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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나는 아프리카

신현수 글·전주영 그림 | 열다 | 184쪽 | 1만1000원



아프리카는 처음부터 구원받지 못한 땅이었을까. 오늘날의 아프리카를 생각하면 기아에 허덕이는 깡마른 아이들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된다. 잦은 내전과 질병, 낮은 경제성장률, 높은 문맹률…. 만약 신이 있다면 이 땅을 포기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아프리카의 현실은 참혹하다. 흑인인 버락 오바마가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지만, 흑인에 대한 경시와 차별은 여전하고 ‘흑인은 열등하고 미개하다’는 편견 역시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15세기 이전의 아프리카는 그렇지 않았다. 인류 4대 문명 중 하나인 이집트 문명의 발원지 아프리카는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인류의 고향’이었다. 뿐만 아니라 광활한 대자연과 풍부한 광물 자원을 토대로 무역도 발달했었다. 지금도 아프리카는 세계 인구의 15%가 살고 있을 정도로 규모가 크며, 영토 역시 세계에서 두번째로 넓다. 그런 아프리카가 왜 이렇게 무너져 버렸을까? 그 질문에 답하기에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은 참 미미하다. <처음 만나는 아프리카>는 이 질문에 답할 수 있게 도와주는 책이다. 저자는 번영을 이루었던 땅 아프리카가 퇴보하게 된 역사적 배경을 읽기 쉽고 자세하게 안내하고 있다.


아프리카의 비극은 16세기 노예 무역이 횡행하면서 시작된다. 흑사병이 휩쓸고 간 유럽에는 노동력이 부족했고, 노예를 찾는 수요가 높아져만 갔다. 서아프리카의 국가들은 대서양을 건너 온 유럽인들의 높아진 수요에 맞춰 노예 무역을 확대한다. 아프리카에서 희귀했던 총과 화약, 술, 담배, 귀금속 등 물건들을 얻기 위해서다.


저자는 노예 무역에 관한 기록을 토대로 끔찍했던 당시 현장을 생생히 보여준다. 노예 무역으로 번영했던 베닌, 다호메이, 아샨티 왕국 등은 힘이 약한 주변 나라나 마을을 공격해 포로들을 노예로 팔았다. 노예사냥꾼에 의해 ‘사냥감’으로 전락하고 짐승처럼 사고 팔린 흑인 노예들의 참상은 상상 이상이다. 유럽으로 이들을 실어 나른 노예선의 환경은 너무도 참혹해 ‘바다 위의 지옥’으로 불릴 정도다. 가축처럼 갇힌 채 대서양을 건너면서 죽어나간 노예는 250만명에 이른다.


노예 무역은 아프리카에 심각한 문제를 남겼다. 힘 세고 젊은 남자 노예가 많이 팔려나가면서 아프리카의 남녀 성비는 최고 40 대 100에 이르렀다. 노동력이 부족해지면서 아프리카의 경제와 산업은 뒷걸음칠 수밖에 없었다. 저자는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는 유럽인들이 아프리카 사람들을 ‘상품’으로 취급하며 이들을 미개하고 열등한 인종이라 인식하게 된 것”이라면서 “이는 향후에도 아프리카 대륙 전체가 발전하는 데 치명적인 걸림돌이 된다”고 설명한다.


노예제도가 폐지된 이후에도 아프리카는 줄곧 시련을 겪었다. 유럽 식민지 시대에 아프리카는 대부분 유럽 열강에 의해 갖은 약탈과 핍박에 시달렸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각국이 독립을 이룬 지금까지도 아프리카의 완전한 자립은 어려운 상태다. 불행했던 과거의 유산들 때문에 부족 간 다툼과 내전이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프리카는 오랜 오해와 편견처럼 미개하고 열등한 대륙이 아니다. 노예 무역과 노예제에 맞서 싸운 역사적 기록이 있고, 지금은 진정한 독립과 자치를 위해 아프리카 연합을 구성해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고 있다. 아프리카를 이해하는 일은 인류 진보의 역사를 이해하는 일로 이어진다. 여전히 약육강식의 논리를 주창하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세계인들에게 아프리카의 아픈 역사는 중요한 참고서가 된다.


이고은 기자 freetr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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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여유가 있어야 2012.08.03 16: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프리카가 발전하지 못했던 이유는 여유가 없어서일 것!
    날씨도 날씨지만, 야생동물들의 위협도 굉장했고 또.. 식량을 여유있게 생산해내지 못해서...
    근데 지금.. 우리나라가 그 쪽으로 나아가고 있는 중임! ㅠ.ㅠ

일전에 문화부에서 일했던 인연으로 어린이책 리뷰를 계속 쓰고 있습니다. 어린이책을 읽다보면 어른들이 읽는 책보다도 삶에 훨씬 더 유용한 지혜가 담겨있다고 느낄 때가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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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청한 편지가!…황선미 글·노인경 글 | 시공주니어 | 112쪽 | 9000원

 

 

 

“별안간 가슴이 찌릿했다. 얼굴도 확 뜨거워졌다. 태어나서 이런 편지는 처음이다.”

