렁물)’ 시리즈는 아닌 게 확실한 것 같습니다. 사람들을 계급화하고 계층으로 나눠 소외시키는 냉정한 현대사회의 모순을 그는 은유적으로 고발합니다. 그럼 왜 순정일까요.

“사람들이 하나도 살아남지 않은 상황에서, 사람으로 보이는 둘만이 남으면 사랑할 수 있을까요. 사람이 사람을 뜯어먹는 좀비가 판을 칠 정도로 세상이 변해도, 착한 사람은 착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작품은 모든 사람이 좀비로 변한 세상에, 아직 무사히 사람으로 살고 있는 두 남녀를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끌어갑니다. 초반엔 좀 으스스했지만 회를 거듭하면서 점차 둘 사이의 소통, 좀비와 사람 사이의 교류 등의 이야기로 마음을 울리는 사연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당모순>은 설정 때문인지, 초반엔 광우병이나 용산 참사 등 사회적인 사건들을 연상시키는 내용으로 눈길을 끕니다. 사람들이 좀비가 되는 정확한 이유는 나오지 않지만 소고기가 살짝 등장하고, 좀비 때문에 밖에 나가지 못한 주인공이 “여기 사람이 있다”고 외치는 장면은 용산의 그날을 연상시킵니다.

'당신의 모든 순간'의 한 장면. 출처 http://cartoon.media.daum.net/series/list/youralltime

하지만 강풀씨는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처럼 해석되는 게 싫다고 합니다. 트위터 소개란에 ‘그냥 만화 그리는 이’라고 적은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네요.
정치적 해석으로 강풀씨를 공격하는 것은 떨떠름한 일이지만, 그래도 그의 작품을 통해 자유롭게 해석하고 현실을 연상하는 일은 무관할 것 같습니다.

대신, 목소리 내야 할 때는 명확하게 작품으로 이야기합니다. 광주민주항쟁을 다룬 장편 <26년>, 광우병을 소재로 그린 만화나 MB악법 시리즈 등은 그의 정치적 소신이 담겨져있습니다.

하지만 거창하게 무슨 투사적 공명심에 그런 것은 아니랍니다. 강풀씨는 강연에서 “정치는 일상과 같다고 생각해요. 대학 시절 정치가 이상하니까 등록금이 올라가더라고요”라고 말했습니다. 또 “앞으로도 그런(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만화를 그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뒤 이은 강연도 들었습니다. 재밌었습니다.

“좌절, 저 이 부분에 전문입니다.” 강풀씨는 만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수백개 잡지사로부터 외면당했던 ‘좌절’의 경험들을 소개하며 좌절에 대처하는 자세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만화가가 그림을 못 그린다’는 사람들의 말에 지금도 매일매일 좌절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강풀씨는 “잘 할 수 있는 것과 잘 못하는 것을 나누고, 잘 못하는 것보다 잘 하는 것에 목숨을 걸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1년에 7개월은 글을 쓰고 나머지 5개월간 그림을 그린다고 하네요 탄탄하고 깊이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봤고, 거기에 승부를 걸었던 거죠.

강풀씨는 ‘좌절 극복법’에 대해 이렇게 정리합니다. “좌절할 만한 일이 있을 때 해결방법을 아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입니다. 그 방법이 너무 어려워서, 모르는 척하느라 힘든 거예요. 정공법 말고 다른 방법이 있다면 그걸 찾아서 넘어가보세요. 10년간 그렇게 해서 만화가로 먹고 살았으니 쓸만한 방법인 것 같습니다.”

강풀씨를 쭉 지켜보니 처음에 ‘까칠’하다 느낀 것은 오해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품 의도 말 안하겠다 해놓고, 결국엔 다 이야기해줬잖아요? 그것도 열심히요. 훗.

그간 트위터를 통해 본인더러 “청순하다”고 하는 이유를 도통 몰랐었는데, 막상 만나보니 좀 그런 것 같습니다. 이날 아내분의 생일이라던 강풀씨는 장인·장모님과 일본 여행을 떠났던 아내가 돌아온다며 무척 좋아라했습니다. 그가 이날 남긴 마지막 트윗입니다. “집 도착. 폭풍의 하루였다. 장인장모님과 함께 하는 밤. 내일은 모처럼 오지게 늦게 출근해야지. 아내가 돌아왔다. 이제야 난 비로소 평안해. 으하.”

2010-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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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대한민국영화대상’을 보다가 막판에 “엇” 했습니다. 저의 짧고도 행복했던(!) 영화담당 기자 시절, 손에 꼽을만큼 몇명 인터뷰하지 않은 영화배우 중에서 제가 인터뷰했던 2명의 배우가 나란히 주연상을 탔기 때문입니다. 바로, 아저씨라기엔 너무 멋진 원빈씨와 답답한 캐릭터의 전형을 벗어던진 서영희씨입니다. 괜시리 뿌듯해지네요.

지난 8월 원빈씨를 인터뷰하기로 했을 때, 만나도 절대 “잘생겼다”는 말을 안하리라 다짐했었습니다. 얼마나 많이 들어 질릴까 싶어서요. 그런데 웬걸! 만나자마자 인사말이라곤 “실물을 보니 정말 잘 생기셨네요”란 말 외에 할 말이 없더라고요. 저 작은 얼굴에 눈·코·입이 다 온전히 자리잡고 있는 것만으로도 칭찬을 해줘야겠던걸요.

영화 '아저씨'로 대한민국영화대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원빈. by 서성일 기자

사실 저, 원래 원빈씨에게 별로 관심 없었답니다. 저렇게 잘 생겨본들, 뭐 제 인생에 영향이 있겠냐란 생각에서였죠. <가을동화>에서 “얼마면 돼”라고 복화술 연기를 하는 것도 전 다른 연예인들이 성대모사를 하는 장면을 통해 봤고요. <태극기 휘날리며>를 볼 때도 한국전쟁의 참상에 마음이 아파서 원빈씨를 눈에 새길 틈이 없었다는 거 아닙니까.ㅋ

그동안 예쁜 남자 역할만 맡아와서 마냥 ‘꽃’ 같이 느껴졌던 그가 <아저씨>에서 선보인 연기는 새로웠습니다. 웃통 벗고 바리깡으로 머리깎는 모습에서 이는 명명백백해졌죠. ‘남자’가 돼 돌아온 거잖아요. “내일만 사는 놈은 오늘만 사는 놈한테 죽는다”라고 목소리 깔고 말할 때도 꽤 멋졌습니다. 영화초반부터 절대적 존재로 그려졌기에, 관객의 관심은 그가 얼마나 멋지게 그려지느냐에 집중됩니다. 때문인지, 많은 여성들이 원빈을 보기 위해 두번이고 세번이고 극장을 찾았다는 이야기를 곳곳에서 들었습니다. 원래 <아저씨>의 주인공이 김명민씨였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그랬다면 흥행 결과는 어찌 됐을지 모르겠네요.

