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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의 해가 밝았습니다.

매년 새해가 되면 새롭게 시작되는 한해에 대한 기대와 포부들로 가슴이 설렙니다. 2012년, 이번 새해는 임진년(壬辰年). 60년만에 한번 찾아온다는 ‘흑룡’의 해라고 하지요. 4년에 한번씩 찾아오는 2월 29일이 있는 윤달도 끼어있습니다. 때문에 올해는 365일이 아니라 366일입니다. 하루 벌었네요.


그런데 2012년, 왠지 마냥 기뻐만 하기엔 뭔가 찜찜한 기분이 드는데요. 을씨년스럽지만 예전부터 ‘2012년’은 지구 종말의 해라는 예언이 있어왔던 것이 문득 뇌리를 스칩니다.


영화도 있었죠. 2009년에는 아예 시점을 ‘콕’ 박아 제목을 <2012>로 한 영화가 있었습니다. 재난 영화의 귀재라고 불리우는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이 2012년의 지구종말론을 바탕으로 만들었습니다. 원래 재난 영화나 좀비 영화, 공포 영화를 좋아라 하는 저는 이 영화를 무척 재미있게 봤습니다.


 



영화는 전 세계 곳곳에서 지진, 화산폭발, 해일과 쓰나미 등 각종 자연 재해들이 발생하는 장면을 보여주면서 최후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존 쿠삭이 연기한 주인공의 활약을 통해 인류 멸망에 대비하기 위해 정부가 인간의 비밀 이주 계획을 세워왔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인류가 ‘버려진 땅’이라고 여겨져 온 아프리카에 새롭게 정착한다는 설정은 나름 신선했습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2012년을 지구종말의 해라고 여겨 온 것은 왜일까요?


고대 마야인들은 주기가 5126년에 이르는 달력을 만들었는데, 이날이 그 달력이 끝나는 날이 2012년 12월 21일이라고 합니다. 마야인들은 이날 태양과 은하의 중심이 일직선을 이루는 현상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견했다고 합니다. 왠지 그럴 듯해 보이죠. 과거에도 과거에도 행성 충돌 등 우주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의한 지구멸망설은 자주 등장하는 소재였습니다.


하지만 종말론은 현대인들의 불안감과 공포가 낳은 시나리오라는 비판도 많습니다. 1997년 종말론, 밀레니엄 버그 Y2K 등 종말론이 끊이지 않았던 것도 사람들의 이런 심리가 작용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미 항공우주국(NASA)은 이례적으로 2012년 지구멸망론이 근거없는 괴담이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마야 문명 지역인 멕시코는 종말론을 계기로 관광상품화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하니, 참 역설적이죠?


2012년이 우울한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2012년은 잡스의 해였던 2011년에 이어 컴퓨터를 발명한 앨런 튜링(1912~1954)의 탄생 100주년이기도 합니다. 애플사의 로고인 한 입 베어문 사과를 연상시키는 주인공이죠. 튜링은 청산가리가 든 사과를 베어물고 자살했는데, 애플사와 로고 디자이너는 애플사의 로고가 튜링의 사과와는 무관하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컴퓨터 천재를 기념하는 해인만큼, 새해엔 NASA와 인텔이 합작해 만드는 슈퍼컴퓨터 ‘플레이아데스’와 IBM과 미 국립핵안보국(NNSA)이 합작한 ‘세쿼이어’도 완성될 예정이라고 하네요.



 흥미로운 우주쇼도 예정되어 있는데요. 오는 6월에는 금세기 두번째이자 마지막으로 금성과 태양이 교차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다음에 이런 모습은 2117년이 되어서야 볼 수 있다고 하니, 놓치지 말고 보아야 겠습니다. 8월에는 화성탐사로봇 큐리오시티 로버(Curiosity Rover)가 화성에 착륙할 예정이라고 하니, 화성에서 움직이는 지구의 로봇을 구경할 수 있겠군요. 5월에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중국 북부까지의 지역에서 일식을 관측할 수 있고요. 11월에는 호주나 남태평양에서 개기일식을 관측할 수 있습니다.

유엔은 2012년을 ‘세계협동조합의 해’로 지정했습니다. 협동조합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협동조합의 설립과 성장을 도우면서 각 정부의 법제 구축을 유도한다는 목표를 세웠다고 합니다. 지난해 우리 국회에서도 2012년 12월부터 협동조합의 설립이 보다 용이해지도록 법개정을 했다고 합니다. 협동조합의 해를 맞아, 양극화 극복과 사회통합을 이루는 경제적 대안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국제 행사도 여럿 예정돼 있습니다. 7월에는 영국 런던에서 제30회 올림픽이 개막합니다. 올 해에도 박태환 선수 등 우리 국가대표 선수들의 멋진 활약상을 기대해봅니다. 또 우리나라에서도 5월에 여수 엑스포가 열릴 예정입니다. 아름다운 여수 앞바다를 전 세계인에게 보여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기분이 좋아집니다.


또 올해는 19대 국회의원 선거와 18대 대통령 선거가 예정돼 있습니다. 대형 선거가 두 차례나 예정돼 있는만큼, 많은 시민들이 2012년에 대한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새롭게 당선되는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이 우리의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없이 기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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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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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의 일입니다. 정치부에서 한나라당을 출입할 때였는데, 그때 대변인이 차명진 의원이었습니다. 최저생계비 6300원으로 황제의 식사가 부럽지 않게 먹을 수 있다고 했던 바로 그분이요. 당시에 차 대변인이 웬만한 논평마다 ‘좌파’ 탓을 하며 ‘색깔론’ 운운하길래, 기사를 쓴 적이 있습니다. 기자들 용어로 ‘조졌던’ 셈이죠.

 
기사가 나가고 나니 좀 걱정이 됐습니다. 당의 중요 취재원을 대놓고 비판을 했으니, 향후에 취재가 어려워질 것 같았으니까요. 당 대변인과 사이가 틀어지면 불편한 게 이만저만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차 대변인의 반응이 예상과 달랐습니다.

그는 다음 날 저를 보자 “이기자, 정말 고마워. 이기자 아니면 어떻게 ‘독상’을 받아볼 수 있었겠어”라고 했습니다. 뭐, 속으로야 자신에 대해 안 좋은 기사를 썼으니 얼마나 제가 미웠겠습니까만은 일단은 저렇게 이야기하더군요. 말인즉슨 이렇게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기사 덕분에 자신의 인지도가 더욱 올라간다는 뜻이었습니다.

최저생계비 쪽방체험을 하고 있는 차명진 의원이 '황제의 식사'를 하고 있다. 경향DB


그때 저는 꽤 놀랐습니다. 정치인에게 인지도가 이렇게 중요한 것인지 이전엔 잘 몰랐었습니다. 사실, 정치인들에게는 어떤 식으로든 국민들에게 자신의 이름이 ‘기억’된다는 사실 자체가 매우 중요합니다. 심지어 자신을 비판하는 내용이라 할지라도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득’이라고 판단할 정도로 말입니다.

때문에 그들은 언론에 어떻게든 얼굴을 들이밀고, 한줄이라도 언급되려고 갖은 노력들을 합니다. 선거철만 되면 그런 현상은 더욱 두드러집니다. 정치인들은 언론에 잘 보이기 위해 애를 쓰고, 언론은 그런 정치 권력을 등에 업고 자사의 이익을 실현하는 유착 관계를 만듭니다. 일종의 공식입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정치에 관심없는 국민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많은 국민들이 자기 지역구의 의원이 누구인지, 누가 출마를 했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다반사이니까요.

정치는 우리 삶과 가장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영역입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우리의 의견을 대변하는 국회의원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일을 하고 돌아다니는지 잘 알지 못합니다. 아니 별로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후보들의 공약 한번 꼼꼼이 읽어보지 않고, 심지어는 누가 후보인지도 잘 모른채 선거하러 투표장에 가서는 ‘어디서 많이 들어본’ ‘환하게 웃고 있는’ ‘인상 좋은’ ‘팜플릿이 잘 빠진’ 후보에게 한표를 던지고 돌아옵니다. 그러다보니 최연희 의원은 여기자를 성희롱해놓고도 버젓이 강원도에서 4선 의원을 하고 있고, 대구·경북은 한나라당 ‘깃발’만 꽂으면 무조건 당선이라는 말도 나오는 거겠죠.