 

그러나 열 살 동주에게 날아온 첫 연애편지는 안타깝게도 잘못 온 것이었다. 동주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클 만큼 빠르게 자라고 있는 영서가 반장 호진이에게 줄 고백의 편지를 동주의 가방에 잘못 넣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이후 동주의 눈앞에는 영서가 유난히 자주 나타나는 것 같다. 유치원 때까지만 해도 울보 오줌싸개였던 영서가 좋아하는 남자아이에게 연애편지를 쓸 정도로 커버렸다니. 동주는 가슴 한쪽이 뻐근하고 마치 아픈 것 같은 이상한 기분에 휩싸인다. 자기 발 사이즈보다 25㎜나 큰 농구화를 신고 다녀야 할 만큼 또래보다 작은 동주의 성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마당을 나온 암탉>의 저자 황선미가 내놓은 신작 <멍청한 편지가!>는 어린이에서 10대로 넘어가는 길목에 선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모든 것이 처음이고 새로운 것투성이인 아이들에게 변화란 두려운 일이다. 변화는 급작스럽게 다가와 어린 인생을 통째로 뒤흔들어 놓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게 인생의 ‘처음’을 겪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한 단계씩 성장한다.

 

동주도 “난 여자들이 제일 싫어”라며 단짝 동성 친구하고만 지내려 한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귀찮고 힘든 일이다. 그런 동주에게 날아든 ‘멍청한 편지’는 그 어떤 것보다 동주를 변화시키는 촉매제가 된다. 편지를 받아본 후 동주에게는 평소 별스럽지 않던 주변이 달라보이기 시작한다. 자기 의견을 똑 부러지게 주장하는 영서의 모습에 깜짝 놀라고, 몸만 자랐지 꼼수를 피우는 호진이에 대해서는 비판적으로 보게 된다. 다리가 불편한 같은 반 아이가 축구 심판을 보면서 보여주는 단호한 모습을 발견하거나, 주변 어른들에 대해서도 나름의 판단을 하게 된다. 익숙한 세계에만 머무르려 했던 동주의 관심사가 더 넓은 세계로 확장되는 과정이다.

 

낯설지만 설레는 첫사랑의 감정은 ‘나’에게만 머물러 있던 어린 자아를 확장시키고 타인을 이해하게 만드는 건강한 에너지로 작용한다. 작가는 “처음 이성을 사랑하는 순간, 아주 놀랍고 어여쁜 순간에 아이들은 성장한다”면서 “감정을 존중받으며 자란 아이는 남을 이해하는 사람이 되고 훨씬 멋지게 살아갈 것”이라고 말한다.

 

<멍청한 편지가!>는 첫사랑 외에 어린이가 청소년으로 커나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미묘한 감정선도 잘 묘사하고 있다. 동주는 10살만 되면 9살 때 입던 옷이 맞지 않을 정도로 클 수 있을 것이라 여겼지만, 미리 사둔 큰 옷은 여전히 몸에 맞지 않아 ‘헐랭이’라는 별명을 벗지 못한다. ‘키가 쑥쑥 커’라는 알약을 먹고 몸이 늘어나길 바라면서 철봉에 거꾸로 매달려도, 작고 마른 몸이 순식간에 성장하지는 않는다. 이런 동주의 불만은 심각한 콤플렉스로 묘사되지 않고 익살맞게 그려진다. 약간의 불만과 열등감도 있지만, 동주는 괴로워하거나 자신을 학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빨리 성장하는 또래들을 관찰하고 자신을 알아가면서 내적으로 성숙하는 계기를 맞는다. 이런 동주의 건강한 성장은 같은 상황에 처한 어린이들에게 좋은 위로와 롤 모델이 될 수 있다.

 

책에 그려진 일러스트는 <멍청한 편지가!>를 더욱 빛나게 하는 장치다. 화가 노인경은 빨리 자라 멋진 청소년이 되고 싶은 동주의 바람을 재치있게 그려냈다. 동주가 생각하는 ‘열 살의 이동주’는 ‘멋지고 힘세고 남자답고 키 크고 운동 잘하고 어른같은’ 모습이다. 커서 덜그럭거리는 지금의 운동화가 딱 맞는 ‘245㎜의 발’ 부분에서는 웃음이 터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책을 덮는 순간 독자들은 동주가 그 발보다도 한참 더 자라있음을 느끼게 된다.

 

이고은 기자 freetr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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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번째 아이
이은용 글·이고은 그림 | 문학동네 | 268쪽 | 1만1000원


‘2075-819’. 레오의 팔목에 새겨진 숫자다. 인간과 똑같은 모습을 한 레오는 사실 안드로이드 로봇이다. 팔에 새겨진 숫자는 레오가 2075년 819번째로 생산됐다는 의미다.