실제로 만난 원빈씨는 <아저씨>의 태식처럼 단단하고 믿음직했습니다. 차분하고, 느릿한 몸짓과 말투. 날렵해보이면서 우아한 팔과 다리. “태식이는 소미를 구하는 일 자체보다 과거의 기억을 씻어내고 털어내기 위해 노력한 것 같아요”라고 조곤조곤 캐릭터를 분석하는 면면도 신뢰감을 주었습니다. 인터뷰를 하면서 내가 알고 있던 ‘꽃’같던 원빈씨는 저 멀리 사라져갔습니다.

하지만 복근을 언급하자 쑥스러운 듯 ‘피식’ 웃는 그에게선 그래도 소년의 모습이 조금은 남아있었습니다. 인터뷰 끝나고 재수하는 남동생을 위해 싸인을 부탁하자 “공부 열심히 하세요”라고 삐뚤삐뚤 적은 글씨도 귀여웠고요. 이번에 남우주연상 수상하면서 울먹이는 모습 역시, 아직 남은 그의 소년스러움을 보여줬습니다. 기사보기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서영희씨는 제 남편이 가끔 성대모사를 하기 때문에 친숙한 배우입니다. 싸우다 삐쳐있으면 “왜~? 슬~퍼~?”라고 <선덕여왕>의 ‘소화’를 흉내내니까요. 서영희씨는 그렇게 뭔가 아둔하고, 바보같은 캐릭터로만 뇌리에 남아있었죠.

그러나 역시 지난 8월, 실제로 만난 그녀는 너무나 아름답고 생기있었습니다. 어리버리하고 매일같이 당하는 화면 속 그녀는 없었습니다. 그녀의 아름다운 에너지가 화면을 통해 빛을 보지 못하는 것 같아서 조금 아쉽다고 생각했습니다. ‘아, 여배우구나’ 싶었습니다.

'김복남 살인사건'으로 대한민국영화대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서영희. by 강윤중 기자

영화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에서 서영희씨는 그동안 보여왔던 답답한 캐릭터를 연기하면서도, 마지막으로 갈수록 보는 이를 속시원하게 만듭니다. 무작정 농락당하고 소외당하는 대신, 자신을 괴롭혀온 ‘적’들에게 무참하고 통쾌한 복수를 하니까요. 그것은 복남의 복수라기보다, 배우 서영희를 구축하고 있던 음울한 이미지를 걷어내는 의식같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해 그녀는 “복남이 가진 게 오로지 힘밖에 없었다는 게 역설적”이라고 분석합니다. 약해빠진 캐릭터가 힘을 길러 힘으로 복수를 한다는 설정이 저도 재밌게 느껴졌었는데, 서영희씨가 같은 생각을 했나봅니다.

연기 잘하는 배우가 인터뷰를 잘 하긴 쉽지 않다던데, 서영희씨는 의식적으로 말하는 게 아닌데도 좋은 기사를 쓸 수 있게 좋은 말들을 풀어내줬습니다. 뭔가 어렵거나 꾸며진 말은 아닌데 사람의 가슴에 확 들어오는 기분이었다고 할까요. 그게 바로 이 배우의 진심, 진정성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기사보기

이번에 남우·여우주연상을 거머쥔 두 배우를 비슷한 시기에 만날 수 있었던 저는 좋은 추억을 간직하게 됐습니다. 두 배우가 모두, 기존에 보여주지 않았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대중과 평단으로부터 인정받았다는 점도 축하하고 싶습니다. 후속작을 기대하겠습니다.

2010-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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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씨 2010.11.23 00: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고은 기자님!
    참 반갑습니다.
    예전에 한번 뵌적이 있어서요...

  2. 정씨 2010.12.02 20: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곧 뵙게 될껍니다.
    참고로 제 딸의 이름이 같습니다.

요즘 SBS 드라마 <대물>을 볼 때면 약간 손발이 오그라듭니다. 

젊은 여성 국회의원 서혜림(고현정)이 국민들에게 “회초리를 들어달라”고 눈물로 호소하고, 국민들은 감동의 물결에 넘실대며 환호합니다. 서 의원은 여당이 당리당략에 따라 힘으로 법안을 밀어부치자 과감히 반대표를 던지고, 국정감사 기간에 밤을 새워 국감 자료를 살피는가 하면,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깊은 관심도 보입니다.

런 정치인이 어디 있을까 싶을 정도로 참 모범적이지요. 비현실적이고 뜬구름잡는 이야기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이 드라마는 현실을 디테일하게 반영하지 않고, 교과서같은 원칙적 이미지만 그려내기에 재미가 반감되는 치명적 단점이 있습니다.

그래도 대중은 서혜림을 조금이라도 닮은 정치인을 만나면 반가울 것 같습니다.

국회에서 제가 본 정치인 가운데에는 자신이 발의한 법안인데도 내용을 몰라 반대표를 던진 의원이 있는가하면, 국감 때 보좌관이 써준 질의서를 제대로 읽기조차 버거워한 의원도 있었습니다. 

사회적 약자를 보살피는 이미지를 만들어내기 위해 항상 재래시장을 찾지만, 그 배경엔 항상 정치적 계산이 뒤따랐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정치 현실이 엉망진창이다보니, 세세한 정치 현안에 귀기울이기 이전에 표피적인 문제만이라도 좀 나아졌으면 하는 게 국민의 마음인 것 같습니다.

박영숙 한국여성재단 고문 및 재단법인 ‘살림이’ 이사장(78)은 서혜림을 조금 닮은 인물입니다. 

박 이사장은 여성으로서 지금으로부터 20여년 전인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을 지냈습니다. 평생 여성, 환경 등 사회운동에 몸을 바쳐온 그는 서혜림처럼 사회적 약자인 여성·장애인 문제에 앞장 섰고, 당시만 해도 비주류 이슈인 환경문제에도 관심을 호소했습니다. 
정치를 하나도 모르고 정계에 입문했다는 점도 닮았죠. 공천이니 뭐니 ‘내일’을 생각하지 않고 일했다는 점도 비슷합니다.

하지만 박 이사장은 서혜림보다 훨씬 사회를 구조적으로 바라보고 현실과 밀착된 삶을 살고 있습니다. 평생 여성운동을 해왔지만, 여전히 활동가들의 처우가 미흡하다는 점을 개선하고 싶어합니다. 
또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이들이 생존을 위해 자연을 훼손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환경보호를 위한 빈곤타파 운동의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빈곤 문제 가운데에서도 여성의 빈곤은 더욱 소외돼있음을 문제삼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사업을 새로 추진하려 합니다.