최근 무소속 강용석 의원<개그콘서트>의 최효종씨를 고소해서 난리입니다. ‘국회의원이 되는 법’에 대해 풍자적인 개그를 했다고 집단 모욕죄로 형사 고소한 것인데요. 뭐 별로 틀린 말도 없는 것 같은데, 뭐가 그리 모욕적이었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를 두고 많은 분들이 강 의원을 비난했습니다. 이분은 이전에도 워낙에 ‘다 줘야 한다’는 둥 성희롱 발언 등으로 비난을 많이 받아서 이골이 났을 법도 합니다만.

어쨌든 고소 사건 이후 <개그콘서트>의 개그맨들은 이에 정면 대응하고 나섰습니다. 보고 나니 속이 시원해집니다.



그런데 왠지 좀 찜찜합니다. 3년 전 차 대변인의 말이 생각나서요. 강 의원이 한나라당에서도 쫓겨나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도 잊혀지는 게 두려워서 ‘자해’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욕을 먹더라도 그러면서 자신의 이름이 알려진다면, 내년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할 수 있다고 믿어서 그러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마나 국민을 만만하게 보면 그러는 걸까요. 이렇게도 우리 국민들을 무시할 수 있습니까.

글을 끄적대면서 언급된 정치인들의 실명을 모두 지웠다 다시 적었습니다. 굳이 인지도를 높여줄 필요가 있을까 싶다가, 아니 오히려 똑똑히 기억하고 심판대에서 제대로 심판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언론에 기생하며 플레이하는 정치인도, 정치 권력에 기대 정치하는 언론도 맥을 못춥니다.

최효종씨가 애매~한 ‘농담과 디스(disrespect의 줄임말, 폄하)의 차이’를 정해줬죠. 아무렇지도 않으면 농담이고, 찔리면 디스라고요. 이글을 쓴 저는 좀 찔립니다. 고소 당할까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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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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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지은 2011.12.03 17: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고은 기자님. 글 잘 읽었습니다^^
    욕먹으면서도 자신의 이름이 알려진다는 이유만으로 고마워할 수가 있다니..
    어떻게 스스로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가 있죠?
    정말 대단하신 분들이에요.ㅋㅋ
    글 자주 읽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올려주세요^0^

  2. 윤성혜 2012.02.23 01: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속이 시원합니다..

  3. 어쨋든 2012.04.02 10: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강씨는 일련의 목적을 달성한 것 같습니다
    당할까 무서워 아무도 건드리지 않게 됐으니...ㅉㅉ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를 놓고 정국이 뜨겁습니다.

국회에서는 날치기 가능성도 감지되면서 ‘전운’마저 감돌고 있습니다. 국회 밖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미 FTA에 반대하는 국민들은 또다시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왔습니다.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는 촛불집회가 열렸고, 서울 여의도 곳곳에서도 반대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온라인 세상에서도 한·미 FTA 논쟁이 뜨겁습니다. 신문·방송 등 언론들이 한·미 FTA에 대한 검증과 보도를 제대로 못해서였을까요.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 난상토론이 벌어졌습니다.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가 쏟아지는 국민의 질문과 비판에 SNS로 해명·반박하는 재미있는 풍경도 연출되고 있습니다. 통상교섭본부(@ftapolicy)는 “한·미 FTA는 완전한 금융개방이 아닙니다. 안전장치는 충분히 마련되어 있습니다” 등의 트위터 멘션을 날리면서 홍보에 열심입니다.

지난 3일 이 문제를 다룬 MBC <100분 토론>이 방영되자 트위터서도 실시간 토론이 이뤄졌죠. @KS*******t는 “한나라당 정옥임 의원님, 81개 나라와 ISD(투자자-국가소송제)를 맺어 괜찮다고 하시는데 81개 나라와 맺은 것도 잘못됐다면 고쳐야 하는 거죠”라고 썼습니다. @re*******o는 “1. 최재천, 청와대로. 2. 김종훈, 청문회로. 3. 정옥임, 개그 콘서트로. 4. 김동철, 복덕방으로”라고 감상평을 올렸습니다.

정부가 한·미 FTA 홍보광고에 노무현 전 대통령을 등장시킨 것도 공분을 샀습니다. FTA 국내대책위원회와 기획재정부가 만든 이 영상은 “노무현 대통령이 시작한 한·미 FTA, 이명박 대통령이 마무리하겠습니다”라는 문구로 한·미 FTA의 정당성을 호소합니다.

영화배우 문성근씨는 트위터(@actormoon)에 “FTA 광고에 노무현 대통령님을 이용하고 있다”고 지적했고, @De******는 “미국 입맛에 맞추기 위해 완전히 내용을 바꿔버린 FTA인데 그걸 ‘노통’ 때의 것과 비교하느냐?”고 질타했습니다. 페이스북에 이○열씨는 “살아계실 때는 갖가지 방법으로 나쁜 사람 만들더니 이제는 고인이 되신 분을 자신들의 목적에 따라 이용하려는 것”이라며 정부의 ‘꼼수’를 꼬집었습니다.

정부는 왜 노 전 대통령까지 끌어들이면서 한·미 FTA 비준동의안을 처리하려는 것일까요? FTA 종합지원포털에 들어가면 설명이 나와있습니다. 시장 개방을 통해 경쟁을 심화시켜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MB 정부 들어 추가협상한 내용에 대해 알아보고 싶으시면 ‘한·미 FTA 관련 추가협상 결과 상세 설명자료’ 원문을 읽어보세요.

많은 국민이 우려하는 것은 바로 경쟁이 심화되는 과정에서 배제되고 소외되는 이들이 생기기 마련이라는 겁니다. 이들을 위한 피해 대책이 절실합니다. 만약 한·미 FTA가 발효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은 10월15일자 경향신문 기고 ‘1% 위한 FTA, 다시 촛불을 켜자’에서 FTA가 결국 1%만을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길임을 지적합니다. 또 정 원장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후 17년이 지난 멕시코와 캐나다 사례를 통해 한·미 FTA가 가져올 한국의 미래를 내다봅니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국제관계학)는 한·미 FTA 비준동의안 처리를 서두르지 않아도 될 이유를 블로그(한미 FTA 비준동의 서두를 일 없다)에서 5가지로 설명합니다.

첫째 번역 오류 문제 등 ‘기본’이 안된 협상이라는 점, 둘째 피해 대책이 없다시피 할 정도라는 것, 셋째 ISD를 비롯한 독소 조항, 넷째 양극화를 부추길 뿐인 한·미 FTA의 경제효과, 다섯째 지금 다급한 쪽은 우리가 아닌 미국이라는 점 등입니다. FTA와 관련한 자료는 ‘경향신문 FTA 아카이브’
에 많이 있으니 더 알아보고 싶으신 분은 들러보십시오.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가 ‘ISD 종결자’를 자처하고 나섰습니다. 이 대표는 “ISD 논란, 이 글로 종결하겠습니다”라는 글에서 ISD와 역진방지 메커니즘, 네거티브 리스트 등 10개 독소조항을 꼼꼼히 지적하고 비판합니다.

7일자 경향신문 ‘아침을 열며’ 코너에서는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과 동명이인인 김종훈 경제부장이 “한·미 FTA로 역적이 될 것인가”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네요. 김 부장은 “분명한 ‘걱정거리’가 FTA에는 드리워져 있는” 한·미 FTA를 “눈앞에 보이는 이득만을 따져 서둘러 비준”한다면 “자칫 미래세대에 지금 살고 있는 모두가 ‘나라를 팔아먹은 역적’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지난해 이맘때 정태인 원장의 글 ‘마이 컸다, 김종훈’
이 떠오릅니다.

이고은 기자 freetr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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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칼이쓰마 2011.11.15 16: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부산에서도 촛불을 들고 있답니다.
    매일 밤마다 출근(?) ㅋㅋ

아침에 버스를 타고 출근을 하는데, 내 앞자리에서 꾸벅꾸벅 조시던 할머니께서 깜짝 놀라 깨셨다.
“아이구, 여기가 어디야? 중앙극장에서 내려야 하는데….”