머지않은 미래인 2075년에는 하루가 멀다하고 최신형 로봇들이 개발된다. 강아지 로봇, 물고기 로봇은 물론이고 아이들을 위한 ‘동생’ 로봇까지 만들어지는 가운데, 인간들은 마침내 사람의 모든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설계된 ‘감정 로봇’을 탄생시켰다. 레오는 감정 로봇이다. 인간처럼 웃고, 인간처럼 슬퍼하고, 인간처럼 분노하는 뜨거운 감정을 지녔다.

시우는 외모부터 두뇌, 성격, 운동능력까지 완벽한 아이다. 하지만 평범한 인간들처럼 엄마 아빠의 사랑으로 탄생한 아이가 아니라, 유전자 설계로 만들어낸 ‘맞춤형 아이’다. 특히 그중에서도 가장 완벽하다고 평가받은 13번째 아이다.

로봇 연구원인 시우의 엄마는 ‘장시우 프로젝트’를 계획했다. 엄마의 바람대로 시우는 짙은 갈색 머리에, 성인이 되었을 때 키가 187㎝ 정도 되도록 ‘설계’됐다. 성격은 냉철하고 판단력은 뛰어나며, 감성지수보다 이성지수가 유독 높게 만들어졌다. 시우는 어쩌면 로봇인 레오보다도 더욱 차가운 심장을 지녔다.

제12회 문학동네 어린이문학상 수상작인 <열세번째 아이>는 어린이문학 장르에서는 드문 SF 작품이다. 이 작품은 인간과 인간이 아닌 존재의 경계가 무너진 현실 속에서 존재론적 질문을 던지고자 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저자는 사람들이 꿈꾸는 ‘완벽한 존재’들을 통해 인간사회의 잔인한 욕망과 그로 인한 오류들을 잘 그려냈다.

완벽한 인간과 로봇을 만드는 것이 목표인 시우의 엄마는 “세상에 나오려면 뭐든 완벽해야 해. 사람이든 기계든”이라고 읊조린다. 하지만 완벽하다고 여겨졌던 이들은 점차 예상 밖의 모습을 보인다. 맞춤형 아이들은 철저하게 가공·관리되면서 본질적인 인간성을 잃어버리고, 감정 로봇들은 존재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인간성을 갈구한다. 급기야 이들은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노벨상까지 수상한 첫번째 맞춤형 아이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감정 로봇들은 인간에게 대항하다 대량 학살을 당한다. 이런 장면들은 ‘인종 청소’라는 비극을 초래한 우성학 논쟁을 연상시키며 생명 윤리의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한편 책은 아주 극단화된 미래 계급사회를 그렸다. 시우는 “과학은 미래를 향해 달려가지만 사람들은 계급을 나누던 과거로 돌아가려는 것 같다”고 말한다. 결점 없이 완벽한 맞춤형 아이에게는 사람들의 경외가 쏟아지는 반면, 경제적으로 무능해 로봇을 소유하지 못한 이들에게는 멸시가 가해진다. 인간과 로봇의 계급은 더욱 확연해서 아이들은 서로 ‘왕따’시키는 대신 로봇을 학대하고, 업그레이드된 로봇이 생산되면 불필요해진 로봇들을 쓰레기 수거함에 처박아 폐기한다.

누구보다 냉정하고 로봇처럼 차갑던 시우는 자기 존재에 대한 의문을 품기 시작하고, 눈물 흘리는 로봇인 레오와 함께 감정을 공유하면서 차츰 인간성을 찾아간다. 책은 잔인한 경쟁사회 속에 지쳐가는 아이들에게 인간의 존엄성이 무엇보다 소중함을 일깨워주고 있다.

이고은 기자 freetree@kyunghyang.com

Posted by 이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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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의 심리 클럽
김서윤 글·김다명 그림 | 창비 | 284쪽 | 1만1000원


“마음은 빙산과 같다. 커다란 얼음 덩어리의 일부만이 물 위로 노출된 채 떠다닌다.”(지그문트 프로이트)

우리는 자신의 마음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나의 마음인데도 도통 그 속을 모를 때가 있다. 지금 하고 있는 행동과 실제 마음이 다를 수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자기 마음 속을 들여다보고 이해하는 훈련을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심리학은 이렇듯 빙산 수면 아래에 자리한 더 큰 얼음 덩어리처럼, 드러나지 않은 우리 마음 속 깊은 내면에 무엇이 있는지 탐구하는 학문이다.

안나는 아직 꿈이 무엇인지 찾지 못한 열다섯살 소녀다. 안나는 중학교 2학년이 되면서 ‘심리 실험반’에 들어간다. 우연히 모집 포스터에 쓰인 ‘이렇다 할 꿈이 없는 1인’이라는 지원자격 문구를 본 것이 계기가 됐다.

안나는 심리학을 전공한 최이고 선생님, 4명의 친구들과 함께 ‘토요일의 심리 클럽’을 결성하고, 매번 친구들과 함께 다양한 심리실험을 경험한다.