무엇보다 그가 멋져보인 것은 팔십을 바라보는 고령의 나이인데도, 여전히 에너제틱하고 다양한 사회문제에 과감히 뛰어든다는 점입니다. 

그는 “사람이 생명 그칠때까지 일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합니다. 그의 생애를 다룬 <생을 마칠때까지 현역으로 살고싶다>는 책처럼, 언제까지고 행동하는 지성인입니다. 

90세가 되어도 현역으로 활동하겠다는 제8대 유엔난민고등판무관 일본인 오가다 사다코를 삶의 모델이라고 말합니다.

여성계의 어른으로서 여성 대통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습니다.

“여성 대통령 충분히 나올 수 있죠. 안 될 게 뭐가 있습니까. 정치란 삶의 조건을 만들어가는 과정입니다. 
인구의 반이 여성인데, 왜 여성은 우리의 삶의 조건을 남성이 만들게 두나요. 여성의 정계 진출이 활발해야 합니다. 
다만 지금은 진보건 보수건 간에 뚜렷한 대통령 후보감이 보이지 않네요. 남성이든 여성이든 마찬가지죠. 좋은 대통령 후보가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유력한 여성 대권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해서도 물었습니다.

“글쎄, 원칙론자로서 일관성있게 자기 주장을 한다는 점에서는 점수를 많이 줍니다. 그런데 전 군사독재정권 하에서 한을 품은 사람들을 많이 봤던 사람이거든요. 
아버지 시대에 경제성장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박정희 전 대통령만의 공으로 볼 수 있을진 모르겠어요. 박근혜씨가 정치인으로서 좀 더 처신을 분명하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아버지의 발걸음에서 벗어나 좋은 여성성을 살리는 게 좋을 겁니.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현실은 참 복잡한 것 같습니다.

군사독재권력의 그늘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유력 여성 대권주자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민생 현안에 대해 침묵하지요. 
나라의 대통령이 ‘마사지걸’ 발언을 해도 함께 동석했던 여성의원마저 여교사 비하 발언을 내놓는 사회입니다. 또 여성이라면 한번쯤은 애를 낳아야 할까 회사를 그만둬야 할까 골치아픈 고민을 해야하는 사회잖습니까. 

여성이란 화두만 해도 할 이야기가 너무 많습니다.

정치세계는 세상의 모든 문제들이 마지막으로 집결하는 곳이잖아요. 1시간짜리 짧은 드라마가 복잡한 현실들을 담아내긴 불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러니 <대물>에 너무 많은 걸 요구하지 말아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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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감우성 2010.11.10 15: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자님의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자기가 낸 법안인줄도 모르고 반대표를 던졌단 얘기가 재미있네요. 드라마의 과장된 속성을 알면서도, 리얼리티가 떨어지는 흐름을 볼때마다 짜증이 나고 채널을 돌리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범인 잡는 단순 수사물도 이럴진대, 복잡다기한 정치드라마에서 사실성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 듯 싶습니다. 박영숙 총재를 글에서 뵙게 돼 반가웠습니다. 사회에, 나라에, 각 방면에 이런 분들이 많았으면 합니다. 기자님도 그 중의 한사람일 것 같네요.

제게 경외스러운 존재가 있다면 성직자와 경제학자 정도입니다. 고기를 좋아라하고 물욕에 사로잡혀 인터넷 쇼핑을 끊지 못하는 평범한 인간인 제가 성직자를 경외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겁니다. 
그런데 경제학자도 제겐 경외스럽습니다. 환율, 금리 등 기초적인 경제학 용어인데도 왠지 어렵게 느껴지거든요. 두려움은 경외감과 일정부분 상통하는 부분이 있는걸까요. 멀게만 느껴지는 경제학을 공부하는 경제학자란 그래서 경외의 대상이 됩니다.

지난달 28일 신간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를 펴낸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교수의 기자간담회를 다녀왔습니다.
2007년에 낸 <나쁜 사마리아인들> 이후 3년만의 책이라 그런지 언론의 관심이 무척 뜨거웠습니다. 신자유주의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던 장 교수였는데, 마침 두 책 사이에는 세계금융위기라는 큼지막한 사건도 있었습니다. 그의 관점은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를 출간한 장하준 교수. 김문석 기자



장 교수는 참 쉽고 간결하게 경제학을 말합니다. 그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저까지 막 똑똑해지는 느낌이 들게 됩니다.

예컨대 이렇습니다.

같은 일을 하지만 스웨덴의 버스기사와 인도의 버스기사 사이에는 50배의 임금차가 납니다. 사실 운전 실력만 따져보면 잘 포장된 도로를 달리기만 하면 되는 스웨덴의 버스기사보다 복잡한 비포장도로를 달리며 길거리의 소떼와 부랑자를 피해 운전하는 인도의 버스기사가 한 수 위일 수도 있습니다. “생산성이 높으면 보수도 높다”는 시장주의 경제학의 명징한 원칙이 무너지는 사례죠. 장 교수는 이런 현상의 이유를 부자 나라의 이민 통제 정책 등 ‘보호주의’ 때문이라고 분석합니다.

또 가난한 나라가 가난한 것은 그 나라의 가난한 사람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상 빈곤은 그 나라의 부자들 때문이라고 꼬집습니다. 그렇다고 부자 나라의 부자들이 뛰어나고 잘나서 그렇다는 건 아니고요. 부자 나라의 부는 뛰어난 개인의 역량 때문만이 아니라 사회가 일구어 놓은 좋은 제도들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맞는 말 같습니다. 좀 더 볼까요. 장 교수는 “(우리나라가) 귀찮은 제조업을 버리고 탈산업화시대라는 이유로 금융을 해서 먹고 살자고 하는데 그건 아니다”라고 잘라 말합니다. 제조업이 구시대 산업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주장입니다.

때문에 “인터넷보다 세탁기가 세상을 더 많이 바꿨다”는 이색적인 주장을 폅니다. 세탁기를 비롯한 가전 제품은 가사노동 시간을 대폭 줄였잖아요. 그래서 여성들의 노동시장 진출을 촉진시켰고, 인간의 생활 양식과 사회구조를 크게 바꿔놓았다는 설명입니다. 그러나 인터넷은 정보 전달속도를 높이거나 인간의 여가생활의 질을 향상시킨 것 정도 외에는 세탁기만큼 혁명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거죠.
장 교수는 최근의 것에만 사로잡혀 이제 보편화된 것들을 저평가할 경우 여러가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갈 위험이 있다고 경고합니다.

장 교수의 책을 읽다보면 현실의 시장주의 경제학이 얼마나 구멍이 숭숭 뚫려있는지 느끼게 됩니다. IT 운운하며 세계의 흐름이 바뀐 것처럼 떠들어대는 우리가 아직 제조업조차 제대로 서지 못한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을 세계 경제에서 완전히 소외시키고 있음도 알게 되고요.

