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공포 영화를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세상이 마냥 꽃밭처럼 화사해 보였던 20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피가 튀고 살이 잘리는 폭력물조차도 보기 싫어했던 나다. 전쟁 장면을 실감나게 그려낸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보던 도중, 영화관에서 뛰쳐나와 화장실로 뛰어갔던 전력도 있다. 영화 사진 출처 : 모두 네이버 영화 출처 : http://yfrog.com/h6d7sp
그런데 20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언젠가부터 공포 영화의 ‘마력’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돈 주고 왜 고문을 당하느냐”며 공포 영화를 거부했던 나였지만, 어느새 이름난 공포 영화가 개봉하면 찾아가서 보는 일종의 ‘마니아’가 되어버렸다.
왜일까?
바로 공포 영화가 주는 카타르시스 때문이다. 극도의 긴장감으로 관객을 몰아간 뒤 그것을 일거에 해소하는 공포 영화의 영화적 기법은 보는 이에게 상당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공포 영화를 무조건 싫어하는 이유는 이 극도의 긴장감 때문인데, 긴장 뒤에 뒤따르는 이완의 카타르시스를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이런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고 난 뒤의 기분은 뭐랄까, 상당히 스릴있는 롤러코스터를 타고 난 기분이랄까. (아…, 나는야 변태 매저키스트?)
당시 재미있게 본 공포 영화로는 동굴 속에 갇혀 미지의 괴물로부터 공격받는 <디센트(descent)>, 흡혈귀와 30일간의 사투를 그린 <써티 데이즈 오브 나잇(30 days of night)>을 추천하겠다. 보다 보면 숨이 멎는 듯한 공포를 꾸준하게 맛볼 수 있다. 단, 둘 다 속편은 절대 보지 말길 권한다.
그중 특히 좀비 영화에 빠진 적도 있다. 좀 잔인하지만 코믹한 요소도 있는 <새벽의 황당한 저주>, 28일이란 시간 동안 온 세상이 좀비 투성으로 변하는 <28일후>는 수작이라 생각한다. 나를 제외한 세상 모든 이가 인간의 모습을 한 좀비가 되어가는 상황은 그 자체로도 얼마나 공포스러운가. 무조건 베고 죽이는 피 튀기는 공포물보다 심연의 공포를 끌어내는 것이 더 무서운 법이다.
좀비 영화의 마력은 세기말적 분위기에 있다. 엄연히 말해 좀비 영화는 아니지만 영화 <눈먼 자들의 도시>에도 묘한 매력이 있는데 영화 전반에 흐르는 세기말적 분위기 때문이다. 이건 일종의 재난 영화로도 볼 수 있겠는데, 알 수 없는 바이러스로 인해 모든 사람의 눈이 멀어버리면서 망가져가는 인간 사회를 그렸다. 혹시 볼 생각이 있다면, 주제 사라마구의 원작 소설을 먼저 읽기 권한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 공포 영화에 대한 나의 흥미는 급격하게 떨어졌다.
공포 영화에 열광하는 또 다른 이유는 일종의 ‘도피 심리’에도 있다. 현실이 잔인하고 무서울 때, 현실보다 더 끔찍하고 공포스러운 가상의 세계로 들어가면 현실의 고통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다. 그리고 나서 다시 현실로 돌아왔을 때, 지금의 현실이 영화를 보기 전보다 좀 나아 보이는 착시 현상도 경험할 수 있다. ‘세상이 아직 살 만하다’는 착각 혹은 안도를 주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나는 현실이 공포 영화만큼이나 충분히 끔찍하고 공포스럽다는 사실을 느끼고 있다.
이것은 며칠 전 트위터를 통해 떠돈 한 사진이다.
@Photomaker79라는 트위터리안이 올린 사진인데, 경기도 연천군의 실제 현장 사진이다. 구제역 때문에 매몰한 돼지 사체가 노출되자, 그 사체를 뜯어먹겠다고 달려든 독수리떼 사진이다. 이걸 보고 많은 이들이 ‘세기말’적이라며 수많은 RT를 눌렀다. 이 장면보다 더 공포스러운 영화가 있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무서운 사실은 더 있다. 구제역 매몰 사체에서 발생하는 침출수가 지하수로 흘러들어 구제역 발생 지역의 물은 거의 ‘죽은 물’이나 다름 없어졌다. 죽은 물, 죽은 땅…. 완전히 복원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모르니, 그 사이에 물 때문에 알 수 없는 전염병이라도 생기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 봄이 되면 알 수 없는 기괴한 병이 창궐할지 모를 일이다.
살아있는 생명을 무참히 땅에 파묻었으니, 이들의 원혼이 구천을 헤매고 떠돌아다닐 수도 있다. 소, 돼지의 형상을 한 귀신들이 ‘내 억울한 사연을 들어보시오’ 하고 고속도로에 뛰어드는 장면을 보았다거나, 어느 시골 지하 공간에 갔더니 피 흘리는 돼지 귀신이 다가오더라는 목격담이 조만간 들려올 지도 모르겠다.
이런 일들이야 말로 돈 주고도 볼 수 없는 초절정 그로테스크 호러물이 될 것이다. 영화보다 더 공포스러운 현실이 버젓이 기다리고 있는데, 뭐하러 돈 주고 공포 영화를 보러 가겠는가. 벌써부터 으슬으슬해진다.
동영상 보러가기 : [현장에서]살처분 7분 영상에 눈물·분노… “아우슈비츠가 따로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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