아이들은 첫 시간부터 성격 심리 테스트를 한다. 성격을 알아보기 위한 스무개의 질문에 답한 뒤, 성격 유형을 분석한 결과를 받아보는 실험이다. 결과를 받아본 아이들은 ‘와, 이거 진짜 내 성격인데’라며 놀라워한다. 결과가 얼마나 맞다고 느끼는지를 묻자 아이들은 5점 만점에 평균 4.8점이라는 높은 점수를 줬다.

하지만 사실 아이들이 받은 성격 분석 결과는 모두 똑같은 내용이었다. 성격이 제각기 다른 아이들이 똑같은 내용을 보고도 ‘꼭 들어 맞는다’고 느낀 것은 바로 ‘바넘 효과’ 때문이다. 이는 사람들의 보편적 성격이나 심리적 특징을 자신만의 특성으로 여기는 경향을 말한다. 이처럼 인간의 심리는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면이 많다.

아이들은 수업 시간마다 역사상 유명한 심리실험을 경험하면서 심리학을 공부가 아닌 놀이처럼 접하게 된다. 좋아하는 연예인이 광고하는 제품을 사고 싶어지는 이유는 ‘후광 효과’에서, 한정 판매 상품이라고 하면 꼭 필요하지 않은 데도 구매하게 되는 현상을 ‘희귀성의 법칙’에서 깨닫게 된다.

책은 이처럼 흥미로운 심리적 현상들을 아이들의 생활 속 이야기들을 통해 풀어간다. ‘비합리성’, ‘기억과 공부’, ‘인간 관계’, ‘사회’, ‘감각’, ‘진화’ 등 6가지 주제 아래 다양한 심리실험과 심리이론이 등장한다.

꿈을 찾지 못해 불안하고 초조했던 안나는 자신의 마음을 심리학적으로 탐색하면서 점차 안정감을 찾아 간다. 다양한 심리실험을 통해 스스로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자, 꿈을 찾는 길 위에 있다는 사실이 설렘과 호기심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안나는 또 자신을 둘러싼 사회문제에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면서 정신적 성숙도 이뤄간다. 겉으로 드러난 빙산의 일각만 보는 게 아니라, 숨겨진 커다란 얼음 덩어리의 실체와 본질을 보는 법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자칫 청소년에게는 어려울 수 있는 심리학 이론을 중학생들의 실제 생활 속 문제와 엮어내고 눈높이를 맞춘 저자의 솜씨가 돋보인다. 제1회 창비청소년도서상 교양 부문 대상 수상작이다.

Posted by 이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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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문화부에서 의뢰해 격주로 어린이책 서평을 쓴다.
서평을 쓰면서 느끼는 건데, 어린이책 가운데 어른들이 읽어도 잔잔한 감동을 주는 책들이 많다! ___________________

▲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 왕대

김탁환 글·조위라 그림 | 살림어린이 | 240쪽 | 9500원


아기호랑이 왕대는 ‘으뜸 호랑이’가 되고 싶다. 아직 태어난 지 5개월밖에 안됐지만, 언젠가는 엄마호랑이보다 더 많이 자라 숲의 왕으로서 인왕산 숲을 마음껏 누리며 살고 싶은 게 꿈이다. 그런데 어느 날, 불을 다스릴 줄 아는 인간이 엄마호랑이를 해치고 왕대를 창경원 동물원으로 잡아간 뒤부터 모든 것이 바뀌었다. 왕대는 동물원에서 여러 아기 동물들을 만나지만, 아기 동물들 사이에서 왕 노릇을 하는 사자 피터 때문에 친구를 사귀기도 어렵다. 왕대는 점점 숲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커지지만, 탈출을 감행하다 박제가 된 암컷 호랑이 태백을 보면 두렵기만 하다.

역사와 생태 동화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 왕대>는 불과 100년 전까지만 해도 한반도에 살고 있었던 호랑이에 대한 이야기다. 100년 전이라면 우리 민족에게 가장 비극적인 시기였던 일제강점기다. 당시 조선총독부는 호랑이를 해로운 동물로 보고 ‘해수구제(해로운 맹수를 없앤다)’라는 명목 아래 호랑이를 무차별 말살하는 정책을 폈다. 처음엔 한반도에 살고 있는 호랑이를 사냥해 동물원에 가두었지만,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엔 동물원에 갇힌 호랑이마저 ‘살처분’하기에 이른다. 인왕산 등지에서 천하를 호령하던 호랑이는 이렇게 잔인한 인간들 때문에 점점 이 땅에서 사라져갔다.

책은 자연스럽게 역사와 생태를 말한다. 가상의 호랑이 이야기이지만, 우울한 근·현대사의 한 장면을 잘 보여준다. 왕대는 일제에 의해 동물원으로 변해버린 창경원에서 사육사 보조인 조선인 꼬마 재윤이를 만난다. 재윤이는 언젠가 정식 사육사가 되고 싶지만, 일본인들의 무시와 멸시를 받으며 지낸다. 비슷한 처지에 놓인 왕대와 재윤이는 강자에게 짓눌리고 억압받는 약자의 모습을 고스란히 말해주고 있다.