이런 바탕으로 장 교수는 한·미 FTA, 부자 감세, 보편적 복지, 마이크로 크레딧 등 국내 경제 현안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아주 속이 시원합니다. 기사보기

전작 <나쁜 사마리아인들>에서 신랄하게 ‘나쁜’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던 장 교수의 어법은 이번 책에서 신자유주의 체제의 모순을 하나씩 들춰내 잘근잘근 분석하는 방식으로 조금 선회했습니다. 신자유주의의 복잡하고 어려운 모순들이 쉽고도 논리적으로 정리되는 느낌이 드네요.

제가 경제학을 경외하게 된 것은, 아마 처음 경제학을 접할 때 장 교수와 같은 좋은 선생님을 만나지 못해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젠 좀 즐겁게 경제학을 공부해볼까 합니다. (책 광고 아닙니다;;)

2010-11-02

Posted by 이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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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말아톤>이라고 하면 ‘뽀송’한 섹시미가 있는 배우 조승우가 자폐아로 변신해 “초원이 다리는? 백만불짜리 다리”라고 외치는 장면만이 뇌리에 남아있었습니다. 전 장애아의 성공적인 스토리를 담은 감동적이고 따뜻한 영화이니, 이 영화를 만든 감독 역시 얼굴만 봐도 따스한 감성이 묻어있는 인물일 것이라고 은근히 생각하고 있었죠.

그러나 정윤철 감독의 이미지는 조금 달랐습니다.

정윤철 감독. by 김정근 기자

약속 시간보다 20여분가량 늦게 인터뷰 장소에 도착한 정 감독에 대해 주변인들은 “걔 원래 그렇다”는 식의 반응을 보였습니다.
부가설명을 하지 않더라도 이 바닥에서 이 말은 좋게 말해 사회적 통념에서 자유로운 전형적인 예술가, 즉 ‘자유로운 영혼’이라는 말과 상통합니다. <말아톤>의 감독이 꼬박꼬박 약속시간을 지키는 모범생일 거라고만 생각했던 제 생각이 빗나가는 순간이었어요.

정 감독을 만나보려 한 이유는 ‘아이폰4필름페스티벌’이란 이색적인 영화제에서 스마트폰만으로 단편 영화를 찍었다고 해섭니다. 인터뷰 취지를 설명하자 정 감독은 “아이폰도 준다기에…(영화 찍었어요)”라며 씨익하고 웃습니다. 툭툭 내뱉는 말투 속에 농담조가 은근히 녹아있습니다. 뭔가 능글맞아도 보이고요. 정 감독은 시니컬하면서 유머러스한 사람이었습니다.

“단편영화를 워낙 좋아해요. 마침 아이폰도 준다기에…. 후후. 휴대폰으로 영화를 찍는다는 건 상업영화에 비해 터무니없이 작은 규모를 말하잖아요. 그래서 아이폰만이 보여줄 수 있는 앵글이나 스토리를 시도해보자는 생각을 했죠. 휴대폰으로 찍으면 아주 작은 사물도 크게 만들 수 있고, 피사체에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잖아요. 그래서 미니어처적인 어떤 것을 담으려 했어요.”

정 감독이 찍은 영화는 <미니와 바이크맨>이란 단편입니다. 평생 방 안에만 갇혀 지내야 하는 장난감 바비 인형 미니가 바다를 보기 위해 떠나는 긴 여행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30㎝도 안 되는 작은 인형을 주인공으로 한 이 단편은 꿈을 향해 떠나는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습니다.

작은 인형이 주인공이다보니 촬영 과정이 독특했더군요.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미니가 자전거를 타고 도로를 달리는 장면은 거의 앵글이 땅에 붙어서 가고 있다고 해도 좋습니다. 이 장면을 찍는 장면을 떠올려보면 카메라맨이 거의 땅을 기어가며 촬영을 했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하지만 실상은 조금 더 ‘머리’를 썼고, 어쩌면 그래서 더 우스꽝스러운 장면을 연출해가며 촬영을 했다고 하네요.

“일단 혼자서 웬 아저씨가 인형을 쫓아가며 휴대폰으로 찍어대니 사람들이 웬 미친놈인가 하고 본 건 사실이고요. 촬영은 집에 대종상 트로피 받은 것이 있는데 그 트로피 밑에 아이폰을 붙여서 구부정하게 걸어다니며 찍었어요. 일종의 ‘스테디캠’(카메라가 흔들리는 것을 방지하는 받침대)으로 쓴 거죠. 뭘로 붙였냐고요? 스카치테이프요.”

'미니와 바이크맨'

아, 참 없어보이는 장면이 상상되지요. 영화 속 주인공인 미니도 신도림역에서 1만원에 구입한 모터 인형이랍니다. 몇분 찍고 쫓아가 모터를 돌리고, 또 찍고 돌리고를 수없이 반복했다는 이야깁니다. 푸훗.

정 감독은 이번 작업을 통해 스스로 자유롭고 재미난 상상력을 자극시킨 기회가 됐다고 합니다. 수십 명이 달라붙어 찍는 영화가 아니라, 혼자 휴대폰 하나를 들고 산에도 가고 바다에도 가서 영화를 찍었기에 더욱 그렇답니다. 그랬기에 정 감독 말마따나 “독립영화 중의 독립영화”를 찍을 수 있었던 게 아닐까요.

아이폰 홍보를 해주는 것 같아 되도록 언급을 삼가려했지만, 영화를 찍을만큼 뛰어난 화질과 성능에 대해서는 정 감독도 극찬했습니다. 그는 “이제 매체의 민주화는 완전히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누구든 놀듯 이야기하듯 영화를 찍을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죠”라고 말했습니다. 이제 무수히 많은 재기발랄한 단편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게 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인터넷, 블로그 등을 통해 누구든 기자처럼 글을 쓸 수 있는 시대, 신문쟁이들과의 고민과도 비슷한 것일 테지요.

하지만 뒤이어 남긴 정 감독의 말은 의미심장합니다.

“별로 밥그릇 고민은 안 듭니다. 매체가 아무리 좋아져도 그 매체에 맞는 스토리와 앵글을 찾아 재미있게 연출해내느냐가 관건이죠. 생각해보세요. 휴대폰을 개에게 매달아 하루종일 달리게 한 후 그 이야기를 편집할 수도 있겠고, 풍선에 달아 올려보내 그 안에 담긴 내용을 이야기로 풀 수 있잖아요. 결국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 얼마나 창조적으로 바라보느냐의 문제죠. 얼마나 좋은 도구로 만드느냐의 문제가 아니란 말이죠.”

‘결국엔 콘텐츠’라는 말로, 밀려드는 위기감을 밀어내려는 신문쟁이들에게 상당한 위로가 되는 말입니다. <말아톤>처럼 감동을 주는 콘텐츠가 절실한 하이 테크놀로지 시대입니다.