예닐곱 정류장 정도 남았으니 안심하시라고 했더니, 이내 “근데 어제 서울시장은 누가 됐어?”라고 묻는다. 조심스레 “박원순이 됐어요”라고 했더니 할머니께서는 의외로 박수까지 치며 좋아하셨다.
“아이고 잘 됐다. 박원순이 돼야지. 나도 박원순 찍었어. 한나라당은 안 돼. 내내 공사만 하고 정치자금만 받고, 그런 당이야…. 잘 됐다. 잘 됐어.”

워낙 정정하게 말씀을 잘 하셔서 연세를 여쭈었더니 여든두살이라고 말씀하신다. 고령층은 앞도 뒤도 안 보고 한나라당을 찍을 것이라 생각했던 나의 착각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박원순의 승리는 이렇게 기존 정치의 공식과 선입견을 깨부수는 우리 정치사의 획기적인 사건으로 기록되나보다.


당선이 확실시된 27일 새벽, 박원순은 서울광장에 모인 시민들 앞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제가 시장이 되기 위한 욕심은 없습니다.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선거에 나선 것입니다. 저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정치, 새로운 서울을 만들겠습니다. 과거의 토건 행정이 아닌, 사람 중심의 인간을 생각하는 행정을 하겠습니다. 이명박 대통령 식의 불통 행정이 아니라 시민과 소통하고 여러분들과 함께 하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늘 시민 곁에 다가가 시민의 목소리를 듣고 공감하며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시장이 되겠습니다.

시장 자리를 대권을 향한 욕심이나 자신의 꿈을 위해 활용하지 않겠습니다. 시장 자리는 시민의 꿈을 실현하는 자리입니다. 저는 용산참사와 같은 잔혹한 일이 서울에서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우리의 고귀한 땅과 주택이 투기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인간다운 삶을 위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서울로 만들겠습니다. 서울 안에서 굶는 아이와 어르신, 그리고 단전, 단수로 고생하는 가구가 없도록 하겠습니다. 헌법이 보장하는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서울, 최소한의 인간적 가치가 보장받는 서울을 실현하겠습니다…”


시민들은 그의 메시지에 환호했다. 인간을 우선시하고, 시민의 목소리를 듣고, 함께 공감하겠다는 미래 정치 지도자의 이야기는 어찌 보면 당연한 다짐이고 약속이다.

그런데 우리는 한동안 그 당연한 약속들을 믿지 못하고 살아왔다. 그 약속은 표를 얻기 위한 화려한 수사 중 하나일 뿐이요, 그 수사를 곧이 곧대로 믿는 것은 순진한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동안의 경험칙에 의해 얻은 본능이다.

하지만 이번에 시민들이 박원순에게 거는 기대는 좀 다른 것 같다. 그것이 박원순 스스로 말했듯, 정치인 개인에 대한 기대만은 아니다. 시민 권력이 기성 정치권력을 이겼다는 승리감, 시민의 힘으로 새로운 사회 계약을 써내려갈 토대를 마련했다는 성취감, 잔인한 경쟁 사회 속에서 다시금 ‘인간’을 우리 삶의 중심에 놓아둘 수 있다는 희망이 어우러진 기대감이다.


지난 한달여간, 외계인이 멀리서 지구를 관찰했다면 “전 지구적 축제가 벌어지고 있다”고 이야기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각국에서 축제인지 시위인지 헷갈리는 모습으로 거리를 ‘점령’했던 많은 사람들이 원했던 것은 결국 ‘함께 좀 인간답게 살자’는 것이었다. ‘분노한 사람들(Los indignados)’이 궁극적으로 원한 것은 파괴가 아닌 희망이었다. 한국의 서울 거리에서는 이런 분노들이 정당한 표가 되어 ‘점령(occupy)’에 성공했다.

분노를 영원히 끌어안고 사는 것만큼 불행한 일은 없다. 시민들은 당분간 조금씩 분노를 덮고 희망을 꿈꿀 것이다. 물론 오늘의 승리가 어떻게 우리 삶을 변화시키는지를 지켜보는 과정은 그저 순탄치만은 않겠지만, 중요한 것은 이 거대한 흐름이다. 날이 갈수록 단단해지고 있는 시민들의 모습이 한발 한발 다가오는 변화를 예측케 한다.



10·26 재보선을 하루 앞둔 지난 25일, 신촌을 지나던 길에 나의 발목을 붙잡는 노래 소리가 들렸다. “에헤야 디야~ 바람 분다. 연을 날려보자. 에헤야 디야~ 잘도 난다. 저하늘 높이 난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남자 아이가 박원순 후보의 유세 차량에 올라가 씩씩하고 천진난만하게도 “노래 한곡 할게요”라면서 한곡 뽑아낸 노래소리였다. <에헤야 디야>가 제목인 줄로만 알았는데, 찾아보니 <연 날리기>라는 제목의 동요다. 무튼.


사람들은 아이의 노래에 유쾌한 박수갈채를 보냈다. 나는 왠지 이 어린아이의 노래가 그 어떤 훌륭한 시사칼럼이나 유려한 글보다도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사람들의 환호와 박수는 그 어린아이나, 박원순 서울시장이나, 야권 정치인을 위한 것만은 아니었다. 바로 우리 자신들의 꿈과 희망을 위한 것이었다.

“에헤야 디야~ 바람 분다. 연을 날려보자. 에헤야 디야~ 잘도 난다. 우리의 꿈을 싣고”

바람은 불었고, 연은 띄워졌다. 우리의 꿈을 싣고 그저 잘 날아가길 바랄 뿐이다. 훨훨.

Posted by 이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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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글쎄요, 기자시라면... 2011.10.27 20: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번 선거가 어떤 의미인지 잘 아시리라 여겨지는데...
    그 속사정, 진짜 사정은 밝힐 의향이 없으시겠죠?

    • 이고은 2011.10.27 22:15  댓글주소  수정/삭제

      글쎄요. 님께서 말씀하시는 그 속사정, 진짜 사정이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인지요? 잘 모르겠군요.

    • 정~알고 싶으심, 님 상사한테.. 2011.10.28 01:08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니까, 편집장한테 물어보심 될거 같은데요~
      ^^

한국가스공사에서 발행하는 사보 KOGAS의 의뢰로 기고한 칼럼입니다. 지난 5월에 쓴 ‘착한 결혼하기’를 계기로 에코 웨딩에 대해 쓰게 됐습니다. 가끔 외고가 들어오면 용돈벌이 겸, 기분좋게 칼럼을 씁니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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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GAS vol.279
2011.10. 그린에너지칼럼

글 경향신문 이고은 기자

 

결혼하세요? ‘에코 웨딩’ 어떠세요?

 

결혼은 더 이상 로맨틱한 이벤트가 아니다. 일생 일대의 거대한 ‘쇼핑’이다. ‘결혼 시장’에 들어가서 보면 갖가지 소비거리가 총 망라돼있다. 상견례부터 웨딩 촬영, 결혼식은 물론 신혼여행까지…. 모든 준비과정의 매 단계마다 ‘돈 쓸’ 일들이 대기하고 있다. 예비 부부라면 한번쯤 들어봤을 ‘스·드·메(스튜디오 촬영·웨딩드레스·메이크업)’ 비용은 수백만원을 호가한다.


이렇게 결혼이 시장의 영역으로 들어오면서, 결혼식은 허세와 과시의 장으로 변해가고 있다. 더 화려하고, 더 비싸고, 더 있어 보이는 결혼식을 위해 사람들은 더 많은 비용을 지출한다. 그리고 그 실체도 없는 비용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높아져 가고 있다. 웨딩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개설된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웨딩 관련 카페들은 각종 업체·가격정보를 노출하는 ‘호객’의 장으로 변모했다.

 


결혼식 환경 쓰레기 심각, ‘에코 웨딩’ 관심 높아져


결혼 과정에서 몸살을 앓는 것이 바로 ‘환경’이다. 한번의 이벤트로 끝나고 마는 결혼식이 어마어마한 환경 쓰레기를 발생시킨다는 사실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별 관심이 없다.