숲과 동물원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은 인간사에서 횡행하는 약육강식의 세계를 쉽게 보여준다. 야생의 숲은 냉정하다. 제아무리 숲의 강자인 맹수라고 해도 적으로부터 공격받지 않기 위해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고, 만약 사냥에 실패하면 며칠이고 굶주림에 시달려야 한다. 먹이사슬의 원칙이 철저하다.

동물원은 비열하다. 그래서 더욱 잔인하다. 자연생태계의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이 아니라 절대 강자가 모든 것을 지배한다. 가장 상위에 있는 존재는 결국 ‘인간’이다. 동물원의 히로키 원장은 동물들의 먹이를 끊어버리거나, 말썽을 피우면 독방에 가둬버릴 수도 있다. 심지어 전쟁을 이유로 치사량의 3배에 달하는 독극물을 먹여 동물들을 대량으로 살상한다. 이는 한국에서 동물을 대량으로 사육하고 대량으로 죽이는 ‘살처분’의 시발점과도 같은 사건이었다. 자연과 생태, 인간이 함께 어울리는 공존과 조화를 추구하는 우리의 전통적인 사고방식이 무너지는 계기이기도 했다.

동화 속 왕대는 결국 동물원을 탈출해 숲으로 돌아가지만, 현실 속 호랑이들은 숲과 생명을 모두 잃어 멸종에 이른다. 저자는 “동물의 멸종위기에는 우리의 책임이 있다”며 “멸종된 동물을 다시 태어나게 한다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인 만큼 동물들이 멸종위기에 처하지 않도록 신경을 쓰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고은 기자 freetr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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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네 숲은 깊다
강우근 지음 | 철수와영희 | 192쪽 | 1만3000원


미처 몰랐다. ‘자연놀이’가 이렇게 흥미진진한 것인지.

토끼풀잎(클로버)은 만능 장난감이다. 잎자루가 긴 토끼풀잎으로는 안경도, 머리띠도, 팔찌도 만들 수 있다. 민들레 꽃대에 이파리만 연결하면 즉석 바람개비가 완성된다. 가을길에 구르는 낙엽도 만만치 않다. 민숭민숭한 가위바위보 놀이도 낙엽만 있으면 더욱 재미나다. 은행잎은 가위, 느티나무 잎은 바위, 단풍나무 잎은 보자기다. 형형색색의 낙엽을 오리고 붙이면 토끼, 쥐, 여우 등 각종 동물 인형도 ‘뚝딱’ 만들 수 있다.

강우근의 <동네 숲은 깊다>는 현대인들이 잊고 사는 자연에서의 ‘유희’를 일깨워주는 책이다. 저자 강우근은 귀농을 꿈꾸지만 용기가 없어 꿈을 이루지 못한 어린이책 작가다. 내내 도시를 떠날 궁리만 하던 그는 도시 한가운데서도 자연과 만나는 방법을 터득한다. 집 안의 베란다와 텃밭, 아파트 뒤편의 작은 숲, 심지어는 하수구 같은 동네 개울물까지…. 그가 자연 속을 여행하기 위해 아이들과 함께 찾은 곳은 그리 멀지 않은 우리의 일상 속이다.

책은 일종의 ‘자연놀이 설명서’다. 동네 곳곳에서의 자연놀이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저자가 동네에서 만난 동식물은 약 300종에 이른다. 이름도 처음 들어보고 모두 똑같게 생긴 듯 생소한 것들이지만, 자세히 보면 각자의 이름도 있고 모양새도 다르게 생겼다.

저자와 함께 봄나물을 캐러 간 아이들은 냉이를 찾다가 냉이와 비슷한 모양의 다양한 풀들을 발견한다. 꽃다지, 지칭개, 망초…. 이름은 제각각이지만 모두 냉이와 닮았다. 벌레함정을 만들어 벌레 잡기에 나서서는 모가슴 소똥풍뎅이, 혹가슴 검정 소똥풍뎅이와 꼬마검정 송장벌레, 수중다리 송장벌레가 어떻게 다르게 생겼는지도 배운다.

저자는 자연을 무조건 보호하고 감싸야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네잎토끼풀을 찾으러 가서 “꽃을 꺾으면 자연을 망치게 되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고 그는 “토끼풀과 같이 사람 사는 둘레에 적응해 살아가는 들풀들은 산속에 사는 토종 야생화와 달리 어느 정도 사람 손을 타야 더 잘 자란다”고 일러준다. 그렇다고 인간의 입맛에 맞게 조율하고 재배치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개울에 도롱뇽과 올챙이들을 잡으러 가서, 청계천처럼 반듯하게 바꾸려고 파헤쳐진 모습을 보고는 4대강 공사를 떠올린다.