2010-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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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와 바이크맨' 보실래요?
출처:아이폰4필름페스티벌 홈페이지(http://www.iphone4filmfestiva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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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미뇽 2010.11.02 20: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올리고 있군! 고은씨~ ㅎ

    인터뷰도, 영화도 재밌네..
    어제 무심코 플레이버튼 눌렀다가, 눈이 아파서 끝까지 다보진 못했는데.. 해운대 앞바다에 미미가 가는 부분까지 봤는데 재밌더라구. 확실히 영화감독들은 아이디어맨들이 많아. 정말 사고가 다른듯..

    블로그 잘 보고 있어~~

  2. 이고은 2010.11.03 10: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ㅋㅋ 선배가 말씀해주신대로 동영상 올리기에 성공했슴다. 점점 뉴미디어 세대로 진화하는 듯한 기분이어요. 훗.


 ‘엄친딸’이란 말 외에 소셜커머스 기업 ‘쿠팡’의 윤선주 이사를 설명할 더 좋은 표현을 찾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윤 이사는 33살이란 젊은 나이에 이미 수많은 간판을 갖고 있습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좋은 학벌과 좋은 회사 경력, 거기다 고위직 공무원인 아버지까지….

 그는 재능이 많은 사람입니다. 성격도 밝고 명랑하고요. 유년기에 개인적으로 힘든 일도 겪었지만 잘 극복해낸, 건강한 사람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여전히 많은 꿈을 꾸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만족을 모른 채 늘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윤 이사는 “평생 하고픈 일을 찾겠다”는 소녀같은 면모가 있었습니다. 30대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무슨 일을 하든 사회를 위해 ‘퍼블릭 워크’를 할 것”이라고 당차게 이야기하는 것이 어쩐지 조금 멋있게 느껴졌어요. 같은 30대인 저도 저런 건전명랑한 멘트는 대학 새내기 시절 기자를 꿈꾸던 때나 뱉었던 것으로 기억하거든요.

 그런데 윤 이사에 대한 과거 기사들을 찾아보니 시기와 질투의 댓글들이 눈에 많이 띄더군요. 많은 사람들이 이 사람의 재능과 성취를 보기보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류의 분노를 토해내고 있었습니다. 사실 자신의 노력으로는 얻을 수 없는 ‘집안’이란 배경이 더 큰 이유였고요.

 어쩐지 어제 우리신문이 1면을 통해 다룬 <“내 꿈요? 글쎄요” 부모가 가난할수록 자녀들의 꿈도 가난>이란 기사가 떠오릅니다. 부모의 직업, 소득, 문화적 배경 등이 자녀의 장래희망과 꿈을 가름한다지요. 마음껏 꿈꾸고 도전하는 윤 이사를 보며 기쁜 마음으로 박수치기가 불편한 세상이 됐습니다. 윤 이사도 조금 억울하긴 하겠지요. 그러고보면 엄친아·엄친딸이란 말은 참 씁쓸한 단어입니다.

2010-10-19 (photo by 김문석 기자)

“언제나 같은 것만 먹고 가던 데만 가지 마세요”
글 이고은·사진 김문석 기자
입력 : 2010-10-18 22:03:43수정 : 2010-10-18 22:03:44
ㆍ신생 소셜커머스 벤처기업 ‘쿠팡’의 윤선주 이사

딸이 있다면 이렇게 당차게 한번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뭔가를 잘못해서 실패해본 경험은 없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그는 신생 소셜커머스 벤처기업 ‘쿠팡’의 윤선주 이사(33)다.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와 온라인 미디어를 활용한 전자상거래의 일종인 소셜커머스는 올해 온라인 시장에 등장해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다. 미국의 ‘그루폰(groupon)’이 그 시초다. 윤 이사 역시 미국 유학 시절 그루폰을 경험해보고, 동료 2명과 함께 쿠팡을 기획했다.

“그루폰이 사람들을 문화적으로 다채롭게 살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을 보고 한국에도 저런 사이트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한국 사람들 바쁘지만 또 단조롭게 살잖아요. 이런 것도 먹어보고, 이런 것도 배워봐라 하고 문화적으로 윤택하고 충만한 삶을 안내해주고 싶었어요.”

소셜커머스가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단순한 할인·쿠폰 사이트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윤 이사는 자신들을 “문화 전도사”로 지칭했다. 그는 “사람들에게 만날 같은 것만 먹고 가던 데만 가지 말고 이런 것도 해보라고 소개하는 트렌드세터(유행을 창조, 선도하는 사람)가 되려 한다”며 “향후 기부 문화도 소셜커머스에 도입해 보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애초에 타깃층을 구매력과 문화에 대한 갈증이 높은 20~30대 싱글족으로 삼았다. 사이트 오픈 2개월째지만 회원 수는 12만명에 달한다.

윤 이사는 서울대 출신에 하버드대 로스쿨·케네디스쿨을 졸업하고 SBS 예능PD, 보스턴컨설팅 한국사무소 근무 경력 등 이력이 화려하다. 게다가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을 아버지로 둔 소위 ‘엄친딸’이다.

“한 번도 누구의 딸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적이 없는데 주변에서는 그것을 먼저 보더군요. 또 하고 싶은 일을 좇아 열심히 해서 이뤘을 뿐인데 결국 그게 남들이 생각했던 ‘간판’과 맞아떨어진 부분도 있고요. 하지만 지금 하는 일은 없던 간판을 만들어 올리는 중이에요.”

공무원 아버지를 둔 피를 속일 순 없는지 윤 이사는 “공공을 위해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사적 영역에 머물 때는 왠지 모를 헛헛함이 느껴진다”고도 했다.

윤 이사는 내년 1월에 홍콩의 한 로펌에서 국제변호사로 일하기로 돼 있다. 멈출 줄 모르고 끊임없이 도전을 이어온 데 대해 그는 “여건이 주어졌었다”고 말했다. 좋은 집안 환경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여자니까 하지 말라고 하는 사람도 없었고, 늘 한번 해보라는 말을 듣고 자랐다”는 것이다.

윤 이사는 종착지를 묻자 “저도 모르겠다”고 답했다. 그는 “10년 뒤 어떤 모습일지 단언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며 “무엇을 하든 다수를 위한, 공공을 위한 일을 하고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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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원순 변호사는 정말 바쁜 사람입니다. 아름다운 재단 10주년을 빌미로 한번 인터뷰나 해볼까 싶었던 제 마음이, 약속시간을 정하는데 진을 빼느라 차츰차츰 지쳐버릴 정도였으니까요. 30분마다, 1시간마다 약속이 빼곡히 잡혀있을 정도로 바쁜 일 중독자, 박 변호사. 당신은 정말 욕심쟁이 우후훗!입니다.