하지만 결혼식 과정에서 일어나는 환경 파괴는 언뜻 생각을 해봐도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결혼식장 장식과 축하 화환에 쓰인 꽃들은 이날 하루만 쓰고 바로 버려진다. 하객들에게 대접하는 음식물과 식당에서 쓰이는 각종 일회용품, 축의금 봉투, 답례품을 위한 포장지 등은 고스란히 ‘환경 쓰레기’가 된다.

2009~2010년 기준으로 매해 34만 커플이 결혼식을 올리는데, 한 커플 당 400명의 하객이 결혼식을 찾는다고 가정하면 이들의 결혼식으로 인해 발생되는 이산화탄소(CO2)가 연간 493만 톤에 달한다고 한다.


요즘엔 시끌벅적하고 화려한 결혼식 이면에 이런 환경 파괴적인 요소들이 산재해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이를 거부하는 ‘개념’ 예비부부가 늘고 있다. 바로 환경을 생각하는 ‘에코 웨딩’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상업적인 냄새가 풀풀 풍기는 ‘붕어빵 결혼식’을 거부하고 나만의 결혼식을 원하는 분위기도 한 몫 보탰다.


주식회사 ‘대지를 위한 바느질’의 이경재 대표는 에코 웨딩의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는 인물이다
. 친 환경 의류 디자이너인 그는 “웨딩드레스가 환경오염을 일으키는 골칫거리”라고 지적한다.

웨딩드레스는 가봉과 피팅 과정에서 손상되기 십상이라, 많아 봤자 3~4번의 대여를 한 뒤 폐기처분 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웨딩드레스가 대부분 합성섬유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이다. 매립이 어려워 대부분 소각 처리를 하는데, 그 과정에서 환경오염이 심각하게 발생한다.

이경재 대표는 이런 사실 때문에 옥수수전분, 쐐기풀, 천연 한지 등 친 환경 소재로 드레스를 만들기 시작했다. 또 대여 시스템이 아닌 ‘맞춤’을 원칙으로 하게 됐다. 웨딩드레스 뿐만 아니라 친 환경 콩기름을 이용한 청첩장, 뿌리째 만들어 결혼식 후 화분에 옮겨 담을 수 있는 친 환경 부케 등 에코 웨딩을 실천할 수 있는 영역도 차츰 넓혀가고 있다.


인생의 첫 출발, 의미 있고 아름다운 결혼식으로

아쉽게도 에코 웨딩을 실천하기 위해선 아직 ‘큰 마음’을 먹어야 하는 게 현실이다. 워낙 웨딩 산업이 대형화되고 일반 웨딩 상품의 가격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에코 웨딩의 가격대가 비교적 높은 편이기 때문이다. 지난 4월 경향신문에서 진행한 기획 프로젝트 ‘착한 결혼하기’에 참가한 직장인 백소현 씨는 “친 환경 결혼식을 고려했지만, 결국 비용 문제 때문에 포기했다”고 털어 놓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바쁜 맞벌이 부부를 위해 손 쉽게 쇼핑하듯 선택만 할 수 있도록 설계한 일반 웨딩 상품들과 달리, 에코 웨딩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손수 고르고 신경써야 할 부분도 많다. 우리가 환경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일상 속의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럼에도 ‘붕어빵 결혼식’을 거부하고 뭔가 뜻 깊은 결혼식을 꿈꾸는 예비 부부라면 에코 웨딩에 관심을 기울여보면 좋을 것 같다. 요즘은 에코 웨딩 상품도 점차 늘고 있는 추세다.

일생 일대의 소중한 추억인 결혼식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화려한 웨딩드레스와 비싼 호텔 예식장이 아닐 것이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그저 과시하기 위한 결혼식보다, 환경 사랑의 메시지를 담은 에코 웨딩으로 하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낸다면 두고두고 의미 있는 결혼식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 정도면 인생의 동반자와의 첫 출발로써 꽤나 아름다운 시작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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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에 남은 영화관 할인 서비스를 굳이 써야 한다면서, 좋아라 하며 홀로 영화를 보러갔던 남편은 그날 꽤 무거운 표정으로 돌아왔다. 요즘 한창 화제인 영화 <도가니>를 보고 와서다.

맥주 한잔을 들이킨 남편은 내게 영화에 대해 열변을 토한다.
“인간의 탈을 쓰고 그 쪼끄만 애들한테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 “검사고 판사고 언론이고 공무원이고, 이렇게 썩어빠진 세상이라니…. 너도 언론인의 한 사람으로서 정신 차리고 살아야 해!” “우리가 나중에 아기를 낳으면 세상 무서워서 어디 살겠냐? 정말 세상 참….”

맥주를 더 많이 비운 후에는 흥분한 상태로 이런 결론도 내렸다.
“나를 국회로 보내다오! 국회로 가서 그런 나쁜노무XX들, XX를 확 잘라버리는 법을 통과시켜야…!!! 나를 국회로~!@_@”
이쯤 되니 이 사람을 재워야겠다 싶어서, 얼른 침실로 가서 잠을 청했다. 하지만 이 사람의 투박한 분노를 보니, 영화가 말하고 있는 현실이 얼마나 처절하고 잔인한지 새삼 느껴졌다.

영화 '도가니' 포스터

영화 <도가니>가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의 울분을 자극하고 있다. 약자를 짓밟는 절대 강자의 횡포와 그 잔인함을 시각적으로 생생히 목격하는 일이 어떤 자극보다도 강렬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사람들은 온라인을 통해 영화의 소재가 된 광주 인화학교 원생 성폭행 사건과 관련해 재조사를 요구하고 나섰다. 포털 사이트 다음에는 청원이 봇물 터지듯이 올라오고,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SNS을 통해 감상평을 올리느라 분주하다. 언론은 이런 반향들을 기꺼이 ‘도가니 현상’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미 2005년에 발생해 오래 전 보도된 적도 있는 사건인데, 2011년의 지금 사람들이 이렇게 극렬히 분노하는 이유가 뭔지 궁금해졌다. 영화를 통해 새롭게 조명된 이유도 있겠지만, 사회의 모든 공공 시스템이 피해자보다는 가해자들의 편의를 위해 작동했고 가해자들이 많은 감형을 받으며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은 충분히 공분을 살 만한 일이다. 더군다나 다시 복직한 가해자들까지 있다는 사실은 사람들을 아연실색케 한다.

하지만 사람들의 분노는 아주 깊은 곳에서부터 찾을 수 있는 것 같다. <도가니>의 원작자 공지영 작가는 경향신문 ‘김제동의 똑똑똑’ 코너에서 “사회가 형편없이 무너져 가고 있던 차에 이 영화로 뚜껑을 여니까 ‘도가니’가 지방도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온 대한민국에 퍼져있다는 게 확인된 것”이라면서 “한줌도 안되는 권력층의 횡포와 부패는 더 심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공 작가의 말에 공감한다.


사람들은 영화 속에서 고통받는 약자들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공 작가는 “지금은 야만의 시대”이며 지금의 사회 갈등 구조는 “좌도 우도 아니고 상식과 몰상식의 대결”이라고도 말했다. 우리 사회는 과도한 경쟁을 요구하고, 탈락자에게 주어지는 기회는 점점 더 작아져만 간다. 중산층은 점차 감소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계층 하락을 겪으면서 양극화는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사람들이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는 열광하지만, 자기계발서를 찾는 추세는 점차 잦아들고 있다고 한다. 서울여대 주창윤 교수는 “자기계발서를 통한 알량한 계급 상승을 노려보기에, 세상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는 사실을 점차 깨달아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계급 격차가 날이 갈수록 커져 더 이상 개인의 힘으로 좁히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스스로를 약자와 동일시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또 언젠가는 자신이 사회적 약자로 내몰릴 수 있다는 공포심에도 휩싸여 있다. ‘도가니’나 ‘희망버스’ 등 사회로부터 내몰린 약자에 대한 이슈가 터져나오면 사람들은 폭발적으로 연대한다.