“숲도 만들고 개울도 만들고 강도 만들고… 자연을 사람이 만들 수 있다는 거꾸로 뒤집어진 생각이 바뀌지 않는다면 제2의 4대강, 제2의 청계천이 이름만 바뀔 뿐 계속될 것이다.”

저자의 시선은 땅과 거의 수평을 이룬다. 숨가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의 잰걸음을 멈추고, 조용히 자연을 바라본다. 저자는 무균실에 갇혀 살고자 하는 현대인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축축하고 비릿한 자연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움트는 생명과 계절의 변화를 몸으로 느낀다. 그래야 살아있는 자연이 보이기 때문이다. 책에는 저자의 관찰력이 돋보이는 섬세한 삽화들이 수록됐다. 자연도감 수준의 아름다운 수채화를 보고 있노라면, 자본이 만들어낸 욕망으로 그득한 사회가 더욱 천박하고 우스워 보인다.

이고은 기자 freetr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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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와 만나는 세계 미술 여행(전 4권)
존 맥페일 나이트 글·멜리사 스위트 그림 웅진주니어 | 각 72쪽 내외 | 각 9000원

“1892년 6월12일. 지베르니 아미쿠르가. 오늘은 일찍 일어나서 그림을 그리러 강가로 갔다. 아빠는 외바퀴 수레에 이젤과 화구를 넣었다. …아빠는 이젤을 펴고 빛이 ‘딱 좋을’ 때를 기다렸다. 마침내 그때가 되자, 굉장히 빨리 그림을 그렸다. 나는 아빠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왜 똑같은 풍경만 그리는지 궁금했다.”

미국 보스턴 출신의 소녀 샬롯은 화가 클로드 모네의 고향 프랑스 지베르니를 여행하고 있다. 샬롯은 화가인 아빠와 함께 이곳을 여행하며 꼼꼼히 일기를 쓴다. 이날 샬롯의 궁금증에 대해 아빠는 이렇게 답한다. “중요한 건 풍경이 아니라 빛이란다. 아빠는 빛과 공기, 색에 대한 아빠의 인상을 그리는 거야.”

존 맥페일 나이트의 <명화와 만나는 세계 미술 여행>은 19세기 후반 프랑스를 중심으로 꽃핀 인상주의를 한 소녀의 눈높이에서 소개한다. 책은 마치 <안네의 일기>처럼, 가상인물인 샬롯이 여행을 다니며 쓴 일기로 미술 이야기를 친근하게 풀어간다. 샬롯의 여정은 꽤 길다. 지베르니에서 파리로, 파리에서 뉴욕으로, 뉴욕에서 런던으로 이어진다. 3년여의 긴 시간 동안 세계 곳곳을 여행한 샬롯은 열정을 불태우는 화가들을 보면서 미술에 대한 사랑을 키워간다.

어린이들에게 자칫 어려울 수 있는 인상주의 미술 사조는 샬롯의 어린아이다운 관찰과 묘사 덕분에 이해하기가 한결 쉽다. 책 곳곳에는 어렵고 멀게만 느껴지는 명화들과 친해질 수 있도록 배려한 흔적이 묻어난다. 빛과 함께 시시각각 움직이는 색채의 변화를 잡아내는 인상파 화가들의 작업 모습은 샬롯의 일기 속에서 생생하게 그려진다. 샬롯이 일기 속에 담아낸 여행지의 풍광 역시 인상주의 작품을 보듯 생동감이 느껴진다. 샬롯 가족의 첫 여행지가 지베르니인 것도 인상주의를 보다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장치다.

샬롯은 여행하며 만난 유명한 인상파 화가들의 모습을 일기 속에 고스란히 담았는데, 그 묘사가 흥미롭다. 아이의 눈을 통해 본 화가들은 마치 동네 아저씨나 할아버지처럼 친근하고 인간적인 존재로 그려진다. 그림에 대해 혹평을 들은 르누아르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져 식당을 뛰쳐나갔다거나, 개를 싫어하는 고갱의 성격이 고약해서 개들도 고갱을 싫어한다는 샬롯의 이야기는 웃음을 자아낸다.

화가들과의 인연을 소개하면서 관련 작품도 실었다. 모네의 <지베르니의 배>, 고갱의 <춤추는 브르타뉴 소녀들>을 비롯한 50여점의 인상주의 대표 작품들이 샬롯의 일기 곳곳에 스토리와 함께 녹아들어 있어 보는 이의 공감을 일으킨다.

미술 이야기 외에 아기자기한 소녀의 일상, 다채로운 여행 이야기도 재미를 더한다. 샬롯은 자신이 가꾼 채소와 과일로 요리하고 레시피도 메모한다.