 하지만 인터뷰가 시작되자, 전 그가 워커홀릭이라기보다는 천진난만한 아이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는 정말 인터뷰어를 편안하게 해주는 인터뷰이였습니다. 질문 하나를 툭 던지면 대답이 노래하듯 끊임없이 흘러나오더군요. 랩 같기도 하고 외운 대사를 읊어대는 배우같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가 일을 일이 아닌 놀이처럼 대하고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근황에 대해 가볍게 물었더니 외국 나가 말썽피우기 일쑤였던 공무원들을 위한 해외 연수 프로그램을 만들겠다는 둥, 소기업을 육성하는 ‘희망수레’를 준비한다는 둥 앞으로 벌일 일들까지도 구구절절 흘러나옵니다.

 그에게선 젊음이 뚝뚝 묻어났습니다. 별이 반짝이는 듯한 희망제작소 엠블럼과 아름다운재단의 아름다운 로고를 설명하며 “좋은 일 한다고 대충하면 안 통합니다. 늘 마케팅과 카피가 중요합니다”라고 합니다.

 젊은이들 못지 않게 소셜미디어도 100% 활용하고 있더군요. 희망제작소에 중고자동차가 필요해 트위터에 올렸더니 벌써 후원하겠다는 중고차 3대를 확보했답니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도 “14년된 카렌스 쓰겠냐”고 연락이 왔다며 아이처럼 좋아합니다. 그는 트위터에 떠도는 수많은 이들의 독백, 하소연, 엉뚱한 소리마저 즐겁게 듣는다고 합니다.

 이미 이 정부로부터 온갖 탄압을 받아온지라 정부에 쓴소리를 하는 것도 물흐르듯 자연스럽습니다. 국정원 사찰 논란으로 국가로부터 소송까지 당하는 수모를 겪었건만 “대통령께 감사”라는 쏘 쿨한 답변으로 다큐를 코미디로 승화시켰으니까요. 이 정부의 어느 장관은 코미디를 다큐로 읽어 자신이 ‘소통불가’임을 만천하에 알렸건만…. 2010년 소통 불통의 사회에서 그가 ‘소통의 달인’으로 정평이 난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습니다. 그야말로 우리시대 진정한 ‘핫가이’가 아닐까요.

 2010-10-15 (photo by 강윤중 기자)


“기부 문화를 바꾸는 원동력이 된 것은 투명성”
글 이고은·사진 강윤중 기자 freetree@kyunghyang.com
입력 : 2010-10-14 21:32:20수정 : 2010-10-15 08:49:44

ㆍ‘아름다운 재단’ 창립 10주년, 총괄상임이사 박원순 변호사


 
2000년 ‘아름다운 재단’이 문을 열기 전만 해도 한국 사회에서 기부란 연말 TV 프로그램에서나 듣는 단어였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기부는 예전보다 훨씬 우리에게 친숙한 일상의 단어로 변모하고 있다.

지난 11일 재단 10주년을 맞아 만난 총괄상임이사 박원순 변호사(사진)는 “아름다운 재단이 우리 기부문화를 바꾸는 원동력이 된 것은 바로 투명성”이라고 말했다.

“초창기 아름다운 재단의 목표는 기부문화를 확산시킬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자는 것이었죠. 당시만 해도 사람들은 돈도 있고 기부할 마음도 있는데 누굴 믿고 어디에 기부하느냐가 문제였거든요. 결국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신뢰를 얻는 것이었고, 그 신뢰의 기반은 ‘가장 투명한 재단’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아름다운 재단은 그동안 회계장부는 물론 재단 활동가들의 월급까지도 투명하게 공개해왔다. 그런 신뢰를 바탕으로 10년 동안 우리 사회의 기부문화를 선도하는 대표 재단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재단하면 떠오르는 ‘1% 나눔 운동’은 일시적이고 단편적인 이벤트에 그쳤던 기부행위를 지속적이고 꾸준한 나눔운동으로 승화시켰다. 또한 박 변호사는 “아름다운 재단 출범 이후 여성재단, 환경재단 등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민간 재단이 잇달아 생겨난 것도 성과”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선진국처럼 일상적인 기부행위가 정착하기엔 아직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이 현실이다. 박 변호사는 “미국 등 서양 국가들을 보면 갑부들이 재산의 절반을 뚝 잘라 내놓는 경우도 많은데 여전히 우리나라 부자들은 기부에 인색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나눔은 하나의 중독현상이자 전염병”이라며 “일반 대중과 국민들의 인식과 이해가 더 높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기본 철학의 문제가 아닌가 싶어요. 수십년간 성장시대를 겪고 황금만능주의가 지배하면서 사람들이 돈에만 매달리게 됐죠.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라지만 혼자 잘 먹고 잘사는 게 목표는 아니잖아요. 우리의 품격을 좀 더 높이기 위해 학교 교육 등을 통해서 기부, 나눔에 대해 가르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박 변호사는 정부에 대한 불만도 털어놨다. 그는 “기부나 나눔문화를 확산하는 데는 정부보다 아름다운 재단 같은 비영리단체가 훨씬 효과적인데도, 정부는 공공의 일을 정부만이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는 것 같다”며 “아직 세금 감면 등의 혜택을 받지 못해 아름다운 재단은 부가가치세 10%를 고스란히 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의 경우 비영리단체에서 창출되는 수익이 국내총생산(GDP) 7%에 달할 정도”라며 “정부는 창조적이고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기업인 비영리단체를 지원하고 육성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녹색산업이란 이름을 빌려 토목공사 위주의 1970~80년대식 개발을 하며 나라를 운영하면 지금 추구하는 경제성장이 신기루가 될 가능성이 많다”고 지적했다.

한편 박 변호사는 지난달 국정원이 자신에 대해 낸 명예훼손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승소한 것과 관련해 “정부가 억압, 탄압해주니 오히려 감사하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는 자신이 현재 상임이사로 재직 중인 ‘희망제작소’의 회원이 6000명을 돌파했다며 “완전히 자립하게 된 셈이니 대통령께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다. 위기는 늘 기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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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로드™ 2010.11.08 07: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난 금요일(11/5) 거제문화예술회관에서 그의 강연을 보았답니다.
    정말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2. 백희정 2011.11.10 23: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구미에 사는데 이번에 서울시장에 박원순 시장님이 당선되셨다는것을 듣고

    많이 놀랐어요. 그리고 부러웠죠 ㅠㅠ ㅋㅋㅋㅋ당장 서울로 이사가고 싶을만큼 ㅋㅋ

    본받을 점이 참 많으신 분 같네요 ㅎㅎ 마치 드라마속의 바람직한 정치인의 모습을

    보는것같아요..