‘도가니 현상’은 지난 9월 초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안철수 신드롬’의 저변과 맞닿아 있다. 더 이상 공적 시스템이 해결해줄 수 없는 부조리한 문제들, 기성 정치권이 감내하지 못하는 사회 병리적인 현상들에 대해 사람들의 울분은 가득 차 올랐고, 무언가 새로운 어떤 것을 갈망한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영화를 보고난 후 사람들은 “부조리한 일과 약자의 고통에 눈 감지 않겠다”는 다짐들을 많이 한다고 한다. 영화관으로 달려가고, 인터넷에 글을 올리고, 사건을 재수사하라고 목소리를 낸다. 삐뚤어진 사회를 바로잡고는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는 구체적으로 잘 모르겠고, 우선은 내 일상과 온라인 공간 속에서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다.

소심해 보이는 듯한 사람들의 분노가 모여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인지, 의아하게도 <도가니>가 고발했던 사회 곳곳의 권력기관들은 저마다 반응을 보이고 있다. 경찰청은 영화가 소재가 된 광주 인화학교 원생성폭행 사건과 관련해 추가 의혹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고, 광주시교육청은 조만간 이 학교를 폐교한다는 방침까지 확정했다. 사건을 맡았던 담당 변호사와 판사는 논란이 불거지자 유감을 표시하기에 바쁘다.

시민들의 움직임들이 모여 사회를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반가운 일이지만 어쩐지 찜찜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측근 비리, 권력형 비리로 물든 이명박 정부가 ‘깨끗한 정부’ 운운하며 수사기관의 고삐를 죄는 가운데 경찰이 재수사에 나섰다. 학교를 폐교한다는 둥 부산히 움직이는 교육청이나 변명하기 바쁜 법조인들의 모습에서 과거에 대한 참회보다는 ‘피하고 보자’는 심산이 느껴져 또 다른 환멸이 느껴진다.

굳이 소설로, 영화로 세상에 알려지지 않으면 묻혀버릴 수 밖에 없는 수많은 ‘도가니’들이 얼마나 이 세상에 많을까. 영화관이나 인터넷에 머물러 있는 우리의 분노들은 좀 더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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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가리비 2011.10.12 12: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낭만은 생활을 벗어난 자리에나 존재하는 것인지
    내가 창넓은 찻집에 앉아
    비오는 날의 낭만적 분위기를 즐기는 요즘에도
    지붕 위에서, 부엌 바닥에서 비와 전쟁을 치르고 있는
    이웃들이 얼마든지 있으리라.
    그래서 우리 시대의 낭만이란,
    '대단히 미안한 짓거리'이기 일쑤인 것이다.

    영화보는내내 이 아홉살인생의 문구가 떠오르더군요.
    지금 이글을 적는 여유로운 순간에도 누군가는 어디선가
    고통받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컴퓨터 앞에서가 아니라
    오프라인으로 나가서 힘있는 목소리를 내야겠다는 다짐도 합니다.

    좋은글 고맙습니다.

    • 이고은 2011.10.13 14:35  댓글주소  수정/삭제

      가리비님, 마치 시인처럼 글을 잘 쓰시네요. 댓글 감사합니다. 우리의 작은 목소리들이 모여 큰 울림이 되겠지요.

지난주 나는 어떤 소식보다 런던 폭동 소식에 유난히 귀를 쫑긋 세웠다. 엄마가 영국을 비롯한 유럽으로 긴 여행을 떠났기 때문이다.
셋째 이모가 런던으로 이민을 가신지 10여년 만에, 외가댁 식구들은 손에 손잡고 함께 유럽여행을 떠났다. 런던의 상황이 심상치 않은 것 같아 연락을 드렸더니 엄마는 별일 없다는 반응이다. 그래도 내 마음은 바짝바짝 탔다.
 
지난주 우리 신문을 읽다 영국의 대학원생이 경험한 생생한 런던 폭동 이야기가 단연코 눈에 띄었다. 글쓴이인 아이작 그레이가 전하는 폭동 현장은 오싹했다. 번화한 도시가 폭동 현장으로 변모한 장면은 세기말을 다룬 영화의 한 장면과 별 차이가 없었다.
그는 이번 폭동의 원인에 대해 “이번 사건은 인종 문제라기보다는 주로 계급 문제”라고 설명했다. 폭동에 나선 이들 대부분이 가난한 흑인들이었지만, 백인 하류층도 폭동에 가담했다.

“백인 하류층도 폭동 가담… 실패한 정치, 계급의 문제”


영국은 부자와 빈자가 계층 구분없이 어울려 거주하는 ‘소셜 믹스’의 대표적 사례로 알려진 나라다. 하지만 실제로는 각종 계층이 뒤섞여 살면서 잘 버무려진 ‘샐러드보울’을 형성하고 있다기보다, 각 계층이 물과 기름처럼 분리된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아이작에 따르면 영국 사람들은 의무교육 등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상승시킬 수 있는 수단들을 잃어버렸다고 한다. 하층민은 영원히 하층민 지위로 탈출하기 어려운, 사회이동성이 현저히 낮은 ‘닫힌 사회’가 되어버린 것이다.

시민들이 경찰과 격력하게 충돌한 런던 토트넘



영국 BBC도 이번 폭동의 원인에 대해
10가지 요인을 꼽았다. 그 중에서 내 눈에 띈 것은 ‘아버지의 부재(Lack of fathers)’라는 부분이었다.
범죄를 저지른 대다수의 젊은이들에게 아버지가 없다는 공통점을 지적한 것은 흥미로운 분석이다. 아버지로부터 건강한 남성성을 경험하지 못한 하층민 아이들이 반사회적인 성향을 띄게 된다는 것인데, 이 말은 곧 하층민 계급의 아이들이 가정 이외의 곳에서는 사회적 역할에 대한 학습을 제대로 받을 수 없었다는 말도 된다. 개인의 문제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모든 계층의 아이들에게 기회가 제대로 주어지지 않았다는 말이다.

The competing arguments used to explain the riots


광화문 사거리. 교차하는 불빛이 갈등하는 한국사회를 상징하는 듯한 생각은 괜한 기분 탓일까?


영국의 상황을 지켜보는 마음은 다른 측면에서도 착잡했다.
우리 한국사회도 몇가지 요인들만 제외하면 비슷한 위험 요인들이 잠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몇주전 큰비가 내려 수도 서울이 잠기고, 부촌이라는 강남 일대의 피해가 엄청났었는데, 이상하게도 사람들의 반응은 냉소적이었다.
방배동 부근에서 탄 택시의 기사 아저씨가 “그래도 돈 많은 사람들이니까 걱정이 안 돼요. 뭐 알아서 잘 하겠지요”라고 말한 게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마치 지구 반대편의 일을 대하는 듯했다. 사람이 죽을 정도로 큰 물난리였던 것 치고는 너무 냉랭해, ‘강남 사람들’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이 이리도 큰가 싶었다. 



무상급식에 대한 주민투표를 두고도 갈등이 증폭 중이다. “부자 아이들에게까지 공짜 밥을 주면 안 된다”는 이들은 반대세력의 주장을 ‘복지 포퓰리즘’으로 매도하며 아예 반 복지의 길로 들어선 듯하다.
토론 프로그램에 보수 진영 인사로 나선 전원책 변호사는 아예 “불평등을 인정하는 것”을 민주주의의 미덕인양 이야기했다. 복지의 영역과 규모를 결정하는 일은 성숙한 논의 과정 속에서 진행되어야 하는데, 건강한 사회 안전망에 대한 심도깊은 논의는 이미 관심영역 밖에 있는 것 같다. 싸움은 보수와 진보, 혹은 강남과 비강남의 갈등으로만 조명된다.


이명박 대통령은 8·15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향후 한국사회가 가야할 지표로 ‘공생발전’이라는 키워드를 꺼내들었다. “탐욕경영에서 윤리경영으로, 자본의 자유에서 자본의 책임으로, 부익부 빈익빈에서 상생번영으로 진화하는 시장경제의 모델이 요구되고 있다”는 것이 이 대통령의 설명이다.
반갑고 바람직한 말이지만 ‘공생’과 ‘복지’란 크게 다른 말이 아닐진대, 이 대통령은 재정건전성을 이유로 ‘복지 포퓰리즘’을 언급하며 복지를 둘러싼 여론을 양분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이렇듯 우리 사회 역시 ‘닫힌 사회’를 향해서 달려가고 있다.