고향인 미국이 아닌 프랑스에 산타 할아버지가 찾아올지 걱정하거나, 미국에 있는 친구 리지와 주고받는 순수한 편지글도 아이답다. 책 곳곳에 그려진 파리, 뉴욕, 런던의 여행 명소와 그곳의 볼거리는 마치 이곳을 여행하는 기분에 빠지게 한다.

이고은 기자 freetr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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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 호랑이탄 한국인과 놀다
이나미 | 민음인

경상도에서 여자아이를 가리켜 ‘가시내’라고 부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느 옛날 돌팔매, 토끼잡이, 황소 등 올라타기에 능한 씩씩한 여자아이가 있었다. 이 여자아이는 나라에 전쟁이 나자 자기도 전쟁터에 나가겠다고 하지만, 장군은 여자아이라고 거절한다. 하지만 이 여자아이는 갓을 쓴 채 말을 타고 나타나 적진으로 뛰어들어 결국 적군을 물리쳤다. 전장에서 군사들이 이 여자아이를 “갓 쓴 애”라고 불렀고, 그 이후 이 말이 변해 ‘가시내’가 되었다고 한다.

국내 최초 분석 심리학자인 이나미 박사는 <융, 호랑이탄 한국인과 놀다>를 통해 민담으로 전해지는 이 이야기 속에서 우리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한 무의식을 분석한다. 분석에는 분석 심리학자 융의 심리 분석 기법을 사용했다.

저자는 가시내 민담이 “여성 속에 숨어 있는 영웅 원형을 깊이 생각하게 만들어준다”고 말한다. 가시내가 쓴 ‘갓’은 여자에게도 남자와 같은 사회적 역할, 즉 페르소나가 필요하며 그런 페르소나가 적절하게 만들어져야만 여자도 사회 구성원으로서 훌륭하게 기능할 수 있다는 상징이기도 하다.

저자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우렁이 각시’ ‘여우누이’ ‘선녀와 나무꾼’ 등 재미난 민담을 통해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이 때문에 읽기도 좋고 재미도 있다. 민담이란 본래 구전되는 것이기 때문에 활자로 기록해야 하는 지적인 작업과는 거리가 있다. 그래서 무의식과 자연스러운 본능들이 담겨져 있고, 집단 무의식의 분석 대상으로 흥미롭다.

저자는 “가능한 한 시대정신에 지배될 수 있는 의식적, 사회적 가치 기준과는 비교적 거리를 두고 심리학의 순수한 이슈와 닿아 있는 옛날이야기에 대해서만 주로 탐구하려고 애썼다”며 “후세 작가들에 의해 윤색되지 않은 고유한 민담들은 이념적 목적 없이 마치 개인의 꿈처럼 인간의 본능과 욕망, 어두운 면들을 가감 없이 그대로 보여준다”고 말했다. 1만3000원

이고은 기자 freetr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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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일사냥꾼…아담 리스 골너 | 살림

달콤하고 향긋한 과일이 그저 디저트일 뿐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과일은 역사 속에서 수많은 전쟁과 독재, 새로운 세계의 발견을 촉발한 불씨였다. 성서에 보면 아담과 이브는 선악과라는 과일을 따먹은 직후 축복받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선악이 존재하는 물질계로 들어온다. 트로이전쟁의 시작은 파리스가 아프로디테에게 건넨 불화의 사과 때문이었다. 크세르크세스 왕이 페르시아전쟁을 일으키도록 자극한 것은 아티카 지방의 무화과였다.

역사와 함께 해온 것이 비단 과일뿐이겠냐만은, 과일 칼럼니스트인 아담 리스 골너는 <과일사냥꾼>에서 과일을 통해 세계를 관찰한다. 저자는 일상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떨쳐버리고자 브라질을 방문한 뒤 과일의 세계에 천착하게 된다. 과일에서 ‘생명애’, 즉 생명에 대한 사랑을 느끼게 됐기 때문이다.

책은 저자가 수년간 지구 곳곳을 누비며 과일을 맛보고, 관련 문헌들을 샅샅이 조사하고, 과일 산업종사자와 ‘과일주의자’들을 만나 겪은 경험들을 담아냈다.

ㆍ역사를 창조하고 바꾼 ‘불씨’… 상업화로 본연의 맛 잃어

우리가 일상 속에서 자주 접하는 사과, 오렌지, 바나나 등 수많은 과일들은 과일의 세계에선 극히 일부일 뿐이다. 우리가 돈만 지불하면 쉽게 만날 수 있는 이 과일들은 그만큼 산업화, 상업화된 것임을 말한다.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슈퍼에서 살 수 있는 이들 과일은 “선택받은 몇몇 과일”이자 “국제무역을 독점한” 과일들이다.