 ‘김제동의 똑똑똑’ 코너에서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인터뷰한 것을 두고 네티즌들이 난립니다. 왜 유 장관을 인터뷰해서 지면을 낭비했느냐는 원천봉쇄형에서부터, 애꿎은 김제동씨에게 “좌나 우냐 밝혀라” 류의 공격을 일삼는 안하무인형, 이런 기사를 싣는 매체 자체를 신뢰못하겠다는 대략실망형 등…. 어쨌거나 저쨌거나 유 장관이 이토록 비호감 캐릭터였다는 사실과, 이 코너가 단기간인 2회만에 세인들의 주목을 끌게 된 것만은 확실해진 것 같습니다.

 경향신문이 유인촌을 다루면 안 되는 것일까요? 언론사는 아무리 자사와 대척점에 있는 인물이라도, 설사 인륜을 저버린 악마같은 범죄자일지라도 기사로 다룰 필요가 있습니다. 잘한 일은 잘했다고 못한 일은 못했다고 쓸 수 있어야 함은 물론, 그의 이야기를 전달함으로써 오히려 당사자가 얼마나 오류에 휩싸여있는지를 보여줄 수도 있으니까요. 논란의 중심에 있거나 공적인 결정권을 가진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의도적으로 생략하고 무시하는 일은 오히려 더욱 위험한 행동입니다.

 어쨌든 전 이 인터뷰를 지켜보며, 사람마다 각각 다른 어법과 그 속에서 묻어나는 성품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김제동씨는 모나지 않고 모질지 못해 상대를 휘어잡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때문인지 논란의 중심에 선 유 장관에게 독하고 모난 질문으로 그를 공격하지 못했지요.

 반면 유 장관은 거침없고 즉흥적인 탓에 상대방을 자기 페이스대로 끌고 가는 사람이더군요. 그래서 대화가 김제동씨의 단편적인 질문과 유 장관의 장황한 답변으로 일관된 면도 있습니다.

 더군다나 결정적으로 김제동씨는 별로 이 인터뷰를 재미없어 했던 것 같습니다. 그 틈을 타, 유 장관은 대화를 자신을 비호하고 변명하는 쪽으로 이끌기 용이했던 것 같고요. 대화의 방향이나 대화량에서 볼 때 유 장관만 하고픈 이야기를 실컷했던 인터뷰로 비칠 수 있었다고 봅니다. 자칫 관찰자의 입장에서 보면 두 사람 간의 권력 관계 때문에 불균형한 대화가 이어졌다고 느껴질 수 있을 정도였다는 생각도 듭니다.

 독자들이 거칠게 비난했던 이유는 여기에도 있다고 봅니다. 사람들은 하는 일만 갖고 무작정 그 사람을 미워하진 않으니까요.


 2010-3-4 (photo by 경향신문 DB)


[김제동의 똑똑똑](2)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정리 | 이고은 기자

ㆍ“난
딱지 붙은 사람, 이쪽 저쪽 다 인기끌기 안되더라”


“제동아, <전원일기> 둘째 아들이 왜 양복을 입고 뉴스에 튀어 나오노?” 벌써 2년 전, 팔순을 바라보는 우리 어머니가 TV를 보다가 나에게 물었다. 정치가 뭔지, 장관이 어떤 자리인지 모르시는 어머니로서는 당연한 질문이었다. 얼마전 역대 최장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 ‘전원일기 둘째 아들’은 임기 내내 ‘문제적 장관’이었다. 정권 초기에 몇몇 산하단체장들을 하차시키는 데 앞장섰고, 돌출발언과 행동 때문에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이 때문에 유인촌 장관은 국민들에게 ‘MB 정부의 행동대장’으로 각인됐다.

김제동씨가 지난주 초 광화문 문화체육관광부 청사 옆 공원에서 유인촌 장관을 만나 담소하고 있다. 유 장관은 최근 ‘최장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기록을 세웠지만 늘 이슈의 중심에서 각종 논란에 휘말려왔다. 그는 ‘방송계 후배’ 김씨의 질문에 답답했던 심정을 털어내듯 이야기를 쏟아놓았다. | 김창길 기자


● 연기자와 장관, 간극이 있죠?
드라마·연극할 때가 행복했지…성취감 있지만 솔직히 괴로워


- 연기자와 장관, 그 사이의 간극이 있죠. 직접 경험해보니 어떠신지요.

“연기자 때는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했어요. 그런데 장관 일은 꽉 짜여져 있고, 조직이 정리가 돼있고, 주어진 시간 안에 해야죠. 내 개인의 판단으로 해결되는 게 아니지. 물론 연기자 할 때도 난 드라마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술마시는 장면을 찍지 않았어요. 그 영향력을 생각해야죠. 장관 일은 정책을 시행했을 때 많은 국민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기에 정말 무거운 일입니다. 연기자로서의 시대는 지나갔고, 이제는 지금 일에 최선을 다해서 완성도를 높여야죠. 사실은, 나는 괴롭죠. 마음 속에서….”

- 어느 쪽이 더 행복하신가요.

“행복, 옛날에 드라마하고, 연극할 때가 행복했지. 지금 일은 행복이라고 이야기하기보다, 오히려 먼 미래의 행복을 찾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 성취감을 느낀 정책이 있다면.

“지금 나보고 ‘너 어떠냐?’ 하면 늘 모자란다는 생각을 합니다. 제동씨도 마찬가지잖아. 모자란 게 있으니 계속 열심히 하는 거죠. 아직 진행형인 것들이 많아요. 문화분야는 정책의 효과가 나오자면 시간이 걸립니다. 다만 저작권 보호 문제는 잘한 것 같습니다. 창작물 보호를 위해 법도 바꾸고, 단속도 많이 했어요. 작년에는 우리나라가 저작권 감시대상국에서 해제됐죠. 한글박물관 추진, 대사전 발간 등 한글 활성화도 꽤 애썼어요. 좀 있으면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봐요.”

저작권 보호정책과 관련, 일부에서는 ‘인터넷 재갈 물리기’라고 반발했다. 인터넷 상의 글들에 대해 역기능만을 강조해 여론을 통제한다는 비판이었다. 인터넷 실명제 등과 맞물리면서 일부 네티즌들이 외국 서버로 옮겨가기도 했다.

“인터넷에 재갈 물린다, 아고라에 재갈 물린다며 반발했죠. 본질과 달리 정치적 공격을 한 것입니다. 순수하게 창작물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촛불시위때 보니까 전과정이 인터넷에 중계됐어요. 지상파 방송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더라구. 사실 미디어법 바꿀 때도 지상파 방송 중심의 법을 디지털시장에 맞게 바꾸자는 거였어요. 이를 여론장악으로만 몰고가면 안되죠. 그리고 불특정 다수에게 정보를 주거나 소식을 올릴 때는 남을 좀 생각하면서 글을 써야죠.”