영국 캐머런 총리는 런던의 폭동에 대해 “범죄일 뿐”이라고 진단, 경찰 병력을 통해 제압하겠다고 했다. 사회 갈등의 원인을 뿌리부터 보지 못한 무지의 소치이거나, 혹은 원하지 않는 것은 보기조차 싫어하는 대단히 고집스러운 성격임에 틀림없다. 국가 지도자의 이런 점도 어쩐지 우리 사회의 불운과 닮아 있는 듯하다.


뭐가 어느 나라 사진인지 알아보기 쉽지 않다.


다행히 엄마는 한달 간의 여행을 마치고 무사히 귀국했다. 공항에서 마주한 엄마는 뭐 그리 걱정했느냐는 듯이 소녀처럼 마냥 신난 표정이었다. 하긴, 한국 땅에서도 별일 없이 잘 살고 있는 강인한 아줌마인데 지구의 어느 나라를 간들 뭔 일이 있겠냐는 생각이 뒤늦게서야 들었다. 참 머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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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여강여호 2011.08.15 20: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심성착한 우리 국민들이야 폭동까지야 일으키진 않겠지요.
    밟으면 꿈틀거리는 지렁이의 몸짓도 모이고 또 모이면 지각을 흔드는 법입니다.

한 10년 전이었을 것이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막내동생에게 장래희망을 물었다.
“앞으로 뭐가 되고 싶니?”
곰곰히 생각하던 동생은 이렇게 답했다.

“…음…. 회사원?”

어릴 때부터 장래희망을 명확히 갖고 있던 나로서는 상당한 충격이었다.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잔뜩 부풀어 있어도 시원찮을 나이에 장래희망이 ‘그냥’ 회사원이라니? 나는 혀를 끌끌차며 동생을 한대 쥐어박았다.

이야기를 전해들은 사람들은 박장대소를 했다. 지금에 와서야 하는 말이지만, 당시 동생의 말은 일종의 ‘블랙코미디’였다. 워낙 취직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다보니 주변에서 “회사원되기도 하늘의 별 따기”라는 말을 종종 했고, 어린 녀석에게 그 말이 강하게 뇌리에 남았던 듯 싶다.

"회사원이 되고싶어요"



하지만 동생의 말대로 ‘회사원 되기’나 ‘취직하기’는 오늘날 20대 젊은이들의 간절한 소망이 되었다. 블랙코미디가 다큐멘터리가 된 셈이다.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가질 여유는 20대들에게 허락되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오로지 ‘경쟁’을 외치는 사회에서 자란 20대에게 꿈과 희망이란 일부 선택된 계층에게만 허용되는 단어가 되었다. 인간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욕망인 연애, 결혼, 출산에 대한 욕구도 거세돼 ‘삼포세대’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며칠 전 밤늦게 집에 가는 길, 라디오 프로그램 <유희열의 라디오천국>에 연세대 조한혜정 교수가 출연하는 것을 들었다. 자신의 수업을 들었던 담당 PD의 부탁으로 심야 프로그램인지도 모르고 출연했다는 조한혜정 교수는 ‘심야 피로’를 호소하면서도 오늘날의 20대에 대해 날카롭고 열정적으로 분석했다. 무릎을 치게 만드는 그의 분석을 잠깐 소개한다.

그에 따르면 오늘날의 20대는 현재 30대인 ‘서태지 세대’와는 확연이 구분된다. 서태지 세대는 물질적 풍요와 함께 문화적 풍요로움까지 함께 누린 세대다. 서태지의 <come back home>을 듣고 가출도 해보고, 진한 연애도 해보고, 본격적인 해외 배낭여행도 해보던 세대. 기성세대에 대한 반항을 하면서 사춘기를 뜨겁게 보냈지만, 386 세대와는 달리 개인의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쏟으면서 과도한 무게감은 덜어냈다. 일명 ‘베짱이 세대’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의 20대는 다르다. 이들은 어릴 때부터 오로지 경쟁에만 매몰돼, 세상을 오로지 적들로 가득찬 공간으로 인식한다. 사춘기를 겪어야 할 시기에 대학진학을 위한 경쟁에만 매달리느라, 20대가 되어서야 사춘기를 겪고 혹은 사춘기 없이 그냥 성장하기도 한다. 개인주의는 더욱 심화됐지만 개성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고립’으로 변질됐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경쟁에 길들여진 탓에 매우 성실하고 혼자 하는 일에서는 두드러진 능력을 보이지만 공동작업에는 서툴다. 이들의 능력은 대체로 ‘배양’된 것인 탓에 창의력은 떨어진다.



시간이 흘러 막내동생은 20대가 되었다. 그리고 최근 동생 또래의 친구들은 ‘반값 등록금’을 외치며 거리로 나왔다.

'반값 등록금' 실현을 요구하며 촛불집회에 나선 20대.


고액의 등록금으로 신음하며 대학을 다니는 것도 모자라, 학자금 대출로 겨우겨우 대학을 졸업해도 빚쟁이로 사회생활을 시작해야 하는 현실. 대학을 졸업한다고 해도 미래는 불투명하고, 평생 비정규직의 늪에서 허우적거려야 할지도 모르는 현실.

이런 현실 속에서 “더이상 못 참겠다”고 뛰쳐나온 그들을 보면서, 서태지 세대의 막내뻘 정도 되는 나로선 미안하고 쑥스러워진다. 아마 그들 가운데엔 이번 기회에 첫 사춘기를 앓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혹은 그런 외침에 “부질없다”며 토익책을 펴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아마도 어른들은 그들에게 제대로 된 해답을 주지 못할 것 같다. 정치하는 어른들 가운데에는 벌써부터 이를 기회로 다음 선거를 위한 계산기를 두드리거나, 미래 세대를 위해 논의되어야 할 복지 논쟁을 색깔 논쟁으로 변질시키려는 사람도 있다. 진정으로 그들을 책임지려하는 사람을 찾기란 어려운 일이 되었다. 20대가 미래에 스스로 설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기에 우리 사회는 아직 한참 미성숙하고 너무 여유가 없다.

경향신문 DB


지금 막내동생은 군에 입대해 강원도에서 “김 부자의 목을 따자” 류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장래희망이 회사원이던 꼬마는 제대날을 맞이하는 것이 최대 소망인 군인아저씨가 되었다.

얼마전, 지금 20대들의 움직임을 담은 신문기사들을 담아 동생에게 보내주었다. 하지만 동생이 제대할 때가 되더라도 이 문제는 여전히 풀리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더욱 꼬여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때 동생에게 무엇을 이야기해주어야 할지 막막하다.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위로만 하기에 지금 20대들은 너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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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진짜공감가요 2011.08.21 04: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왜문제를알면서도 해결이안되는걸까요? ㅠ 이십대로서공감하고갑니다.

  2. 저기 2011.08.21 04: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거트위터로못퍼가나요? ㅠ

  3. 저기 2011.08.21 04: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거트위터로못퍼가나요? ㅠ

  4. 뚠쭈이 2011.10.13 12: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경제가 발전하던 70, 80년 세대에 일자리를 가지고 돈벌이에 성공하거나 낙오된 자들의
    자식들이 현재 20대 제가 되겠군요. 어렸을 적 옷을 사러가면 비싼 옷을 잡다가도 엄마
    눈을 보고나면 저도 모르게 가장 싼 옷을 집곤 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리고 그 옷이
    제일이쁘다며 사달라고 징징대고 집에가선 후회하고 그런날의 연속이었죠.

    그래도 먹을것에 대해선 걱정없이 살았고 지금은 어엿한 직장인입니다.
    부모님이 좀 덜 먹고 더 가난하게 사셨던 거겠죠.
    한창 취업준비를 할때는 세상이 거지같고 사회부조리나 기업의 횡포들이 고깝게 보이고
    히키코모리같은 생활을하며 나의 취업적 커리어를 물어보는 사람이 싫기도 했지만

    당시에는 이런 위로들이 고맙기도하고 오히려 부담스럽기도 했어요.
    결국 이런 말들은 변화되지 않는 세상에 대해 이해하라고 토닥여준다고 생각이 들더라구요.