하지만 전 세계 곳곳, 자연의 속살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지구상에는 머리가 아찔할 정도로 다양한 과일들이 넘쳐난다.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무수한 과일들의 세계로 들어가보면 그야말로 점입가경이다. 여성의 생식기를 그대로 조각한 듯한 과일 ‘코코드메르’는 일명 ‘숙녀과일’이라고 불린다. 인도양 서부 마다가스카르 북동쪽의 섬나라 세이셸에 있는 이 과일은 실물 크기의 여성생식기와 똑 닮았다. 대부분 이름도 들어보지 않았을 법한 ‘아라카 열매’는 아마존강의 과일 관련 기관들에 따르면 브라질에 있는 해변의 수만큼 그 종류가 다양하다고 한다. 호박 파이 맛이 나는 ‘릴리 필리’, 하얀 광선이 박혀 폭발하던 별이 얼어붙은 모습을 한 ‘바늘꽂이 열매’, 크림 같은 안개가 가득 찬 감귤류로 껍질을 벗기면 공기 중에 소용돌이치는 ‘웬 초우(wen-chou) 밀크 오렌지’…. 독자들은 과일의 세계가 알면 알수록 넓고 깊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과일은 예로부터 에로틱한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과일이 사랑의 결실이고 향기로운 성교의 산물이어서일지도 모르겠다. 모든 과일의 시작은 꽃이고, 꽃의 암술과 수술이 만나면 과일이 생긴다. 이집트 파피루스에 보면 석류와 젖가슴은 서로 같다고 적혀있다. 서양자두, 복숭아, 체리, 살구는 여성의 둔부에 비유된다. 남성도 마찬가지다. 아스텍족에게는 아보카도, 베르베르족 유목민에게는 무화과, 로마 6대 황제 세르비우스에게는 사과가 각각 고환을 일컫는 말이었다.

신비로운 자연의 산물인 과일은 오늘날에 와서 세계화와 상업화로 인해 외려 소외되고 있다. 과일에 화학물질과 살충제가 잔류하고, 광택을 내고 수명을 늘이기 위해 왁스칠을 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과일은 자연 그 자체가 아니라 인공의 상품으로 둔갑하며 본연의 맛을 잃어버렸다. 저자는 이를 ‘파우스트적 거래’라고 명명했다.

다국적 농업 비즈니스는 인간과 자연 사이의 괴리를 더욱 넓히는 역할을 할 뿐이다. 저자는 책을 통해 기업형 농장과 유전자 조작 과일 식품의 폐해 등을 지적한다. 그는 “도시화와 산업화로 우리는 식량이 근원에서 멀어졌고 실제 재배하는 방법조차 잊어버렸다”고 꼬집었다.

저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생명애’다. 그는 책머리에서 “뒷마당이든 해외에서든 우리는 과일의 존재를 발견하면서 자연이라는 숭고한 영역과 결합한다. 생명애 체험은 다양성을 사랑하는 것으로 그 사랑이 덧없기도 하고 무한하기도 하지만, 그 다양성은 우리 주변을 떠돌면서 희망을 안겨준다”고 말했다. 김선영 옮김. 1만6000원

이고은 기자 freetr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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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명문가의 독서교육…최효찬 | 바다출판사

현재 미국에서 ‘왕조’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유일한 가문인 케네디가. 존 F 케네디의 어머니 로즈 여사는 아이들이 식사 시간에 ‘뉴욕타임스’ 기사에 대해 토론하도록 이끌었다.

신문의 좋은 글을 오려 붙이고 식사 때 그에 대해 토론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식당에는 두 개의 식탁을 마련해 대화 수준에 따라 작은 식탁과 큰 식탁으로 나눠 앉게 했다. 모든 아이들이 대화에 참여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훗날 로즈 여사는 회고록 <케네디가의 영재교육>에서 4~5살부터 책 읽기와 토론 훈련을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계적인 명문가들은 저마다 독특한 독서 교육 비결로 인재들을 배출해왔다. 자녀경영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는 최효찬씨는 <세계 명문가의 독서교육>에서 세계의 명문가를 만든 비결이 개성있는 독서교육법에 있다고 보고 여러 명문가들의 독서교육법을 소개하고 있다.

처칠가, 케네디가, 네루가, 루스벨트가, 버핏가 등 외국의 명문가를 비롯해 박지원가, 이율곡가 등 국내 명문가까지 10개 가문의 독서 교육 비법을 소개한다. 이른바 ‘명품 독서교육’인 셈이다.

저자는 이 명문가들의 독서교육 비결을 정리하며 몇가지 공통점을 찾게 된다.

바로 △집안에 서재나 작은 도서관을 갖추라 △고전을 필독서로 삼아라 △고전과 더불어 당대 필독서를 조화롭게 읽혀라 △끌리는 책을 먼저 읽게 하라 △독서를 한 후 토론을 시켜라 △독서에 그치지 말고 글쓰기도 병행하게 하라 △역사와 민담 등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어라 △책속에 머물지 말고 여행을 하면서 견문을 넓혀라 △독서와 함께 신문 읽기를 병행하라 등이다.

책은 각 명문가의 독서 교육 비법을 자세하게 소개하는 것은 물론, 각 가문의 필독서들도 친절하게 소개했다. 1만3800원

이고은 기자 freetr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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