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공포 영화를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세상이 마냥 꽃밭처럼 화사해 보였던 20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피가 튀고 살이 잘리는 폭력물조차도 보기 싫어했던 나다. 전쟁 장면을 실감나게 그려낸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보던 도중, 영화관에서 뛰쳐나와 화장실로 뛰어갔던 전력도 있다.

그런데 20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언젠가부터 공포 영화의 ‘마력’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돈 주고 왜 고문을 당하느냐”며 공포 영화를 거부했던 나였지만, 어느새 이름난 공포 영화가 개봉하면 찾아가서 보는 일종의 ‘마니아’가 되어버렸다.



왜일까?

바로 공포 영화가 주는 카타르시스 때문이다. 극도의 긴장감으로 관객을 몰아간 뒤 그것을 일거에 해소하는 공포 영화의 영화적 기법은 보는 이에게 상당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공포 영화를 무조건 싫어하는 이유는 이 극도의 긴장감 때문인데, 긴장 뒤에 뒤따르는 이완의 카타르시스를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이런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고 난 뒤의 기분은 뭐랄까, 상당히 스릴있는 롤러코스터를 타고 난 기분이랄까. (아…, 나는야 변태 매저키스트?)


당시 재미있게 본 공포 영화로는 동굴 속에 갇혀 미지의 괴물로부터 공격받는 <디센트(descent)>, 흡혈귀와 30일간의 사투를 그린 <써티 데이즈 오브 나잇(30 days of night)>을 추천하겠다. 보다 보면 숨이 멎는 듯한 공포를 꾸준하게 맛볼 수 있다. 단, 둘 다 속편은 절대 보지 말길 권한다.

그중 특히 좀비 영화에 빠진 적도 있다. 좀 잔인하지만 코믹한 요소도 있는 <새벽의 황당한 저주>, 28일이란 시간 동안 온 세상이 좀비 투성으로 변하는 <28일후>는 수작이라 생각한다. 나를 제외한 세상 모든 이가 인간의 모습을 한 좀비가 되어가는 상황은 그 자체로도 얼마나 공포스러운가. 무조건 베고 죽이는 피 튀기는 공포물보다 심연의 공포를 끌어내는 것이 더 무서운 법이다.

좀비 영화의 마력은 세기말적 분위기에 있다. 엄연히 말해 좀비 영화는 아니지만 영화 <눈먼 자들의 도시>에도 묘한 매력이 있는데 영화 전반에 흐르는 세기말적 분위기 때문이다. 이건 일종의 재난 영화로도 볼 수 있겠는데, 알 수 없는 바이러스로 인해 모든 사람의 눈이 멀어버리면서 망가져가는 인간 사회를 그렸다. 혹시 볼 생각이 있다면, 주제 사라마구의 원작 소설을 먼저 읽기 권한다.

영화 사진 출처 : 모두 네이버 영화




그런데 최근 들어서 공포 영화에 대한 나의 흥미는 급격하게 떨어졌다.

공포 영화에 열광하는 또 다른 이유는 일종의 ‘도피 심리’에도 있다. 현실이 잔인하고 무서울 때, 현실보다 더 끔찍하고 공포스러운 가상의 세계로 들어가면 현실의 고통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다. 그리고 나서 다시 현실로 돌아왔을 때, 지금의 현실이 영화를 보기 전보다 좀 나아 보이는 착시 현상도 경험할 수 있다. ‘세상이 아직 살 만하다’는 착각 혹은 안도를 주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나는 현실이 공포 영화만큼이나 충분히 끔찍하고 공포스럽다는 사실을 느끼고 있다.

이것은 며칠 전 트위터를 통해 떠돈 한 사진이다.

출처 : http://yfrog.com/h6d7sp

@Photomaker79라는 트위터리안이 올린 사진인데, 경기도 연천군의 실제 현장 사진이다. 구제역 때문에 매몰한 돼지 사체가 노출되자, 그 사체를 뜯어먹겠다고 달려든 독수리떼 사진이다. 이걸 보고 많은 이들이 ‘세기말’적이라며 수많은 RT를 눌렀다. 이 장면보다 더 공포스러운 영화가 있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무서운 사실은 더 있다. 구제역 매몰 사체에서 발생하는 침출수가 지하수로 흘러들어 구제역 발생 지역의 물은 거의 ‘죽은 물’이나 다름 없어졌다. 죽은 물, 죽은 땅…. 완전히 복원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모르니, 그 사이에 물 때문에 알 수 없는 전염병이라도 생기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 봄이 되면 알 수 없는 기괴한 병이 창궐할지 모를 일이다.

[여적]흉가(凶家) 2011.2.17 경향신문

 
살아있는 생명을 무참히 땅에 파묻었으니, 이들의 원혼이 구천을 헤매고 떠돌아다닐 수도 있다. 소, 돼지의 형상을 한 귀신들이 ‘내 억울한 사연을 들어보시오’ 하고 고속도로에 뛰어드는 장면을 보았다거나, 어느 시골 지하 공간에 갔더니 피 흘리는 돼지 귀신이 다가오더라는 목격담이 조만간 들려올 지도 모르겠다.

이런 일들이야 말로 돈 주고도 볼 수 없는 초절정 그로테스크 호러물이 될 것이다. 영화보다 더 공포스러운 현실이 버젓이 기다리고 있는데, 뭐하러 돈 주고 공포 영화를 보러 가겠는가. 벌써부터 으슬으슬해진다.


2011년 2월 23일, 잔인하고 공포스러운 동영상이 공개됐다. 구제역 살처분 현장의 모습이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나도 끔찍하고 고통스럽지만, 불편한 진실에 직면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다.

동영상 보러가기 : [현장에서]살처분 7분 영상에 눈물·분노… “아우슈비츠가 따로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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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go 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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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고은