    여튼 보고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글들이 참 많네요 잘보고갑니다.

    • 이고은 2011.10.13 14:38  댓글주소  수정/삭제

      참 요즘 20대들을 보면 안쓰럽습니다. 미안하고 왠지 죄스럽기도 하고요. 적어도 그들이 올라탈 수 있는 사다리를 걷어차지는 않는 선배 세대가 되어야겠지요...?

장충동 족발집이든 마포 껍데기집이든 ‘맛집’이 몰려있다는 동네에 가보면 비슷한 장면이 있다. 요란한 TV 맛집 프로그램 방영 광고판이 달린 집과 없는 집에 극명한 차이가 난다는 점이다. 광고판이 달린 집에는 북적북적 손님이 넘쳐나고, 없는 집에는 파리가 앉을 정도로 사람이 없다.

TV 맛집 소개 프로그램의 실체와 허구를 낱낱이 파헤친 영화 <트루맛쇼>가 화제다. TV에 소개된 맛집들이 사실은 브로커들에게 돈을 주고 프로그램에 일종의 ‘광고’를 한 것이고, 그래서 이런 맛집들의 ‘맛’은 정작 형편없을 수밖에 없다는 게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다. 영화는 “나는 TV에 나오는 맛집이 왜 맛이 없는지 알고 있다”라는 날카로운 멘트로 시작된다.

영화 '트루맛쇼'


맛집 프로그램들이 처음부터 이렇게 ‘망가진’ 것은 아니다.
2000년대 들어 우후죽순 생겨난 맛집 프로그램들은 이후 10년간 시청자들에게 꾸준히 사랑받아왔다. 90년대에도 전국의 특산물을 소재로 한 맛 기행 프로그램들이 있었지만, 음식을 본격적으로 조명한 프로그램은 2000년대의 새로운 트렌드다. 과거 기사를 검색하다보니 2002년에 새로운 방송 트렌드로 맛집 프로그램 기사가 경향신문에 소개된 적이 있다.

2002/03/05(화) 33면
‘먹는게 최고’음식프로 넘친다 - 맛대결.식당 소개.보양식.건강정보 등 다뤄

지금 TV는 ‘음식천하’다. 최근 음식을 소재로 한 프로그램이 경쟁적으로 생겨나고 있다. SBS ‘장미의 이름’, MBC ‘찾아라! 맛있는 TV(사진)’ ‘일요일 일요일 밤에-건강보감’ 등 오락 프로그램에서도 음식을 두고 게임을 벌여 승자를 가리거나 맛대결을 벌이는 코너가 인기다. ‘VJ특공대’ ‘VJ클럽’ ‘출동 6㎜ 현장 속으로’ ‘리얼코리아’ 등에서도 소문난 맛집을 소개하는 것이 단골 아이템이다.

이들 프로그램의 인기는 경제사정과 관계가 깊다는 것이 방송 관계자들의 의견. 지난 2일 첫 방송된 신설 프로그램 SBS ‘생방송 잘먹고 잘사는 법’의 이윤민 PD는 "IMF 여파가 걷히면서 생활에 여유가 생기자 시청자들의 관심이 ‘잘 먹는 것’에 쏠리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또 먹는 것에 대한 본성을 자극하는 것도 한 요인이다. 방송작가 원성진씨는 "음식 프로그램은 일단 먹음직스런 음식 화면으로 시각과 미각을 만족시키기 때문에 시청자들의 호응이 크다"고 말했다.
특히 ‘생방송 잘먹고 잘사는 법’은 음식을 소재로 했지만 궁극적으로는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방법’에 초점을 맞췄다. ‘테마음식 대탐험’ ‘강력추천, 이주일의 음식’ 등은 물론이고 ‘뱃살프로젝트’를 통해 운동과 올바른 식단관리 등 정보제공에 주력하고 있다.
‘찾아라! 맛있는 TV’는 매주 국내와 미국.일본.필리핀 등의 유명 맛집 14곳과 ‘스타의 맛집’ 1곳을 소개한다. ‘장미의 이름’은 매주 2가지 음식메뉴를 갖고 맛대결을 펼치고 ‘건강보감’은 보양식 관련 음식들을 주로 등장시킨다.
그러나 이들 프로그램에 대한 비난도 많다. 시청자 게시판에는 "고급요리에만 치중해 실용성이 없다" "출연자들이 음식을 두고 장난치거나 게걸스럽게 먹는 모습이 꼴불견이다" 등의 의견을 비롯해 "해외에서 소개하는 희귀음식들은 사치를 조장한다"는 비판도 있다. 맛집의 간접광고나 ARS 자막방송도 문제다.
각 방송사들이 봄 개편을 맞아 새로운 음식관련 프로그램을 기획중이어서 ‘음식천하’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윤민 PD는 "이제는 단순히 맛있고 보기 좋은 음식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몸에 이로운 음식을 바르게 먹는 법에 대해 다뤄야 할 때"라고 말했다.
김희연 기자 egghee@kyunghyang.com


당시 사람들은 음식을 방송의 소재로 다룬다는 데 대해 의아해했다. 음식이란 맛과 향이 관건인데, 과연 그 복합적인 감각들을 방송 화면으로 고스란히 담아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었다.

하지만 이는 괜한 걱정이었다. 맛과 향을 느낄 수 없는 음식들을 TV 화면 속에서 클로즈업했을 때 보는 이들에게는 ‘상상’의 문을 더욱 열어줬다. ‘저렇게 먹음직스러운데, 저렇게 김이 모락모락 나는데 얼마나 맛있을까’ ‘출연자가 저렇게 맛있게 먹는 것을 보면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과는 뭔가 다른 게 있을 거야’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면서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트루맛쇼' 김재환 감독이 돈을 내고 출연한 과정을 고발한 맛집 프로그램 중 하나인 '찾아라! 맛있는 TV'


하지만 이런 맛집 프로그램들이 승승장구하자 여기에는 ‘돈’이 꼬이기 시작한다. 맛집 프로그램에 소개되기 위해 외주제작사, 협찬사, 식당 간의 얼키고 설킨 부당거래가 존재한다고 영화는 지적한다.

하지만 이런 적나라한 고발에 해당 방송사들은  “사실과 다르다” “함정 취재다” “협찬을 받은 바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방송사의 주장을 듣고 보면
영화 속 장면들도 역시 연출됐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어쨌건 아직 진실은 무엇인지 논란만 일파만파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런 논란들이 전혀 실체가 없는 일일까? 한 일간지의 맛집 담당 기자가 우연히 들른 음식점에서 “맛집 소개를 담당하고 있는데 기사를 내고 싶다”고 하자, 주인장이 “그런 데 나가면 주변에서 ‘돈 얼마나 줬냐’ ‘기자한테 뭘 해줬냐’고 물어서 오히려 골치가 아프다”며 거절했다는 일화를 들은 적 있다.

또 TV에 소개된 맛집 리스트를 갖고 있다는 한 지인은 “그 리스트의 3분의 1 이상이 지금은 문을 닫았는지 연락조차 안 되더라”고도 말했다. 방송 이후 장사가 잘 돼 더 좋은 곳으로 점포를 확장해간 경우도 있지만, 대다수가 TV에서 과장되게 표현된 맛에 오히려 실망을 해 손님이 끊긴 경우다. 맛집 프로그램에 손님으로 출연하는 아르바이트생을 모으는 인터넷 사이트도 있다. <트루맛쇼>가 지적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꺼림칙한 현실이다.

'트루맛쇼'의 한 장면


누구나 잘 모르는 대상에 대해서는 의심을 하고 검증을 원한다.

때문에 공신력 있는 매체를 통해 알려진 대상에 대해선 신뢰도가 높아지기 마련이다. 공인된 매체가 상업적인 목적 없이 무언가를 소개하는 일은 대놓고 ‘우리 것이 좋다’고 광고하는 것과는 분명 다른 행위다.