- 장관으로 활동하면서 이건 좀 후회가 된다, 이거는 실수였다고 할 만한 것은 뭐가 있을까요. 작가회의의 경우 ‘집회 불참 각서 요구’로 자존심이 많이 상했을 텐데요.

“실수야 늘 생겨요. 내가 성질이 좀 급한 편이기도 하고…. 예술가들이 마음 편하게 창작활동을 하고, 운동선수들이 마음놓고 운동할 수 있게 해야 하는데 아직 미약합니다. 실수라기보다는 내 의도와 다르게, 너무 많이 이야기가 되어진 부분들이 있어요. 요새 또 시끄럽잖나. 문화예술위 문제…. 그런 건 실수라 하고 싶진 않아요. 원만하게 해결 못한 것은 잘못이지. 작가회의 문제는 그 방법이 잘못됐다고 이미 언론에 여러번 얘기했어요.”
- 기본적으로 갈등은 늘 일어나는 거 아닌가요. 강자가 포용을 하면서 반발하는 사람들을 설득하든지, 완벽하게 이해시켜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완벽한 오해도, 오해 소지가 있는 것도 있고…. 딱 잘라서 말하기 어려워요.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언론에 정반대의 기사들이 나요. 나는 이 부분도 아직 과도기라서 그렇다고 봐요. 지금 선진국 문턱에 있잖아요. 짧은 시간에 급격하게 변화하다보니 우리사회에 갈등이 많아요. 이념에 따라 진보다 보수다 하면서…. 올해가 중요한 해입니다. 정부에서 이런 문제들을 잘 정리하고 풀어내기 위해 고민해야죠.”

유 장관은 문화계 불협화음에 대해 마음을 비우고 언제든 양보하겠다면서 더 많은 분들과 허심탄회하게 만나겠다고 했다. ‘장관 유인촌’에게 ‘배우 유인촌’을 기대하고 왔지만, 답변은 ‘장관의 언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하여, 좀 더 깊이 파고들었다.

- 장관께서는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유난히 ‘정치적 인물’로 세간에 오르내렸는데….

“정부가 바뀌면서 생기는 갈등이라고 봅니다. 사실 문화부 장관에는 그동안 대부분 정치인들이 왔어요. 이어령 장관, 참여정부 시절 김명곤·이창동 장관 정도가 정치인이 아니었지. 제 행동도 오해의 소지가 있었겠죠. 하지만 정치적 행동은 아닙니다. 산하기관장들 퇴임 문제도 그래요. 취임 후 처음으로 언론인들 모임에 첫 공개강연 가서 향후 문화부 운용 등을 이야기했죠. 문화예술 이야기는 언론에 한 줄도 안나오고, 질의 내용에 짤막하게 대답한 것이 대문짝만하게 나왔어요. 정부가 바뀌었으니 같이 일할 수 있으면 하는 거고, 아니면 본인들이 자진해서 나갈 거라는 식으로. 문화예술계는 자존심이 있어서 있으라 해도 있지 않을거다 라고 말했어요. 그런데 그게 물러나라, 이렇게 나왔더군요. 그렇게 기사 나니까 반대 기사 나오고, 서로 더 센 기사가 나오고. 인터넷에선 입에 담을 수도 없는 말들이 나오더군요. 난 정치적으로 일한 적이 없어요. 현장에서 확인해보면 알겠지만, 현장에서 편파지원했다는 얘기는 안 나올 겁니다.”

● 정치적 인물로 오르내리는데
성질이 좀 급한 편이기도 하고 표현·행동 오해 소지가 있었죠


유 장관은 “지난번에 제동씨를 둘러싸고 이런저런 말이 나오는데 속상하더라”라면서 내가 ‘짤린 얘기’를 꺼냈다. 유 장관 역시 과거에 KBS <역사스페셜>에서 하루아침에 잘렸다고 했다. 시청자위원회에 제소하고, 거세게 항의해서 1년 뒤에 다시 만들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했다. 유 장관은 “이런저런 데 휘말리지 말라”면서 나에게 “그러려니 하라”고 조언했다. 유 장관은 “난 이미 딱지가 붙었다”며 “내가 이런 자리에 발을 들여놓았다는 것은 이미 나를 반대하는 사람이 50% 있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또 “여야가 있고, 분명히 편이 갈라진 부분이 있어 이쪽 저쪽 다 인기끌기는 안되더라”고도 말했다.

- 장관은 의도와 달리 정치적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장관이 가장 강자로 보이니까 반드시 반동이 따를 수 있습니다.

“그걸 인정하죠. 그래서 문화예술계 분들께 나도 현장에 있어본 사람이니까 문제가 있으면 직접 와라, 국회의원이나 윗사람 로비하지 말라고 했어요. 그런데 지금도 많은 의원들에게 예술가들이 청탁하고 다닙니다. 나는 늘 현장에 있으려고 애쓰고, 항상 이야기할 준비가 돼있어요. 문제를 서로 터놓고 얘기하면 어느 정도 해결이 됩니다. 그런데 전혀 다른 방향(정치적)으로 돌고 돌면 현장의 룰이 다 흐트러집니다.”

- 정부·정권·정치를 비판하는 코미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힘 있는 곳이 코미디의 소재가 되는 것은 정상이라고 봅니다만.

“어느 사회든 풍자가 가능해요. 조선시대 남사당이 뭘 풍자했나요. 정치, 종교를 풍자했잖아요. 결국 해학으로 풀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지. 예술의 역할이 그런 거죠. 예술가가 길거리 뛰지 말고 작품으로 말하는 게 중요한 것 아닌가요.”

● 정부 비판 코미디에 대한 생각은
어느 사회든 풍자 가능하지만 거리 나가지 말고 해학으로 풀길


유 장관은 예술이 도구로 쓰이면 예술이 안된다고 했다. 체제나 사상을 선전하기 위한 목적을 갖는 예술은 예술로서 값어치가 없다고 강조했다. 한국작가회의의 ‘저항의 글쓰기’ 선언에 대해서도, ‘어두운 곳을 밝히는 글을 쓰겠다’고 했으면 한다는 주문을 했다.

나는 유 장관이 장시간 밝힌 원론적 주장에는 공감하기 힘든 부분이 많았다. 유 장관에게 나는 “누구나 재밌게 웃을 수 있는, 정치코미디를 하고 싶다”면서 “진보니 보수니, 좌니 우니 구분없이 오로지 웃기는 게 목적”이라고 말했다. 좌나 우나, 살아있는 권력도 웃음의 소재가 된다면 끊임없이 비판하고 싶다고도 했다.

한 나라 문화계를 대표하는 장관에게 ‘허락’(?)을 얻어냈으니 ‘전원일기 둘째 아들’도 내 콘서트에 웃음 소재로 올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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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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