광고가 무조건 나쁘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광고는 일종의 정보가 될 수 있고, 경쟁 업체들 간에 자사 제품의 좋은 점을 소비자들에게 비교·분석할 수 있게 하는 토대가 되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광고를 목적으로 매체가 발전한 것은 아니었지만, 광고가 매체의 생명력을 불어넣는 데 엄청난 역할을 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속성 때문에 광고는 도구만 된다면 무조건, 어디에든 파고드는 속성이 있다.

요즘엔 방송이나 신문 등 전통적인 매체에서 알려주는 정보보다 블로그, 카페, SNS 등 새로운 매체를 통해 정보를 얻는 경우가 많다. 어떤 물건을 구매하고 싶을 때, 어떤 맛집을 찾아가고 싶을 때, 나보다 먼저 경험한 다른 이들이 ‘후기’ ‘체험’ 식으로 기록한 콘텐츠들이 선택과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대중 매체보다도 한 개인이 목적없이 경험한 것에 대한 기록이 오히려 신빙성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다양한 SNS, 포털의 세계


그러나 요즘 보면 개인 미디어로 여겨지는 신생 매체들 속에도 ‘돈 냄새’가 나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파워 블로거들이나 대형 카페에 기업의 광고성 낚시글이 범람한다. 나의 경우에도 결혼을 앞두고 결혼 관련 카페를 통해 정보를 찾다 광고성 낚시글인지도 모르고 현혹된 적이 여러번 있다.

정재승 KAIST 교수는 SNS 시대와 관련, “물건을 구입하고 소유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물건과 함께 경험을 파는 시대”라고 말한 적이 있다. 경험이 다른 이들에게 소비될 수 있음을 간파한 수많은 광고주와 광고업체들은 사람들의 순수한 경험들에 개입해 광고 수단으로 삼고야 만다.

프랑스에는 세계적인 음식 잡지 ‘미슐랭 가이드’가 있다. 타이어 제조업체인 미쉐린이 발간하는 미슐랭 가이드가 독자들로 부터 신뢰를 얻고 세계 최고의 음식 잡지로 거듭난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심사관이 마치 암행어사처럼 일반인으로 가장하고 음식을 맛보는 식으로 자신들만의 ‘공정성’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만약 그 사이에 돈이 오갔다면 과연 그 명성을 얻을 수 있었을까?

'미슐랭 가이드' 한국판




 

Posted by 이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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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방송사서 변명, 해명한 것도 2011.05.13 13: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덧붙이긴 해야할 듯 싶네요.

    정확히 어느 쪽이 거짓말이나 왜곡질을 하고 있는 지 제대로 보이지 않거든요.
    그런 거라면, 양쪽의 시각을 모두 적어주는 게 옳다고 보여집니다.

    암튼, 저런 얘기가 상당히 많았기 때문에 좀..

    제길~

  2. 강동원 2011.05.19 14: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돈 냄새 난다는 기사 보고 들어왔더니

    우연찮게 여기구만요...ㅎㅎ


    잘 지내시죠? 지금 서울에서 교육 중인데 여기 구경 한다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습니다 ㅋㅋ

    복귀 해서도 자주 놀러오겠습니다~~~^^

100억원짜리 집은 얼마나 대단한 집일까.

최근 우리나라 최고 재벌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강남에 짓는 100억원대 단독주택이 화제가 됐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고급 주택가에 짓고 있는 이 집은 대지면적만 823.1㎡(약 250평)에 달한다고 한다. 이 회장이 현재 살고 있는 용산구 이태원동의 집도 100억원에 가까운 가격을 자랑한다. 2005년 주택가격 공시제도 도입 이래 6년째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집’으로 기록되고 있는 집이다.

이태원동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자택


100억원이라는 놀라운 가격도 그렇지만, 화제가 된 것은 주택 내의 ‘지하’ 공간이었다. 삼성동 집은 지하 3층으로 지어질 예정이고, 이태원동 집도 지하 2층의 공간을 갖고 있다고 한다.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의 자택에도 본채, 별채를 잇는 지하 공간이 마련돼있다고 한다.

문득 2007년 삼성특검 당시, 이 회장의 이태원동 자택을 드나들었던 특검수사팀을 취재했던 한 타사 기자 선배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압수수색을 위해 이 회장의 집을 찾은 특검수사팀 수사관들을 취재해 이 회장의 이태원동 자택에 대한 기사를 쓰려했는데, 회사 측에서 만류해 결국 기사를 내보내지 못했었다는 것이다.

당시 전해들은 이야기 속에서도 ‘지하’ 공간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한 특검수사관이 전하는 이 회장의 집은 대문에 들어서자마자 깜깜한 암흑 공간이 펼쳐졌고, 차를 타고 서행으로 1분 정도 지나니 겨우 지상의 빛이 보였단다. 일종의 지하 ‘터널’인 셈이다. 지하 터널이 있다는 사우디아라비아 파드 국왕의 ‘제네바 궁전’이 오버랩된다. 이 회장의 집이 주택이라기보다 거의 궁전에 가까운 모양이다.

 회장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재벌 총수들의 집에는 이런 지하 공간이 많다고 한다. ‘외부 노출’로부터 차단하기 위한 장치다. 빛이 없는 지하 공간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전기요금이 당연히 뒤따른다.



나도 지하 공간에서 기거했던 적이 있다. 언론고시를 준비하던 외롭고 괴롭던 백수 시절이었는데, 신림동 녹두거리 인근의 한 반지하 월세방이었다.

저 많은 집들 중에 내 집은 어디에?

반지하여서 빛이 정말 반쯤만 ‘새어’ 들어오던 곳이었는데 때문에 습한 여름 장마철엔 벽지가 습기로 눅눅해져 괴기스러운 풍경이 연출되곤 했다. 당시엔 백수라는 심리적 부담감과 함께, 살고 있는 공간에 대한 환멸 때문에 우울증에 걸리겠다 싶을 정도였다. 다행히 몇 개월 후 경향신문에 입사를 하고 뒤이어 여동생도 함께 서울살이를 하게 되면서 나의 짧았던 반지하 생활은 끝이 났지만, 그때의 기억은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다.

공간은 인간의 삶을 구성할 뿐만 아니라 규정하기도 한다. 당시의 반지하 월세방은 내가 몸을 뉘일 수 있는 물리적 공간이었지만, 동시에 미래가 불투명하고 경제적으로 무능력한 20대 백수라는 나의 ‘정체성’을 상징했다. 꿈도 있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젊고 혈기왕성한 나의 정체성을, 내가 사는 공간은 그렇게 옥죄었다. 그래서 그 기억은 내게 그저 기억일 뿐, 추억이 되지는 못한다.



나를 포함해 ‘주택 대란’ 속을 헤매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도 지금의 집은 추억의 공간이 되지 못할 것이다.

계절이 돌아오면 오른 전세보증금을 내지 못해 더 비좁은 집으로 이사를 가야 하는 사람들. 은행 빚을 깔고 집을 소유하고는 있지만, 그 빚이 낳는 이자에 깔려가는 사람들. 집을 구할 수 없어 결혼을 미루는 사람들과 가족과 떨어져 살아야 하는 사람들. 더러는, 집세 내기도 버거워 삶 대신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들….

 


이들 모두에게 집은 자신의 정체성을 옥죄는 공간이 되어, 외롭고 괴로운 삶을 살아내라고 강요하고 있을 것이다. TV 드라마나 광고 속에 등장하는 ‘시크릿 가든’ 같은 화려한 집들, ‘빚내서 전셋값을 대라’며 엉뚱한 곳에 돈을 쏟는 정부를 바라보면서는 더욱 숨이 막힐 것이다.

100억원이란 돈을 들여 굳이 ‘지하’를 파고 집을 짓는 재벌의 이야기를 듣는, 땅밑이나 다름없는 갑갑한 집에서 살고 있는 숱한 마음들은 그저 헛헛하기만 하다. 같은 시대, ‘지하’에서 산다는 것은 이렇게도 다르다.

Posted by 이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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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박혁 2011.03.09 10: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 하다가 보니 공감이 많이 갑니다..
    자주 놀러올께요^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